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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갤러리/도시락-都市樂

복이 절로 깃드는 법

청진사의 초파일 
-白佛 섬기는 청진사, 복이 절로 깃드는 법-

 


"운문선사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공안을 남겼는데,
 날마다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 위한 삶이 있습니다.
우리 몸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와 허공이라는 공(空)으로 되어있습니다.

지(地)는 인간의 오만, 수(水)는 분노, 화(火)는 탐욕, 풍(風)은 시기질투, 공(空)은 무지입니다 중생의 삶은 이 다섯 가지를 진짜로 알고 신나게 살고 있어요. 오만을 가져본들, 분노를 일으켜 본들 탐욕을 부려본들, 그것이 무엇에 쓰일 것인가를 알지 못해서 중생이 어리석게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좀 내려놓고 살면 행복한데 이러한 것을 끌어안고 살면 불행해집니다. 일일시호일이 되도록 살아야지, 일일시악일이 되도록 살아서는 안됩니다. 부처님 법은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어요. 중생 노릇하면서 복이 오라고 하니까 복이 오지 않는 것이지, 부처 노릇하면 복이 절로 옵니다."


어는 큰 스님은 <현대불교>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세지에서 "중생 노릇하면서 복이 오라고 하니까 복이 오지 않는 것이지, 부처 노릇하면 복이 절로 옵니다."라는 가르침을 전했다. 복이 깃드는 법을 설파하신 것이다. 스님의 메세지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은 너도 나도 복 받기를 원하고 있으나 실상은 복을 멀리하는 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속인이 속세를 떠나 출가를 해야된다는 말일까. 

 

아니었다. 생활 속에서 오만과 분노와 탐욕을 부리지 않는 것 만으로도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느 큰 스님이 전파한 가르침은 생활속 진리가 되어 청진사에 깃들었다. 청진사 현판의 글씨는 어느 큰 스님의 친필이었다. 지난 초파일, 어느 큰 스님의 흔적이 깃든 청진사로 가는 길에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아우야 밥 먹어러 와..."

김봉경 거사(봉경 형兄)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만난 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매일 먹는 밥이지만 형이 밥을 먹으러 오라는 청은 특별했다. 청진사의 백불白佛을 당신이 섬기시는 부처님이라는 걸 밥을 통해(?) 처음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형의 청을 잠시 잊고 있었지만 티비 앞에서 어미를 애타게 찾는 듯한 노래를 부르는 한 스님을 보자마자 얼마전 형의 청이 문득 생각난 것이다. 초파일 아침이었다.


인연의 고리는 참 곱고 질겼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내려 작은 마을버스에 몸을 담고 좁은 산기슭 길을 한 10분이나 오르락 내리락 했을까. 홍제천 옆에 자리잡은 청진사의 외형은 작은 교회당 만한 건물에 마당에는 초파일 등燈이 옹기종기 걸려있었다. 초파일 예불이 막 시작되었는지 스님의 염불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정오가 다 된 시간이었다.


불당의 열려진 문 틈으로 흠결 하나 없어 보이는 새하얀 백불을 보자 마자 카메라의 전원 스위치를 켰다. 백불을 모신 불당 안에는 합장을 한 보살님 등이 불켜진 등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올리고 있었다. 내 시선이 향한 불당안에는 형이 평소 언급하고 자랑(?)한 탱화와 백불이 평안한 모습으로 사부대중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형이 '아우야 밥 먹어러 와'라고 한 그곳은 이런 모습이었다.

 


일찌기 운문선사가 가르쳐 준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공안' 등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청진사의 온 가족이 지켜온 불심과 청진사 뜰에 활짝 핀 꽃들이 내게 전해준 포교의 뜻이 '밥 먹으러 오라'는 말이었을까. 밥을 먹기 위해(?) 청진사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 두어 분 밖에 없다고 알려진 희디 흰 백불과 귀한 탱화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며, 어느 큰 스님의 흔적이 깃든 현판의 푸르고 참다운 '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까마득히 잊고 살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날이면 날마다 복을 멀리 하는 '오만과 분노와 탐욕' 속에서 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 오만과 분노와 탐욕은 스스로 또는 이해를 같이 하는 집단이 만들어 낸 허상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정의의 이름으로 오만해 지며 진리의 이름으로 분노하고 공평을 가르치며 탐욕을 가로챈 것 등이 속인들의 삶이며 성인들이 기피하는 '일일시호일'이 아니었던가. 청진사의 법당에는 '지수화풍 사대와 허공이라는 공'의 짐을 내려놓고 있었다.   

