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찬사가 이 항구를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지구 반대편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 뿌에르또 몬뜨는 (내가 본)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港口)다. 필자의 고향은 부산. 어릴 적부터 늘 눈에 익은 풍경이 항구의 모습이다. 그곳에 가면 산더미만한 선박과 함께 남항을 가로지르는 뗏마들이 쉽게 목격되는 곳. 학교를 파하면 친구와 함께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백양산이나 황령산에 올라 한숨을 짓곤 했다.
어린 가슴 속에 늘 품고 다닌 비수같은 꿈 하나가 있었다. 부산항이 하늘과 맞닿은 풍경을 보면서 '언제인가 저 바다 너머로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들. 집으로 돌아오면 앉은뱅이 책상에 세계지도를 펴 놓고, 언제인가 꼭 가 봐야 할 곳으로 점 찍어두고 여행기를 읽곤 했다. 그곳은 5대양 6대주의 세상이자 너무도 넓고 가슴 벅찬 곳. 머리속은 온통 바다 건너 딴 세상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22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그래서 짬만 나면 맨 먼저 가 보고 싶었던 게 부산의 남항 자갈치 시장 등이었다. 그곳엔 마도로스들이 즐비했던 곳. 그들의 이야기를듣고 있자면 언제인가 나도 바다 저편에 있는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항구는 '롤모델'로 자리잡아 항구에 대한 각종 정보를 들추어 본 것.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횡단한다는 건 꿈도 꾸지못할 시절이었다.
그 시절 내가 챙긴 세계의 3대 미항은 호주의 시드니 항와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루 항 및 이탈리아의 나폴리 항이었다. 어쩌다 이들 항구의 사진을 보면 가슴이 쿵쾅거리며 요동을 쳤다.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항구도 다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게 하필이면 이들 미항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없는(?) 부산항이 머릿속에 비교되는 것.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신세였을까.
대한민국이 밥술이나 뜨게 되면서 우리나라에도 미항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 동피랑으로 널리 알려진 통영항이 그랬다. 세계의 미항은 규모가 엄청나기도 하고 주변 경관과 기막히게 잘 어울리기도 했지만, 통영항 만큼 아기자기한 삶이 묻어나 보이지 않았다. 협수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얼기설기 얽힌 항구 주변의 사람사는 세상은 통영항과 견줄게 못됐다. 시쳇말로 덩치만 컷지 인물은 허접했다고나 할까. 당시 마도르스들은 통영항을 '세계 4대미항'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때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기준은 통영항이었으며 해외에서 만난 항구들도 통영항과 비교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기준은 다시 변질되기 시작했다. 남미의 역사와 문화 혹은 문학의 세계를 접하게 되면서 뿌에르또 몬뜨 항구에 대한 시인들의 노래가 가슴에 와 닿게 된 것. 통영항이 갖추지 못한 천혜의 절경을 갖춘 이 항구엔,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의 행복한 추억을 남기고 이별하는 아픔까지 간직한 곳. 노랫말은 이랬다.
Puerto Montt
-Patricia Salas
Sentada frente al mar mi besos you le di despues le dije adios todo termina aqui y el me dijo asi
Abrazame y veras que el mundo es de los dos salgamos a correr busquemos al ayer que nos hizo feliz
Puerto Montt, Puerto Montt me aleje de ti sin saber porque y yo lo deje, solo ferente al mar bajo el ciel azul de Puerto Montt
Mil violines en su voz susurraron unadios y una voz que se quedo perdida frente al mar el viento la llevo Silencio sin piedad encontrare al volver mas en la soledad, tu voz me gritara no te vayas de mi
Puerto Montt, Puerto Montt me aleje de ti sin saber porque y yo lo deje, solo ferente al mar bajo el ciel azul de Puerto Montt
"바닷가에 앉아 천 번의 키스를 나눈 뒤 그에게 말했지 이제 모든 것은 끝났다고 그 역시 그렇게 말했지요
당신 품안에 안아주세요 그러면 알게 될 거예요 세상은 우리 둘의 것이라는 것을 우리 뛰어봐요 우리가 행복했던 지난 날을 찾아 뛰어봐요
뿌에르또 몬뜨, 뿌에르토 몬뜨 당신을 떠난 곳, 왜 그래야 했는지도 모르면서 파란 하늘 밑 뿌에르또 몬뜨의 바닷가 앞 모든 것을 두고 떠난 곳
당신의 목소리는 이별을 속삭이고 바람에 실려 사라졌네. 다시 돌아온 이 곳 견딜 수 없는 고요함만이 나에게 말할 거예요. 이제 떠나지 말라고
뿌에르또 몬뜨, 뿌에르또 몬뜨 당신을 떠난 곳, 왜 그래야 했는지도 모르면서 파란 하늘 밑 뿌에르또 몬뜨의 바닷가 앞 모든 것을 두고 떠난 곳"
땡글로 섬으로 가는 길
우리는 조금 전 뿌에르또 몬뜨 항에 위치한 앙헬모 어시장을 둘러보고 땡글로 섬으로 가는 선착장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이동 중이다. 이곳에 머무는동안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던 곳이 땡글로 섬인데 그곳에 가면 뿌에르또 몬뜨 전경이 잘 조망될 것 같았다. 칠레의 뮤지션 빠뜨르시아 살라스의 노랫말 속에 담긴 이 항구의 진면목이 땡글로 섬에서 발현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을 계획할 때 구글어스를 통해 땡글로 섬과 뿌에르또 몬뜨 항의 협수로는 실제로 어떤 풍광을 지녔는 지 매우 궁금했다. 우리가 찾아가는 곳은 뿌에르또 몬뜨 항구 맞은 편에 위치한 땡글로 섬 정상이었다. 그 여정을 돌아본다.
