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 하나에 붙들린 작은 어선들의 몸부림...!"
만조 때를 기다리는 작은 어선들의 표정을 보니 여행자의 심정을 쏙 빼 닮은 것 같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못하면 안달을 부릴텐데 여행지에서 조차 우리는 구속(?)을 용납하지 않았다. 숙소는 그저 끼니를 챙겨먹거나 샤워를 하고 잠을 자는 용도 외 우리는 하루종일 파김치가 될 때까지 싸돌아 다니는 것. 그런 습관은 긴여정의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곤 했다.
*포스트에 다 수록하지 못한 현지의 아름다운 파노라마는 동영상에 담았음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여행지의 하루 일과는 아침을 먹으면 미리 점 찍어둔 곳으로 발길을 옮기고, 저녁나절쯤 숙소로 돌아오면 하룻동안 기록해 둔 여행지의 이미지를 외장하드에 쏟아붓거나 여행 노트를 끼적거렸다. 그 시간동안 아내는 여행지에서 지출한 경비를 낱낱이 가계부(?)에 기록했다. 긴여정의 여행을 차질없이 진행하려면 미리 계획한 비용 이상을 지출하면 귀국을 앞 당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숙소에 돌아오면 샤워를 마치고 잠들기 전에 현지에서 취득한 지도와 여행정보를 통해 다음 여정을 준비하곤 했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20편
-칠레의 7번 국도에서 만난 잊지 못할 풍광-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동안 우리가 다녀오고 싶었던 곳은 몇군데로 정해져 있었다. 장끼우에 호수에 위치한 뿌에르또 바라스와 뿌에르또 옥따이 및 지인과 함께 드라이브를 떠났던 엔세나다가 그 중 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까운 깔부꼬와 7번 국도변에 위치한 차이까스 어촌마을(Chaicas Puerto Montt, Región de los Lagos CHILE)이 포함됐다. 또 뿌에르또 몬뜨 항과 앙꾸드 만을 굽어볼 수 있는 땡글로 섬 등이었다. 그 중 7번국도로 떠난 소풍은 기억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선물했다. 그 현장을 천천히 돌아본다.
#1 칠레의 7번 국도(Carretera Austral)
지구 반대편 남반구에 위치한 칠레의 7번 국도는 악명 높은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José Ramón Pinochet Ugarte)에 의해 계획된 도로였다. 뿌에르또 몬뜨에서부터 시작되는 7번 국도는 깔레따 또르뗄(Caleta Tortel)까지 1,240km로 이어진다. 국도 대부분은 비포장 도로로 우리가 여행할 당시만 해도 여전히 공사중이었다. 공사가 마무리 되려면 적어도 착공한 날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시간 만큼은 더 기다려야 할 정도로 도로의 완성도는 열악해 보였다.
*칠레의 7번국도(Carretera Austral) 자료사진(wikipedia)에 현재 위치를 표시해 두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인 7번 국도 주변엔 볼거리가 널려있어서 이 도로가 아스콘 포장길로 완성되면 파타고니아는 몸살을 앓을 것으로 여겨졌다. 세계 최고의 청정지역으로 평가받는 파타고니아를 관통하는 7번국도 때문에, 여행자는 물론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본래의 모습이 많이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부 파타고니아 뿌에르또 몬뜨에 머물면서 한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곳은 1,240km로 이어진 7번국도변의 풍광이었다. 이날 소풍을 떠난 곳은 장차 펼쳐질 비경을 보여줄 7번국도의 관문같은 곳. 작은 어촌마을이었다. 우리는 서서히 파타고니아의 진풍경이 드리워진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어 줄 소풍길의 시작은 이랬다.
뿌에르또 몬뜨의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주변의 풍경은 도시의 풍경에 비해 전혀 낮설다.
도시의 하늘을 얼기설기 뒤덮은 통신선로와 북적이는 복잡함은 단박에 사라진 자리에 느리디 느린 풍경이 펼쳐진 곳. 시야가 뻥~뚫린다.
7번국도 초입에 펼쳐진 파노라마는 여행자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았다. 마치 구둣솔을 뒤집어 놓은 듯한 숲 너머로 차이까스 어촌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는 저곳에서 하차한 후 힘이 닿는 한 7번국도를 역류해 연어처럼 숙소로 회귀할 예정이었다.
