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18편
-점심 한끼 18만원에 오그라든 이유-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는 모처럼 만조를 선보이며 갯벌 대부분을 삼키고 수위를 잔뜩 높이고 있었다. 우리는 점심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자동차가 대기하고 있는)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를 거쳐 시내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거리의 견공 세 녀석이 질서있게 잠든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녀석들은 각자 점포의 기둥 하나씩 분양을 받은 듯, 자기 위치를 고수하며 침을 질질 흘리며 낮잠에 빠져든 모습. 희한했다. 어떻게 포즈도 하나같이 똑같이 닮았을까. (ㅋ 바둑이들아 웰케 재밌냐 ^^)
이번에는 지인의 자동차 앞 좌석을 불하(?)받았다. 우리 일행이 가는 '기똥찬 맛집'은 이틀 전에 다녀온 뿌에르또 바라스에 위치해 있었다.
예약을 기다리는동안 잠시 장끼우에 호수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틀 전에 만났던 물새 두 마리가 다정하게 돌섬 위에 앉아있는 모습이 정겹다. 신비롭게도 파타고니아 투어가 끝날 때까지 마치 수호천사라도 되는 양, 뭇새들이 우리곁에서 발견되곤 했다.
지인이 말한 기똥찬 맛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테이블 하나가 주어졌는데 우리 앞에 놓인 요리는 푸짐했다. 큼직한 쟁반에 담긴 쭈뻬 데 마리스꼬는 해물냄새와 치즈향이 범벅이 돼 눈 앞에서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지인이 말한 기똥찬 요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해도 침샘을 마구 자극시키는 것. 카메라도 덩달아 안달을 부렸지만 점잖은 자리에서 요리를 향해 셔터질(?)을 하는 게 걸려 기념으로 몇 컷을 남겼을 뿐이다. (그땐 왜 그랬는 지, 동영상을 남겼으면 그야말로 '기똥찼을' 텐데...^^)
마지막으로 겉도는(?) 새우 한 마리를 포크에 찍어 카메라에게 맛을 보였다. ^^ 맛있게 먹긴 했는데 지인이 한턱쏜 점심값이 18만원이라니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유명한 뷔페에서도 1인 3만원이면 떡을(?) 칠 텐데...(여긴 웰케 비싸? ㅜ) 다음에 우리가 한턱 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커피를 기똥차게 맛있게 내리는 카페가 있다'고 해서 드라이브 삼아 찾아간 곳. 그야말로 기똥찬 곳은, 그곳 엔세나다(Ensenada)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길이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본 장끼우에 호수는 면경처럼 변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먼 데 구름을 이고있는 오소르노 화산 앞이 드라이브 길로 이어지는 곳.
뿌에르또 바라스에서 엔세나다까지 이어지는 225번국도는 환상의 드라이브 길을 제공하고 있었다. 지인은 어쩌다 쉬는 날이면 '싸모님'을 모시고 기똥찬 집에서 밥을 먹고 이 길을 따라 엔세나다의 카페까지 들렀다 오는 것. 두 분이 이 땅에서 누리는 재미가 주로 그랬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 자주 떠났던 곳은 이런 풍경들...!
뿌에르또 바라스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시야가 뻥 뚫린다.
도로 주변을 어지럽히는 장애물이 보이지 않는 곳. 호수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225번국도는 자전거 전용도로도 함께 있었다.
마치 장난감 도로처럼 반듯하고 깨끗한 국도를 보면서 다시 '부러움병'이 도졌다. 국도는 고사하고 대한민국의 자전거도로와 저절로 비교되는 것.
흠...이번에는 안구 정화를 위한(?) 풍경까지...ㅜ
지인의 유일한 낙은 골프와 함께 아내와 기똥찬 음식을 먹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 그는 IMF 당시 어머니를 고향에 남겨두고 아들과 함께 이민의 길을 떠나 사력을 다해 사업을 번창시켰다. 스페니쉬 한 마디 못하던 그가 어느새 이 지역에서 꽤 알아주는 사업가로 변신한 것. 그동안 아들은 산티아고 근교에서 큰 사업에 성공하고 있었고, 그는 사업이 적당히 정리되면 고국으로 돌아가 노모를 모시고 살고싶어 했다.
