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데이트 명소'로 바뀐 산타루시아 망루
포스팅 들어 가면서...
흠...키스를 해 보신 경험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고요?...혹시 첫 키스 장소가 어디신지 아세요. 아마도 그 장소를 기억하고 계시다면 그나마 로맨틱한 분들이 아닌가 싶고요. 그 때 그 느낌 까지 다 기억하고 계시다면...(참 별난 분이신가요. ㅎ) 키스 경험이 없으신 분들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언제인가 한번쯤 만들어 보고 싶을 겁니다. 맨 처음 장면 등장한 그림을 보시면 그런 기분이 드실 거 같은데요. 두 남녀가 정신줄을 놓고 키스에 열중하고 있는 이곳은 칠레의 산티아고에 위치한 '산타루시아 언덕(Santa Lucia Hill)'이라는 곳입니다.
이곳은 산티아고 뿐만 아니라 스페인 군대가 남미를 침탈한 이후 매우 상징적인 요새이기도 합니다. 그 꼭대기에서 키스에 열중하며 추억을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산타루시아 요새는 약 450년 전 산티아고를 건설한 페드로 데 발디비아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요. 발디비아가 산티아고에 도시 건설을 결정했을 때, 훗날 잉카 부흥 운동을 펼치게 되는 '만코 잉카'는 이렇게 경고한 적 있습니다.
"그 지역에 사는 야만인들은 매우 호전적이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남의 땅을 침탈한 자들이 야만인인지 아니면 억울하게 땅과 재산을 빼앗긴 자들이 야만인인지, 누가 야만인인지 잘 모르겠지만 만코잉카는 산티아고 주변에 살던 마푸체 인디오 등을 야만인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역사는 참 재밌습니다. 전쟁에 패하면 야만인이 되고 승리하면 선진국민이 되는 것일까요. 만코 잉카는 이미 수십 년 앞서 피쿤체 부족 등과 전쟁을 치뤄 본 국가의 수장이므로 그의 조언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발디비아는 그 조언(조심하라)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한편 잔머리를 굴리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보고 말았습니다.
발디비아가 잔머리를 굴린 건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무너뜨릴 때 써 먹던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실행에 옮겼습니다. 마포초 강변 등지에서 벌어진 지긋지긋한 약탈과 원주민 인디오 피쿤체의 전투를 끝내는 방법은 추장을 인질로 잡는 것이었습니다. 스페인 군대가 잉카의 마지막 왕 '아따왈빠'를 살해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든 사건이 실행되었던 것이지요. 발디비아는 피쿤체 부족과 식량 조달을 약속하는 협상에 들어갔고, 스페인 측에서는 7명의 '카치퀘'를 초대해 대접하고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협상이 타결된 직후 계략에 따라 발디비아는 7명의 카치퀘를 인질로 붙잡아 버렸습니다. 명분은 피쿤체 인디오 등으로 부터 약탈(?) 당한 식량의 안전한 공급과 주변 원주민 인디오 부족의 평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배은망덕한 처사 때문에 원주민들은 분노는 극에 달했습니다.1541년 9월 9일, 발디비아는 아콩구와 근처의 원주민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군사 40명을 이끌고 산티아고를 떠났는데요. 이때 원주민들의 총공격이 감행되었습니다. 발디비아가 자리를 비운지 이틀 후였습니다.
1541년 9월 11일(일요일) 새벽,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산티아고를 뒤흔들었습니다. 원주민 '미치말롱코'의 2만 군사들이 산티아고로 진격해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죠. 스페인 군은 개전 초기에 이들 원주민들의 수를 8천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군은 발디비아의 원정으로 단 55명의 군사들만이 산티아고를 지키고 있었으므로, 스페인 기병들이 즉각 출격해 이들을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기병들의 훌륭한 칼 솜씨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의 시세에 눌러 점점 동쪽으로 퇴각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미치말롱코의 군대에게 산티아고 앞을 흐르는 마포초 강(Rio Mapocho)을 넘겨주고 산티아고 도심으로 몰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물론 오늘날 산티아고가 건재한 것을 보면 이들 피쿤체 내지 마푸체 인디오들은 전쟁에서 패해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으며 약 90만명에 이르는 소수의 마푸체 인디오들이 떼무코 등지에 흩어져 산다고 했습니다.이 포스트에 등장하는 산타루시아 요새는 스페인 군에게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인지 대략 감이 잡힐 것입니다. 산타루시아 요새는 전술적 요새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산티아고를 지키는 중요한 방어진지이자 지휘본부 구실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언덕 위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마포초 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일 뿐만 아니라 '세로 산 끄리스토발'이 눈 앞에 잡힐듯이 가까운 곳입니다.
