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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

김인혜교수 논란 핵심 사실과 다른 정치적 음모일 뿐


Daum 블로거뉴스
 


김인혜 교수 파면하면 서울음대 달라질까
-김인혜교수 논란 핵심 사실과 다른 정치적 음모일 뿐-


오페라의 주인공이 몇명이면 적당할까...

1명은 너무 적은 것일까. 그렇다면 2명 아니 10명. 그것도 아니면 100명 정도...
좋아. 이런 오페라가 민주적이지 않다면
출연자 모두를 주인공으로 하면 더 감동적이지 않을까. 

서울음대 김인혜 교수 논란의 전말

최근 아무런 득도 실도 없는 한 예술가를 난도질하고 나선 수구보수 언론과 인터넷 누리꾼 등의 모습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그들은 소위 찌라시로 불리우는 언론사가 퍼뜨리고 있는 정체불명의 의혹에 대해 발끈하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의혹이란 사실 확인이 어려운 카더라 통신이었다. 다만, 카더라 통신은 우리사회에 오래 전 부터 만연되어 왔던 관행과 관습의 일종이어서 미확인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의혹을 언론 등에 퍼뜨린 대학 당국은 여론재판과 다름없는 징계절차를 통해 김인혜 교수를 신속하게 파면하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형평성 잃은 대학 당국 내지 언론과 인터넷 누리꾼 등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라는 나름의 평가를 내렸다. 일방적인 주장 사실과 익명의 투서 뒤에는 교육계 등에 뿌리 내린 고질적인 관행과 관습이 있었으므로 그 모든 문제를 참조한 결정이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론몰이식 마녀사냥에 동참한 결과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지않았는지 반성해 봐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위대한 탄생의 결선이 보여준 멘토와 멘티

다행인지 김 교수를 둘러싼 논란이 터닝포인트를 돌아설 즈음 '위대한 탄생'의 결선 장면을 티비를 통해 지켜 봤다. 위탄의 멘토 김태원의 멘티들의 결선장면이었다. 참 감동적인 장면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결선에 등장한 김태원의 멘티들은 백청강, 손진영, 양정모, 이태권으로 최종 4명이었다. 이들은 멘토스쿨에서 한달 여 기간 동안 집중적인 지도를 거쳐 4명의 참가자 중 2명만 최종 멘티로 남아 부활의 일원 내지 부활이 부활시킬 차세대 보컬들이었다. 그동안 짬짬이 위탄의 프로그램을 지켜보면서 적지않은 감동을 느꼈는데 이날 결선 장면에서는 숨막히는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도 참가자들 마음은 모두 최종결선에 남고 싶겠지만 2명을 뽑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앞에 서 있었다. 어쩌면 이들의 평생 꿈은 가수가 되는 길이었을 것이며 가수 외에는 생각해 본 적도 없을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위탄의 멘토들은 그들 앞에 놓인 운명에 대해 냉엄한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가수의 자질과 가수가 걸어가야 하는 길과 가수로써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교훈 등을 위탄의 선배들 입장에서 충분히 조언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최종 결선에서는 최소한 2명만이 가수로써의 길을 걸을 수 있고 탈락한 두사람은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야 했다. 김태원은 그런 그들에게 마지막 까지 위로의 포옹을 해 주며 고별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평생을 통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를 무대에 서서 탈락한 두사람은 차마 목이메어 고별무대의 노래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울컥했다. 아마도 이 장면을 바라본 시청자들이라면 최소한 울컥한 감정에서 참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있다라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오페라 '위대한 탄생 김태원편'은 그렇게 종결되고 있었다. 위탄의 김태원 멘토가 선택한 사람은 단 두 사람 뿐이었다.


위탄과 음대 교수방법의 차이는 뭘까

아마 위탄을 지켜보신 분들은 위 내용을 더 잘 아실 것이며 보다 더 큰 감동을 느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런데 위탄의 결선과 김인혜 교수 논란과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렇게 길게 끄적이고 있는지 갸우뚱해 할 사람이 있을 것 같다. 그 이유 등을 대략 언급하고 교육계에 만연한 부조리와 불합리 등이 김 교수 1인을 파면 한다고 해서 달라질 수 있는지 잠시 소고해 보며 글을 맺기로 한다. 위탄의 예제는 그래서 필요했다.

