바다를 삼켜버린 기적 같은 조개무덤
세상은 무엇이든 겪어 봐야 하는 지...
그러나 이곳에 도착한 직후 우리는 이내 실망하고 있었다. 날씨 때문이었다. 우기가 끝나갈 무렵의 이곳 날씨는 하늘이 우중충 했다가 걷히면서 땡볕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앙꾸드만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당초 우리가 기대했던 봄나들이는 점점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 따라서 깔부꼬 중심지에서 가까운 해변과 어항을 돌아보고 곧바로 뿌에르또 몬뜨의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봄나들이를 위한 도시락을 챙겨왔지만, 어디 편안히 앉아서 쉴만한 장소 조차 찾기 어려웠다. 볕은 따갑고 바람은 찬 희한한 날씨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희한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숙소를 향해 오던 길을 돌아가는 길에 등 뒤에서 당연히 불어야 할 차디 찬 바닷바람이 어느 순간부터 잠잠해 진 것이다. 갑자기 후텁지근하게 느껴져 바다를 바라보니, 그곳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딴청을 피우는 것 처럼 잔잔했다. 깔부꼬 앞 바다는 마치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로 돌변해 있는 것이다.
오전과 오후의 날씨가 전혀 달라지면서 깔부꼬 나들이는 다시 호기심을 더했다. 그리고 깔부꼬 나들이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도시락을 먹는 바닷가에서 바다를 매립한 기적같은 조개무덤이 지근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생전 처음보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마치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 현장으로 함께 가 본다.
먹거리와 사랑은 세계공통어
요즘 처럼 반듯한 '브릿지'도 없는 변변찮은 조타기 앞에서 험난한 파도를 가르며, 깔부꼬나 뿌에르또 몬뜨 또는 칠로에 섬으로 이주를 감행했을 것이다. 이 땅은 목숨을 걸 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천국같은 땅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조타기를 잡은 선원 또는 항해사가 쓴 안경은 거의 수경 수준.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가 눈에 들어가는 것을 보호한 게 특별해 보였다. 또 온 몸을 감싼 겉옷만 봐도 먼 항해길에 나선 이들의 피곤이 절로 느껴진다. 그러나 동상의 표정만 보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하다. 그런 표정은 비록 대상은 달랐지만 깔부꼬 중심가에서 가까운 바닷가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초록색 등주에는 낙서가 빼곡했다.
당신을 사랑해!...네가 좋아!...내 사랑!...
이런 모습...
사랑도 좋고 구경도 좋다. 그러나 배고프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차가운 바닷바람 때문에 잠시 미루어 두었던 점심은 바람이 잦아들자 허기로 돌변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허기를 부채질한 풍경 하나. 소시지가 츌레따(chuleta, 쇠고기-또는 돼지고기- 등심을 가로로 자른 것)와 함께 눈 앞에 나타났다. 이 두가지 식재료는 스튜를 만들어 먹으면 일품. 소지지는 그냥 먹는 게 아니라 껍질 속의 내용물만 스튜에 사용한다. 물론 푹 삶아 먹을 수도 있다. 바닷바람 때문에 점심 먹는 타이밍을 빼앗겨 속이 출출한 터라 눈 앞에 나타난 먹거리가 식욕을 마구 충동질 하고 있는 것.
여행 중에 배가 고프면 주변 풍광이 눈에 제대로 들어올 수 없는 법이다.오죽하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겠는가. 하지만 광장시장 처럼 시장 바닥에 앉아서 무조건 주문 할 수도 없고 우리는 도시락을 싸 왔다. 그래서 이곳 저곳 바다쪽을 살피며 볕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을 요량이었는데 깔부꼬 시장을 지나치다가 낮선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렇게 나무 상자에 담겨있으니 속을 알 수 있나...ㅜㅜ
또 이곳에서는 홍합을 나무상자에 담아 팔고 있었다. 깔부꼬 재래시장만의 계량기인 셈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을)바닷가를 살피고 있었다.
이렇게 턱~하니 막아버린 것.
그래서 저 편 서쪽 바다에 있는 배들이 이 도로 반대편으로 오자면 길다란 섬을 한바퀴 돌아야 한다. ㅠ
그곳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에 익은 꽃 한 송이...샛노란 유채꽃이 도로 난간에 고개를 쏙 내밀었다. 반갑다. ^^
아무튼 저 배들은 폭 10m 정도되는 이 도로 (등 뒤)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우리는 그곳에서 마침내 기어코 이윽고 벼르고 별른 점심을 먹게 됐다. 참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도시락 먹는 시간은 왜 이렇게 반가운지...ㅋ
아내가 도시락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카메라는 쉬지않았다.
야채를 넣고 스튜처럼 푹 끓인 장조림은 도시락 반찬으로 먹기도 했지만 장거리 이동을 할 땐 얇게 저며 빵 속에 넣어 먹곤 했다. 치즈버거와 햄버거가 지겨워질 때 쯤 자주 애용하던 빠따고니아 투어 필수품이었던 것. 배낭여행객 또는 세미배낭여행객들이 기억해 두면 요긴하게 써 먹을 수 있을 것. 비용도 줄이고 맛 있는 음식을 자취해 먹는 기쁨도 있다.
점심을 먹던 그 곳에 찰랑 찰랑...소리도 없이 바닷물이 수위를 조금씩 더 높이고 있었는데 점심을 다 먹자 수위는 발 아래까지 차 올랐다. 바닷물은 주사기에 물을 채워넣는 듯 은밀하게 깔부꼬 바다를 조용히 잠식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장소에서 고개를 들어보면 바다물빛이 달라보이는 곳이 있었다.
바로 이 곳...어선들이 닻을 내리고 조용히 붙들려(?) 있는 바다. 그 아래로 에머랄드빛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빛깔은 주변의 풍경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점심도 먹었겠다...천천히 여유를 갖고 평화로운 풍경 몇 개를 건지고 싶었다.
이런 풍경. 깔부꼬를 투어한 우리의 추억은 에머랄드빛 바다 너머 언덕길로 이어지고 있었던 것.
짧게 이어진 해변을 따라 풍경 몇을 찍으려는 데 놀라운 광경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해변의 작은 언덕은 온통 조개껍질로 매립이 된 모습이었다. 조개무덤이었다. 얼마나 많은 조개를 얼마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먹었는지, 해변에는 거대한 조개무덤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기적 같은 모습.
바다를 삼켜버린 기적 같은 조개무덤
조금더 이동해 보니 해변은 온통 조개껍질 투성이. 이런 조개껍질이 바다를 메워 에메랄드빛으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조개껍질이 한데 뒤엉켜 화석으로 변한 모습.
이런 귀한 장면을 보여주기 싫어서(?) 오전에는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우리를 냉대했을까.
"당신을 사랑해!...네가 좋아!...내 사랑!..."
여행자를 깜짝 놀라게 한 조개무덤 속에서 가녀린 봄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렇게 달콤하고 황홀한 메세지. 언제쯤 들어봤던가. <계속>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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