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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나와 우리덜

남명 조식 상소문에 견주어 본 네거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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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 상소문에 견주어 본 네거티브
-안철수검인계약서 퍼뜨린 'CBS'와 언론의 불법행위 -



한가위를 앞 두고 누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일까.

Daum view


추석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 처럼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 한가위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티비를 열어보니 귀성객들이 넘쳐나고 있고 고속도로는 정체를 거듭하고 있다. 줄잡아 3천만명의 대이동이 추석 연휴기간 동안 이루어지며 잠시 떨어져 살던 가족들의 상봉이 이어질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 등 최첨단 통신수단 때문에 예전 같이 가족의 안부가 특별히 궁금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통신 수단이 발달해도 목소리만 듣는 것 보다 손이라도 잡아보고 얼굴을 봐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그래서 온가족들이 한 지붕아래 모이게 되면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한편 세상의 관심사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 때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이슈가 대선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 장차 5년 동안 우리나라는 물론 민족의 명운을 갈라놓을 여야 대선후보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것 같다.

비록 종교나 정치에 관한 주장에 대해서는 가족 사이를 멀리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최소한 한마디 정도는 자기 견해를 밝힐 것 같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따라서 본 포스트에서는 벼슬을 마다하고 오히려 '처사(處士)'의 삶을 사신 남명 조식(南冥 曺植) 선생의 일화를 통해 오늘날 정치판의 폐해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포스트에 등장하는 자료사진은 얼마전 다녀온 남명 조식 선생의 고향(합천) 풍경이며 선생은 이곳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낸 곳이다.



  
글쓴이가 일행들과 함께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뇌룡정이 위치한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를 방문할 당시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뇌룡정 주변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으며 대추나무에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던 것이다. 가을비에 젖은 뇌룡정(雷龍亭)은 물론 집의문(集義門)은 누런 가을 들녘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풍광을 연출하고 있었다. 선생은 이곳에서 의(義)를 모아 임진왜란에 대처한 것일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남명 조식(이하 '남명'이라한다)의 제자 50명이 의병장으로 분연이 일어났던 것도, 평소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한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라 전해진다. 언행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 남명 선생이었다. 1501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난 남명 은 조선 처사의 상징이었다. 처사란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은둔하면서 학문에 정진하는 이를 일컫는다. 요즘 처럼 시도 때도 없이 호시탐탐 벼슬을 넘보는 학자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남명은 누구보다도 학문을 강조하고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으나, 남명은 책에서만 길을 찾은 평범한 선비가 아니었다. 그는 늘 몸에 방울을 달고 칼을 차고 다녔는 데, '성성자'라고 불린 방울을 차고 다닌 이유는 걸을 때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해진다. 매 시각 자신을 채찍질하는 게 방울소리였던 것이다. 또 '경의검'이라고 불린 칼을 품고 다녔는 데 그 이유는 사욕이 일어나면 단칼에 베어버리기 위해서였다. 치열한 자기 수양과 실천으로 일관했던 남명은 조선 최고의 학자이자 처사로 우뚝 서게 된다. 

 



글쓴이는 남명의 유적지를 다녀 오면서 여행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누구든지 경난 합천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면 남명의 유명한 일화 등을 챙겨가면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될 것이다 때문이다. 그러나 추석을 며칠 앞두고 CBS가 [단독]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도한 안철수 다운계약서 논란 때문에 남명의 귀한 자료를 정치 관련 카테고리에 남기게 됐다. 남명의 꾸짖음이 이 시대의 정치판에 청량제가 될 거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이들 한테는 '소 귀에 경 읽기' 정도일 것이나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택해야 할 때 최소한의 기준은 될 것으로 판단 됐다. 그게 하필이면 한 며칠 논란 가운데 있었던 '안철수 다운계약서' 때문이었다. 안 후보는 CBS가 [단독]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도한 다운계약서 의혹에 대해 기자회견을 통해 사실로 인정하고 "보다 더 엄중한 기준으로 살겠다"며 그의 지지자들 내지 국민들께 사과를 했다. 반안철수측에 있던 누구인가로부터 안 후보가 네거티브 공격을 당한 것이다.

