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항구 본 적 있으신가요...?"
대형 카페리호가 부두에 접안해 화물을 적재하고 있는 풍경은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 뿌에르또 몬뜨 항구의 모습이다. 우리가 평소 학습한 항구의 모습은 부두 앞으로 넓다란 바다가 펼쳐져야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작은 강 어귀 혹은 어촌에서 볼 수 있는 포구(浦口)같은데 규모는 포구를 전혀 견줄만한 게 못된다.
*동영상에는 뿌에르또 몬뜨 항의 아름다운 뷰포인트를 찾아가는 여정과 뿌에르또 몬뜨의 오래된 원도심 이미지 77컷이 차례로 담겨져있다.
부두에 정박해 있는 선박은 나비막(NAVIMAC) 훼리호로 선미에 열린 화물 출입구 앞에 서 있는 한 선원의 모습을 참조하면, 규모가 엄청난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세월호를 연상하면 규모가 얼른 다가올 것. 이곳은 강이 아니라 육지와 섬 사이의 협수로로 카훼리호 맞은 편은 땡글로 섬이다. 섬과 육지 사이에 생긴 협수로를 이용해 항구를 만든 것.
150일간의 파타고니아 여행기 17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뿌에르또 몬뜨 항구는 천혜의 자연 조건으로 년중 우리나라의 태풍이나 대서양의 허리케인과 같은 자연재해와 전혀 무관한 기막힌 항구. 뿌에르또 앞 바다를 이루고 있는 앙꾸드 만은 남미의 서해안에 위치해 있지만 마치 호수같은 지형을 갖추고 있다. 구글어스를 펴 놓고 이곳의 지형을 살피면 앙꾸드 만은 여성의 자궁을 연상케 하는 곳이랄까.
그래서 뿌에르또 몬뜨 항은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매우 신성한 항구처럼 여겨진다. 년중 수 많은 화물과 여객들이 이 항구를 드나들면서 모태를 기억하는 곳. 한 여행자 앞에 모습을 드러낸 뿌에르또 몬뜨 항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였다. 여행의 추억은 물론, 생명의 현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오롯이 기억에 남았던 것들이 전설처럼 펼쳐진 곳.
필자 포함 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지만 대부분 평면적으로 둘러봤을 뿐, 뿌에르또 몬뜨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느끼지 못하거나 자료도 빈약했다. 따라서 이곳에 머무는동안 반드시 꼭 한 번 가 봐야 할 뷰포인트를 찾아 나선 것이다. 로드뷰 만으로 성이 안 차 스카이뷰 못지않은 뷰포인트를 찾아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 그 현장을 찾아가 본다.
이곳 앙헬모 어시장을 다녀오는 길에 봐 두었던 뷰포인트로 이동하려면 뿌에르또 몬뜨의 원도심을 가로질러 산복도로까지 진출해야 한다. 앙헬모 어시장 앞 언덕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뿌에르또 몬뜨 앞 바다(외항)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가지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 오래된 원도심의 풍경과 이곳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도 있는 것.
뿌에르또 몬뜨에 이주해 살던 사람들이 건축한 목재건축물은 주로 이런 모습들. 간간이 새로지은 집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또 집 한 채가 화재로 그을린 모습 아래로 위성수신기가 보인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곳을 떠나면서 슬럼화 되고 있는 곳.
집들은 오래돼 낡았지만 사람들과 어우러진 화초들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인간이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자연과 조화를 이룬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작은 계단을 통해 들락거렸을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라틴 아메리카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라 미스뜨랄(Gabriela Mistral)의 노래가 오버랩 되는 곳.
그녀는 이곳에서 가까운 테무코(Temuco) 여자중학교 교장을 지냈으며,당시 이 도시에 살던 문학소년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에게 러시아 문학의 세계를 알려준 것으로 유명하다. 뿌에르또 몬뜨 원도심에 들어서면 그녀의 노래가 넌지시 기억되는 것. 시의 원문을 옮겨와 봤다.
La casa 집
-Gabriela Mistral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La mesa, hijo, esta tendida 상이 차려졌다, 아들아
en blancura quieta de nata, 고요한 흰 크림색과 함께
y en cuatro muros azulea, 그리고, 도자기 그릇의 네 면이
dando relumbres, la ceramica. 푸른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다.
