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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세뱃돈 '십원' 받을 날 손꼽아 기다려!...

세뱃돈 '십원' 받을 날 손꼽아 기다려!...


설날만 되면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 기억들은 유년기를 다 하도록 잊혀지지 않았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기억 저편에서 재생되어 이렇게 글로 되살아 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집은 종가였다.
그래서 설이든 추석이든 제삿날이든 돐 잔치든 심지어 작은아버지나 숙모의 생일 까지도 우리집에서 치루었다.
머리가 다 컷을 때 겨우 이해할 수 있었던 이런 행사는 어린 내게 작은 상처(?)를 만들었는데,


그들(?) 삼촌이나 집안의 대소사를 위해서 방문한 사람들은
특히 설날 때 반드시 우리집에서 만날 수 있으며 대부분 그들은 내게 세배를 요구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새까만 '쫄따구'였던 것이며
그들 보기엔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꼬맹이 였을 뿐인데,


나는 설날이 되면 형들이 받은 세뱃돈에 유독 탐을 하였다.
내가 가진 '환'이나 '일원짜리' 지폐는 별 쓰임새가 없다는 사실을
 해를 거듭하면 할수록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다. ^^    



설날 아침이 되면
나와 사촌들과 그리고 형제들은 윗목에 횡으로 줄지어 앉아계신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는데
그것도 서열에 따라서 차례대로 세배를 올렸다.


머리에 피가 거꾸로 쏫는(?)듯한  세배를 연거푸 마치고 나면
백형들과 막내뻘인 우리들 쫄따구에겐 색깔이 다른 세뱃돈이 지급되었는데 세뱃돈은 서열에 따라서 지급되었다.
나와 동년배인 사촌들과 내 동생들에겐 늘 불그스럼한 '일원권' 세뱃돈이 지급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이 울분(?)을 언제인가 갚으려고 빨리 나이를 먹어야 되겠다고 맘 먹었는데
아뿔사!...내가 백형들 처럼 나이를 먹자 십원짜리는 커녕
오히려 백원짜리 만원짜리를 어른들께 드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미지는 자료 재편집

그런데 억울해야 할(?) 이런 사건(?)이 가슴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자리잡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게 일원권 지폐를 쥐어 주시던 그 어른들은 내가 일천만원이 아니라 일억원...
십억원을 집어 드리고 싶어도 내 곁에 없다.


지금 내 곁에는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세뱃돈 '십원' 받을 날 손꼽아 기다리는 아들 딸이 있을 뿐이다.  


설날이 되면...
나는 아직도 '일원권'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하늘나라에 계신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설날이 내게 남겨 준 소중한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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