시선은 늘 창밖으로 고정된 채 가슴이 허전함 이상으로 뿌듯해져 온다. 시선을 가리는 장애물이 전무한 바닷가의 한적한 듯 외로운 모습이 여행자의 발길을 재촉한다. 설렘 가득한 소풍길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게 무슨 조화인가...! 조국의 4대강은 만신창이가 됐는데 이곳은 철철 넘치는 작은 강 위로 하늘의 코발트빛 축복이 한 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르힐라가 꽃이 만발한 습지 너머로 오똑 솟아오는 봉우리 기슭에 옹기종이 모여든 집들은 차이까스 어촌마을이며 소풍의 목적지이다.
#2 높이 날지않는 차이까스의 갈매기
대략 1시간 남짓한 시간에 도착한 차이까스 어촌마을의 첫 모습은 이랬다. 썰물 때의 포구 곁 작은 보트 주변으로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고, 그 너머로 조금 전 우리가 차창 너머로 봤던 풍경이 아스라하다. 포구로 이어지는 길 가장자리에 엎드린 새 한 마리가 눈에 띈다.
녀석은 알을 품고 있었는데 이방인의 접근에도 놀라지 않고 모성애를 발휘한다. 파타고니아가 선물한 참 보기드문 광경이다.
또 한 녀석은 무엇을 나꿔챘는 지 큼직한 먹이 하나를 매달고 부지런히 비행하는 곳.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든 이유는 뭘까.
작은 보트 가까이 다가가보니 앙꾸드 만에서 주낚으로 잡은 물고기를 선별해 상자에 담고 있었다. 상품이 되지 못한 물고기들은 바둑이와 갈매기와 독수리들의 몫이었다. 녀석들의 야생 습관 대부분을 앗아간 건 풍요로운 바다 때문이었으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더 이상 높이 날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나 할까.
녀석들은 어느덧 차이까스 어촌의 일부가 되어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
이날 바둑이들은 싱싱한 생선회(?)를 포식하고 있었다.
착한 어부의 시혜를 기다리는 무리 중에는 페리카나도 눈에 띄었다.
먹이 사냥을 위해 멀리 혹은 드높이 날지 않아도 되는 갈매기들...!
녀석들은 부지런히 발품을 파는 여행자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밥이었을 뿐, 자기의 능력으로 하늘 드 높이 비상하는 꿈을 일찌감치 접은 것. 녀석들의 생김새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Jonathan Livingston Seagull) 을 닮았지만, 녀석들한테 더 높이 더 빨리 날으는 비행 따위는 부질없는 짓이었을까.
갈매기 무리들 곁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검독수리 한 마리가 이륙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창공으로 날개짓을 펼쳐보인 멋진 녀석...!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7번국도변 차이까스 어촌의 대자연은 무엇 하나 거슬리는 법이 없는 듯 한가롭고 여유가 넘쳐난다. 마을 뒷편에 기다랗게 서 있는 미루나무와 집 뒷뜰에 심겨진 사과나무에 사과꽃이 만발한 풍경은 '고향의 봄'과 너무 닮았다.
조금 전 검독수리가 사라진 하늘 높이 안데스 독수리가 땅을 굽어보고 있다. 이곳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인디오의 전설을 간직한 신비로운 녀석. 독수리는 티벳 사람들이 죽으면 육신을 독수리에게 내주고 영혼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독특한 장례의식인 천장(天葬)의 매개체다. 또 잉카인들에겐 하늘로 가는 신의 메신저로 알려진 신비로운 조류. 남부 파타고니아로 떠나기 전 우리를 에워싼 조류들이 수호천사가 돼 줄 것인지, 우리는 차이까스의 작은 포구 곁에서 갈매기를 비롯한 뭇 새들로부터 시선 전부를 빼앗기고 있었다.
#3 7번국도로 떠난 잊을 수 없는 소풍
뿌에르또 몬뜨에서 7번국도를 따라 1시간 남짓한 곳에 위치한 차이까스 마을은 크게 기대한 명소는 아니었다. 도시 근교에 자리잡은 '꽤 괜찮은 곳' 정도쯤으로 생각한 것. 그러나 막상 현지에 발을 디디고 보니 현지의 풍광은 기대 이상이었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여행지에서 소풍을 떠난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망중한을 선물한 기막힌 곳이었다.
산티아고에서 바쁘게 남하한 이후 뒤를 돌아볼 사이도 없이 바쁘게 싸돌아 다닌 여행자의 발목을 붙든 정중동의 풍경.
우리는 여행중에 이곳에서 비로소 짧은 쉼을 얻을 수 있었다.
바쁜 여행길의 갈증을 해갈해 준 바닷가에서 도시락을 펴 들고 망중한에 빠져드는 것.
여행자도 가끔은 쉼이 필요했다. 만조 때를 기다리는 작은 보트 한 척을 바라보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낀다고나 할까.
