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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Puerto Montt

그냥 지나치면 평생 후회할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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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잊지못할 앙꾸드만(灣)의 봄 바다
-그냥 지나치면 평생 후회할 여행지-



죽어서도 잊지 못한다니...

오소르노 화산과 쟝끼우에 호수의 잔상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때, 우리는 뿌에르또 몬뜨에 돌아오자 마자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그곳은 빠따고니아 투어를 위해 지구 반대편 칠레에 도착하자마자, 남반구의 위도를 따라 남하하는 봄을 따라 이동한 로스 라고스 주의  뿌에르또 몬뜨의 봄이자, 빠따고니아 북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생애 단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한도 끝도 모를 '천추의 한'이 기록될 수 있는 곳이자, 다녀온 사람들 한테는 '죽어도 잊지못할'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뿌에르또 몬뜨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 중 한군데였다. 또 그곳은 뿌에르또 몬뜨를 떠나 오르노삐렌으로 답사를 나갈 때, 다시 한 번 더 가 보고 싶은 너무도 아름다운 뿌에르또 몬뜨의 봄 바다가 펼쳐진 곳이었다. 앙꾸드 만(灣)을 껴 안고 '까르레떼라 오스뜨랄'로 이어지는 빠따고니아의 관문 7번 국도는 죽어도 잊지못할 추억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7년 전(어느덧 8년 전), 우리는 앙꾸드만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뿌에르또 몬뜨 항구 곁 언덕 위에서 수평선에 걸려있는 미지의 땅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곳은 언제인가 한 번은 반드시 다녀와야 직성이 풀릴 듯한 숙명을 간직한 곳이었는지.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오래된 습관처럼 언덕 위를 배회하곤 했다. 당시 우리의 여정 속에서 수평선 너머의 빠따고니아는 빠져있었던 것.


우리는 얼마전 다녀오게 된 오르노삐렌의 대자연에 흠뻑 매료되어 있었다. 7년 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던 해 묵은 체증이 얼마간 풀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오르노삐렌을 다녀온 이후 답사에 나서며 알게 됐던 7번 국도 까르레떼라 오스뜨랄 곁 앙꾸드만의 아름다운 봄 바다 모습은 뿌에르또 몬뜨로 돌아온 이후 여전히 갈증 상태였다. 본격적인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전 반드시 가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 것.





그곳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는 지리적 위치였다. 특별히 볼 만한 것도 없는 듯, 가 보지않으면 후회할 거 같은 그런 곳이었다. 뿌에르또 몬뜨는 그런 곳인지, 이곳에서 만나게 된 관광객 내지 여행자들까지 뿌에르또 몬뜨는 '별 볼 일 없는 곳'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기껏해 봤자 쟝끼우에 호수를 한 번 다녀오거나 앙헬모 어시장을 휙 돌아보고 곧장 또레스 델 빠이네 등 빠따고니아 남쪽으로 내 빼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분들이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된 북부 빠따고니아의 모습을 보게되는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어렵게 떠난 빠따고니아 투어에서 빼 먹은 뿌에르또 몬뜨의 '알짜배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분들은 귀한 시간을 엉뚱한(?) 곳에 빼앗긴 탓을 하며 가슴을 칠 지도 모르겠다. 죽어도 잊지 못할...것 같은 다소 격한 표현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어도 잊지 못할 것들은 주로 어떤 것인지 잠시 살펴보고 뿌에르또 몬뜨의 속살을 만나보기로 한다.




실화다. 필자의 오래전 친구이자 이미 하늘나라에 먼저 간 친구의 증언이다. 부산에 살고 있었던 그는 어느날 (공교롭게도)7번 국도변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다. 동래(구)에 살던 그는 지방을 다녀오던 중에 7번국도에서 과속으로 커브길을 돌다가 그만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고 만 것. 그의 차는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도랑을 너머 도랑가에 착지(?)하면서 두 동강이 났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처럼 그의 차는 국도를 벗어나 도랑가에 쳐 박힌 것. 그 시간이 얼마나 될까. 길어봤자 3초 정도나 될까. 




그 짧은 시간에 그의 머리 속은 한뭉치 필름이 재생되더라는 것. 그가 살아온 생애의 순간들이 찰라의 순간에 재연되면서 '아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 간 것 같은데 깨어보니 병원이었다고 한다. 그 친구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자동차가 정확히 두 동강 났고 그의 허리도 부러졌다. 그는 천추가 골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한 것. 정말 기적처럼 살아났다. 그런 그가 교통사고 후 사지가 멀쩡하게 퇴원한 후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당시를 회상했다.




