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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도시를 접수한 초대형 휴대폰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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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접수한 초대형 휴대폰의 정체  


사진 한 장 속에 우뚝 솟아있는 빌딩을 보는 순간,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요.


150일 간의 파타고니아 투어를 마치고 산티아고에 머문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돼 갑니다. 꽤 긴시간을 산티아고에서 보내고 있는데요. 산티아고에 머물고 있는 동안 아침나절은 가까운 산 끄리스토발 언덕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산책길의 정상인 산 끄리스초발 언덕을 유턴해 돌아오는 동안 발 아래로 펼쳐진 산티아고의 시내 모습을 늘 바라보게 되는데요. 그 때 마다 도시와 자연의 환경이 인간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다른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울을 떠나 파타고니아로 들어설 때 그곳의 자연에 흠뻑 취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요. 그 마음의 준비란  다름이 아니라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한번쯤 상상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요. 제가 파타고니아 투어를 통해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못했다는 거 아닙니까. 처음에는 다소 아쉬운 느낌과 함께 적잖은 불안한 느낌도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여행지의 때 묻지 않은 자연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여행이 참 맛이 그런 게 아니겠나 싶었습니다.


혹, 아날로그 여행에 디지털 문화가 접목되면 기쁨이 배가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150일 간의 파타고니아 투어가 가르쳐 준 교훈은, 그런 장비들와 멀어지면 질수록 자연은 문명을 거부한(?) 대가를 주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자연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최소한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부터 멀어지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제가 여행을 통해 자연인이 될 수 있었던 시간은 겨우 150일 정도 밖에 안 됐습니다. 서울을 출발하여 산티아고에 도착한 이후, 파타고니아를 유턴하여 산티아고에 다시 입성한 즉시 인터넷 앞에 앉아 이곳의 풍물을 끄적거리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현대인들이 이들 문명의 이기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단적으로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소통구조는 때 묻지않은 자연 속에서 묻혀지내는 것 보다, 도시 속에서 북적대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더 잘 어울렸던 것이죠.


그러던 어느날 이었습니다. 맨 처음 등장한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어라, 건물이 초대형 구식 휴대폰을 닮았네'라고 생각하며 사진 한 장을 촬영해 두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 건물을 촬영해 둔 사진이 여럿있다는 게 확인돼 '참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휴대폰을 모델로 삼은 듯한 이 건물 모습은, 산티아고 시내 곳곳의 풍물을 담는 동안 '외장하드'를 차곡차곡 점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현대인들이 휴대폰으로 부터 멀어질 수 없다는 걸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나 할까요. 


산티아고의 동쪽과 남쪽 서쪽(북쪽에서는 산 끄리스토발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음) 어느곳으로 이동해도 이 건물이 눈에 띄었던 것이며, 산 끄리스토발 언덕 위에서 24시간 쏘아대는 휴대폰의 전파 처럼, 이 건물은 산티아고를 굽어보며 시민들과 도시를 점령하고 있었던 것 처럼 보였습니다. 발품을 팔며 어디를 가도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그 장면들 속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도시를 접수한 초대형 휴대폰 속으로



이 곳은 산 끄리스토발 언덕 입구에 있는 '쥬라기 동물원' 가는 길에서 바라 본 풍경입니다.



이 장면은 쥬라기 동물원 옆으로 나 있는 등산로에서 바라본 풍경인데요. 이 쪽에서는 어디로 가나 산티아고 시내를 굽어보면 나타나는 게 초대형 휴대폰을 닮은 건물입니다. 건물 외벽의 유리창이 마치 휴대폰의 액정화면 처럼 느껴집니다. 고도를 높여 산 끄리스토발 정상 전망대에서 이 건물을 바라볼까요.



잘 정돈된 산티아고 시내 남쪽으로 우뚝 솟아있는 이 건물 외벽을 보면 정말 휴대폰 처럼 생겼습니다.