일반에 알려진 안 후보의 이미지는 '털어도 먼지 한 톨 안 나올 것'으로 보였지만 누군가 그를 흠집내기 위해 작심하고 겨우 찾아낸 먼지(?)가 다운계약서였던 것이다. 안 후보의 다운계약서는 당시 일반에 널리 통용되던 것으로 큰 문제가 될 것도 없었지만, 안 후보는 그게 법적인 책임이 있다면 그것 까지 감당하겠다고 고개숙여 사과했다. 글쓴이는 안 후보의 이런 솔직한 면 때문에 그가 더 좋아지기 시작했으며 그에 대한 포스트를 끄적이게 될 정도였다. 


 


안 후보는 대선에 출마를 결심하기 전 까지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고 야권의 문재인 후보와 함께 과묵하고 실천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으며 묵묵히 실천하는 분들이어서 여간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가 CBS 보도를 신호탄으로 다운계약서 뿐만 아니라 군대 문제 심지어 논문표절 시비 까지 박근혜 후보 켐프로부터 집중적인 네거티브 공격을 받게된 것이다.

그러나 CBS는 단독 보도한 다운계약서 때문에 곤욕을 치를지도 모르겠다. CBS 등 언론들이 유출한 <검인계약서 사본>이 오히려 불법 논란에 빠지며 박근혜 후보 등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검인계약서 취득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 때문인데, 검인계약서는 본인만 열람할 수 있고 열람을 하려면 본인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안 후보 측은 이 검인계약서가 새누리당 의원을 통해 해당 구청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을 추적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략난감해 할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안 후보측은 일체 네거티브 공격에 상대조차 하지않았다. 그가 대선출마선언을 한 자리에서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맨 먼저 선거과정에서 네거티브나 마타도어 같은, 낡은 정치판의 구태의연한 음모와 술수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대인배를 향기를 느끼는 한편 남명의 '처사적 삶'이 퍼뜩 떠오른 것이다. 언급한 바 처사적 삶이란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는 것이므로 정치판에 잘 어울리지 않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안 후보가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대선출마선언(문)을 살펴보면, 음모와 술수가 횡횡하는 정치판의 개혁을 위해 스스로 네거티브나 마타도어 등을 행하는 순간 그가 평생을 쌓아온 명예와 업적 모두를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처사적 삶을 닮은 듯 여겨지는 것이다. 그게 언행일치의 삶이자, 만약 안 후보가 남명의 문하생이었더라면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모습인 것이다. 벼슬길에 올라 권력을 등에 업고 천박한 행동으로 이웃을 불편부당하게 만드는 일은 일찌감치 멀리하는 것이다. 

남명의 처사적 삶이 소문을 타고 온 나라에 알려지고 조정에 까지 소문이 닿자, 조정에서는 그에게  단성현감을 제안하게 된다. 아마도 요즘 학자들이라면 '이게 웬 떡인가' 싶어 한 걸음에 달려가거나 권력에 줄을 대지 못해 안달을 부릴 것이다. 그러나 남명은 달랐다. 남명은 사직 상소문을 올려 오히려 문정왕후를 '과부'로 명종을 '고아'로 표현하면서 타락한 권력을 질타한 것이다. 아울러 남명은 이론만 앞세우고 현실을 외면하는 학자들도 통렬하게 비판하게 된다. 정치 도리를 논한 남명의 상소문 무진봉사(戊辰封事)을 잘 살펴보시면, 요즘 정치판의 모습이 어떠한 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며, 불의에 침묵하고 있는 이른바 '오피니언리더'들의 행실이 어떠한 지 잘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다.




 무진봉사(戊辰封事)  

경상도 진주에 사는 백성 조식(曺植)은 진실로 두려운 마음으로 삼가 절하고 머리 조아리며 주상전하께 아룁니다.  보잘것없는 신은 더욱 노쇠하고 병이 깊어 입으로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부르는 임금님의 명이 거듭 내려와도 곧바로 달려갈 수가 없고,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임금을 향한 생각은 간절해도 길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임금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겠기에 감히 속마음을 다 쏟아 임금님께 아룁니다.  

