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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Puerto Montt

무한 '힐링'될 것 같은 흔치않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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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잊지못할 뿌에르또 몬뜨의 봄 2
-무한 '힐링'될 것 같은 흔치않은 풍경-




너무 조용해 무슨 일을 저질 것 같은 분위기...

너무 조용했다. 마치 시간이 멈추어선 듯 세상은 지구별이 아니라 진공상태의 어느 행성같은. 눈 앞에 펼쳐진 바다는 있으되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고, 갈매기 무리들의 소리 마저 침묵했다. 물론 하늘 높은 곳에서 땅을 굽어보는 독수리 조차 박재된 듯 하다. 소음이라곤 우리가 걷는 바닷가의 자갈들이 내는 소리 뿐. 자갈 자갈 잘그락 잘그락.

그리고 걸음을 멈추면 이내 진공상태. 꿈결같은 시간을 깨우는 건 땡볕이며 살랑거리는 바람. 바람 마저도 침묵의 소리. 세상이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것일까. 사방이 너무 조용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간조 때의 뿌에르또 몬뜨의 봄 바다가 그랬다.

나는 이곳을 '죽어도 잊지 못 할 곳'이라고 했다. 죽어도 죽지 않은 듯, 저승이 있다면 그곳은 필시 이런 곳일 것이라는 생각. 우리는 긴장의 고삐를 다 풀어버린 뿌에르또 몬뜨의 7번 국도 곁에서 침묵의 바다를 응시하며 걷기 시작했다. 




모처럼 뿌에르또 몬뜨의 하늘은 청명하게 개이며 땡볕을 쏟아부었다. 조금 전 
우리가 이곳에 도착할 무렵 사람들이 보트 근처에서 하역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떠나자마자 세상은 침묵에 빠져든 것. 희한한 경험이다.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별로 조난 당한 여행자 같은 모습이랄까. 지구별에 이런 곳도 있다니...그냥 지나치면 평생 후회할 여행지 
 



까칠한 자갈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알레르세 안디노 국립공원' 자락에 봉긋 솟아오른 암봉 하나가 눈에 띈다. 한국 같으면 이런 바위를 매바위 혹은 부엉이 바위 정도로 불렀을 것 같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암봉 근처에서 독수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절벽 한쪽에 필시 녀석들의 둥지가 있을 것 같다. 그 아래로 아르힐라가 숲이 보이고 미루나무가 곧게 뻗어있다. 눈에 익숙한 시골풍경.

그리고 이 마을 앞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는 도로가 뿌에르또 몬뜨에서 시작된 7번 국도다. 이 도로를 따라가면 피오르드를 잇는 선착장의 훼리호를 타고 빠따고니아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뿌에르또 몬뜨에 머무는 동안 이 길을 따라 오르노삐렌을 답사한 적 있고, 오르노삐렌으로 이동하던 중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광에 이끌려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됐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는 바닷가를 통해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바닷가에서 당연히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던 파도 소리 조차 없었다. 뿌에르또 몬뜨가 껴안고 있는 앙꾸드 만(灣)은 그렇게 조용한 곳. 차라리 소낙비라도 좍쫙 쏟아지거나 바람소리와 파도소리가 휘몰아쳤으면 싶을 정도. 우리는 그런 정중동의 뿌에르또 몬뜨의 바닷가를 잘그락 거리며 걷고 있는 것이다.


지구별에 이런 곳도 있었네
Recuerdo de la Puerto Montt, Los Lagos CHILE




수채화를 그리는(취미에 빠진) 아내는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설 때 스케치북과 '아르쉬紙'는 물론 그림 도구까지 다 챙겨왔다. 그래서 빠따고니아의 풍광을 그림에 담을 수 있는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촬영하게 됐다. 풀프레임으로 찍어낸 사진들 속에는 수채화의 배경이 되어줄 장면들이 적지않다. 또 필자는 빠따고니아 투어를 통해 촬영된 사진을 엄선하여 한 권 또는 여러권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책으로 엮을 작정이었다. 또 경우에 따라선 전시회도 열어볼 생각이었다. 지인들의 성화 때문.

그런데 뿌에르또 몬뜨의 7번 국도변에서 찍은 사진들은 전부 졸고(?)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이런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근사한 액자 속에 담아두면 수면제 역할을 톡톡히 할 거 같다는 발칙한 상상.ㅎ 그래서 바닷가를 거니는 한 순간 렌즈를 바꾸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한 침묵을 깨뜨리고 싶기도 했다. 그 장면들은 이런 모습.

 
정중동(
靜中動)의 풍경 속으로
















바닷가 자갈을 연두빛깔로 물들인 해초를 잘 봐 두시기 바란다. 필자가 확인해 본 해초는 '매생이'였다. 매생이는 청정한 바다와 차가운 바닷물에서 자란 해초였는데, 이들이 갯벌에서 연출한(?) 장면은 두고두고 잊지못할 추억으로 자리매김 했다. 가히 환상적인 장면이 오르노삐렌에서 필자의 카메라에 담겨진 것.(  즐겨찾기해 놓을 만 하다. ^^) 우리는 뒤로 보이는 마을을 따라 왼편으로 걷게 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르노삐렌의 갯벌이 연출하는 환상적인 장면 중 일면을 미리 보게 됐다. 눈여겨 봐 두시기 바란다.