그런데 45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직후 오늘날 산타루시아 요새는 산티아고 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일 뿐만 아니라, 산티아고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한번쯤 꼭 들르게 되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그 명소 꼭대기에서 선남선녀들이 키스에 열중하며 또다른 전략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게 뭔지 물어보시면 곤란하고요.ㅎ) 그들은 이 요새 위에서 한 때 스페인 군의 발디비아나 마푸체 인디오 등이 겪었던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끝으로 챙겨간 전리품 대신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을 전리품으로 챙겨갔는데요. 이 포스트에서는 그 전리품 중 하나만 소개해 드리고 다음 편에 계속해서 산타루시아 언덕(요새)에서 엿 본 전리품 나머지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흠...채널 고정!! ㅎ)
#1. 산타루시아 요새로 가는 길
분지에 둘러싸인 칠레의 산티아고는 작은 산들이 곳곳에 있는데, 그 중에 '세로 산 끄리스토발'이나 '세로 산타루시아'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산이자 언덕이다. 그 언덕들은 오늘날 산티아고가 탄생하게 된 배경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두 언덕(수 천 미터급의 로스 안데스에 비해 너무 작다)은 안데스에서 발원한 마포초 강을 사이에 두고 봉긋 솟아있는데, 글쓴이가 위치한 산 끄리스토발 기슭에서 부터 산타루시아 언덕 까지 걸어가면 대략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1km 남짓한 가까운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포초 강을 건너게 되는데 그림의 앞으로 보이는 장면이 그 유명한 산타루시아 언덕이다.
산타루시아 언덕으로 가는 길에 뒤를 돌아다 보니 '세로 산 끄리스토발'이 너무 가깝게 보인다. 현재 위치를 가늠해 보기 위해 발품을 팔아 촬영한 아래 '발품대지도(?)'를 참조해 보면 재밌다. 아래 그림은 산 끄리스토발 정상에서 산타루시아를 내려다 보며 촬영한 그림이다.
이런 모습이다. 가을색이 완연한 숲 아래로 리오 마포초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그림 한가운데로 산타루시아 요새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 부터 그 요새로 들어가 볼 요량이다. 짠~
#2. 우리를 반겨준 엔젤 트럼팻
오늘날 산타루시아 요새는 공원화 되어있는데 큰 입구가 두군데 나 있다. 산타루시아는 두번 방문 했는데 저녁나절 방문할 때는 후문으로 아침 나절 방문시에는 정문으로 들어갔다. 대략 오후 9시면 문을 닫고 오전 9시가 되면 문을 연다.(요일 마다 조금은 차이가 난다.) 후문에 들어서자 마자 눈에 익은 꽃이 여행객을 반긴다.
한국에서 봐 왔던 엔젤 트럼펫이란 꽃이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화분에 심겨진 것을 주로 보다가 이곳에서 마주친 엔젤 트럼펫은 나무다. 이방인을 환영하는 뜻에서 심어둔 꽃일까. 잘 가꿔진 잔디 위에 드러누운 세뇨리따들이 여유롭다. 그러나 꼬레아노들은 조심하시지 바란다. 이곳에는 풍토병이 발병할 수 있다는 정보를 현지교민들로 부터 전해들었다. 쥐들과 동물들이 흘려놓은 배설물과 함께 강렬한 볓이 이들 병균들을 독하게 만든다고 한다. 물론 현지인들은 괜찮다고 한다. 산티아고에 오시는 분들은 함부로 잔디에 드러눕지 말기 바란다. 암튼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산타루시아 후문에 발을 들여놓으면 '기사의 성(Castillo Gidalgo)'이라고 명명된 성문 앞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는 장애우들이나 노약자들을 위해 아센소르(Acensor, 엘리베이터)를 따로 운영하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 곧장 가면 대통령 궁(La Moneda)가 나온다. 도시는 낡았지만 정리정돈이 잘 된 곳이다.