 


초파일 청진사의 뒷뜰에는 철쭉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목단 꽃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 작은 잎새를 내민 이름모를 생명들

 


그리고 새 순을 내 놓고 비를 맞고 서 있는 두릅나무들을 보다가, 문득 나(我)를 내 주고 스스로 고통을 참아내며 치료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말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아팟을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좌절의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며 흐느끼며 살아왔을까. 입맛이나 영양가 만을 위해 누구인가 따 먹은 두릅나무 순이 있던 자리에는 투명한 액체가 눈물처럼 고이며 상처를 치료

 하고 있었다. 참 놀라운 모습이었다. 우린 그저 지나쳤을 뿐인데 상처가 아문 자리에는 두릅의 눈물이 고여있었던 것이다.


혹한의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생명

 


초파일 아침에 티비를 열어보니 그 속에는 사흘밤만 자고 나면 돌아오겠다던 어미가 산사에 버려둔 아들의 절규가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우고 있었다. 어미가 아들을 산사에 버렸을 때 그 아들이 복 받기를 원해서 한 일이었을까 마는, 그 아들은 결국 복 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귀한 사람이었고 그 귀한 인연을 도무지 잊지 못해 슬피 목 놓아 어미를 찾는 사모곡을 부르고 있었다. 그 아들의 눈에는 눈물이 말랐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울컥했다. 어쩌면 그의 어미는 복을 받지 못해도 좋으니 중생 노릇에 충실하며 아들과 평생을 살고 영원 까지 이어지는 복락을 누리기를 원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초파일 아침 하필이면 한 스님의 사모곡을 듣다가 다시 청진사 뒷뜰에서 두릅의 눈물과 마주친 것이다. 하필이면 비는 왜 내리시는지...

 


 하필이면...그 아픈 모습이 내 눈에 띄었을까.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가슴 깊숙히 숨겨둔 아픔이 눈물이 되어 초파일 날 청진사 뜨락을 적시고 있었던 게 빗방울이며 백불 속에 감추어진 자비의 손길이었을까. 형이 밥 먹어 오라고 한 한마디 때문에 걸음을 옮긴 청진사에는 세파에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뭉그러진 마음을 다스릴 귀한 말씀 한자락이 고이 등불에 매달려 있었다. 복이 절로 깃드는 법이었다.

 


아우야 밥 먹으러 와...라는 형의 한마디는 운문선사의 가르침이 몸에 배어 절로 우러난 복 받는 법이자 '지수화풍 사대와 허공이라는 공'으로 부터 벗어나는 귀한 청이었다. 그 귀한 일이 백불을 섬기는 청진사로 부터 발현되었으니 빚을 톡톡히 진 셈일까.


 어느 큰 스님이 친필로 남긴 '청진靑眞'이라는 불사가 지척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걸 까마득히 모르고 살았던 것도, 편견과 근시안이 만든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중생 노릇도 부처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 범생이 노릇을 뒤돌아 보게 해 준 지난 초파일. 내 가슴 속에 여전히 빛나고 있는 건 흠결 하나 없는 백불과 지극한 너그러움이 가득한 청진사의 탱화다.

 

 그리고 평생을 통해 잊지 못할 한 끼니의 밥. 그 밥은 육신의 허기를 달래는 평범한 끼니가 아니라 부처님이 내게 선물한 '부처님의 밥'이자 형이 아우에게 나누어 준 귀한 불법의 밥이었다. 홍은동 청진사 백불과 탱화는 그렇게 형으로 부터 내 가슴에 깊이 각인 됐다. 어메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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