최근 인터넷 등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김인혜 교수의 논란 중심에는 교수방법에 있었다. 성악을 가르치는 교수와 제자간에 일어날 법한 개연성이 다분한 내용들이었다. 심지어 투서 내용이나 진정서 내용 등을 참조하면 전공자가 아니라도 오래전 부터 우리 귀에 익숙하게 들려왔던 내용들이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김 교수가 논란거리 가운데 있었던 폭행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는 말일까. 김 교수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학생의 인권이나 인격을 유린하거나 무시한다고 판단할 수 폭행이 주로 문제되는 장면이었다. 이런 문제는 서울대 커뮤니티에서 등장한 사실이기도 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이랬다.

"...또 음대의 교육 방식 역시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음대에서는 학생이 정해진 1명의 지도교수에게 4년간 집중 교육을 받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해당 지도교수가 가르치는 학생 수가 한정돼 있어 학생들이 지도교수에 대한 불만을 쉽게 표출할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음대의 한 학생은 “워낙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이에 음대 정태봉 학장은 “현행 방식과 달리 전담 지도교수 선택 시기를 1년 유보교수들의 성향이나 지도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체제로 변경할 계획이며 학생과 교수 양측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것”이라고 밝혔다..."
< http://www.snulife.com/?mid=snunews&document_srl=13920034&list_type=F >


위 내용을 살펴보면 음대 내부에서 괘 오랜동안 교수방법 등에 고민하고 있었던 흔적이 보인다. 단편적인 모습이지만 현재 서울 음대가 처해있는 현실을 보니 크게 세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학생이 정해진 1명의 지도교수에게 4년간 집중 교육을 받는 방식을 채택 . 해당 지도교수가 가르치는 학생 수가 한정 . 학생들이 지도교수에 대한 불만을 쉽게 표출할 수 없다 라고 되어있었다. 매우 구체적인 문제점이다. 이에 대해 음대 정태봉 학장은 나름의 대책을 내 놓았다. . 전담 지도교수 선택 시기를 1년 유보 . 교수들의 성향이나 지도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체제로 변경할 계획 .학생과 교수 양측의 의사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렇듯 학생과 학교 당국이 문제를 제기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 온 흔적이다. 참 바람직한 민주적인 절차로 보이는 듯 하기도 하다. 그러나 당연해 보이는 듯한 학생과 학교 내지 교수와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소통을 통해 토론을 하는 등의 방법은 보다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한 과정일 텐데 음대 당국이 내 놓은 대책을 보면 학생들의 주장에 떠 밀려 미봉책을 마련해 놓은 듯 하다. 문제의 핵심을 간과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우리가 말하는 음대의 특성이 전혀 무시된 파격적이고 개혁적이며 민주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음대 당국이 내 놓은 이런 대책이라면 학생을 지도하는 교수나 학생들 모두 만족할만한 결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인혜, 티켓 강매와 폭행 의혹에 대해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
 
그런데 학교 당국이나 지도교수나 학생들이 간과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가, 그들 스스로 만든 결정 전체를 바벨탑 처럼 허물고 있는 모순점이 발견 됐다. 그게 뭔가.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모순점은 김 교수를 배제한 채 역모를 꾸민것과 다름없는 투서질을 한 동료교수나 교수들의 달콤한 민주적 꼬드김(?) 등에 넘어간 학생들이 만들고 있었다. 하필이면 김 교수의 문제점을 적시한 투서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랬다.



위 자료는 사나흘 전 우먼센스 블로그에 게제된 김 교수 인터뷰 관련 내용이다. 주목할 부분은 티켓강매에 관련된 내용이다. 학교 당국과 동료교수나 학생 등이 얼마나 무지몽매한지 보여주는 부분인데 김 교수는 티켓강매 의혹에 대해 " 제 입으로 직접 말하는 것도 민망하지만 제가 서는 무대는 대부분 티켓이 잘 팔리는 음악회예요. 굳이 학생들을 동원해 표를 판매할 일이 없다는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기자의 질문에 짧게 답한 티켓관련 발언에는 학교 당국이나 동료교수와 학생 등이 제기한 티켓강매에 어떤 모순점이 발견되고 있었을까. 김 교수의 표현을 참조하면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음악회 대부분은 티켓이 안 팔리는 음악회며, 타 음악회는 학생들을 동원해 표를 판매(강매)하고 있었다는 관행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다. 김 교수 논란의 핵심이 보이는가.

