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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취득한 '시민권' 맨정신에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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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취득한 '시민권' 맨정신에 불가능



여행지에서 시민권 취득이 가능할까?


특정 국가를 여행하는 여행자에게 시민권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말인가. 결론 부터 미리 말하자면 반드시 필요가 있었다. 이 포스트에서 말하는 '시민권'을 좀 더 정확히 해 두면 장기 '체류 비자(TEMPORARIA TITULAR- 포스트에서는 '시민권'이라고 한다.)'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틀전 우리는 칠레 정부로 부터 10개월 짜리 장기 체류권을 부여받았다. 산티아고에서 두 달간 머문 이유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장기 체류를 할 수 있는 비자가 필요했던 것이며, 이 비자는 경우에 따라서 현지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되며 영주권을 취득하는데 기초 자료가 된다.


 한국에서 투자이민을 떠나지 않는 한 현지에서는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쳐 시민권을 가지게 되고, 10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10개월 짜리 시민권을 재신청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칠레 정부에 일정 금액의 세금을 납부한 실적이 있을 경우, 곧 바로 영주권을 신청하거나 부여받게 되는 게 '뗌뽀라리아 띠뚤라르(TEMPORARIA TITULAR)'인 것이다. 



산티아고에서 약 두 달을 머물면서 우리가 한 이런 조치는 보통의 여행자들에게는 불필요한 지 모르겠다. 보통 여행비자(3개월 짜리)로 입국하여 특정 국가에서 3개월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머물려면, 무시로 안데스를 너머 아르헨티나 등지로 입국하고 다시 3개월의 시간이 경과하면 다른 나라로 재입국을 시도하는 등의 매우 불편한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남미투어에 나선 여행자들에게 그런 과정은 전혀 필요치 않다. 길게는 몇 개월, 짧게는 한 달 여 기간 제한된 시간 동안 투어에 나서므로, 그런 불편을 겪을 시간적 이유 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남미의 특정 국가에서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당한 목적이 따라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그 절차가 반드시 필요했다. 최소한 칠레에서 3개월 이상의 장기간 체류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이유나 목적을 끄적여 두면, 우리 같은 여행자들이나 이민자 등 남미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정보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칠레 시민권 취득을 위한 사람들


우선 우리와 같은 목적이나 이유를 가진 외국인들이 북적대는 경찰청 내외부 모습을 살펴볼까. 이틀전 아침 일찍, 우리는 산티아고의 경찰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접수하고 시민권을 취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궁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건물 바깥의 모습은 주로 이런 풍경이다. 외국인들이 칠레의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 얼마나 북적거리던지 앉을 자리 조차 없었다. 그래서 바깥에서 서성거리며 경찰청 주변 풍경을 몇 컷 남겼다. 대략 오전 10시 경의 풍경이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이런 모습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이채롭다. 상상밖이었다. 오른쪽 상단에 있는 대기자 수를 보니 1시간 이상은 족히 걸리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모두 칠레가 좋았거나 산티아고 내지 칠레의 특정 도시나 시골이 마음에 들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모두 시민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거나 시민권의 기간을 갱신하는 사람들이었다. 참고로 우측 상단의 대기자 명단을 살펴보면 이렇다.



왼쪽 상단 왼편의 디지털로 표시되고 있는 숫자는 대기자 수를 가르키고, (한 사람의 업무가 끝나고 나면) 오른편의 숫자는 업무처리 박스를 표시해 둔 것이다. 624번 번호표를 가진 외국인은 16번 박스로 오라(가라)는 표시인 것이다. 우리가 지닌 번호표는 680번대였으므로 꽤 오랜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이곳에서 주로 하는 일은 미리 관할 구청에서 접수된 서류를 확인하여 사진을 촬영한 후 관련 서류를 발급하는 일이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두 달을 기다려온 시민권 취득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는 게 낫겠다.


경찰청에서는 요 카메라로 증명사진을 촬영한다.


현지에서 취득한 시민권 여행에 '미치지' 않으면 불가능?


이 포스트의 제목은 '여행지에서 취득한 시민권 맨정신에 불가능'라고 끄적여 두었다. 이게 다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아닌가. 우리가 한 일은 시쳇말로 미친짓이나 다름없었다. 보통 사람들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중대한 일을 여행중에 결정했으니 그게 제정신인가. 하지만 그 누구가 우리의 결정에 대해 미친짓 내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칠레 시민권 취득 결정을 하게된 건 약 5개월 전 쯤이다. 그곳은 푸이고스(Fuigos)들의 로망이었던 전설의 땅 빠따고니아(PAGONIA-현지 발음-)의 중심지였다. 글쓴이의 기준으로 볼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였던 '꼬자이께(Coyhayque)'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다음 '뿌에르또 뜨랑낄로(Puerto Tranquilo)'로 이동하여, 다시 '꼬끄랑(Cochran)'으로 진출한 뒤 빠따고니아 끄트머리 까지 여행할 즈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여정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시간이었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두 여행자를 만나게 됐다. 