협수로 하나를 사이에 둔 섬과 뭍의 차이는 작아보였지만 매우 컷다. 10분도 채 안 걸리는 협수로를 따라 땡글로 섬에 도착해서 본 뿌에르또 몬뜨 항은 반대편에서 보던 풍경과 너무도 달랐다. 마치 포구처럼 아늑한 풍광을 지닌 이 항구에 대형 선박이 입출항을 하는 곳. 하늘이 협수로 위에 코발트빛을 내리 쏟아부은 풍경. 노랫말 속에 "파란 하늘 밑 뿌에르또 몬뜨의 바닷가 앞 모든 것을 두고 떠난 곳"이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지는 곳이랄까.
우리는 뿌에르또 몬뜨 항 맞은 편 어항을 따라 아르힐라가 꽃이 만발한 저 멀리 길을 따라 땡글로 섬 정상으로 이동할 것이다.
뒤돌아 보니 조금 전 우리가 내렸던 선착장이 마치 강을 사이에 두고 만들어진 포구같이 정겨운 모습으로 남았다.
그 뒤로 머리에 하양 눈을 인 깔부꼬 화산이 신앙처럼 버티고 선 작은 어촌 마을이 봄볕에 졸고있는 듯 하다.
우리는 갯가를 걸으며 선착장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뿌에르또 몬뜨 항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되는 위치로 이동했다.
저 멀리...이곳에 머무는동안 부지런히 다녔던 앙헬모 어시장이 장난감처럼 놓인 곳. 이곳이 뿌에르또 몬뜨 항구의 내항 모습이다.
그리고 서서히 고도를 높히며 뷰포인트를 찾아나섰다.
땡글로 섬 중턱에서 조금 전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선착장 두 개가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로 두 개의 등주가 서 있다. 뿌에르또 몬뜨 항구의 입구는 협수로를 따라 이어진 천혜의 항구다. 그 너머로 이곳에 머무는동안 거의 매일 거닐었던 바닷가가 시내와 맞붙어있는 풍경.
마침내 (내가 본)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가 눈 앞에 펼쳐졌다. 항구를 연상하면 넓직한 바다가 항구 앞으로 펼쳐질텐데, 뿌에르또 몬뜨 항은 섬과 벼랑길 사이의 협수로에 위치해 마치 강의 포구처럼 여겨질 정도로 아름답고 정겹다. 제 아무리 거친 성격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곳에 서면 순한양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는 곳이랄까.
항구 주변에는 꼭 필요한 시설 외 대부분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조금은 미안한 표현이지만 우리 같으면 항구 주변을 온통 콘크리트벽으로 막지않았을까. 우리도 이같은 항구 하나쯤 가졌으면 좋으련만 아쉽지만 우리나라에는 그토록 사랑한 통영항 마저도 예전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지 오래다. 땡글로 섬 8부 능선에서 바라본 뿌에르또 몬뜨 항구 저편으로 샛노란 아르힐라가 꽃이 여행자의 가슴을 뒤흔든다. 앙헬모 어시장 맞은 편 협수로 곁의 작은 보트는 생애 단 한 번의 사랑을 실어나르는 도구였을까.
고도를 조금 더 높이자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모습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북부 파타고니아의 봄이 절정으로 치닫는 가운데 볕은 따갑고 바람은 살랑거린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노래는 "당신의 목소리는 이별을 속삭이고 바람에 실려 사라졌네. 다시 돌아온 이 곳 견딜 수 없는 고요함만이 나에게 말할 거예요. 이제 떠나지 말라고" 하고...!
10년만에 다시 찾은 뿌에르또 몬뜨 항은 이제 가슴속에만 남은 것. 누군가 땡글로 섬에 오르면서 내려다 본 빼어난 풍광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낙서를 해 둔 곳이다. 세월이 겹겹이 쌓인 퇴적층 위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누가 당신을 기억해 줄꼬. 세월은 가고 오는 것. 여행자는 그저 바람같은 존재일 뿐이던가.
땡글로 섬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내려다 본 뿌에르또 몬뜨 항구는, 그 누구든 안기고 싶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품이다.
땡글로 섬 정상은 말 세 필이 풀을 뜯고 있는 너른 초원이었다. 초원 곳곳에 촘촘히 박힌 샛노란 풀꽃들은 앙꾸드 만에서 불어오는 맑고 촉촉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초원에서 동쪽으로 눈을 옮기면 멀리 안데스가 공룡의 등처럼 길게 이어진 곳. 시선을 조금만 달리해도 세상은 너무도 달라보였다. 맨날 땅만(?) 쳐다보고 걷다가 고도를 조금 더 높여본 곳. 그곳에서 다시 꿈을 꾸게 된다. 앙꾸드 만 저편 우리가 꿈꾸어 왔던 곳. 150일의 긴 여정이 이어지는 곳이었다. 내가 본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이 신께 위탁돼 내세에도 누릴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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