주상전하께서는 상등 가는 지혜를 타고나셨고 또 정치를 잘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이것은 진실로 백성과 국가의 복입니다. 정치를 하는 방법은 다른 데서 구할 것 없고, 다만 임금이 착한 것을 밝히고 몸을 정성스럽게 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른바 착한 것을 밝힌다는 것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말함이요, 몸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몸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의 본성 안에 온갖 이치가 다 갖추어져 있사오니 인의예지가 곧 그 주체입니다. 온갖 착한 것이 여기로부터 나오게 되니 마음이란 곧 이치가 모여 있는 주체인 것입니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입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것은 장차 쓰기 위해서이고, 몸을 닦는 것은 장차 도를 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치를 궁구하는 방법은 글을 읽어 이치를 밝히고 사물에 응함에 있어 그 당연한 길을 구하는 데 있습니다. 몸을 닦는 방법은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안으로 마음을 간직하여 홀로 있을 때를 삼가면 큰 덕을 이룰 것이고 밖으로 살펴서 힘써 행하면 왕도정치가 될 것입니다.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고 마음을 간직하고 살피는 큰공은 반드시 경(敬)으로써 주를 삼아야 합니다. 이른바 경이란 가지런히 하고 엄숙히 하여 마음이 깨어 흐릿하지 않는 상태로서 마음을 주재하고 온갖 일에 응하는 것입니다. 경으로써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동을 반듯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자가 말한 "자기를 닦는데 경으로써 한다"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경을 주로 하지 않으면 천하의 이치를 궁구할 수 없습니다. 이치를 궁구하지 않으면 사물의 변화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마치 부부 사이에서 다스리는 실마리가 싹터서 가정과 국가, 나아가 천하를 다스리는 데로 확장되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이치도 단지 착하고 악함을 구분하여 내 몸을 정성스럽게 만드는데 있을 따름입니다.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워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는 것이 또 그 공부하는 차례입니다. 인간의 일은 내버려두고서 하늘의 이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입에 발린 이치일 뿐입니다. 자신에게서 반성해보지 않고 들어 아는 것이 많은 것은 귀 언저리의 학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늘의 꽃이 어지러이 떨어진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에는 몸을 닦는 이치가 전혀 없습니다.  

전하께서 과연 능히 경으로써 자신을 닦아 하늘의 덕에 통달하고 왕도정치를 행하여 반드시 지극히 착한 경지에 머무를 수 있다면, 착한 것을 밝히고 몸을 닦는 일이 아울러 이루어져 사물과 자신에게 있어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 바탕에서 정치와 교화를 행한다면 마치 바람에 풀이 쓸려 넘어지듯 구름이 몰려가듯 효과가 바로 나타날 것입니다. 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하면 아랫사람 가운데는 그보다 더 열성적인 사람이 있게 되는 법입니다.  




왕의 학문은 보통 사람의 학문과 다른 점이 있고, 실행함에 있어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구경 가운데 주역은 때에 따라 옳게 행하는 뜻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책입니다. 지금 정사는 임금님의 정신이 나타나지 않고 은혜로 봐주는 것이 많습니다. 명령은 정상적으로 나오는 것은 없고 모두 어긋나게 나오고, 기강이 서지 않은지 몇 대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위엄으로 떨쳐 일으키지 않으면 갈래갈래 풀어 흐트러진 형세를 수습할 수 없습니다. 큰비가 내리듯 적셔주지 않으면 7년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풀을 소생시킬 수 없습니다. 반드시 훌륭한 정승을 얻어 상하가 한 마음으로 협동하여 한 배를 탄 사람들처럼 된 뒤에 라야 이 어지럽고 다급한 현실을 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등용하는 일은 임금님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임금님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임금님 자신이 수양되어 있지 않으면 임금님에게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길 수 없습니다. 눈이 없으면 누가 착하고 누가 나쁜지 알 수가 없어 사람을 등용하고 버리는 일을 잘못하게 됩니다. 인재를 임금이 알아서 쓰지 못한다면, 임금은 누구와 함께 정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옛날 나라의 형편을 잘 파악하는 사람은 그 나라의 무력이 강한가 약한가를 보지 않고 그 나라가 인재를 잘 쓰는가 못 쓰는가를 보았습니다. 천학 매우 어지러우냐 잘 다스려지느냐는 다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다른 곳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즉 임금이 몸을 닦는 것은 정치가 나오는 근본이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정치를 하는 근본입니다. 또 몸을 닦는 것은 인재를 등용하는 근본입니다. 온갖 훌륭한 말이, 자기 몸을 닦고 인재를 등용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잘못되면 군자다운 사람이 초야에 있게 되고 소인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게 됩니다.  