"집사람(아내) 한테 참 미안한 말이지만...희한하지. 그 때(차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순간) 왜 마누라 얼굴은 안 보였는지 몰라. 내가 살아왔던 모습과 아이들의 모습만 눈 앞을 스쳐 지나갔지. 마누라가 이 소리 들었으면 정나미 뚝 떨어졌을지 몰라...하하 "





웃을 일이 아니었다. 그는 친구들 중에서 애처가로 소문났다. 모처럼 술 한 잔하는 자리에서 조차 '늦었다'며 서둘러 자리를 뜨는 친구였다.(공처가였나?...) 그런 친구의 입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증언을 듣게 된 것. 지아비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찰라의 순간에 기억되는 건 서로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는 게 무엇일지 어렴풋이 판단되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알게된 수 많은 인연들 중에 죽기 직전 혹은 죽어도 기억에 남을 추억들은 제한된 게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그게 당신의 삶에 업보처럼 남게된 것들이 아닐까. 생전의 사정이 대략 이러한데 죽어서도 잊지못할 정도라면 당신의 삶 전부를 지배할 정도의 인연이라야 될 것 아닌가. 그 기막힌 현장을 몇 편에 나누어서 소개해 드린다.




죽어도 잊지못할 앙꾸드만(灣)의 봄 바다 속으로


빠따고니아 투어에 관심을 가지고 포스트를 열어 보신분들이라면 가급적이면 구글어스나 지도를 펴 놓고 남미의 뿌에르또 몬뜨 위치를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면, 어느덧 그곳은 '내가 꿈꾸는 그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학습(트레이닝)되어 훗날 이곳을 방문하게 되면 기쁨을 배가 시킬 것이다. 필자의 경험이다.

뿌에르또 몬뜨는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의 수도이며 1853년에 세워진 뿌에르또 몬뜨(Puerto Montt)는 당시 
칠레의 대통령이었던 '마누엘 몬트(Manuel Montt)'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지도를 살펴보면 뿌에르또 몬뜨의 면적은 앙꾸드만을 둘로 나눌때 북쪽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엄청난 면적이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케 하는 앙꾸드만을 품은 도시가 뿌에르또 몬뜨인 것.





그러나 적지않은 사람들이 뿌에르또 몬뜨에 들르게 되면, 버스터미널 근처 내지 앙헬모어시장과 항구 주변이 뿌에르또 몬뜨의 전부인 것 처럼 착각하게 된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난 한국의 어느 관광객은 필자에게 뿌에르또 몬뜨의 매력 등에 대해 문의해 놓고 정작 행동은 따로 했다. 뭔지 모르지만 바빳던 것이며 필자와 여행관이 많이도 달랐다. 




그들은 쫒기듯이 1박 2일 만에 뿌에르또 몬뜨에서 사라졌다. 볼 게 없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변명이었다. 지구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단 한 번 만이라도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 한 쪽만 챙겨와도 시간이 아까워 죽을지경인데 볼 게 없다니. 최소한 뿌에르또 몬뜨를 노래한 칠레의 뮤지션 '빠뜨리시아 살라스(Patricia Salas)'의 노랫말만 챙겨와도, 그녀의 노래가 왜 유명하게 됐는지 궁금할 것. 뿌에르또 몬뜨에 가면 누구나 대자연이 내 뿜는 예술혼에 붙들려 헤어나지 못 할 정도이다.





우리는 아침 일찍 서둘러 도시락을 준비했다. 얼마전 민박집 주인 마리아 후레시아가 가르쳐 준 오르노삐렌의 아름다움은 머리 속에 각인돼 있었지만, 뿌에르또 몬뜨에서 오르노삐렌으로 이어지는 7번 국도 까르레떼라 오스뜨랄 주변 풍광은 민박집 아주머니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뼈가 자란 사람들 한테는 매우 흔한 풍경이었던 것. 그러나 우리에겐 특별했다. 




뿌에르또 몬뜨 중심지를 벗어나자마자 꿈같은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오르노삐렌을 다녀 오면서 봐 두었던 곳을 찾아나선 것. 그곳은 깔레따 아레나 선착장(Caleta La Arena) 못 미친 곳이자 알레르세 안디노 국립공원(Parque Nacional Alerce Andino)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아담한 어촌마을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도착하여 무작정 걸어서 7번 국도를 거슬러 뿌에르또 몬뜨 쪽으로 이동할 요량이었다. 더 이상 힘들어 걷지 못할 정도가 되면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올 예정인 것. 




