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설악 비경 속으로
-마지막 남은 '한국 최고의 비경'을 보다-
머리 속이 하예지는 두가지 경험...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남미일주 투어 중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체험한 희한한 경험. 잉카트레일을 떠났다가 빌카밤바 산지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피로에 시달렸다. 그땐 그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잉카트레일을 마치고 꾸스꼬로 다시 돌아온 이후에도 비슷한 증상이 이어졌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고산증세였다.
사람들마다 체력에 관계없이 겪게 되는 고산증세는 피로감은 물론 두뇌에 공급되는 산소결핍증으로 머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그저 바보같이 멍~한 채 하루하루 시간을 떼우고 있었던 것. 배도 고프지 않고 소통을 위한 간단한 단어 한마디 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상태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까지 이어졌다. 알띠쁠라노 지역에 위치한 '우아나꼬' 유적지에서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할 정도였다.
투어는 하고 있지만 마치 구름 속을 둥둥 떠다니는 듯한 경험. 단언컨데 그건 멍청한 상태나 다름없었다. 해발고도 3,000~4,000m의 고도에 이르면 나타나는 고산증 때문이었다. 우리가 고산증세를 악화 시키는 일을 아무 생각도 없이 한 일은 지금 생각해 봐도 웃음이 난다. 고도에 적응을 하기도 전에 시원한 맥주를 마셨는가 하면, 짬만 나면 샤워를 해댓다. 에이전트 '빌마 아줌마'가 코카잎을 건네는 것 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고산증세 예방을 게을리 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가 하예지는 첫번째 시츄에이션은 멍청함이었다.
그리하여 고산증세도 치료할 겸 해발고도가 '제로'에 가까운 아마존 투어에 나서게 됐다. 아마존강 상류 '리오 마드레 데 디오스' 강으로 가려면, 꾸스꼬 비행장에서 세스나 뱅기를 타고 안데스를 너머 마누 국립공원으로 가야한다. 희한했다. 꾸스꼬를 이륙하여 안데스 상공을 날자 이번에는 감쪽같이 고산증세가 사라졌다.
그리고 기분좋은 엑스터시를 느끼며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게 펼쳐진 정글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비록 세스나기에 몸을 싣고 있었지만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바람같은 존재랄까. 이런 기분을 느껴보기 위해 산악인들은 목숨걸고 히말라야로 등정을 하는 것인지. 자기 신체를 벗어난 유체이탈 체험같은 묘한 희열이 온 몸으로 퍼지며 세포 속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한 번 빠져들면 벗어나지 못하는 마약같은 느낌. 그게 두번째 시츄에이션이다.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일컬어 황홀함이란다. 황홀함...
신선만이 누릴 수 있을 그 황홀한 체험을 신선대 꼭대기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시선이 향한 곳은 외설악의 천불동 계곡과 봉정암이 위치한 내설악 쪽이자, 설악의 비경이 한 눈에 펼쳐지는 기막힌 곳이었다. 벼랑끝, 한 사람이 겨우 돌아설 수 있는 좁은 암릉 위에서 바라본 외설악과 내설악의 풍경은 왜 이곳을 신선대라고 지칭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을 듯...
고산증세를 느끼며 머리 속이 텅빈 듯한 느낌과 전혀 다른 엑스터시를 한 순간에 맛 보고 있는 것이다. 온 몸의 세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고 단군 할배께서 거느리셨다는 운사 우사 풍사의 장수들이 눈 앞을 사열하고 있는 곳. 그곳이 신선대였다. 그 황홀했던 장면을 다시 보는 순간마저도 행복해 진다. 그 현장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봤다.(영상을 눈여겨 보시기 바란다.)
마지막 남은 '한국 최고의 비경'을 보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내설악
신선대에서 바라본 외설악
신선대 위에서 뭉기적 거리다
"선배님 뭐하세요. 빨리 오잖고요. 내려갈 시간임다."
정신이 번쩍 든다. 아우님이 시간이 늦다며 저만치 앞에서 재촉하기 시작했다. 신선대를 향해 올라갈 때도 꽁무니를 따라다니다가 하산길에도 자꾸만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신선대가 목덜미를 잡아 당기며 하산을 말리는 듯한 느낌. 아쉬웠다. 돌아보고 또 뒤돌아 본 그곳. 그곳에는 나목이 춤을 추고 있었다. (후훗...이제 속세로 돌아가면 또다시 '디오게네스'를 찾게 될까...)
잠시 후 무너미고개에 도착한 우리는 천불동계곡이 온통 깜깜해질 때까지 비선대를 향해 터덜 거리며 걸었다. 두 다리가 모두 풀린 까닭이다. 머리 속이 다시 하예졌다. 그 장면은 다음편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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