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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山들

내설악 비경,1년만에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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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 비경 속으로
-내설악 비경,1년만에 내려놓다-



가을만 되면 도지는 지독한 병(病) 하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 봤을 가을의 설악산이 눈 앞에 아물거리는 것. 설악의 단풍 맛을 단 한차례만 봐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는 게 울긋불긋 단풍 두른 설악산의 비경이다. 설악산에 발을 들여놓는 즉시 어디서 솟아나는지 두 발은 블랙홀에 빨려들 듯 무거운 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황홀경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동안 돌아다니면 집으로 돌아와 초죽음이 돼도 가슴에 물든 단풍은 그 이듬해까지 지울 수 없어, 해마다 기회가 닿기만 하면 찾게되는 곳이 설악산이었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널리 알려진 설악산 등산 코스는 모두 섭렵하고 '설악 중의 진설악'이라 불리우는 공룡능선을 다녀오면서 설악산의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그때부터 설악산행이라면 으례히 공룡능선을 가 봐야 설악의 진면목을 보는 것이라 했다. 공룡능선의 천화대에 올라서면 내.외설악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꿈속을 거니는 듯 황홀하다. 설악산의 비경은 그게 전부인줄 알았다.

그런데 우리가 체험한 설악의 비경은 그야말로 조족지혈. 맨처음 등장한 사진 한 장부터 설명하며 황홀경에 빠져든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고자 한다. 사진 속에 빨간 스타킹을 신고 스틱을 짚고 가는 여인은 아내의 뒷모습. 산에 미친(?) 여인 중에 한 사람. 그리고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앞서가는 사람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한계령' 작시자이자 시인인 '한사 정덕수' 선생
이다. 아우님이라 부른다. 그리고 필자 또한 아우님 못지않은 짐을 지고 뒤따르고 있는 것.


내설악 비경속으로




서두에 '가을만 되면 도지는 지독한 병(病) 하나'라는 화두를 던져놓았지만, 우린 아우님에 비하면 찬바람 쇠고 겨우 기침 몇 번 하는 정도의 가벼운 증세. 그렇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병에 비하면 아우님은 폐렴을 동반한 독감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중증 환자라고나 할까. 아우님은 설악산에서 태어나 설악산에 괘 오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설악산이 그리워 하던 일도 때려치우고 설악산으로 다시 돌아간 사람이다. 지겹지도 않았을까. 그 일화를 아우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http://blog.daum.net/osaekri/15600417)'에서 일부 발췌해 보니 이러하다.




"(중략)사실 산을 다니던 사람은 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한 시절 나도 미친듯 산을 탐닉했었는데 가족과 삶이란 등짐을 진 지금은 이렇게 오래전 곁을 떠난 연인을 그리워 하는 이처럼 산을 그리워 한다. 산에 살며 산을 그리워 한다는 말이 뭔 말이냐는 반문을 할 이도 있겠으나, 산이 좋아서 월급쟁이를 때려치우고 회사를 운영할 정도로 산에 미쳤다면 이해가 될까? 

1980년대엔 동대문이나 남대문시장에 물건을 공급하는 공장이나 가게들이 직접 공장을 운영해도 토요일엔 으례 밤을 세워 작업을 했다. 말이 좋아 패션이다. 막노동판도 그만큼 혹독하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당시 그 계통에서 일을 했던 이도 있을 것이다.

한달에 2번 쉬면 잘 쉬는 직장이었다. 산에 미친 놈이 한달에 두 번만 산에 가고는 못 견딘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두 번 더 돌아가셨다. 산에 가고 싶어서 한 거짓말이다. 장가도 안 간 동생을 장가도 가게 만들었다. 나중에 다 들통났지만 말이다. 그게 산에 미친 사람이 하는 거짓말이던 시절이다.(하략)





필자는 아우님의 글 속에 표현해 둔 '거짓말이 진심'이라는 걸 알게 됐다. 산은 그의 삶 전부였다. 우리가 취미로 산을 오를 때 아우님은 세상의 울분을 식히려 산을 올랐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을 때 산을 올랐다. 또 그 산은 아우님에게 무시로 먹거리를 챙겨주는 터전이기도 했다. 이제 지천명에 접어든 아우는 여전히 그 산을 떠나지 못하고 오색에서 태어나 오색에서 살고있는 것이다. 설악산지기가 아우님이었다. 





