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고추가루가 검역대상인 이유
7년만에 다시 밟아보는 전설의 땅은
어떤 통과의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 때 전설의 새로 불리우는 천둥새 콘도르는 보기 힘들어졌지만, 하늘에서 내려다 본 산티아고 공항은 쇳덩어리로 만든 비행기들이 전설의 새를 대신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지구반대편을 향해 2박 3일간의 비행을 마친 비행기들은 산티아고 분지에 사뿐히 착륙했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가 공항청사 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창가에 비친 산티아고 분지의 풍경은 봄 색깔이 완연했다.10월 초순의 모습이었다.
비행기가 천천히 선회 비행을 하며 로스안데스 위를 스치듯 지나칠 때 까지, 나는 란칠레의 창가에서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7년만에 다시찾은 남미땅의 모습은 우리를 마냥 설레게 하기도 했지만 왠지모를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게 이 땅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때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였을까. 비행기의 엔진소리를 멈추고 승객들이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리는 곧 다가올 입국심사가 은근히 신경쓰였다.
계획대로라면 우리 일정은 이 땅에서 대략 10개월 정도로 짜여진 긴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므로, 우리가 좋아하던 음식물 얼마간을 짐 속에 챙겨 둔 것이다. 그 중에는 마른멸치를 분해하여(머리와 내장 제거) 진공포장을 해 두었다. 그리고 소금(죽염)과 고추가루를 같은 방법으로 포장한 것 등이었다. 그게 말썽을 피우며 통과의례를 겪게 만들 줄 누가알았던가.
7년 전 약속 지킨 '전설의 땅' 파타고니아
-고추가루 때문에 치른 통과의례-
해외여행, 특히 입국심사가 매우 까다로운 칠레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주목해 주시기 바란다. 잘 알고 계신듯 모르는 부분을 한번 더 챙겨두면 불필요한 통과의례 같은 건 겪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산티아고 공항의 검역시스템은 한국의 인천공항과 달리 수작업에 의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므로 입국자들의 짜증을 유발할 정도다. 이런 경우는 육로로 안데스를 넘나들때도 같은 사정이라는 점 유의해야 한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냐면 어떤 때는 아예 칠레 입국이 싫어질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세계최고 검역 시스템을 가진 우리 인천공항을 모델로 삼아 검역절차를 다시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동식물 검역은 이런 순서로 동시에 진행된다.
맨 먼저 검역 탐지견이 여행자의 짐을 샅샅히 뒤지며 불법반입품을 찾아다닌다. 둘째, 여행객의 짐은 X-ray검색대을 거치며 내용물을 확인한다. 셋째, 입국시 자진신고 방법이 있다. 넷째, 무작위 개장검사가 있다. 대개 이런 절차는 한번에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무작위 개장검사에 노출되면 곤욕을 치루게 된다.
여행객의 짐 속에 수상한 물품이 있다는 게 검역절차상에 노출되면 관련 담당자가 짐 전부를 개봉해 줄 것을 요구하게 된다. 하필이면 우리는 이 절차를 겪게 되었는데 맨 먼저 검역 탐지견이 코를 킁킁거린 결과 무작위 개장검사에 딱 걸리고 말았다. 그게 산티아고 공항의 통과의례였던 셈인데, 문제가 된 물품은 하필이면 고추가루였다. 우리는 출구가 빤히 들여다 보이는 산티아고 공항 검색대 주변에서 투덜 거리고 있었다.
"세뇨라...뭐가 문제죠?...(뽀르께!?)..."
우리는 짐짓 문제가 없는 듯 투덜거리며 짐을 하나 둘씩 검색대 옆에 마련된 간이 탁자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탐지견이 꼬리를 흔들며 우리 곁을 오갔고 검역담당자인 한 아줌마는 우리가 개봉해 둔 물품들 속에서 진공포장된 고추가루를 흔들어 보이며 '이게 문제의 물품'이라고 말했다. 고추도 아닌 고추가루가 수상한 품목으로 지목되어 무작위 개장검사 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검역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투덜거리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마구마구 따졌다.(이럴 필요가 있더라.)
그랬더니 검색대 곁에 있던 한 세뇰이 다가와 도와주겠노라며 접근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까스떼야노의 빠른 발음을 놓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검색원이 지적해 둔 고추가루가 문제가 없음을 강하게 어필한 게 서서히 통하고 있었다. 나는 고추가루가 문제가 된다는 말을 '무조건 모르는 일'이다며 일축했다.여행자의 우격다짐은 통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고추가루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고추가루 속에 들어있는 고추씨(앗)가 문제라나 뭐라나.
그림은 본문의 내용과 관계없는 산티아고 베가 중앙시장의 홍초(엄청 매운 고추) 모습
참고로 우리나라 인천공항을 기준으로동식물 검역대상 품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식물신고 대상 검역품은 모든 식물류(과실 채소,종자,화훼류,묘목,한약재,호두 등)에 해당되고, 식물수입 금지품목은 과실(망고,파파야 등)과 열매채소의 생과실,호두,풋콩류,벼종자,고구마,감자 등이다.또 사과나무,포도나무 묘목 및 분재류와 살아있는 병원균과 해충(애완용 곤충 포함),흙 또는 흙이 묻어있는 식물류 등인데, 이들 수입금지품목은 즉각 폐기처분 되거나 반송된다. 아울러 우리가 좋아하는 육포나 소시지도 진공포장 관계없이 압수되거나 폐기 처분된다는 점 참고 하시기 바란다. (물론 운 좋게도 그냥 통과될 때도 있다. ^^)
이러한 절차는 모두 여행국가의 사정에 따라 경중은 있을 망정 대부분 자국이 규정하고 있는 검역대상이나 절차에 따라 검역절차가 이루어지므로, 여행지(국가)의 검역 정도 등을 잘 알아둘 필요도 있다. 특히 천혜의 자연 파타고니아를 잉태한 칠레 입국에는 통과의례 처럼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게 매우 까다로운 검역절차 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울(인천)에서 업그레이드 된 비지니스 좌석에 앉아 기분좋게 출발한 여행은 산티아고 공항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며 이방인들의 정신줄을 다잡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산티아고 베야비스따에 위치한 분위기 있는 한 호스텔 내부 모습
뿐만 아니었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고추가루를 사수하며 겨우 빠져나온 우리에게 또다른 통과의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청사 앞에서 숙소로 정해둔 산티아고 베야비스따의 한 호스텔로 이동하는 요금을 불필요하게 많이(우리돈으로 대략 2만 5천원 정도의 비용을 4만원에 지불) 지불한 일이다. 아직은 낮선 땅의 신고식 치고는 꽤나 까다로운 통과의례였다. 7년 전의 약속을 지킨 전설의 땅 파타고니아로 입성하는 일은 이렇게 끝을 맺고, 우리는 산티아고의 베야비스따의 아담한 한 호스텔에 2박 3일간의 비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뉘게 됐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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