옛날부터 권세 있는 신하가 나라를 마음대로 하거나 외척이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일은 간혹 있었고 여인이나 내시가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일도 간혹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서리(胥吏)가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일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정치가 대부에게서 나와도 안 되는데 하물며 아전에게서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당당한 큰 제후의 나라에서 200년 동안 지속해 온 왕업을 많은 공경대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서 아전들에게 넘겨준단 말입니까? 이런 일은 너무도 부끄러워 소의 귀에도 들리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군민(軍民)에 관한 여러 가지 정치와 나라의 기무(機務)가 모두 아전들의 손에서 나옵니다. 세금으로 바치는 베나 곡식도 우수리를 더 얹지 않으면 통하지 않습니다. 대궐로는 재물이 모여들지 몰라도 팔도에서는 민심이 흩어질 대로 흩어져 열에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각 고을을 아전들 각자가 자기들끼리 할당하여 마치 자기 사유물인 양 문서로 작성하여 자손들에게 물려주기까지 합니다.

각 지방에서 바치던 특산물을 일절 바치지 못하게 하여 지금까지 특산물을 바쳐왔던 사람들은 온 가족이 가산을 팔아 아전들에게 뇌물을 바치는데 100배 정도로 많이 바치지 않으면 아전들이 받지를 않습니다. 한번은 그렇게 바칠 수 있지만 계속 그렇게 할 수 없어 도망가는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어쩌다가 여러 왕조를 거쳐 지속되어온 고을과 백성들이 바친 특산물은 날다람쥐 같은 아전들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는지요? 전하가 다스리는 한 나라의 재산이 도리어 아전들의 방납하는 물건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비록 옛날에 나라를 가로챈 왕망이나 동탁같은 간신들도 이런 짓을 한 적이 없고, 망한 나라도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아전들이 이런 짓을 하고서도 만족하지 않으니 이들은 나아가 임금님의 내탕고 마저도 훔칠 것입니다. 나라에 비축해둔 것이 조금도 없다면 그 나라는 나라가 아닙니다. 임금 바로 아래에 도적이 가득 차 있고 나라는 텅텅 빈 껍데기만 끌어안고 있습니다. 온 조정의 관리들이 목욕재개하고서 멋대로 날뛰는 이런 아전들을 쳐 없애야 합니다. 혹 힘이 부족하다면 사방에 호소해서 왕을 위해서 군사를 동원해야 합니다. 편안히 먹고 자고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어떤 좀도둑이 있다면 잡아죽이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만, 아전들이 도적이 되어 각 관청의 아전들끼리 서로 짜고서 나라의 심장부를 차지하여 나라의 혈맥을 해치고 있으니 나라를 망친 뒤에 라야 그칠 것입니다. 그런데도 나라의 법을 맡은 관리들은 따져 묻거나 심문하지도 않습니다. 혹 어떤 관리가 규찰하려고 하면 아전들의 농간에 의해 견책을 받거나 파면되고 마니 뭇 관리들은 팔짱을 끼고서 녹만 받아먹고 아전들의 비위나 맞추며 지낼 뿐입니다.  