그는 설악산 어느곳이든지 발도장을 안 찍은 곳이 없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다 알고 있었고, 그가 지나 다니던 골짜기에서 사철 피고지는 풀꽃과 바위, 심지어 발아래 돌맹이까지 다 헤아리고 있었다. 설악산은 자기를 낳아준 어미이자 자기를 너그럽게 품어주는 아부지 같은 존재이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주는 친구같은 존재이자 세상을 깨닫게 해준 스승같은 존재.




그런 곳을 떠나 서울 한복판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면 당신의 날개 모두가 꺽인 처참한 모습과 다름없었다. 자나깨나 설악이 그리워 돌아가신 어머니를 (휴가를 위해)세 번씩이나 더 돌아가시게 만들고, (휴가를 위해)동생을 장가까지 보낼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은 곳이었다. 산에 미친 사람의 증언이 이런 정도이므로 우리가 설악산 등산코스를 모두 투어를 했다고 해서, 설악산을 아는 척 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내설악 비경,1년만에 내려놓다

아우님이 앞장서 우리를 인도하며 설악의 비경이 어떤 것인지 맛보기를 보여주기로 한 게 1년 전의 일이다. 우리는 여태껏 하산(?)을 미루다가 1년 만에 하산길에 나선 것이다. 가을에 찍어둔 사진을 한겨울이나 봄 또는 여름에 공개하면 제 맛이 안나기 때문에 금년 가을에는 반드시 다 털어버리고 싶은 것. 무거운 배낭을 숲속에 잠시 버려(?)두고 맨 몸으로 맛보기만 한다며 가 본 그곳은, 내설악과 외설악 그리고 대청봉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신선암(신선대) 꼭대기였다. 



그동안 설악산을 다녀가면서 소청 중청 대청봉에서 희운각으로 이동하며 바라보거나 무너미 고개를 지나치면서 올려다 본 암릉지대가 신선암이었고 희운각에서 공룡능선으로 가는 초입에 병풍처럼 가로막고 우뚝 솟아있는 암봉이 신선암이 위치한 곳이었다. 사진 몇 장만 찍고 오기로 했다. 
 



그런데 왠걸, 신선암으로 가는 좁은 길로 들어서자마자 서서히 설악의 비경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가던 길을 뒤돌아 보면 대청봉과 중청이 구름을 이고 있고, 우리가 지나왔던 길은 노오랗고 빨간 단풍들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며 비단으로 온 산을 감싼 듯 했다. 우리가 숲 속에서 못 보던 풍경을 다 볼 수 있는 숲 전체를 잘 조망하는 기막힌 위치에 다다른 것이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자 발아래로 펼쳐지는 설악의 비경 때문에 숨이 턱턱 막힐 지경. 앞서가던 아우님은 자꾸만 걸음을 재촉한다. 뭔가 빨리 보여주고 싶은 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발길은 점점 더 늦어졌다. 발 아래 사방으로 펼쳐지고 있는 비경들이 발목을 붙들고 놔주지 않는 것.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서는 공룡능선 종주길에 나선 등산객들이 눈에 띄고 발아래로 희운각 대피소와 죽음의 계곡이 한 눈에 조망된다. 절규같은 외마디 탄식이 절로 터져나온다.

"우와!...이럴 수가!!...ㅜㅜ" 






















저 멀리 수렴동 계곡과 남설악의 실루엣이 기막히게 어우러졌다. 




뒤를 돌아보니 천불동 계곡...



올려다 보니 신선대 꼭대기...아직 이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암릉...발아래는 낭떠러지다.




다시 뒤돌아 보니 대청봉에 구름이 휘감기고 그 아래 희운각이 하얗게 빛난다. 조금 전에 통과한 코스. 그곳을 줌으로 당겨보니 딴 세상이다.




아우님이 거짓말로 휴가를 내거나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시 설악산으로 돌아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당신의 삶 전부가 오롯이 녹아든 설악산의 노래는 이러했지. 
 


한계령에서...

정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 육천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신선암이 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발걸음은 점점 더 더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아우님은 산에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다. 목숨 걸고 산을 다녔던 사람. 어쩌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산에 미친 그는 설악산 곳곳을 바람과 구름처럼 옮겨 다니는동안 최고의 명당이라 점 찍어둔 곳이 있었다. 신선암이었다. 그곳 정상의 매우 좁고 위험한 암릉에 서면 설악산 암릉의 상징이라 일컫는 공룡능선 천화대(天花臺)의 범봉이 그야말로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황홀한 비경들은 다음편에 묶어 드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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