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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山들

눈 덮힌 전등사에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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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힌 전등사에서 길을 묻다 

-설날 아침에 떠 오른 어머니의 기도-


나를 가로막고 있는 건 무엇일까...

삼랑성 동문으로 이어지는 저자거리는 모두 문을 닫았다. 혹한이 정족산 위에 하얀 도포자락을 살포시 내려놓은 듯한 삼랑성 안으로 발을 들여놓자 세상이 다 조용했다. 솔가지 가득 머리에 인 눈들이 간간히 바람에 날리는 곳. 오후 햇살에 비친 양헌수장군 승전비 위로 날리던 눈가루가 볕에 반짝거릴 뿐 전등사로 가는 길은 너무 조용했다. 하루종일 걷고 있는 중이었다. 걷고 또 걸어서 전등사에 도착한 날은 내 생일이었다.

엄니께서 엄동설한에 날 낳으시고 내가 다시 아이들과 함께 삼랑성 동문을 통과하여 전등사 경내 
를 한바퀴 돌던 기억의 편린들이 눈가루 처럼 반짝거리며 날리던 시간이었다. 강화는 단군 할아버지 때 부터 삼랑성이 만들어 졌고 조선왕조실록을 간직했던 한편, 근대에는 병인양요를 통해 끊임없는 외세의 침탈을 견뎌야만 했던 땅이다. 그런 기억들이 눈가루가 되어 오후햇살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선조님들의 숨결이 그대로 간직된 정족산 자락 전등사로 가기 위해 단군 할부지님이 지으셨다는 삼랑성안으로 몸을 옮기자 배가 꼬르륵 거렸다. 생일날 이러고 다녔다. 엄니께서 살아계셨다면 새끼가 배를 곯고 다니는 모습은 커녕 생일날 이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난리를 쳤을 법 하기도 하다. 까짓껏 밥 한 끼 먹지않는다고 무슨 대순가.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철 없을 적 내 생각이었을 뿐 엄니께서는 지금 챙겨먹지 못하면 평생 챙겨먹을 수 없다고 하셨다. 어디를 가더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엇을 하더라도 때가 되면 밥 좀 챙겨먹어라고 입버릇 처럼 말씀하셨다. 그땐 그 말씀이 잔소리 처럼 들렸다. 

엄니...인간이 어떻게 밥만 묵고 살아요. 돈도 많이 벌어서 효도도 하고 떵떵 거리고 살아야지요. 인간에게 욕구라는 게 있는데 그저 밥버러지 처럼 밥만 묵고 살아라고요. 싫어요. 엄니께서는 이 말을 들으면서 언제 철들려나 했을 것 같았다. 야 이넘아 돈 많이 벌면 네끼 먹냐 한꺼번에 말로 마시나. 그래도요. 호의호식하며 살고 싶단 말이어요. 그래 사회적 욕구 다 챙겨봐라. 권력도 누려보고 돈도 실컷 벌어봐라 그 때 행복한지 말이다. 이눔아 울로(위로) 쳐다보고 살지말고 알로(아래로) 쳐다보고 살어. 엄니께서는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새끼들 잘 되게 해 달라고 날이면 날마다 정한수 떠나 놓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비셨다.


엄니께서 천지신명께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빈 소원이 밥이었단 말일까. 신묘년 설날 아침에 하늘에 계실 엄니나 아부지의 잔소리(?)가 당신의 기도였음을 알아차리며 욕심이 눈을 가리면 나랏님도 구할 수 없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터벅 터벅 삼랑성 동문을 지나 전등사로 향하는 길에 멀리 종해루가 보인다. 비록 제 때 밥을 챙겨먹진 못했지만 생일날 건강한 모습으로 당신을 추모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며 행복한 일이었던가. 그런 한편 밥타령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새해 덕담이 또 이 모양 아닌가. 이 넘들아 밥은 먹고 댕기느냐...


눈 덮힌 전등사를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 동안 전등사의 모습도 참 많이 변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밥만 먹고 살아도 될 것 같은 구도자의 집에 사철 연등을 빼곡하게 전시(?)해 놓고있는 모습을 보니 사찰의 승려나 교회의 목회자 등, 우리사회의 영적지도자들이 육신 하나 지탱하는 엄니의 기도 보다 못한 허례허식에 빠져 허둥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기도 했다. 도무지 카메라 앵글을 잡을 수 조차 없이 상업행위로 혼잡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살이가 밥은 불필요(?)한 대신 돈만 요구하고 있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세상 모든 궁극적 가치를 돈이나 권력 내지 자기 자랑에만 치우친 나머지, 밥 이상의 것을 요구하며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전등사 현판을 돌아서자 마자 불현듯 들기도 한 것이다.

강화 전등사에 가면 바늘에 실 가듯 따라다니는 삼랑성은 고대 단군의 세 아들(부여.부우.부소=三郞)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또 조선 현종 1년(1660)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성 안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보각을 함께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없어지고 전등사만 남아있다. 또 이곳은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공적을 쌓은 분이 양헌수장군이었고 승전비가 남아있는 곳이다. 우리 선조님들이 목숨 걸고 지켰던 것들은 돈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가슴아팠던 역사였으며 자존심이자 자긍심이었다. 비록 배가 고파도 지켜야 할 문화민족의 가치가 아닌가. 엄니께서 잔소리 처럼 말씀하시던 밥타령이란 그저 욕심없이 살면 행복하다는 말이었을까. 하루종일 걸었더니 눈에 보이는 건 밥 밖에 없었다. ^^





















































신묘년 새해 늘 복된 날만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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