산티아고에서 5번국도를 따라 바쁘게 남하한 이후 북부 파타고니아 뿌에르또 몬뜨의 하루는 바빳다. 여행지에서 한시도 쉬지않고 부지런히 싸돌아 다닌 결과 적당한 휴식이 필요했을 정도랄까. 모처럼 바닷가 잔디밭에 앉아 도시락을 까 먹으며 눈 앞에 펼쳐진 바라보고 있는 것. 그곳에서 재밌는 장면을 목격하게 됐다.
양들이 '쉴만한 물가'에서 풀을 뜯는 장면은 본 적 있으나, 썰물 때의 바닷가에서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은 처음보는 낮선 풍경이었다.
만조 때 잠겼던 풀밭이 간조 때 드러나면서 짭짤한 간식을 제공하는 곳.
동물들의 천국이자 사람들이 꿈꾸는 유토피아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시간이 더 이상 나아갈 곳을 찾지 못한 곳...한낮의 땡볕 아래 드러누운 보트 두 척이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영감을 비웃는 모습.
하늘이 통째로 바닷가에 내려앉은 포구 한켠에서, 여행길의 피곤을 내려놓는다.
차이까스 강(Rio Chaicas) 하류가 바다와 맞닿은 곳...!
#4 다시 못 볼 차이까스여 안녕
그곳에서 아침에 싸 온 도시락을 까 먹으며 말뚝에 매달린 작은 어선들의 표정을 읽어보는 것.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지만 지금은 쉬어야 할 때란 걸 넌지시 일러준 보기 드문 귀한 풍경이다. 매일 드나드는 골목길은 집으로 데려다 주는 귀한 길이지만 당연한 듯 여긴다. 그러나 초행길의 차이까스 마을은 두 번 다시 찾기 힘든 곳. 우리 여정에서 단 한 번 밖에 없는 소풍장소였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가는 발길은 무겁다.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민낯의 차이까스 해변을 가슴에 담으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만조 때가 되면 녀석들은 바다로 나갈것이며 여행자는 숙소로 돌아갈 시간...!
대한민국의 해안 곳곳을 다녀봤지만, 이같은 해변을 본 적이 없을 만큼 여행자의 눈을 사로잡는 풍경들. 화려하진 않지만 진귀한 장면들이다.
#5 아르힐라가 꽃이 손 흔드는 오솔길
사과꽃이 흐드러진 풍경 곁으로 울타리에 널린 빨래는 양털이었다. 인기척이 있었다면 울타리 곁에서 대화라도 나누어 보고 싶었던 아담한 집. 오래전 한 여학생이 장차 살고 싶어했던 곳이 이런 집이었다. 차이까스 어촌 마을의 풍경은 자연을 쏙 빼 닮았다.
7번국도를 따라 숙소로 돌아가는 오솔길은 아르힐라가 꽃이 울타리 너머로 손을 흔드는 곳.
무슨 미련 때문인지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하늘이 숨어들어 코발트빛으로 변한 차이까스 강 하류가 꿈을 꾼다.
차이까스 강 하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7번국도로 이어질테고 우리는 7번국도를 따라 지칠 때까지 걷다가 버스를 타기로 했다.
조금 전 도시락을 까 먹었던 바닷가가 샛노란 아르힐라가 숲 너머 저만치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7번국도를 따라 뿌에르또 몬뜨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
어디를 가나 사람사는 곳은 비슷하지만 차이까스 마을의 빨래 널린 풍경은 이채롭다. 1년치 빨래를 한꺼번에 다 널어놓은 듯한...^^ 살랑거리는 바닷바람과 아르힐라가의 샛노란 꽃봉오리를 폭죽처럼 터뜨린 땡볕은 이들을 젖은채로 가만두지 않을 것.
참 희한한 일이었다. 여행길은 우리가 계획한 것 같아도 막상 현지에 도착해 보면 늘 덤으로 챙겨오게 되는 뜻 밖의 일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도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지독한 미련들이다. 저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얼마간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드는 것. 숙소로 돌아가면 꿈같은 풍경들을 어떻게 기록해 둘까...
무슨 수식어가 필요하겠나. 그냥 그림 한 장만으로 이야기 보따리가 와르르 쏟아지는 데...! 여행지의 하루가 길면 길수록 텅빈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달콤한 덤을 추가로 얻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은 <예술가의 십계명>에서 삶을 지치지 않게 만드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가 하루종일 걷고 또 걷게 만든 원동력이다.
"아름다움은 너에게 졸리움을 주는 아편이 아니고 너를 활동하게 하는 명포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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