이 건물 앞을 가로 질러 강이 흐르고 있는데요. 그 강 이름은 산티아고 관련 포스트에서 수차 언급한 '리오 마포초(Rio Mapocho)'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작은 냇물이나 큰 강이나 도랑이나 물이 흐르는 어느곳이나, 심지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에 까지 '강(Rio)'이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있습니다. 건천은 이름하여 '리오 세꼬(Rio Ceco)'로 부르는 것이죠. 그래서 연중 안데스의 빙하가 황톳물로 변해 흐르고 있는 마포초 강을 보면 '이게 강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산티아고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이 강은, 강바닥과 벽을 모두 콘크리트로 만들어 마치 거대한 하수구 처럼 보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서울의 청계천과 다른점이 있다면, 이 강의 발원지는 '로스 안데스'라는 것 입니다. 청계천이 발원지가 상실된 것과 매우 다른 것이지요.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생김새만 보면 청계천이 보다 잘 꾸며진 것 처럼 보여지기도 합니다. 



마포초 강 바로 곁에 문제의(?) 건물이 자리잡고 있는데요. 저녁 나절 이 건물 곁에 있는 숲으로 가 보기 위해 발품을 판 적이 있습니다. 마포초 강에 있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면 을씨년스러운 강의 모습과 건물이 잘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우러지며 묘한 실루엣을 만들고 있습니다.(흠...휴대폰 액정이 빛을 발하는 듯...^^)



앞의 풍경은 이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그리고 이 다리를 건너 초대형 휴대폰 처럼 생긴 건물 앞으로 다가가면, 휴대폰(스마트폰) 속에 내장된 '어플' 같은 게 나타나는데요.



어플을 들여다 보니 피카소(Pablo Ruiz Picasso)의 작품이 이곳 전시관에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이랬지요.



주지하다시피 피카소는 93세에 생을 마감할 때 까지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예술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창작에 동원된(?) 여인들의 수가 7명이며, 그의 작품들은 여성들이 바뀔 때 마다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지곤 했지요. 사랑의 열정이 피카소 작품의 창작 근원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피카소 전이 열리는 이 건물 앞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그 공원을 저녁나절에 돌아보면 피카소의 열정을 닮은 듯한 숱한 커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사랑의 열병 때문인지 저녁나절 이 공원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운 열정이 그들의 시선을 가리고 있었으면, 공원 곳곳의 풍경들은 피카소 그림 속의 성적 욕망을 다룬 관능적인 작품을  쏙 빼 닮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자 '에로틱 어플'의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휴대폰 벨이 울리면 이런 설정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드르륵(진동소리)...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 ..."



산티아고에 두 달 가까이 머무는 동안 발품을 판 곳곳에서, 휴대폰을 쏙 빼 닮은 건물이 눈 앞에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산타루시아 언덕 아래에서 바라본 저녁나절의 풍경입니다. (흠...베터리 까지 잘 부착된 휴대폰이군요. ^^)


이 장면은 아침나절 산타루시아 언덕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고요. 역광으로 잡힌 휴대폰 측면의 모습이 저녁나절에 본 풍경과 비교되지요.



이 장면은 '메르카도 센트랄' 시장에서 우리 교민들이 생업에 열중하고 있는 '빠뜨로나또'로 걸어가면서 촬영된 풍경인데요. 이곳에 서면 마포초 강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눈에 쏙 들어옵니다. 재미있는 건 요. 마포초 강 아래로 도시 고속도로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티아고 공항으로 가려면 마포초 강 밑에 건설된 긴 터널을 주로 이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한국에는 마음을 설레게 하는 봄소식들이 연일 인터넷으로 알려지고 있는 데, 이곳 칠레의 산티아고에서는 가을이 무르익어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산티아고의 가을은 이렇듯 플라타너스 잎이 물들어 가는 풍경 외, 현란한 단풍은 도시의 매연 때무쉽게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도시 한가운데 우뚝 솟아나 있는 휴대폰 닮은 빌딩 너머 안데스에 구름을 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띕니다. 곧 겨울이 다가오고 우기철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그나마 이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가을은 한국의 봄과 전혀 다른 느낌을 여행자들에게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가을의 전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같은 거 있죠.



 대략 두 달에 걸쳐 촬영된 그림들을 펼쳐 놓고 보니 일부러 특정 건물을 찾아다닌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인데요. 마치 현대인들이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부터 멀어질 수 없는 운명을 닮은 듯, 이 도시를 접수한 게 휴대폰 같습니다. 



아마도...아마도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형벌있다면 그건 인터넷이나 휴대폰이 없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제가 머물고 있는 이곳의 인터넷 사정은 여간 느려터진 게 아니라서, 현대인의 형벌 비슷한 수준의 고통을 받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파타고니아 투어를 할 동안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 도시 속의 한 빌딩을 통해서 서서히 마각을 드러내는 것 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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