아전들이 믿는 데가 없다면 어찌 이렇게 기탄 없이 멋대로 날뛸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을 두고 초나라 왕이 말한, "총애 받는 도둑이 있어 제거할 수 없다"는 격입니다. 약은 토끼가 도망갈 굴을 세 개나 준비하듯이 냇가의 조개가 껍질 속에 몸을 감추듯, 아전들이 남을 해치고 온갖 일을 꾸며대고 있는데도 나라에서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전들과 한통속이 되어 뒤를 봐주고 있는 관리들은 과연 어떤 사람인지요? 전하께서 벌컥 노하셔서 기강을 떨쳐 재상들을 불러모아 그 원인을 따져 묻고, 임금님의 뜻으로 결단해서 나쁜 무리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백성들의 뜻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언관(言官)들이 처벌해야 한다고 간쟁(諫諍)한 뒤에야 마지못해서 처벌한다면 누가 착한지 누가 악한지 누가 옳은지 누가 그른지를 임금님이 파악하지 못하여 결국 임금의 도리를 잃게 됩니다. 임금이 임금의 도리를 잃고서도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이 밝은 덕을 밝히면 사물을 보는 눈이 거울처럼 밝아지게 되어 비추지 않는 물건이 없습니다. 임금이 그렇게 된 뒤에 덕과 위엄을 가하면 백성들에게 바람에 풀과 나무가 쓸려 넘어지듯 그 영향이 미칩니다. 임금이 바르게 다스리면 백성들은 임금의 명령을 열심히 받들기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때가 되면 어찌 간사한 사람이 한 사람인들 용납될 수 있겠습니까?  




정치를 어지럽히는 높은 벼슬아치에게는 정해진 형벌이 있습니다. 윤원형 같은 권세 있는 간신도 옳게 처벌했는데 하물며 여우나 쥐새끼 같은 이런 아전들이야 형틀에 그 피를 묻힐 것도 없습니다. 한 차례 뇌성과 비바람이 몰아치듯 한 번 임금님의 위엄을 펴시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입니다. 임금이 위에서 몸을 닦으면 아래에서는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벼슬하는 사람 가운데 훌륭한 재상 감이나 부지런히 일하는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간신들은 자기들의 뜻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제거하면서도 간사한 아전들이 나라를 좀먹고 있는 것은 용납하고 있으니, 이들은 자기 일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깊은 산골에서 쓸쓸하게 살며 아래위로 나라의 형세를 살펴보고 탄식하다가 눈물을 흘린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신은 전하와 군신의 관계를 맺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임금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탄식하다가 눈물을 스스로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관계는 얕으면서 깊은 관계의 말을 하는 것은 실로 신에게 죄가 있다 할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건대, 이 몸이 이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으며 살고 있고, 여러 대를 이 땅에 사는 백성인 데다가 외람 되게도 3대에 걸쳐서 임금님이 벼슬하러 나오라고 부른 징사(徵士)가 되었습니다. 주상전하께서 부르시는데 어찌 한마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옛날 주나라의 어떤 홀어미는 베를 짜다가 베틀에 씨줄이 떨어진 것은 걱정하지 않고 나랏일을 걱정했다고 합니다.  

신이 전날에 상소할 때 바쳤던 '구급' 두 글자에 대해서 전하께서 불 속에서 사람을 끄집어내듯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듯 급히 서두르신다는 소문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전하께서는 다만 "늙은 선비가 강직한 체하려고 해보는 소리일 뿐이니 생각을 움직여볼 것도 없다"라고 생각하고 계신 듯합니다. 하물며 제가 아뢴 임금의 덕에 관한 말이 옛 사람들이 이미 아뢴 말의 궤도를 벗어나지 않음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그러나 궤도를 경유하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는 법입니다. 임금의 덕을 밝히지 않고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마치 배도 없이 바다를 건너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배도 없이 바다를 건너려고 하면 물에 빠져 죽을 뿐입니다.  




지금 나라의 사정은 신이 전날 상소하던 때보다 훨씬 더 급박합니다. 전하께서 만약 신의 말을 버리지 않고 너그럽게 수용하신다면 신은 전하의 용상 아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꼭 신의 늙고 추한 모습을 본 뒤에라야 신을 썼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 들으니, 임금을 섬기는 사람들도 형편을 살펴본 뒤에 벼슬하러 들어간다고 하는데, 전하는 어떤 임금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전하께서 만약 신이 한 말을 좋아하지 않으시면서 한갓 신을 만나려고만 하신다면 헛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의 사람 알아보는 눈이 밝은지 어두운지에 따라 앞날의 정치에 득실을 예측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임금님께서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삼가 상소하는 바입니다. 