Esta es la sal, este el aceite 여기 소금이 있고, 기름은 여기
y al centro el Pan que casi habla. 가운데에는 마치 말을 걸어 오는 듯 한 빵.
Oro mas lindo que oro del Pan 그 금 빛, 빵보다 더 아름다운 금빛은
no esta ni en fruta ni en retama, 과일에도 금잔화에도 없으니
y da su olor de espiga y horno 밀 이삭과 오븐이 만들어 내는 향기는
una dicha que nunca sacia. 처음 맛 보는 행복이라네.
Lo partimos, hijito, juntos, 빵을 쪼개자꾸나 얘야, 함께
con dedos duros y palma blanda, 딱딱한 손가락과 부드러운 손바닥으로
y tu lo miras asombrado 그리고, 너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구나
de tierra negra que da flor blanca. 검은 땅이 흰 꽃을 피워내는 것을.
Baja la mano de comer, 먹고있는 그 손을 내리거라
que tu madre tambien la baja. 엄마도 그럴테니
Los trigos, hijo, son del aire, 아들아, 밀은 공기로 된 것이고
y son del sol y de la azada; 햇빛과 괭이로 된 것이란다.
pero este Pan ≪cara de Dios≫(*) 그러나, '신의 얼굴'이라 불리는 이 빵은
no llega a mesas de las casas. 모든 식탁에 놓여 있는게 아니란다.
Y si otros ninos no lo tienen, 그리고, 다른 아이들이 먹지 못하고 있다면
mejor, mi hijo, no lo tocaras, 아들아, 건드리지 않는게 좋겠구나.
y no tomarlo mejor seria 먹지 않는게 좋겠구나
con mano y mano avergonzadas. 그 손, 부끄러운 손으로는 말이다.
Hijo, el Hambre, cara de mueca, 아들아, 굶주림의 찌푸린 얼굴은
en remolino gira las parvas, 곡식을 소용돌이로 휘젓는단다.
y se buscan y no se encuentran 서로 찾아 헤메이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지
el Pan y el hambre corcovada. 빵과 등 굽은 굶주림은 말이다.
Para que lo halle, si ahora entra, 그러니, 지금 우리 집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도록
el Pan dejemos hasta manana; 우리는 이 빵을 내일까지 놔두자꾸나.
el fuego ardiendo marque la puerta, 타오르는 불로 문에 표시를 하고
que el indio quechua nunca cerraba, 께추아인들 처럼 문을 열어 놓자.
¡y miremos comer al Hambre, 자! 이제 굶주림이 먹는 것을 보자꾸나.
para dormir con cuerpo y alma! 그제서야 우리는 몸 뿐만이 아니라 영혼과 함께 잠 들겠지!
<출처: http://ilwar.com/pen/138235>
그녀의 시를 짧은 스페니쉬 실력(?)으로 한 줄 한 줄 천천히 음미해 보는동안 이 땅을 풍요롭게 가꾸어온 사람들의 고된 삶의 흔적이 묻어난다. 뷰포인트를 찾아가는동안 원도심은 정적이 흘렀다. 모두가 빵을 찾아나섰는 지 고도를 조금씩 높여도 가끔씩 눈에 띄는 건 거리의 개들.
여행자들이 낮선 도시의 외곽을 방문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도시의 빈민가에서 자칫 강도를 당할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인데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음을 뗄수록 불안한 마음도 없지않아 주변을 경계하게 되는 것.
우리는 마침내 뿌에르또 몬뜨 외항과 땡글로 섬이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고도를 높였다.
뿌에르또 몬뜨 외항은 썰물 때로 내항은 최적의 풍경을 선사할 것.
산복도로에서 동쪽으로 눈을 돌리자 뿌에르또 몬뜨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참 부지런히 발도장을 찍은 곳. 바닷가 언덕위에 서면 두고온 얼굴들이 오버랩되며 평화로운 이 땅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도 든 곳이다. 최소한 이곳에선 이념적 갈등은 겪지 않고 살고 있으므로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노래처럼 빵 하나가 '신의 얼굴'처럼 여기며 살 수 있는 곳.
대도시의 성냥곽같은 아파트촌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 그러나 뿌에르또 몬뜨는 점점 더 변해가고 있었다.
목재건축물이 사라진 곳에는 신식 판넬로 지어진 집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던 것.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 가득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자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 불러도 좋을 뷰포인트에 섰다.