음대생들이나 학부모 등이 염불(음악적 재능 연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졸업장)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일까. 음악회 관련 티켓과 관련한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 국공립대학교 내지 사립대학교의 예술계가 처해있는 실상이라는 사실 쯤 모르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 딸 등 예술계를 졸업하거나 재학중이라면 최소한 한번 쯤은 다 경험한 사실이거나 이웃이나 친지 등을 통해 들어봤을 이야기다.

따라서 전술한 음대 당국 내지 교수와 학생들이 도출한 결론에 심각한 모순점이 발견된다고 했는데 그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을 전혀 직시하지 못한 채, 그들 스스로 만든 파격적이며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절차 등을 통해 음대의 권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세계적 프리마돈나를 여론몰이로 내팽개친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이 최소한 최고 학부에서 4년간 민주적(?)으로 배운 성악 등 음악성은 일반인들이 쳐다봐 주지않을 정도며 그들 스스로 티켓을 팔러다니지 않으면, 그들의 공연을 봐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없는 매우 매우 열악한 환경을 지닌 곳이 대한민국의 클래식 시장이며 인프라가 아니었던가. 그러면 위대한 탄생의 결선 현장 모습 등을 다시 재조명 해 볼까.


우리나라 음대 권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음대 당국과 교수 그리고 제자들

요즘 인터넷과 안방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위탄은 특정 멘토를 중심으로 멘티들을 치열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하는 흥미진진한 프로그램이다. 이 오디션의 특징은 단지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범 세계적으로 참가자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동시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특정 맨토의 지도 아래 가수로서 성장 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꿈의 무대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위탄을 흥미롭게 지켜보신 분들이라면 다 아시는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이 특정 멘티의 노래실력을 보면 '참 잘 부른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노래가 끝난 후 멘토들의 지적을 보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수준 차이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성없이 어설프게 타인의 노래를 흉내 내거나 못된 버릇 등은 시청자들이 다 뜨끔할 정도로 혹평을 받게 된다. 또 어떤 멘티들이 부르는 노래는 여태껏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로 시청자들을 감동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멘토들의 입장에서는 다듬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은 원석에 불과했지 보석 자체는 아니었다. 위탄의 멘토들은 그런 점을 먼지 털듯 하나하나 지적하며 최종 결선에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사람들을 남겨 놓았고 멘토 김태원의 최종 결선에서는 가혹하게도 4명이 진출하여 2명만 살아남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은 앞으로도 꾸준한 연습으로 재능을 갈고 닦아야 할 텐데 그들의 과제는 뭘까. 대중들 즉, 청중들을 감동 시키지 못하는 노래나 가수는 결코 특정 멘토의 멘티가 될 수 없다는 말이며, 세상은 가혹하게도 1등 내지 최고의 스타에게만 박수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멘토 김태원은 탈락한 도전자에게도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삶을 뒤돌아 보게 만들고 있는 위대하고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던 것이다. 여기 까지가 대략적인 위탄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을 오늘날 서울음대 내지 국공립대학 또는 사립대학교 예술계에 적용하면 어떤 결론이 나올까. 또 그들의 멘토가 카리스마 넘치는 프리마돈나 김인혜 교수라고 한다면 최종 무대에 설 수 있는 성악가 등은 몇이나 되며, 그들은 또 어떤 과정을 통해야 대중들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음악가가 될 수 있을까. 참 아쉽게도 서울 음대 당국이나 김 교수 동료교수들이나 제자 등은 이런 모습에 눈을 감고 있었던지 졸업장 숫자만 늘릴 수 있는 편안하고 민주적이며 파격적이며 개혁적인 조치의 일환 등으로, 김 교수 몰래  뒷구녕에서 음모를 꾸미는 한편 투서를 하게 만들고, 그들 스스로 누워서 침을 뱉는 방법을 선택하며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모습이다. 맺어야 겠다.


