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와! 무서워,어서 돌아가자고...!!"
칠레의 7번국도(Carretera Austral )변에 위치한 북부 빠따고니아 오르노삐렌 마을 저 건너편에 흐르는 블랑꼬 강(Rio blanco)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법같은 풍경이었다. 마치 우유를 풀어놓은 듯 강물은 희뿌옇게 흐르고 있었다. 강물이 이런 현상을 보이는 건 발원지(빙하)에서부터 생성된 석회물질이 햋볕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에메랄드 빛을 만들어 낸 것. 남미여행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강들을 만날 수 있는 데 그곳에는 여지없이 블랑꼬 강이 아니면 네그로 강(Rio negro)이라는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강이 왜 검고 하얀 지 설명하는 건 간단하다. 전편에서 만난 네그로 강을 보면 물이 너무 맑아 속까지 훤히 비치는데 가까이서 보면 (이 지역의 암석 등으로)강바닥이 검게 보인다. 그러나 블랑꼬 강은 에메랄드 빛으로 하얀색에 가깝다. 호수도 같은 이유로 하얗고 까맣게 부른다. 우리 같으면 강 이름을 여러가지로 부를 텐데 이 친구들의 생각은 매우 단순(?)하고, 언어 조차 한글처럼 다채롭게 설명하는 게 부족하다. 그런데 아내는 블랑꼬 강에 도착한 직후 왜 무섭다며 '빨리 돌아가자'고 했을까. 그 현장을 한 장면씩 소개해 드리도록 한다.
목적지를 눈 앞에 두고 걸음은 자꾸만 더뎌진다. 누가 이런데 산단 말인가. 생각같으면 아웅다웅 좁은 땅에서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 절반 정도만 파타고니아로 이주했으면 싶은 생각이 투어 끝날 때까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방인의 등장에 쫄랑거리며 나타난 바둑이 한 녀석...오요오요 ㅋ
다 쓰러져 가는 울타리를 지탱하고 있는 아름다운 풀꽃들이 그림이 됐다.
파타고니아(칠레)에는 대략 2,202종의 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 데 울타리 곁에서 아무렇게나 꽃을 피운 녀석은 서민스러운 꽃이랄까. 도라지 꽃을 닮은 녀석 때문에 울타리 곁에서 서성거리게 됐다.
사과꽃이 흐드러진 꿈같은 풍경 너머로 저만치 앞서가는 아내...
그땐 몰랐다. 나무 울타리 곁에서 흐드러지게 핀 사과꽃과 한 농가와 우리가 조금 전에 지나온 길이 어우러져 수채화 작품이 됐다.
아내는 지난 가을 (위의)풍경사진을 수채화로 남겼다. 졸작이지만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한 추억이 담긴 소중한 작품이다. 눈을 지긋이 감거나 조금만 멀리 떨어져 감상하면 당시의 느낌이 다가올라나...? ^^
먼짓길을 돌아서자 눈을 뗄 수 없는 풍경들이 발걸음을 자꾸만 붙든다. 그러나 돌아갈 시간을 생각하면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아내를 앞질러 차림을 담아봤다. 이곳부터 인적이 없었던 곳이어서 누군가 아내의 모습을 봤다면 기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얼굴을 마스크와 썬그라스와 모자로 가린 모습이 외계인을 보는 듯. ^^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이런 풍경이다. 이 숲길에는 우리 두 사람 뿐이었다. 멀리 오르노삐렌 화산이 공룡시대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 블랑꼬 강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놀라운 풍경이었다. 강가의 큼지막한 자갈들은 우기 때 자란 이끼들이 바싹거리고 있었다. 우기가 끝나가자 습기를 잃은 강가는 묘한 모습을 드러내며 강물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전혀 뜻밖이었다. 오르노삐렌 관광 안내소 여직원들이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한 블랑꼬 강은 이런 모습이었다. 비록 먼짓길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대가는 충분했다. 안데스와 협곡 사이로 삐져나온 블랑꼬 강과 그리고 여행자...!
척박한 자갈더미에서 자란 이름모를 꽃들 하며...
흙무더기나 모래밭 조차 볼 수 없고 온통 자갈밭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블랑꼬 강은, 마치 외계의 어느 행성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풍광이었다.우리가 알고 있는 강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
강 가까이 다가가 손을 적셔보니 얼음물처럼 차갑다. 빙하가 녹은 물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오후 2시 30분경이었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서 처음 맛 보는 도시락과 환상적인 풍경이 믹싱된 꿀맛...알랑가 몰라? ^^
밥을 먹는둥 마는둥 후다닥 버거를 먹으며 눈길은 자꾸만 강으로 향했다. 노뜨로 꽃의 붉디 붉은 색깔과 에메랄드 빛 강물이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곳. 그런데 이곳을 찾은 사람은 우리 두 사람 뿐...아내가 자꾸만 빨리 돌아가자고 졸라댓다.
돌아갈 시간이 촉박하고 아무도 없는 강가에서 두 사람만 있다는 게 무서웠을까.
생전 처음 보는 풍경속으로 빠져든 등 뒤로 아내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보니 저만치 먼저 앞서간 아내, 왜 뭉기적 거리느냐는 표정.
"왜 그러냐고...?"
"빨리 와! 무서워,어서 돌아가자고...!!"
아내는 정말 무서웠던 것 같다. 마치 외계의 행성에 불시착한 것 같은 곳이 블랑꼬 강변의 모습이었고, 인적이 전혀 없었던 곳이다.
돌아갈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초행길의 먼짓길을 따라 너무 늦게 걸었던 게 당초 예상한 시간을 웃돈 것. 걸음을 재촉해 우리가 왔던 길을 따라 다시 먼짓길로 나서야 했다. 겁 없이 마구 덤빈 투어였을까. 돌아가는 길에 왜 무서웠는 지 물어보나마나였다.
"...난 당신(차림)이 더 무서웠어...! ^^"
강가로 이어진 자갈길은 한 때 우마차 혹은 트럭들이 다녔는 지 모르겠지만, 이날은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만약 아내 혼자서 이 길을 걸었다면 주저 앉아 울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길을 벗어나면 발디딜 틈도 없는 빼곡한 숲이자 숲속은 깜깜했다. 잠시 오던 길을 가로질러 가 볼 요량으로 숲속 농장쪽으로 향했지만 허사였다. 이때부터 걸음걸이가 무척이나 빨라졌다. 자칫 뿌에르또 몬뜨로 가는 막차를 탈 수 없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던 길에 봐 두었던 귀한 풍경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파타고니아 풍경에 홀릭한 여행자 1인...그 모습을 다음편에 빼곡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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