누구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만든 대자연을 사랑하는 사람한테 행운이 주어지는 것인지. 이날 투어에 나선 작은 버스의 창은 비교적 잘 닦여 있었다. 행운이다. 버스 운전사가 닦아둔 것이라기 보다 우기가 끝날 무렵 후드득이며 쏟아진 비 때문이겠지. 앞 좌석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바다가 응시되는 곳을 일부러 찾아 앉았다. 투어 목적지 등에 따라 좌석을 선택해 앉아야 했다.




어디를 가나 버스 속에서 여행지의 풍광을 담고자 하는 분들은 늘 머리 속에 그려넣고 있어야 할 습관이 아닌가 싶다. 한 시간도 채 안 걸리는 목적지를 이동하는 동안 담고 싶은 풍경을 꽤나 담았다. 생각 같아선 내려서 걷고 싶지만 생각보다 꽤 멀고 볕은 봄 답지않게 따가운 곳이다. 멀리 산기슭에 혹 처럼 돌출된 곳이 목적지며 우리는 그곳에 내려 이곳까지 걸어서 올 요량이었다. 날씨까지 화창하게 개이니 금상첨화.
 



우리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저 멀리 혹 처럼 돌출된 작은 봉우리...그곳에서 내려 바닷가를 거닐며 뿌에르또 몬뜨의 봄바다를 만끽하는 것. 그게 우리 한테는 '죽어도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오르노삐렌으로 답사를 나가면서 얼핏 봤던 뿌에르또 몬뜨의 속살이자, 뿌에르또 몬뜨를 노래한 뮤지션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시인들과 무수한 연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 뿌에르또 몬뜨의 봄 바다였다.
 
죽어도 잊지못할 앙꾸드만(灣)의 봄 바다

 



버스에서 내려 맨 먼저 만난 풍경 하나. 작은 보트 한 척을 두고 갈매기들이 요란스럽게 떠들어 댓다. 우리가 조금 전에 본 풍광들이 배경으로 자리 잡은 곳. 썰물 때 본 평화로운 풍경이다. 가까이 가 보면 어떨까. 아무렇게나(?) 만들어 둔 선착장이 이채롭다.




가까이서 보니 작은 배 한 척이 앙꾸드만에서 물고기를 잡아와 막 하역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곁에서 갈매기들이 자기들 몫을 달라고 끼륵 거리며 난리가 아니다. 자세히 보니 이들 갈매기 무리 속에는 페리카나도 보이고 독수리도 함께 했다. 곧 조찬이 시작될 모양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천천히 걸아가는 동안 길가에서 알을 품고있는 갈매기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알을 품은 게 아니라 봄을 품은 듯한 갈매기 한 마리. 이랬다.
 









갈매기 등 조류가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은 '빠따고니아'를 떠 올릴 때 마다 자연스럽게 떠 올린 이미지였는데 그 중 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 그리고 일찍 나는 새가 먹이를 줍는다고 했던가. 한 마리의 갈매기가 먹이 한 덩어리를 운반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갈매기 등 물새류는 발가락 사이에 붙은 물갈퀴가 있건만 어떻게 발로 먹잇감을 취할 수 있었는지...미스터리다.




녀석들은 작은 보트 옆에서 혹시라도 챙길지 모를 먹잇감 때문에 조용히 기다리는 듯 했다. 면경처럼 고요하게 펼쳐진 앙꾸드만의 봄 바다 곁에서 어부와 새들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 너무도 평화로운 모습 때문에 장난을 걸어봤다. 이방인이 갑자기 달려들면 녀석들은 분명히 하늘로 치솟을 터. 자갈을 자갈자갈 밟으며 천천히 걷다가 몇 발짝 빠르게 움직이자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 모두 비상했다. (후후...^^*)
 



오래 전에 본 리처드 바크의 <꿈>이라는 책에서 주인공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Jonathan Livingston Seagull)' 이란 갈매기는 이런 갈매기 무리 속에서 지내는 게 아니었다. 녀석은 더 높이 더 멀리 날았건만 뿌에르또 몬뜨의 봄 바다 곁에 살고있는 녀석들은 전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는지. 기껏해 봤자 이방인으로부터 조금 더 떨어진 장소로 이동했을 뿐. 봄 바다는 이들에게 풍요로움을 선물해 주고 있었던 듯 하다.
 









