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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AGONIA/Hornopiren

Patagonia, 전설에 이끌린 먼지길 트레일


-Patagonia, 
전설에 이끌린 먼지길 트레일-




누군가 말했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도가 지나친 표현이지만 그럴 듯 하다. 집이란 참 편한 곳이다.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곳. 부모 형제는 물론 먹거리와 생활 필수품이 구석구석 박혀있다. 아무때나 시도 때도 없이 꼭지만 돌리면 쏴 하고 쏟아지는 수돗물처럼 편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리모콘 하나 또는 키보드 하나만 누르면 온 세상 소식이 순식간에 눈 앞에 펼쳐진다.

배 고프면 스마트폰에 입력된 피자집이나 족발집으로 연결만 하면 수 분 이내에 향기롭고 감칠맛 나는 음식이 배달된다. 앱 하나 보턴 하나만 눌러도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잘나가는 여성 보컬그룹이 컬러풀 섹시하게 흔들어 댄다. 그런데 인터넷을 열어보면 행복해야 할 사람들이 비극적 선택을 하며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 것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등지는 것.

이런 현상은 편리한 문화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늘 옆구리에 끼고사는 사람들 한테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편리한 도구들은 다 공짜가 아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편리에 중독되어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편리와 맞바꾸고 있었던 것. 하루 24시간 모두를 편리를 위한 도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눈을 뜨는 순간 불을 켜고 수도 꼭지를 열어 세수를 하고 여성들은 화장을 하고 허겁지겁 자동차나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직장으로 달려가 업무를 마치고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아니면 커피 한 잔 하고 귀가하면 샤워하고 티비 좀 보다가 인터넷 로그인 하여 몇 번 키득 거리다가 어떤 때는 로그아웃도 하지않은 채 잠이들었다가 다음날 똑같은 일과를 시작하게 된다.(쉼표, 마침표 생략)

이게 문명 생활 문화생활이란다. 티비를 잘 안 보는...특히 요즘은 거의 안 보는 필자지만, 이틀 전 개콘을 잠시 엿 봤더니 거기서는 '소고기 사 먹기 위해' 일을 하는 듯한 슬픈 현실이었다. 웃을 일 아님. 인간이 소고기 사 먹자고 사는 동물인가...그래서 이런 생활에 찌들어 있던 현대인이 히말라야나 지구촌의 오지여행을 떠나 하는 소리가 '개고생'이란다. 그럴 듯 하다. 그래서 본 포스트에서는 필자의 경험담 하나를 들려주며, 이른바 개고생을 택한 여행자들이 얼마나 '멋진 삶'을 살고 '싱싱한 삶'을 살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대략 20여 년 전 필자는 직장의 상사와 함께 강원도 내린천으로 켐핑을 떠났다. 단 둘이다. 배짱이 맞았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내린천 등 강원도에는 오지다운 오지가 흔했다. 내린천은 그 중 하나였다. 여름휴가 때 잠시 2박 3일 정도로 켐핑 여행을 떠났는 데 하필이면 우리가 떠날 날짜에 하늘이 우중충 했다. 우리는 방동의 내린천의 지천에서 텐트를 치고 개울에 어망을 두 개 던져두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면 산골짜기에 살고있던 민물고기들이 매운탕으로 변할 꿈을 꾸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웬걸 대략 소주 한 잔 하고 잠이 들었는데 텐트 바깥이 난리가 아니었다.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치며 잠 못 들게 했다. 그래도 한 잔 한 터라 깜빡깜빡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우당탕탕 하는 소리에 놀라 화들짝 잠이 깻다. 내린천이 불어 바위가 굴러가는 소리가 텐트까지 들린 것. 아차 싶어서 후다닥 바깥을 나가보니 개울물도 황톳빛으로 변해 물이 점점 불어 올라오고 있었다. 비상!!...

필자와 상사는 급히 텐트를 걷어야 했다. 텐트 바로 아래까지 물이 분 것. 그래서 허겁지겁 길 옆에 주차해 둔 자동차에 짐을 둘둘 말아 쳐박았다. 다급해진 것. 그리고 아차 싶어 간밤에 쳐 둔 어망의 줄을 당겼다. 어망을 챙겨가야 될 거 아닌가. 그런데 달랑 따라와야 할 어망이 묵직하다. 무슨 일일까. 돌에 걸렸나. 아니었다. 세상에!!...라면상자 크기만한 어망 속에 꺽지를 비롯해 민물고기란 고기는 모조리 다 들어와 있었다. 어망 두 개가 같은 상황. 

생전 이런 횡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장맛비가 후드득 거리지만 않았어도 이들 생선(?)은 모조리 매운탕감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온통 다 젖어있고 금방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모조리 다 방류한 것. 마음에도 없는 방생이었다. 우리가 골짜기에서 잡은 물고기 이야기 하자는 게 아니다. 