김 교수 논란의 핵심은 교수방법이 만든 해프닝

요즘 지구촌은 독재와 민주 내지 보수와 혁신 등 가치혼란 때문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나라밖 소식은 중동발 민주화 사태의 살륙장면으로 살벌하고 나라안 소식은 구제역 사태 등 실정으로 보혁갈등이 유사 이래 최고조에 달한듯 하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같은 활화산 같은 모습이다. 사회가 이렇듯 혼란하게 된 이유는 여럿 있을 수 있겠지만 위정자들이 만들어 놓은 계급적 갈등 내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현상 등은 각계각층으로 번지며 보이지 않는 암투 현상을 보이고 있고,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학교 문제는 정치와 이념 사이에서 조변석개로 탈바꿈해 오고 있다. 특히 민주정부 10년 이후 우리나라 대학의 모습은 그 이전과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무슨 일이든 민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취지다. 민주가 만든 성과물이다. 그러나 인류문화사를 통해서 본 민주화와 같은 운동은 거짓된 방법이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국민을 착취하고 핍박하는 등 독재에 대항한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조치일 뿐, 예술행위 조차 민주화를 통해 이룩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김 교수 논란 배경의 폭행 의혹 조차 눈 감고 넘어가라는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의혹은 어디까지나 일방의 주장이며 가해사실이나 피해사실이 충분히 드러나야 일반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여태껏 불필요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게 그 때문이다. 논란의 배경에는 교수방법 때문에 일어난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위탄을 예제로 든 건 다름이 아니다. 서울 음대는 물론 국공립 사립대 망라하여 멘토(교수)가 판단하여 자질이 없는 다수 관련 학과의 학생들은 야식배달이나 꽃게잡이와 같은 일을 하는 게 우리사회에 도움이 될 듯 싶다. 아울러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며 어필할 수 있는 재능있는 사람들이 꽃게잡이나 야식배달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공립대학 등이 그런 인재를 발굴해야 위대한 예술인이 탄생하며 대중들이 구름처럼 떼를지어 그들을 만나러 음악회로 가지 않겠나.


정치이념과 다른 예술행위와 우리가 죽인 프리마돈나

그래서 최소한 음대 학생들을 위탄 처럼 공개적으로 평가받도록 하고 치밀하게 선발하여 (극)소수 정예로 키우는 게 더낫다는 판단이 든다. 물론 엑스트라도 필요할 것이다. 김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우리나라 클래식 시장의 수요가 극히 제한되어 있는데 경쟁력 없는 예술인들을 무제한 공급만 하다보니 생긴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또 음대 등 예술계가 일각의 주장 처럼 부유층이나 일부 허례허식을 일삼는 자들의 졸업장만을 위해 입학 시키는 학부가 아니라면, 능력없는 학생들은 스스로의 재능(학과 선택)을 찾아 떠나야 하고 정치판 흉내를 내며 실력있는 교수를 음해하고 모함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음악은 원시사회로 부터 봉건주의 사회에서나 민주주의나 독재사회에서 조차 변함없이 추구해온 학문이자 예술행위다. 오페라의 주인공이 100명 이상 또는 전부였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정치적 논리일 뿐이다.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는 1명 뿐이다.

그동안 우리는 정치적 이슈룰 감춰보기 위해 불필요한 여론몰이에 나선 수구보수 찌라시 언론 등 무지몽매한 결과에 따라 프리마돈나 마저 함부로 난도질 하는 만행을 일삼았다. 그게 학교당국이나 김 교수의 동료교수 내지 학생들이 요구하고 대책을 마련한 민주적인 모습이라면, 차라리 매우 보수적이며 혁신적이자 개성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정확하고 특별한 능력을 갖추는 등 가혹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독재적 멘토인 위탄의 방법으로 위대한 예술인을 지키고 싶은 1인이다. 위탄에 열광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위탄은 절대로 대중의 포퓰리즘에 야합하거나 음모나 술수 등의 반칙적 방법으로 멘티를 선정하지 않았다. 멘토가 지닌 개인적 역량에 따라 가혹하리 만큼 냉정하게 예선과 결선에 임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멘토 몇 명의 독단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 멘토는 우리들이 인정하고 있었던 실력자들이었다. 우리가 함부로 버린 세계적 프리마돈나도 그런 멘토 중 한사람이었다. 위대한 예술가는 절대로 여론몰이를 닮은 민주적인(?) 방법이나 절차에 따라 탄생하지 않는다. 그게 옳다면 정치를 해서 표를 많이 모으면 된다. 오늘날 정치가 감동적이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으며 문제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대신 포퓰리즘 정치를 선택한 서울 음대 등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계가 자초한 패착이다. 무식하고 용감한 멘티들이 찌라시 언론에 선동되어 뭉치면 멘토를 죽일 수 있는 사회가 그저 씁쓸하고 무섭기만 하다. 인생의 오페라에서도 멘토는 극히 제한적이며 나를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은 감동의 보답으로 박수를 치며 그들을 격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위탄의 결선장면이 감동적이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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