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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천년 고도의 숨결 상사화로 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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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의 숨결 상사화로 피어나다


 사랑에 빠져들면 이런 감정일까. 마음이나 행동 따위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달라지는 모습을 '환장'이라고 한다. 눈 앞에 펼쳐진 상사화를 보는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댓다. 나는 환장해 있었다. 피빛으로 붉게 물든 가녀린 꽃술들이 상림 숲 속 가득 만개한 모습을 함양의 한 아가씨는 이렇게 말했다. "...거..함 가 보이소. 지금 상사화가 피 가꼬 난리가 아닙니데이..." 함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주유소에서 기름을 다시 채우고 돌아서는데 주유소 주유원이 내게 일러준 말이다.


촬영장소/경남 함양 상림숲 음악/Lost City (Medwyn Goodall) 촬영.제작/www.tsori.net 내가 꿈꾸는 그곳 Boramirang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라시대 때 최치원 선생이 강둑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으로 조성한 상림 숲을 기웃 거리는 순간 오랜동안 만나보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막 조우하는 찰라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오죽했으면 별로 점잖지 않은 표현인 환장이라는 말이 불쑥 튀어 나올까. 정말 눈 앞에 펼져진 상사화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 슬피 울면서 가슴에 피멍이 든듯 상림숲 속에서 흐느끼는듯 했다. 그런데 그 장면들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꿈결에서 막 사라지는 사랑을 부여잡고 깨지 않으려고 허둥지둥 발버둥 치듯 상사화가 만개한 숲을 헤맷다.  


꽃무릇((Lycoris radiata)이라고도 불리우는 상사화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가져서 그런지 상사화에 얽힌 이야기 조차 애뜻하다.


깊은 산속 어느 암자에 한 스님이 열심히 수행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 암자 옆에는 중병을 앓는 한 처녀가 부처님의 은덕에 기대어 기도를 하며 병치료차 와 있었다고 한다. 그 처녀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젊은 스님의 마음은 어느덧 그 처녀에게 빼앗겨 수행이 되지않아 안절부절 하여 스님은 그 암자를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에게 그 처녀가 잊혀질리 없었는데 어느날 처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그 암자를 찾아 가 봤지만 처녀는 이미 죽은 후 였다고 전해진다.


전설은 늘 그러하듯이 사실인듯 허황된 거짓 같고 소설 처럼 그럴듯한 개연성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으나, 꽃대궁에 댕그러니 가녀린 꽃술만 무수히 달려있는 모습을 보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내포하고 있는 꽃말 처럼 사랑에 눈 먼 마음들이 갈래갈래 찢겨진 것 같은 모습 같기도 하다. 상사화는 6월에서 7월경 잎이 먼저 나와 자라다가 8월경부터 잎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9월경 꽃줄기가 나와 꽃이 만개하는 꽃이 그러한 모습이며, 잎과 꽃이 한 곳에서 자라는 보통의 꽃들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젊은 수행자와 이름모를 한 처녀는 한 눈에 홀딱 반하여 서로 사모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둘 다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지만 차마 사랑한다는 말 조차 끄집어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환장하다가 '상사병-남자나 여자가 마음에 둔 사람을 몹시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에 걸려 죽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상림숲을 가득채운 상사화를 본 내 마음이 이렇듯 상사화를 보는 순간 그대로 가슴속에 설레임으로만 가득찻던 것이다. 좋아하면서도 좋아한다고 고백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며 사랑에 빠진 심정이 상림 숲의 꽃무릇을 보는 순간 그대로 느껴졌으니 꽃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니며 전설 또한 그냥 생긴 게 아닌듯 싶었다.