그 땐 몰랐다. 그럴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그 장면을 떠 올릴 때 마다 물고기들이 왜 그렇게 많이 어망으로 들어왔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답은 금방 나왔다. 여름 장맛비에 불어난 물은 중하류에 살던 물고기들을 모조리 상류로 불러모은 것이라는 결론. 물고기들은 자기들이 살고있는 물 깊이에 맞추어 산다. 팔뚝만한 잉어가 연어처럼 죽음을 무릎쓰고 상류로 거슬러 가지 않는 것. 어쩌다 실수로 장맛비에 웅덩이에 갇히는 실수는 할지언정 피라미 조차 강물을 따라 바다로 가지 않는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어망을 채운 건 중하류에 살던 물고기들이 대거 상류로 피신을 했다가 하필이면 어망 속의 깻묵 냄새를 맡고 들어앉은 것. 세상을 살다보니 인간세상도 그런 것 같아 꽤 길게 끄적였다. 개고생을 마다하고 시류에 휩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경계선 밖에서 헤매게 되는 것. 따라서 여행이란 자기 삶의 좌표를 돌아보게 만드는 행위하고나 할까. 



 

Patagonia,전설에 이끌린 먼지길 트레일 

우리는 원시사회로부터 너무도 먼 미래에 와 있다. 마치 힘 안들이고 내린천 산골짜기에서부터 급류에 떠밀려 한강 하류까지 이동한 물고기 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동한 물고기들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지금까지 생활습관 전부를 버려야 가능할까 말까한데 누가 그런 일을 할까. 연어도 아니고. 그래서 오지여행을 떠나게 되면 단박에 '개고생' 소리가 억 하고 나오는 것.

여행 한 번 만으로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여행을 통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다면, 나의 존재가 얼마나 귀한지 알 수만 있다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내가 사는 세상 보다 더 낫거나 다른 세상도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 있다면, 늘 곁에 있어서 무덤덤한 사람들이나 존재들이 너무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인식 할 수만 있다면, 그래서 지금 당장 죽어도 전혀 '후회할 일이 없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런 여행 한 번 쯤 떠나보고 싶지않은가. 




잊어버릴만 하면 차 한 대가 지나치면서 먼지를 뿌옇게 날렸다. 칠레 남부 빠따고니아로 이어진 7번 국도를 끝없이(?) 걸으면 별 상념들이 다 떠오른다. 우리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아날로그 여행자이자 발품을 팔아 살고있었던 여행자였다. 불편을 감수해야 세상이 보이고 불편을 온 몸에 둘러야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빠따고니아 투어가 끝나는 날까지 걷고 또 걸었다.

그 때 마다 '신의 땅'으로 부른 이 땅은 새로운 힘을 주는 한편, 전혀 예상치도 않은 영감(
靈感, inspiration)을 통해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놀라운 기쁨을 주기도 했다. 마치 피라미 한 마리가 급류에 길을 잃고 헤매다가 고향땅 산골짜기를 다시 찾은 듯한 느낌이랄까. 불편을 감수한 대가는 실로 놀라웠다. 우리는 그 첫 걸음마를 칠레의 로스 라고스 주 우알라우에-오르노삐렌의 7번국도에서 뗀 것. 그 길이 하필이면 '먼지길 트레일'이었다.

목적지에 가까운  먼지길 트레일 




먼저 끼적거린 관련 포스트에서 오르노삐렌 화산이 달 처럼 따라다닌다고 했다. 엄청 큰 바운더리 때문. 걸어도 걸어도 늘 곁에 있었던 산 위로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땡볕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땡볕은 빈가지에 초록물을 들이고 있었고 우기가 물러나는 하늘은 에메랄드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목적지로 이동하던 중에 바라 본 오르노삐렌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Hornopiren). 눈을 인 설산의 모습이 이채롭다.




매마르고 먼지나는 길을 걸을 때 이런 풍경은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든다.




언제인가 저 산으로 꼭 가 보고 싶은...




그런 충동은 먼지길 트레일 내내 이어졌고 리오 네그로 강을 흐르던 발원지까지 가 보고 싶었던 것. 이 길을 곧장 따라가면 그곳이다.




아내가 겉옷 하나를 벗어 가방에 걸쳐두었다. 오후 2시 경 땡볕이 작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겨울용 아웃도어 하나는 입어야 하는 희한한 날씨.




카메라를 줌인해 보니 만년설이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최종 목적지는 저 빙하수가 녹아 흘러 만든 '리오 블랑꼬' 강으로 가 보는 것.




작은 소음에 뒤돌아 보니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자동차 한 대 




자동차가 먼지를 일으키고 우리곁을 사라지면 가슴에 품었던 카메라를 다시 끄집어 내 한 컷.




카메라 없이 이 길을 걸었다면 아무도 먼지길 트레일을 알아주지 못할 것. 며칠 전 우리를 안타깝게 했던 故조성민은, 한 인터뷰에서 왜곡된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을 향해 "나...조성민인데..."라고 말하자 상대는 "나 박찬호인데..."라며 (깐죽대며)도무지 알아주지 않더라는 것. 그가 남들 다 하는 블로그 하나 만들어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으면, 그는 여전히 우리곁에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기록이라는 수단은 그래서 좋은 거 아니겠나. 참 안타까웠다.