... <끝>




남명의 상소문 무진봉사(戊辰封事)를 다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오늘날 한국의 정치판이 어떤 지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며, 무엇이 문제인 지 또 정치판에 어떤 처방을 해야 나라와 민족이 행복하고 번영된 삶을 살 수 있는 지 깊이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00여 년 전 조선의 모습을 보면 오늘날 한국 정치판의 모습을 그대로 박재해 둔 듯 하다. 나라가 온통 간신배들로 도배된 모습이 남명이 상소문을 올릴 때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명이 벼슬길에 올랐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되겠나. 아마도 간신배들의 모함에 따라 천수를 다 누리지 못하고 즉시 죽음을 맞이할 지도 모를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 남명의 목숨을 건 상소문이 어찌 빛을 발하지 않겠나.

남명은 
명종과 선조에게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제안받았으나 한번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처자의 삶을 고집하며 제자를 기르는 데 힘썼다. 1572년 1월에 경상도 감영(監營)에서 남명에게 병이 있다고 임금에게 아뢰니, 임금은 특별히 전의(典醫)를 파견하였지만, 전의가 도착하기 전에 남명은 세상을 떠났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경의(敬義)의 중요함을 제자들에게 이야기했고, 경의에 관계된 옛 사람들의 중요한 말을 외웠다. 2월 8일에 몸채에서 자세를 단정히 한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의 부음 소식이 전해지자 선조는 예관을 보내 치제하였다. 그의 나이 만 72세였다. 선조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여 조회를 파하고, 바로 예장을 명하고 부의를 내렸다. 바로 증직으로 통정대부 사간원대사간에 추증되었다. 짦게 마무리해야 겠다.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을 며칠 앞 두고 CBS에서 [단독]으로 안철수 후보의 다운계약서(검인계약서 사본)을 보도했다. 곧 이어 새누리당에서 안철수 후보의 흠집내기 네거티브 공세가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지지율 폭락에 위기의식을 느낀 박근혜 후보 측이 저지른 네거티브 공세라는 게 '안 봐도 비됴'일 정도이며, 안 후보의 군대생활을 귀족생활 운운 하는 것 부터 상대할 가치 조차 느끼지 못할 저급한 정치공세에 불과 한 것이다. 이들이 지난 4년 반 동안 저질러온 실정 이상의 패악질을 감안하면 대통령 후보직 조차 내보내면 안 될 정도로 총체적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었다.

이런 사정 등을 감안하면 방송과 신문사 등 언론들은 이들의 부정부패를 견제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오히려 부정부패로 코를 찌를 듯한 여당 후보 박근혜의 검증은 마다한 채 ,연일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의 먼지 터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그들 스스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는 일을 마다하고 권력에 편승하고 스스로 권력이 되어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일을 기독교언론인 CBS(노컷뉴스)가 앞장서서 나팔수 역할을 함에 따라,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아야 할 한가위가 온통 다운계약서와 곽노현 교육감 이야기로 꽃(?) 피우게 될까. 

 
금년은 세 번의 태풍으로 농사를 망친 분들이 적지않아 시름이 깊은 데다, 가라앉은 경제사정으로 마음이 무거워 그나마 어디 기댈 곳이라도 찾아야 될 것이다. 그곳이 희망을 주는 정치판이면 좋겠지만 거짓되고 망령된 언행 등으로 좌절과 절망만 안겨서야 되겠나. CBS 뿐만 아니라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지 못하고 권력의 나팔수를 자청하는 한, 이명박 정부의 5년 보다 더 끔찍한 미래가 우리 앞을 가로막을 지도 모른다. 백성과 원님도 없는 데 나팔수만 남아 무엇을 하겠나. 언론이 앞장서서 네거티브를 선동질 하지말기 바란다. 국민들이 편히 쉴 명절만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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