군계일학(群鷄一鶴) 처럼 갈매기 무리 속에 있었던 페리카나...(흠...페? ^^) 녀석은 A380 같은 큼직한 날개를 퍼득여 이륙하는 장면도 재밌다. 아마도 이런 풍경들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명소가 됐을 거 같다. 우리가 7전 전에 가슴 속에 품고 살았던 뿌에르또 몬뜨의 봄 바다는 여행지에서 망중한을 달래주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아무런 시설도 없도 없는 가운데 앙꾸드만에서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은 갈매기들의 장난감처럼 여겨졌다. 녀석들은 불어오는 바람에 날개를 한 번 퍼득여 제자리에 머물곤 했다.
 



요 녀석이다. 남들 다 조용한데 혼자 튀는 녀석...녀석들은 이방인을 안 보는 채 조용한 것 같아도 조금만 빠르게 움직이면 후다닥 날아 오른다. 새우깡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모습들. 이들 무리 속에 끼어든 독수리는 어떨까. 조용히 다가서며 슈팅 준비를 하자 녀석도 조용히 이륙 준비를 했다.
 









페루의 꼴까협곡(Colca canyon)에서 봤던 엄청나게 큰 안데스 독수리(Condor) 보다 작은 독수리(aguila)지만, 녀석의 몸집은 꽤 컷다. 날개를 펼친 모습은 어떨까. (후다닥...) 조용히 이륙 준비를 하고 있던 녀석은 아니나 다를까, 후다닥 날아오르며 큼직한 날개짓을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나는 독수리다. Soy aguila...^^ )




페리카나와 갈매기와 독수리가 무리를 지어 살고있는 뿌에르또 몬뜨의 봄 바다 저 멀리 우리에게 익숙한 양식 시설이 보인다. 칠레는 자국에서 생산된 연어 대부분을 미국이나 유럽으로 수출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나라다. 노르뤠이에 이은 세계2위 규모. 

 
칠레 관세청(Customs, National Customs Service of Chile)이 최근 발간한 <Informe Mensual de Comercio Exterior>에 의하면, 작년(2012년) 칠레의 수산물  총 수출액은 34억5,900만 달러이다. 수산물 총 수출액 중 연어 수출액이 19억5,800만 달러로서 57%을 점유하였으며, 송어는 26%을 점유했다. 

연어와 송어 중 연어는 2011년에 비해 1억600만 달러나 증가했는데, 연어 수출액의 증가는 계속 늘어가고 있는 추세로 연어 수출물량이 87,000 톤 증가했다고, 한국의 <탄혜수산자원연구소>가 피스닷컴( 
http://www.fis.com/)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같은 내용을 첨부한 이유는 칠레 속의 뿌에르또 몬뜨의 위상 등을 여행자들이 참조하면 좋을 것 같았다. 





뿌에르또 몬뜨는 천혜의 피오르드와 바다(경관)를 자원삼아 대규모 연어 양식을 하는 곳이자, 주변에는 밀과 감자 농사는 물론 목축업이 활발한 곳이다. 그 중에서 뿌에르또 몬뜨를 대표할 수 있는 게 연어 양식이며, 로스 라고스 주의 천혜의 자연이 관광산업을 활발하게 만드는 등, 칠레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이며 빠따고니아 사람들의 로망이다. 1990년대 초 뿌에르또 몬뜨의 인구는 13만 명 남짓 했는데 최근(2011년 이후) 이곳의 인구는 대략 30만 명 정도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곳이다. 
 



구글어스를 펴 놓고 차근차근 북부 빠따고니아의 로스 라고스 주를 살피면 뿌에르또 몬뜨의 진면목이 단박에 나타난다. 칠레 북부에서 시작된 '판아메리카 고속도로(5번 국도)와 주요 남북 철도의 종점이며, 남쪽으로 군도를 통해 뿐타아레나스로 가는 해로의 종점이기도 하다. 또 뿌에르또 몬뜨에서 시작되는 7번 국도 까르레떼라 오스뜨랄을 통해 태고적 원시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빠따고니아를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기 위해 뿌에르또 몬뜨에 머물면서 숨을 고르고 있었던 것. 북부 빠따고니아의 한 부분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곳이다.
 그런 곳을 그냥 지나친다면 평생 후회하지 않겠는가. 물론 반드시 거쳐가면 죽어도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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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아메리칸 고속도로는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도로로 총길이가 47,958km에 달하며 알래스카에서 시작하여 캐나다와 미국 멕시코를 거쳐 페루 볼리비아 등 남미국가를 통과하여 칠레남단에 이르기까지 총 18개 나라(북미대륙 9개, 남미대륙 9개)를 통과하는 도로)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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