경찰청에서 촬영한 증명사진이 부착된 체류비자(2003년 2월 18일 까지) 증서


빠따고니아 투어에 장장 2년을 준비한 프랑스 아줌마


그들은 여성이었으며 우리 또래의 나이 지긋한 프랑스 아줌마들이었다. 한 아줌마는 키가 크고 몸집도 컷는데 또 한 여성은 몸집이 작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우리는 뜨랑낄로에서 꼬끄랑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만났는데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 시간이 남아 대화를 나누던 중 충격적인 내용을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그 충격은 곧바로 아내에게 전달됐다.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먼 곳 까지 여행하게 됐는가 하는 질문에 귀여운 아줌마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파타고니아 투어를 위해 지난 2년 동안 준비를 했습니다. 평생 한 번 가 볼까 말까 한 파타고니아 투어를 보다 알차게 하기 위해 스페인의 바로셀로나로 갔었지요. 그곳에서 2년 동안 스페인어를 습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친구를 가리키며) 이 아줌마와 함께 파타고니아 투어에 나선 것이지요."


산티아고의 이민국에는 아침 부터 장기체류권을 신청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글쓴이는 약간은 어눌하면서 멸치볶음 냄새(?)가 가득한 프랑스 아줌마의 유창한 스페인어를 들으며 즈윽이 놀라고 있었다. 아내가 물었다. 


"...뭐래?..." 


"응...이 아줌마는 빠따고니아 투어만을 위해 스페인에서 2년 간 '까스떼야노(Castellano, 현재 마드리드 부근 옛 까스띠야국의 언어인 까스떼야노가 스페인어의 원형임)'를 배웠다는군."


확실하게 페인팅 된 아내의 손가락, 지문 채취를 위한 마지막 단계


아내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한 건 물론이었다. 여태껏 아내가 답답해 한 숙제를 프랑스 아줌마가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은 글쓴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내는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동시 통역을 기다려야 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 슬픔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프랑스 아줌마는 아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미리 준비해 빠따고니아 투어에 나섰던 것이다. 그 시간이 장장 2년이 걸렸다고 하므로, 그녀들이 떠날 목적지와 이유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프랑스 아줌마들과 대화가 끝난 후 우리는 그녀들의 준비과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칠레 시민권을 취득하게 된 이유가 명확해 보이시는가.) 아내는 즉시 제안을 했다.


"...나...여기서 딱 3개월만 스페인어 배울꼬얌..."



아내는 빠따고니아의 전설 속에 푹 빠져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산티아고에 도착하자 마자 현지인으로 부터 스페인어를 사사받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학이란 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리가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 동안 우리는 거의 날마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을 산책하는 등 산티아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안데스에서 못다한 한(?)을 풀고 있었다. 


산타아고에서 시작된 뜻 밖의 해외생활


그 시간이 대략 2개월 정도인데 아내의 스페인어 실력은 조금씩 조금씩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다시 이름모를 안데스 계곡이나 라틴아메리카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기 위해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때 까지 뭘 하고 있나?...) 블로거가 하루라도 블로깅을 하지 않으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힌다고 했던가. 약 두 달 전 부터 한국으로 산티아고 소식을 전한 건 그때쯤이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칠레의 이민국에서 장기 체류중인 여행자에게 재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이곳에서는 무슨 일을 할 계획이십니까?"


"(헉...이런 질문을?...ㅜ) 인터넷의 블로그에 글을 쓸 계획입니다."


"그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라고 하죠?"


"아...그걸 꼬레아에서는 '블로거' 또는 '블로거 기자'라고 부릅니다."


"인터넷 뻬리오디스따(기자, Periodista)시군요."


여권 속에 든 이 서류는 곧 주민등록증 처럼 생긴 시민권과 바꾸게 된다.


전혀 예상밖의 질문이 브이자(V)를 펼쳐보이고 있는 이민국 직원으로 부터 나왔다. 그는 이 질문을 끝으로 스스로 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었고, 곧이어 열손가락 끝마디 마다 검은색 페인팅을 한 직후 지문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절차와 다름없었다. 칠레 정부로 부터 시민권을 받는 절차는 대략 이렇게 마무리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당분간은 산티아고에 머물면서 빠따고니아의 여행기(다큐)를 쓰면서 지내게 됐다. 그 기간은 이틀전 부터 장장 10개월이나 더 남았고 산티아고에서 해외생활이 시작된 것이므로, 다음뷰 카테고리 두 개는 더 빌려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를 전설 속에 가두어 둔 빠따고니아가 프랑스 아줌마로 하여금 우리를 붙들고 놔 주지 않았다고나 할까. 아내가 여행에 푹 빠져 신청한 시민권은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보너스 까지 챙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요즘 상황을 모 회사의 광고카피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


우리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운명적인 결정을 칠레의 빠따고니아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 결정은 이틀전 부터 산티아고에서 시작됐다. <산티아고에서 블로거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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