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역,최진실의 흔적 남아있는 작은 기차역
세월이 지나면 모두 잊혀지는 것일까? 한때 국민배우로 명성을 날리던 영화배우 최진실의 <편지>가 촬영되었던 경강역도, 곧 우리들 기억 속에서 저만치 달아나며 잊혀진다는 소식이다. 이틀전 경춘선 경강역에서 잠시 머물며 그곳 풍경을 그림과 영상으로 담았는데 이곳을 뻔질나게 드나들면서도 쉽게 눈길이 가지않는 곳이 경강역이었다. 경춘선을 이용할 일도 드물었지만 경강역 앞을 스쳐 지나가면 눈에 띄게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작은 기차역일 뿐이었다. *영상은 2010년 이후에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최진실의 영화 <편지> 흔적이 남은 경춘선 '경강역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
그러나 경강역을 돌아보면서 이 작은 기차역이 일제 때 만들어져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몇 안되는 역사 중 하나라는 사실과 함께, 이곳에는 영화배우 故최진실 씨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오며 가며 한차례씩 들러 곧 사라질 자취를 남겼다.
경강역(京江驛)은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경춘선의 철도역 이름이고 역명은 본래 역이 위치한 마을의 이름을 본따서 '서천역'으로 명명되었으나, 장항선의 서천역과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경기도와 강원도가 만난다고 하여 도의 이름 중 한 글자씩을 따 '경강'이라는 역명이 붙었다고 한다.
경춘가도로 이름난 46번 국도가 지금처럼 4차선으로 확장되기 이전 까지는 백양리에서 서울이나 춘천 등지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기차역이 경강역이라는 사실은 경춘가도를 따라 북한강변을 드라이브한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적지않은 사람들은 경강역이 일제 때 지어지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역사라는 걸 아는 분은 드물다. 그저 시골의 간이역은 다 이런 풍경이려니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경강역은 개업일이1939년 7월 25일이라고 명시되어 있는 약 70년 된 오래된 역이기도 하다.
70년의 세월이라면 경강역 개업과 함께 태어난 사람의 나이가 70세라는 말인데 경강역을 둘러보는 동안 아직도 건재한 경강역사를 보며 곧 이전 또는 이설을 한다는 소식이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강역사에서 만난 연로하신 한 어른은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으며 당신이 이 역사를 드나들며 학교를 다닌 모습을 회상하기도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라고 말씀 하셨는데 정작 당신의 머리가 희끗해 졌고 말씨가 어눌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촐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경강역은 경춘선 복선 전철화로 궤도와 역사 모두 2010년 이후에 이설 및 이전되어, 굴봉산역으로 역명이 변경될 예정이라고 한다. 경강역에서 약 7km 떨어진 백양리로 이전하며 곧 덜커덕 거리는 철도레일 소리를 뒤로 하고 전혀 다른 모습의 전철이 북한강변을 따라 서울로 또는 춘천으로 내 달릴 것이다. 우리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말이다.(12월에 개통 예정인 굴봉산역을 찾아 가 봤더니, 현대식으로 잘 단장된 서울의 지상 전철역의 모습이었고 경강역의 흔적은 찾아 볼래야 볼 수도 없었다. 개통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경강 역사 내부 1면 2선의 철로 곁에는 추석을 사흘 앞두고 가을비가 장맛비 처럼 추적추적 내리며, 빗방울이 토란잎에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참 처량맞은 비 처럼 느껴졌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역사 내부의 화장실과 이끼낀 전나무 모습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느껴졌다.
세월이 지나면 우리는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며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일까?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수세미와 호박 덩굴에 몇개의 열매가 달렸다. 비를 맞은 모습이 여전히 처량해 보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이 철로를 지나 서울로 춘천으로 다녔을 텐데...
오후 12시 30분 경에 방문하고, 오후 6시 경에 다시 방문한 경강역은 여전히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경강역은 적막이 흘렀고 철로 옆에 서 있는 신호등 불빛만 깜빡 거렸다.
사람들은 이제 구식 철로를 이용하지 않게 됐고
보다 빠르게 옛날의 시간들을 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철로 곁에서 서성이며 세월의 흔적을 찾다가 눈길이 머문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나로그식 시건장치인 둥글게 말아 둔 자물쇠가 덩그러니 걸려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역사 매표소 곁에 아까 부터 눈길을 끌게 만들던 최진실의 흔적이 벽에 붙어 있었다. 자그만한 손바닥 모습이 동료 영화배우들과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그들과 다른점이 있다면 최진실은 우리들로 부터 까마득히 잊혀져 가고 있는 이름이었다.
그녀가 경강역에서 영화 <편지>를 촬영할 당시만 해도 그녀는 장차 다가올 먹구름과 같은 어두운 그림자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것일까? 그녀의 조그만 손도장이 찍힌 사진을 걸어 둔 액자 옆으로 한국철도공사의 광고가 유독 눈에 띄며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아...이럴 수가!...
한국철도공사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하는 생명사랑켐페인
자살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어 보세요!
인생의 빨간불이 커졌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시겠습니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있습니다.
최진실은...그렇게 우리들 곁을 떠나 갔다. 그냥 떠난 게 아니라 노모만 홀로 남긴 채 동생도 함께 데려 갔다.영화 속에서는 '편지'를 남기고 있었지만 경강역에는 아무런 사연조차 알 수 없는 작은 손바닥 흔적 하나만 남기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영원히 떠났다.
경강역에도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며 곁에 있어도 떠나는 것을 말리지 못할 세월이 있는 것 처럼, 최진실의 흔적과 우리들의 흔적을 지닌 경강역도 조금씩 조금씩 우리들 곁을 떠나고 있었다. 편지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어둠 저편으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스라이 먼 곳으로 말이다.
경강역에서 오며 가며 꽤 긴 시간을 기다린 이유가 있었다. 춘천으로 또는 서울로 가는 기차가 몇시에 경강역을 통과할 건지, 우체통 앞에서 편지를 기다리듯 이리 저리 오가고 있었는데 역장 포함 역무원 3명이 전부인 경강역은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기차표를 살 것도 아니면서 기차가 언제쯤 오느냐고 자꾸 물어볼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들도 곧 경강역과 함께 70년 세월을 버텨온 이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이유 때문에 안타까워 하는 것일까? 경강역사 곁에 있던 안사람에게 기차 시간을 물어보니 아무 말 없이 다가와서 한마디 했다.
"쉿...자꾸 말 시키지 마...싫어하는 것 같더라니까..." 그럼 편지라도 써서 물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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