7번 국도 곁 알레르세 안디노 국립공원에서 발원한 수정같이 맑은 물은 곧바로 간조 때의 앙꾸드만으로 흘러든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만조 때 바닷물이 이들 초원을 다 덮어버려도 짠물 속에서 풀들이 잘도 자라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갯벌에서 소금끼를 함유한 함초(
퉁퉁마디 Marshfire Glasswort) 정도만 봤을 뿐인데...(함초도 아닌 것이...^^) 간조 때가 되면 그런 풀들은 양들의 먹이가 된다는 것.






우리 마음 닮은 풍경 한 조각

un barco
 








물이 차면 배가 뜬다. 그러나 물을 따라 나서고 싶은...




썰물 때 이 바다는 사람들을 안달하게 만드는 듯 했다. 꽤 오랫동안 바다에 몸을 담궈보지 못한 보트들이 곳곳에서 해갈을 하고 싶어 환장하는 듯한 모습. 주낙을 뱃속(?)에 품고있는 이 배는 낚시 바늘이 빨갛게 녹이 쓸 정도로 뭍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누가 그랬나 '물이 차면 배가 뜬다(수도선부,水到船浮)'고. 이 보트를 보니 누가 일부러 떠 밀지 않고는 절대로 물에 뜨지 못할 것 같았다. 물이 찬다고 다 배가 뜨는 법은 아니었던 것.




그러나 이 배는 사정이 다르다. 시간만 기다리면 저절로 둥실 떠 오를 것. 조금 전에 봤던 풀밭은 양들이 야금야금 다 갉아 먹어 융단을 깔아둔 듯 하다. 페루의 고산지대에서 비슷한 풍경을 본 기억 외 지구별에 흔치않은 풍경이다.




바닷가에 갯벌 대신 펼쳐진 풀밭이라...믿기진 않지만 현실. 더 뜯을 것도 없을 거 같은데 녀석들은 부지런히 입을 놀린다. 덕분에 살이 토실토실 포동포동 털은 북실북실. 우리는 뒤로 보이는 보트 두 대 옆으로 걸어 왔다. 볕은 쨍쨍 바람은 살랑살랑. 그러나 여전한 침묵. 뿌에르또 몬뜨의 봄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바닷가 보신 적 있나요?...)




누가 이런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겠는가. 그냥 자기가(지가) 알아서 그림도 되고 사진도 되는...(지구별에 이런 곳도 있었다니...너무 아름답다꾸나.ㅜㅜ) 싹둑 오려서 안방에 걸어두고 싶은 풍경이다. 저절로 힐링이 무한 반복될 것 같은...그리고 렌즈를 바꾸고 싶은 충동질을 한 풍경 하나.
 










작은 강 하구에 붙들려 있는 보트들...닻이 믿기지 않았는지 말뚝에 밧줄을 꽁꽁 틀어 맨 보트들. 이 장면을 보자마자 물이 차면 배가 뜨는 게 아니라 (간조 때)물이 빠지면 덩달아 따라 나가고 싶은 욕구가 굴뚝같을 것 같은 생각이 단박에 오버랩 됐던 것. 그래서 렌즈를 바꾸고 달님 따라 나서고 싶은 녀석들의 속 마음을 카메라에 담아 봤다. (흠...이랬을 것...!!)




(나 돌아갈래...놔!)




(아 놔!!...ㅜㅜ)




(제발 날 좀 놔 달라니까...ㅜ)




정말 조용했다. 진공상태로 변한 지구별의 한편에서 세상 모두가 졸고 자빠진 것일까. 삐딱하게 기운 작은 배들은 당장이라도 물을 찾아 탈출하고 싶은 심정같아 보였다. 우리는 보트 옆의 그늘에 앉아 삶은 계란과 햄버거를 오물거리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갈증을 동반한 배고픔이 쪼르륵.
 



점심을 먹으면서 키가 너무 작아 보일 듯 말 듯 한 풀밭에 버려진(?) 배들을 보니, 곧 무슨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실런가. 얼라들이 조용하면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지구별에 이런 곳도 있었다.




나는 이곳을 '죽어도 잊지 못 할 곳'이라고 했다. 죽어도 죽지 않은 듯, 저승이 있다면 그곳은 시간을 붙들어 매 놓은 듯한 이런 곳일 것이라는 생각. 우리는 긴장의 고삐를 다 풀어버린 뿌에르또 몬뜨의 한 바닷가에서, 먼 바다를 나서는 어부처럼 빠따고니아에 발을 점점 더 깊이 들여놓고 있었다. <계속>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내가 꿈꾸는 그곳의 Photo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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