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우리가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이틀 전 스티브잡스의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 하는 애도의 기사가 철철 넘쳐났다. 전세계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었으며, 사람들로 부터 모바일 황제라는 평을 듣고 있던 세기의 스티브잡스는 췌장암으로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가 죽기 전 초췌한 모습으로 세상에 떠돌아 다니던 사진 한 장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애플의 전설 일부가 하늘로 사라지고 만 사건이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서기 전 이틀전에 발생한 것이다.
잡스의 죽음은 무엇보다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을 통해서 이른바 '잡스빠'들을 매우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세계 최초로 그래픽 인터페인스인 리사와 매킨토시를 만든 개척자이며, 픽사를 통해서 3D애니메이션을 애니메이션 업계의 주류로 올려놓은 애니메이션의 마법사가 어느날 하늘 위에서 우리 앞에 나타나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Good bye, Steve Jobs..."
스티브잡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던 곳은 대한항공의 비지니스석에 제공된 모 신문사를 통해서 였다. 이틀 전 부터 이런 기사가 세상을 온통 도배하고 있었고 그 내용들은 거의 찬사 일색이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스티브잡스는 세상의 모든 신들 보다 더 위대하여 교주 한 명이 운명을 달리한 듯한 표정이었다. 좋은 표현으로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광신도들이 세상에 빼곡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광신도(?)들의 애도사가 어느정도인지 살펴볼까.
마이크로 소프트 창시자 빌게이츠는 잡스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미치도록 크나큰 영광이었다." 단지 잡스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사실만으로 미칠듯한 영광이었다니 잡스의 교주적 천재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주카버그는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것이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잡스가 세상을 바꾼 혁명적인 일을 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잡스의 일대기를 짧게 소개한 신문을 들여다 보며, 참 아까운 인재 한 사람이 우리곁을 떠나간 것에 대해 슬퍼하거나 애도하기는 커녕,미소짓고 있는 스티브잡스의 얼굴을 보며 그가 '악마의 화신' 같다는 발칙한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런 표현을 잡스빠들이 접하면 악플을 도배할지도 모르겠다. 잡스가 악마라고?...(그렇다니깐...!) 유난히도 장난을 좋아했던 잡스가 생전에 나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내 생각에 동감을 표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광신적 잡스빠들이 이 말을 듣게 되면 열 꽤나 날 법 하다.
기내에서 바라본 황홀한 일출
그러나 무언가 한 곳에 푹 빠져있으면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보게 되는' 우를 범하듯, 사람들이 애플이나 잡스에 열광하는 동안 못 본 게 있는데, 잡스와 애플 아니 오늘날 IT산업은 사람들이 지닌 매우 중요한 감각 대부분을 앗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오감 중에 다수를 애플이나 잡스 내지 오늘날 컴퓨터나 인터넷 산업이 빼앗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아이팟이나 아이패드 등을 들고 다니며 기계속의 어플에 열광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계를 교주로 여기게 되며,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을 영웅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내에서 만난 잡스의 기사는 주로 그런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조물주가 이 세상을 만들고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고유권한이 애플과 잡스가 개발해낸 기계들 뿐이라는 말인가. 오늘날 글쓴이 또한 그들 천재들이 만든 기계를 사용하고, 인류가 만든 최고의 물건인 비행기를 타고 지구반대편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정말 열광해야 할 곳은 기계가 아니라 대자연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잡스의 업적은 사람들의 시선을 대자연으로 부터 기계로 옮긴 반조물주적 사고(?)를 지녔던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플과 잡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준 대가로 비용을 꼬박꼬박 물게 만들고 있는데, 그런 비용을 기꺼이 들여가며 잡스빠가 되는 게 그렇게도 행복한 일인가. 그래서 한 천재가 교묘하게도 인간들의 오감 일부를 가로챈 결과를 놓고 그를 '악마의 화신' 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그 화신이 하필이면 아날로그에 열광하고 있는 한 여행자와 함께 기내에서 만나다니. 우리는 둘 다 하늘 위에서 만났지만 잡스는 신문의 한 페이지 속에서, 또 글쓴이는 하늘 위를 나르고 있는 비행기 속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이런 것일까.
잡스가 추구한 재미있는 세상은 디지털 기계를 만드는 일이었지만, 그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온 나는 대자연을 신 처럼 여기며 열광하는 한 사람이었다. 잡스는 그리하여 아날로그 광신도(?)인 나로 하여금 졸지에 악마의 화신으로 평가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루어 낸 잡스빠들의 업적에 대해 한마디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잘 가시게나 스티브잡스..."
대략 12시간의 비행이 이어지자 구름 위를 나르는 비행기 창 너머로 대자연의 위대한 서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나고 있었다. 태초로 부터 이어진 장엄한 일출이 구름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하늘 위에서 만난 일출은 참 묘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괜히 구름바다로 뛰어들고 싶다는 불나방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다. 잡스가 사라진 하늘은 어디며 우리가 장차 가야할 하늘은 또 어디메뇨...
기내에서 만난 황홀한 일출은 간밤에 만난 스티브잡스의 업적 모두를 삼키고, 대자연 앞에서 보잘것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다. 비록 우리 인간들이 만든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종단하고 있지만, 곧 저 태양이 만든 위대한 자연이 우리 앞에서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하니 설레임으로 가득한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곧 우리를 시드니에 내려놓고 남태평양을 횡단하는 여정으로 인도할 것이다.
그 황홀한 구름 바다위에서 인류 최첨단 산업을 일으킨 모바일 황제를 떠나보내다니. 나는 잡스를 악마의 화신으로 부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했다. 또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 인터넷 산업은 얼마나 초라할 것이며, 지구반대편에서 끄적이고 있는 여행기는 도무 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불과 사흘전 스티브잡스와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