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동안 계획을 세운 빠따고니아 여행은 막상 공항에 들어서자 마자 설레임이 불안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불안감의 실체는 다름이 아니었다. 우리가 계획하고 있었던 목적지 빠따고니아에서 맛 본 깔라파테 때문이었다. 까마중 열매 크기만한 깔라파테는 인디오의 전설이 서린 신비한 열매였다. 빠따고니아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 열매를 따 먹게 되면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다소 황당한 전설이었다. 누구나 이 전설을 듣게되면 일부러라도 따 먹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다. 전설을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마치 바이블에서 말하고 있는 선악과와 비슷한 유혹이 깃든 게 깔라파테 열매였다.
그래서 우리는 7년 전 그 열매 앞에서 시험적 시식을 한 바 있다. 다시금 이 아름다운 땅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과 함께, 아니면 말고와 같은 생각으로 그 열매를 따 먹어봤다. 열매는 달짝지근했고 덜 익은 열매는 새콤만 맛이 이빨과 혀 사이를 오갔다. 참 묘한 맛이었다. 그런데 이 열매를 따 먹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고가 필요하다.
가지마다 빼곡히 박힌 가시를 피해 따 먹어야 함으로 떨기나무 처럼 작은 이 나무가 지천에 널려있다고 해도 조류나 동물들이 쉽게 따 먹지 못할 정도다. 우리가 따 먹어본 깔라파테는 가시 투성이가 문제가 아니라, 보라빛 과즙이 이빨과 입술을 새까맣게 물들여 흉칙한 모습을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새콤달콤한 맛으로 우리를 유혹한다고 할지라도 양치질을 해야 할 정도이니 쉽게 손이가지 않았다.
7년 전 약속 지킨 '전설의 땅' 파타고니아 -행운의 업그레이드로 맛 본 환상적인 기내식-
인천공항에 들어서면서 7년 전 빠따고니아에서 듣게 된 깔라파테의 전설 때문에 약간은 두려울 정도였다. 우리가 계획한 여행이지만 그 계획속에는 깔라파테의 전설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탐승구를 통해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전설이 현실로 바뀌게 될 텐데,...그게 깔라파테의 전설 때문이란 말인가. 우리는 탑승구를 향해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탑승구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대한항공(KAL, KOREAN AIR LINE-포스트에 사용한 이미지에 쓰여진 글씨는 KOREAN이 KOREA로 잘 못 쓰여진 것임. 양해 바람.ㅜㅜ) 직원이 우리에게 기분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선생님, 업그레이드 되셨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 "
탑승구 앞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던 직원은 당초 우리가 소지한 티켓을 다른 티켓으로 바꾸어 주며 즐거운 여행이 되길 빌어준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든 건 당연했다. 탑승구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티켓을 다시 들여다 보니 티켓에 쓰여진 좌석 번호가 비행기 앞 좌석이었다.(헉!...비지니스 석?...캬오~~~^^*) 말로만 듣던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받아보다니.(이게 웬일이니! ㅋ) 한순간에 전설 속의 깔라파테에 대한 생각은 머리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여보...어떻게 된거지?...업그레이드가 모야?...(궁금궁금)"
"음...우리 티켓이 이코노미석이자나...그게 비지니스석으로 바뀌었다는 거지...ㅋ "
빠따고니아 투어는 이렇게 시작됐다. 깔라파테 때문에 생긴 까닭모를 불안감은 금새 환한 표정으로 바뀌며 비지니스석으로 이동했다. 우리는 바뀐 티켙을 다시금 들여다 보며 아이들 처럼 좋아했다.(행운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그런 한편 비지니스석으로 이동하면서 괜히 점잖게 굴었다. 비지니스석에 앉아 볼 이유가 없었던 평범한 시민이 이코노미석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서비스를 받게 되니 괜히 우쭐해진 것이라고나 할까.
가장 한국적인 냄새가 폴폴 날리는 기내식
승무원들이 무릎을 꿇고 밀착 시중을 들고 있으니 마치 황제가 된 기분이 들 정도였다. 항공사들이 너도 나도 업그레이드된 서비스 경쟁을 펼치는 이유를 알만 했다. 아내는 연신 업그레이드 이유를 물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게 다 마일리지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장장 이틀 동안 이코노미석에서 차렷자세로 장시간 비행을 해야 하는 데 우리는 운 좋게도 행운의 업그레이드 대상이 되어 생전 타 볼까 말까한 비지니스석에서 저녁을 먹게된 것이다. 비행기는 이미 인천공항을 이륙한지 1시간이 더 지나고 있었다.
기분좋은 출발을 더욱더 기분좋게 만든 건 환상적인 기내식이었다. 두 다리를 쭉~뻗고 드러누워도 되는 넓직한 좌석에 앉아 편안하게 비행을 즐기는 것도 좋았지만, 비지니스석에서 맛 본 비빔밥 맛은 두고 두고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매우 정갈해 보이는 그룻에 담아낸 비빔밥 재료를 보는 순간, 가장 한국적인 냄새가 폴폴 날리는 기내식으로 생각됐다.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내에서 마치 육상의 어느 근사한 한식집에서 먹는 저녁식사를 연상케 하다니, 이게 다 특정 항공사를 줄기차게 이용한 덕분인가.
우리는 서로 다른 메뉴를 주문하고 스테이크와 비빔밥을 나눠 먹게 됐다. 비행기를 타면 스테이크는 흔해 빠진 메뉴였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에피타이저와 디저트가 예쁜 승무원으로 부터 깍듯이 제공되고 있었다. 또 하늘 위에서 밥을 비벼먹는다는 거...그것도 우리가 늘 먹던 친근한 나물이 잘게 갈아놓은 쇠고기와 함께 등장하리라곤 꿈엔들 생각했을까.이코노미석에서 포장지에 싸인 음식을 먹던 것과 너무도 다른 풍경이 비지니스석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 올 때(귀국)도 업그레이드 됐으면 좋겠다. ^^ "
이코노미석 승객들은 어떤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저녁식사를 끝낸 비지니스석 풍경은 너무도 조용했다. 비행기가 대략 동지나해 근처 중국 상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탄 대한항공의 점보비행기는 우리를 논스톱으로 호주 시드니로 데려다 줄 텐데,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를 경유하여 칠레의 산티아고로 입국할 예정이었다. 2차 남미 투어는 1차 때 태평양 북쪽을 돌아간 것과 달리 태평양의 남쪽을 돌아 남미땅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투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선택한 여행루트였다. 개인당 비용은 287만원/왕복이 소요됐는데 비지니스석에 앉아 떠나는 여행과 기내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비지니스석에서 장차 우리에게 다가올 운명적인 소식을 접하게 됐다. 그의 이름은 그 유명한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였는데, 우리가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하루 전(10월 6일)에 56세를 일기로 사망한 소식이었다. 기내에서 제공되는 신문에 스티브 잡스의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실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업그레이드된 행운과 함께 절묘한 타이밍이 스티브 잡스로 부터 제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발칙하게도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아 간 악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