경상남도 함양의 상림숲은 약 1,100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현재 경남 함양군)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재임중에 강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던 인공림이라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잦은 홍수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위해 현재와 같이 강물을 돌려 둑을 쌓고, 둑 위에 나무를 심어 가꾸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관림이라이름지어 잘 보호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홍수로 중간부분이 유실되어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 하림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상림은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숲의 면적은 21 ha로 120여종의 2만 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형적인 남부의 온대낙엽활엽수가 잘 보존된 곳이다. 이 숲의 나무들은 합천의 가야산에서 옮겨져 심은 것이라 전해진다. <함양 상림 안내서>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운림리에 위치한 '함양 상림'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고 소개드린바 1,100여년 전 신라시대 진성여왕 때 조성된 숲인데 나는 이 숲 속에 빼곡하게 자라나는 꽃무릇을 보며 천년 고도의 신라의 숨결이 꽃무릇으로 피어난 게 아닌가 하는 신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천년 고도의 숨결 상사화로 피어나다

신라 진성여왕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렇다. 진성여왕은 경문왕과 문의왕후의 소생이다. 정강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서거하자 정강왕의 유언에 따라 887년 음력 7월에 왕위를 이어받아 즉위하였다. 소행이 좋지 못하고 음란하기 그지없었던 진성여왕은 색욕에 빠져 수많은 미소년들을 징집하여 처소로 불러들인 뒤 음사를 즐기는 데에만 주력하여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왕과 관계를 맺은 정부들과 여왕에게 아첨하는 간신들의 무리가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여 상벌이 함부로 행해지고, 뇌물이 난무하고, 관직을 매수하는 등 조정의 기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왕실과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자연스레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데다가 여왕의 심한 낭비로 국고가 텅텅 비어 각 지방의 호족들을 닦달하여 세금 납세를 독촉하였다. 그러자 민심은 점차 흉흉해져 여기저기서 민란과 도적이 숱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방의 호족들은 각자 독자적 세력을 키우는 데 전념하였다. 조정에서는 그들을 도적이라고 부르며 군대를 파견해 진압을 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로 조정의 힘은 겨우 수도인 서라벌 주변에 한정될 정도로 급격히 쇠락해갔으며, 지방 호족들은 서로 간에 힘겨루기 양상을 보였다. 치열한 싸움 끝에 살아남은 견훤과 궁예가 각자 나라를 세우자 후삼국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이렇듯 나라가 분열해가자 894년 진성여왕은 최치원을 아찬으로 임명하여 그의 조언에 따라 조정을 일신하고자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897년 음력 6월, 병마에 시달리던 진성여왕은 헌강왕의 서자(庶子)인 요를 왕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러고는 그해 음력 12월에 승하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857년 경주에서 출생한 이후 868년(경문왕 8년) 당나라 유학을 떠나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한 지 7년 만에 과거에 급제하고,선주 율수현위(宣州 水縣尉)가 되고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史), 내공봉(內供奉)에 올라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874년 빈공과에 급제하였다. 황소의 난 당시 이를 비난하는 토황소격문을 지었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여 조(條)를 상소해서 아찬이 되었지만,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하며,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고 전하고 있다. 함양 상림 숲을 만든 최치원의 생애는 이러했다.<위키백과>


상림 숲 속에는 사람들의 넋을 빼 놓을 정도로 슬프도록 화려한 꽃무릇 군락이 널려있었는데, 꽃무릇 군락은 애뜻한 사랑의 전설과 함께 주체하지 못한 진성여왕의 음탕한 색기가 동시에 피어나고 있었다. 사랑도 권력도 다 그러한 것일까. 부족하면 상사병으로 넘치면 나라의 정사 조차 돌보지 않을 정도로 색욕에 빠져드니, 신라가 망한 후에 그 사실을 알았을 진성여왕은 지하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고 슬피 울었을 법도 하다. 그 슬픔이 충신 최치원을 지키지 못한 사랑으로 남아 꽃무릇으로 피어난 게 아닐까...  


포스트에 등장하는 꽃무릇은 1박 2일간에 걸쳐서 영상과 그림으로 남겼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마주친 꽃무릇은 하룻밤  사이에 꽃술이 시들해지고 있었다. 용케도 만개한 꽃무릇을 담을 수 있었는데 수많은 그림과 꽤 긴 시간의 영상이 대변해 주듯 꽃무릇에 취해 환장한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모습이 아닌가 싶다. 맨 처음 함양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주유소에서 기름을 다시 채우고 돌아서는데 주유소 여주유원이 내게 일러준 말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거..함 가 보이소. 지금 상사화가 피 가꼬 난리가 아닙니데이..."

남은 시간도 여주유원이 내게 일러준 말을 참고 삼아 꽃무릇에 취해 환장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



































































 "...거..함 가 보이소. 지금 상사화가 피 가꼬 난리가 아닙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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