산타루시아 요새 후문으로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기사의 성을 마주치게 되는데,...
글쓴이의 경우 오래된 낡은 벽돌이 마음에 들었다.
기사의 성 주춧돌을 보는 순간, 야비한 방법으로 피쿤체 인디오들과 전투를 벌인 발칙한 발디비아아 대한 생각들은 일찌감치 사라졌다. 200년이 다 된 성주의 주춧둘에 새겨진 숫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주의 집 발코니를 수 놓고 있는 잘 정돈된 화분과 저녁노을이 기가막히게 잘 어울렸다.
이날은 글쓴이가 산티아고에 머물고 있는 동안 네 번째로 날씨가 맑은 날이었다. 멀리 로스 안데스가 깨끗하게 조망됐다. 아내가 말했다.
"...참...좋다."
평소 구름 한 점 없던 산티아고 하늘에 구름이 보였을 뿐만 아니라, 날씨마저도 쾌청했던 것이다.
산타루시아 요새 중턱에 올라 산 끄리스토발을 바라보니 손에 잡힐듯 가깝다. 저 산으로 거의 매일 산책에 나섰는데 왠지 저 산 보다 나지막한 산타루시아 언덕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미로 같은 길을 따라 산타루시아 요새 꼭대기로 올라가면서 발디비아에 대한 기분 나쁜 추억은 저만치 사라지고 있었다.
#3. 산타루시아에 오르다
약 450년 전 발디비아를 포함한 스페인 군은 저 꼭대기에서 망을 보면서 이 땅의 원주민들의 침략(?)을 막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 망루 꼭대기에는 선남선녀들이 줄을 이어 정복하고 있었다. 또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산타루시아 언덕 곳곳에는 진풍경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여보..저 거 좀 봐..."
이 땅에서 처음 보는 풍경도 아니었건만 카메라가 떨고 있네...ㅜ
닫힌 망루 꼭대기 근처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돌려보니 그곳에 산티아고를 건설한 생각에 잠긴듯 발디비아가 서 있었다.
450년 전 발디비아가 목숨을 걸고 산티아고에 산타루시아 요새를 지었을 당시에는, 마푸체 인디오 외 아베크족들이 이 요새를 점령할 것이라고는 상상 조차 못했을 것 아닌가. 글쓴이의 기억 속에서 잉카를 정복한 피사로나 산티아고를 건설한 발디비아는 꼼수를 즐겨쓰는 비겁한 장수들이었다.
#4. 산타루시아 망루 꼭대기에서 키스를
그러나...산타루시아 언덕 꼭대기로 발걸음을 옮겨놓는 순간,..
이 요새를 찾는 사람들을 기분좋게 만드는 시민들이 따로 있었다.
로스 안데스를 병풍 처럼 두른 산티아고의 하늘이 맑게 개인 저녁나절...
도시를 굽어보며 행복해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이 언덕에 올라 사랑을 고백하며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고백은 피사로나 발디비아의 꼼수와 전혀다른 고백이었는데...
그들은 서로가 정복 당하기를 학수고대 하는 사람들과 다름없었다.
산타루시아 언덕 위에 서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인지...
좁디 좁은 공간에 줄지어선 사람들은 저마다 작은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한 때, 이 망루에서 마포초 강이나 산 끄리스토발 산을 감시하던 그 자리에는 손 때와 낙서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푸체 인디오들 보다 용감하며 담대하고 발디비아 보다 더 뻔뻔스러운(?) 이 커플은 글쓴이의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흠...찍을 테면 찍어봐욤.)
샬~칵!!
한 사람이 겨우 지나칠 수 있는 요새 맨 꼭대기는 사람들의 손 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발디비아가 산티아고를 지키기 위해 만든 요새는 어느덧 선남선녀들의 전략적 데이트 명소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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