그런데 칠레로 이민을 떠나기 전 그의 건강은 괜찮았지만 이민자로 살면서부터 건강이 많이도 나빠졌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골골팔십'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겉으로 골골거려도 팔십 살까지 살거라나 뭐라나.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을 두고도 아내와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외식이 전부일 정도로 바쁘게 사는동안 몸은 많이도 수척해 보였다.
여행자의 신분으로 그런 그가 안스럽기도 했고 미안한 마음도 들기도 했다. 이미 지인으로부터 자기가 가진 재산의 외형을 전해들었다. 재산을 꽤 많이 불렸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업을 정리하고 편히 쉬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지만, 그게 쉽지않은 모양이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이민 중에)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욕심이 보였다고나 할까.
그는 자기 몸을 혹사시키며 사업을 키우다 별세한 우수아이아의 모 사장처럼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았다. 조금 전 기똥찬 맛집에서 조차 음식을 깨작거릴 정도였으므로 곁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자꾸만 안타까움이 남는 것이다.
자동차는 엔세나다를 향해 달리고 있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은 카메라를 연속적으로 자극시키고 있었다.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게 달라이라마 존자의 깨달음 등이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돈을 벌기위해서 자신의 건강을 기꺼이 희생하기 때문이죠. 또한 나중에는 그 돈으로 자신의 건강을 다시 회복하려고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아무런 대가없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하지만 촛불이 자기 몸을 태워 이웃을 밝게 비추는 것 이상으로, 자기 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번 돈으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 우리는 두 분이 사업을 그만 두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고 또 빌었다. 지인은 '몸에 좋다는 약'은 다 챙겨먹고 있었다.
마침내 커피를 잘 내린다는 엔세나다의 한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는 드넓은 잔디밭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는데 눈 앞엔 거대한 오소르노 화산이 거인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장끼우에 호수 곁에서 사는 사람들이 신앙처럼 여기며 날마다 봐 왔던 곳. 지인들도 오소르노 산을 바라보면 한시름이 놓였을까.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전무한 엔세나다의 카페 풍광은 말을 잊게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사람들의 부대낌으로부터, 또 사업으로 벗어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자연의 품에 잠시 안기는 것. 바리스타가 내려준 커피맛이 제아무리 좋아본들 듬직한 산과 드넓은 호수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잠시 흐렸던 날씨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활짝 개이면서 (단 한 컷의)최고의 풍광을 선물했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동안 늘 먼지만 일으키고 산 분주한 존재인 지, 225번국도의 비포장도로에 먼지가 폴폴 날린다. 덕분에 마리스꼬에 취하고(?) 드라이브 길에 놀란 가슴을 엔세나다의 풍광이 말끔히 씻어내린다. 이제 돌아갈 시간...!
우리가 지나왔던 225번국도의 일부 비포장도로는 먼지로 자욱하다. 원시림에 덮힌 비포장 길 일부가 묘한 실루엣을 풍기고 있다. 우리는 늘 현재에 충실했고, 미래는 우리의 의사와 의지와 무관한 신의 영역이었다. 신의 뜻을 조금이라도 눈치 챈다면, 그건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 내일이 없는 게 아니라 내일은 현재의 연속 선상에서 변화를 꿈꾸고 있는 깍쟁이 같은 녀석들.
잠시 후 우리 앞에 펼쳐지는 기적같은 현상들은, 여행자 앞에 나타난 차마 믿기지 않는 놀라운 일이었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상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할 지 모른다. 그러나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세상의 기적과 전혀 무관한 삶 아닌가. 일을 미친듯이 쫓는 것과 미친듯이 삶을 즐기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 북부 파타고니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지인께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기원드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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