사과꽃이 흐드러진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앙헬모 어시장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풍광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직은 이르다. 뿌에르또 항구의 진면목은 만조 때 보다 썰물 때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 항구 주변에는 만조 때를 기다리는 희망 가득한 풍경들.
마침내 뿌에르또 몬뜨 항을 굽어볼 수 있는 언덕(뷰포인트)에 섰다. 마치 강이나 운하에 갇힌 듯한 카훼리호 한 척이 화물을 적재하고 있는 풍경. 그 너머로 절정에 이른 땡글로 섬의 봄은 협수로를 에메랄드빛으로 바꾸고 있다.
우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협수로가 강처럼 길게 늘어뜨려진 곳. 세상에 이런 항구가 또 있을까.
이번에는 언덕 앞까지 진출해 화물선이 정박한 부두를 내려다 봤다. 협수로를 사이에 두고 길게 이어진 항구 너머로 땡글로 섬의 마을이 정겹게 따닥따닥 붙어있는 풍경.
그곳에서 이번에는 줌을 당겨 앙헬모 어시장을 바라봤다. 뿌에르또 몬뜨에 들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찾게 되는 곳. 그동안 늘 로드뷰만 바라보다가 스카이뷰(?)로 바라본 이 항구는 '세계 3대미항'이 갖추지 못한 민낯을 통째로 보여주는 곳이랄까.
도시의 한모퉁이에 자리잡은 뿌에르또 몬뜨 항은 자연의 장점(협수로)을 최대한으로 이용한 기막힌 곳이었다.
그런데 왜 뿌에르또 몬뜨 당국은 전망좋은 이곳을 전망대로 활용하지 못했을까.
우리나라 같으면 언덕 위의 뷰포인트는 단박에 개발되어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이 들어섰을 것 같기도 한데...필자가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의 뷰포인트에서 돌아서자니 아쉬움 가득하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 우리는 이 언덕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앙헬로 어시장 뒷산에 가난한 이웃들이 살고있는 풍경. 세계적 명소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곳 사람들은 겉치레를 위해 가난한 이웃을 내쫒지 않는다.
대로를 따라 이동할 때 몰랐던 오솔길이 항구로 이어지는 길.
그곳에 사과꽃이 발그레한 꽃잎을 내놓고 있었다.
항구로 길게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서 앙헬모 어시장 입구에서 만난 가슴 찡했던 풍경 하나...!
비루 먹은 거리의 개 한 마리가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는 풍경. 어미의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런 어미의 형편을 전혀 알 리가 없는 강아지는 연신 젖을 빨아댄다.
녀석은 젖살이 올라 통통해질대로 통통해졌지만 점점 더 모습을 잃어가는 어미...세상의 어미들이 위대한 까닭이 거리의 개로부터 발현되다니...! 어미는 새끼를 위해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주는 것. 어미의 추해진 모습에서 지극한 모성을 읽고 돌아서는 발길이 무겁다.
집으로...아니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올려다 본 풍경 하나...
담장 밖에서 이루어지던 소통은 이제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으로 이어지는 곳. 물질은 풍요해 졌으나 점점 더 삭막해져 가는 듯한 모습들이 여행자를 안타깝게 만들기도 한다. 풍요로움이 배를 부르게 할 망정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걸 학습해 온 터에, 오래된 도시의 변화는 탐탁치 않다.
숙소로 돌아와 뒷뜰을 보니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이제는 더 낡을 곳도 없는 건축물들이 우기 끝에서 비바람을 맞이하는 곳.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를 찾아 나섰던 길에 만난 한 어미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힌 하루다.
"아들아, 굶주림의 찌푸린 얼굴은
곡식을 소용돌이로 휘젓는단다.
서로 찾아 헤메이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지
빵과 등 굽은 굶주림은 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 집에 들어서면 만날 수 있도록
우리는 이 빵을 내일까지 놔두자꾸나.
타오르는 불로 문에 표시를 하고
께추아인들 처럼 문을 열어 놓자.
자! 이제 굶주림이 먹는 것을 보자꾸나.
그제서야 우리는 몸 뿐만이 아니라 영혼과 함께 잠 들겠지!"
우리는 빵 앞에서 언제쯤 이런 겸손을 맛 볼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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