필자는 사정상 잠시 미루어 두었던 빠따고니아 여행기 서문을 막 시작했다. 누가 알아주었으면 싶은 게 아니라 죽기 전에 유서(遺書)처럼 한 자라도 더 끼적거려 두면, 언제인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이 포스트를 보고 이런 세상,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될 것. 그 때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질 않을 것이나, 몇 몇의 사람들은 우리가 걸었던 이 길을 참조하여 세상을 보는 눈을 달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은 없지않다. 




세상은 늘 마음 먹은대로 계획한대로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지만, 먼지길 트레일을 걷고 또 걷는 동안 뜻 밖의 한 나무가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식물은 빠따고니아 전역에 서식하고 있는 '노뜨로(Notro)'라는 나무다. 또 '칠레안 파이어 부시(Chilean fire bush)'라고 부르기도 하고  'Embothrium lanceolatum'이라고도 부른다.

키는 대략 10m까지 성장하고 영하 10도까지 견디는 매우 강인한 나무인데 꽃이 매우 화려한 붉은 색이다. '칠레노'들은 주로 이 나무를 노뜨로로 부르고 있었다. 잘 봐 두시기 바란다. 빠따고니아 땅끝에서는 이 나무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지. 정말 신비로운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미리 언급해 두는 것. ^^




설산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건 목적지가 가깝다는 것.




원시림 너머로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이는 산이지만 걸어서 가 보기란 너무 먼 거리...




마침내 목적지 앞에서 두갈래 길이 나타났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뒤돌아 보니 다시 덤프트럭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고 다가온다. 이런 일은 계속 됐지만 그 때 마다 카메라에 다 담아두진 못했다.




비수기 때 오르노삐렌은 너무 한가하다. 7번 국도는 우리 두사람 뿐...우리는 오르노삐렌을 둘러볼 목적으로 먼지길 트레일에 나선 것.




트럭 한 대가 속도를 낮추지 않고 먼지를 날리며 사라지고 있다. 아내가 트럭 뒤에 대고 소리치며 궁시렁 거린다.

"야~~~!!...(이넘들아)살살 댕겨...(궁시렁궁시렁)..." 





다시 잠잠해진 먼지길 앞으로 안데스의 웅장한 산맥이 버티고 섰다.




뒤를 돌아보니 여전한 오르노삐렌 화산...그리고 내리쬐는 땡볕...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했다. 얼마나 따가운지...ㅜ




그러나 먼지길 옆 양들과 말들이 다니는 오솔길 옆을 따라 걷다보면 금새 달라진 풍경 앞에서 모든 것을 잊게 된다. 카메라의 촛점을 잘 봐 주시기 바란다. 그곳에 풀꽃의 요정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지않은가. 참 신비로운 모습. 우리 곁에 충만했던 이런 풍경을 모국에서 보기 힘들어졌다는 게 슬픈 일이다. 우리가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알게 모르게 이런 풍경들이 사라지고, 회색빛 삭막한 공간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 사람들의 정서를 조급하고 부정적으로 만드는 게, 일상이 된 게 문명사회 내지 디지털사회가 아닌지 잘 돌아봐야 한다.
 



우리 곁에 이런 목가적인 풍경이 넘쳐났다면, 우린 결코 힘든 여행을 '개고생'이라 잘라 말하지 않았을 것.




먼지길 트레일 끄트머리에는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직했다.




이런 풍경 속에서 느리게 느리게 '안단테 삶'을 살면, 50년만 살아도 500년을 살고 있는 듯 시간은 느리게 느리게 흐를 것 아닌가.




우리가 겪은 <150일간의 빠따고니아 투어>는 시간이 거의 멈추어 선 듯 했다.




발 밑에는 노란 요정들...걷고 또 걷기를 반복한 결과 목적지가 눈 앞에 다가온 것. 먼지길을 피해 푹신푹신한 부엽토가 깔린 풀밭을 선택했다.




여행이란, 정말 인생의 작은 축소판 같다.




우리를 부대끼게 만든 먼지길 끄트머리에 이런 쉼터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앗...깔라파떼(
Calafate Berry)...!)
 







우리는 7년 전, 빠따고니아 투어를 통해서 한 식물을 만났다. 그 식물 이름은 '깔라파떼(Calafate Berry)'...오래 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오들의 전설에 따르면, 깔라파떼 열매를 따 먹으면 다시 그곳을 돌아오게 된다는 것. 우리가 먼지길 트레일을 통해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깔라파떼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참 신기한 일 아닌가.

우리가 일부러 깔라파떼 전설에 맞추어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선 건 아니지만, 우리는 어느덧 전설의 깔라파떼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깔라파떼의 노란 꽃을 보자마자 까마중 열매 크기만한 달콤한 맛이 금방 되살아났다. 열매 몇 개만 씹으면 이빨은 물론 입안이 온통 새까맣게 물드는...그 까마득한 추억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이다. 먼지길 트레일은 참 희한하고 짜릿한 여행으로 안내해 주고 있었다. 이런 맛에 길을 떠나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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