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평원을 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차창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자동차에서 내려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치고만 오래된 경험들. 어느날 거울 앞에선 내 모습 속에는 그 풍경들이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얼핏 스쳐 지나간 풍경 속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꽃들과 세포를 자극하는 먼지내음들과 바람에 흔들리던 이파리들. 그리고 밤새 평원을 달리면 은빛가루를 쏟아붓던 달님과 여명 속에서 다가왔던 발그레한 일출 등. 그때는 내 앞가림 만으로도 힘들었지만 지천명의 세월을 지나 이순에 접어들면서, 그게 그리움으로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것. 그렇다고 마냥 회한만 붙들고 있기엔 내 가슴 속 열정이 나를 용서치 못한다. 어느날 거울 앞에서 그리움의 흔적을 쫒다보니 그게 하얀 종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 그게 내 가슴 속에 오래토록 자라고 발효되고 있었던 그리움이라니. 그리움의 실체가 그토록 아름다운 색과 형체로 내 앞에 나타나다니...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이 세상이 다하는 날까지 퍼 올려도 퍼 올려도 다 마르지 않을 것 같은 그리움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언제인가 내가 꿈꾸던 세상이 하얀 종이 위에서 바람이 되어 별들이 마구 쏟아지던 안데스 속으로 사라지는 그날까지..."
먼짓길에 들어서자마자 목재소가 나타났다. 파타고니아 지역에서 흔한 목재는 집을 짓는 재료가 되고 땔감으로 쓰인다. 산티아고에서 5번국도(우리나라 경부선을 연상)를 따라 뿌에르또 몬뜨까지 남하할 때까진 안데스의 울창한 숲을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두 선착장을 지나 북부 파타고니아에 들어서자 원시림이 빼곡했다. 이같은 풍경은 7번국도 끝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 문제는 비포장도로였다.
그런데 이곳의 날씨는 희한하다. 안데스를 여행해 보신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볕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어서면 썰렁한 날씨. 저만치 앞서 걷는 아내의 차림을 보면 희한하다. 양산을 받쳐들고 마스크를 쓴 얼굴에 겨울용 자켓을 껴 입고 노란 손가방을 들었다. 평상복 차림에 운동화만 신은 것. 아웃도어를 준비해 갔지만 괜히 폼을 잡을 일도 아니었다. 눈여겨 볼 건 노란 가방이다. 카메라와 대부분의 짐은 서브배낭에 담았지만 노란 가방은 '생명의 가방'이었다. 가방 속에는 이른 아침에 장만한 도시락과 생수가 들어있는 것. 먼짓길을 걷는동안 아내는 밥을 지켰고 나는 카메라를 먼지로부터 보호하기 바빳다.
덕분에 보통의 여행자들이 챙기지 못한 귀한 로드뷰를 챙겨오게 된 것이다. 먼저편에서 소개해 드린 거대 대황(Gunera tlnctoria)은 먼짓길 옆 작은 도랑 습지에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언급한 바 얼마나 빡신 지 생수통 하나쯤은 거뜬히 버틸 정도다. 우리에게 낮선 이 식물 때문에 북부 파타고니아의 풍경은 과거의 시공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 괴기스러운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농장의 울타리가 끝나갈 즈음 저 만치서 먼지를 날리며 다가오는 자동차 한 대...어디로 튈(?) 곳이 없다.ㅜ
원석 속에 감춰진 보석은 인내의 세공 과정을 거쳐야 빛나고 아름다운 것처럼, 먼짓길 하이킹 끄트머리에 다가설 즈음 눈 앞에 나타난 진풍경들. 파타고니아에서 흔히 만난게 되는 노뜨로(Notro)의 화려한 선홍색 꽃이 여행자의 피곤을 잠시 덜어낸다.
먼지를 피해 잠시 피신했던 아내가 다시 길 한가운데 멈추어섰다. 이때 시각이 오후 1시 50분경으로 돌아갈 시간을 참조하면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먼짓길을 돌아서자 다시 이어지는 먼짓길.
그러나 이곳에서부터는 수월했다. 바람이 (사진)우측에서 불어왔고, 그곳엔 먼지를 뒤집어 쓴 여행자를 위한 쉴만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 눈을 머리에 두른 오르노삐렌 국립공원이 보인다. 우리는 길 끄트머리에서 우회해 블랑꼬 강으로 갈 예정이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평원을 질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차창 너머로 사라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자동차에서 내려보고 싶지만, 그냥 지나치고만 오래된 경험들. 어느날 거울 앞에선 내 모습 속에는 그 풍경들이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얼핏 스쳐 지나간 풍경 속에는 코끝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꽃들과 세포를 자극하는 먼지내음들과 바람에 흔들리던 이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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