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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MERICA

주인 잃은 안데스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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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잃은 안데스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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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개의 하늘이 있다. 그 하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Sky)과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늘(Heaven)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은 우리가 늘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따라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볼 수 있는 세계며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피안의 세계와 다름없다. 따라서 한시적으로 세상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경하며 세상에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있다면 또 어떤 방법으로 그 세계로 갈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은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온 이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며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음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안의 세계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어떤 선각자들이 내 놓은 피안의 세계 모습은 여전히 육안으로 구별되는 세상과 별로 다른 모습이 아니었다. 그곳은 영원한 안식처가 있는 곳이었다.

세상의 배꼽이라 일컬어지는 고도 '꾸스꼬 Cusco'에서 잉카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잉카트레일을 감행하며 오늘날 '공중도시'로 불리우는 '마츄피츄 Machu Picchu'에 도착한 이후 '와이나피츄 Huaina Pichu'에서 내려다 본 마츄피츄의 모습은 한마리 거대한 독수리 형상이었다. 그러니까 마츄피츄는 평면으로 볼 때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었지만 하늘에서 내려단 본 모습은 독수리 형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잉카인들은 왜 독수리 모티브를 생활속에 끌어들인 것일까?

  ** 고대 잉카인들의 삶 전부를 지배했던 '주인 잃은 안데스 독수리' 편은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faction)해 둔 것이므로 독자 여러분들의 오해 없기 바랍니다. ^^*




잉카트레일을 끝마치는 날 우리는 잉카인들의 젖줄이었던 우르밤바강 옆 야영장에서 밤을 새고 있었다. 야영장 곁에는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을 이름은 잉카인들과 어울리지 않는 '테레사'라는 수녀의 이름을 붙이고 있는 곳이었다. 이 마을 한쪽 곁에서 야영을 한 후 다음날 '아구아스 깔리엔떼스'로 이동하여 마츄피츄로 갈 요량이었다. 잉카트레일을 안내한 가이드와 모처럼 맥주를 나누며 잉카트레일로 지친 여정을 풀어내고 있었다. 화재는 자연스럽게 마츄피츄로 이어졌는데 그는 꿈 같은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그가 늘어놓은 이야기는 두 하늘이 뒤섞인 이야기였고 은하수 너머 먼 우주로 부터 안데스로 이어졌는데 현실과 이상이 뒤범벅이 된 이야기여서 마치 환타지 소설의 줄거리를 듣는듯 했다. 그는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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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야기 결론은 잉카인들의 신앙에 얽힌 이야기로
동물의 모티브를 통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신神들을 그리고 있었다.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뱀이었으며
땅을 지배하는 것은 퓨마,
그리고 하늘을 지배하는 독수리로 구분되었다.

 그러니까 마츄피츄는 하늘을 지배하는 신을 섬기는
'제단 祭壇'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따라서 잉카제국의 황제는 제사장이며 태양신이자
창조주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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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의 이야기가 솔깃하기도 했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듯한 이야기들이었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바이칼 호수를 연상하고 있었다. 그곳은 오래전 우리 조상들의 삶의 터전이었다고 전해져 오는 곳이며 원시부족 샤먼이 살고있던 곳이었다. 가이드와 연거푸 건배를 하고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잉카트레일의 피곤이 엄습했고 안데스의 땡볕에 화상입은 얼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뺨 양쪽에는 화상으로 허물이 벗겨지고 있었다. 마츄피츄 배후 마을인 아구아스 깔리엔떼스의 여관 거울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까무잡잡하여 안데스에 적응한 영락없는 인디오를 닮아 있었다. 그들 인디오들이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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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출발하여 페루의 고도 꾸스꼬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되지 않아 안데스의 볕에 그을려 이런 모습이었으니, 이곳에서 문명을 일구고 살았던 잉카인들의 모습은 금방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안사람은 나의 모습을 보며 키득 거리면서 벌써 잉카인이 되었다고 놀려댓다. 잉카인들의 선조들은 잉카문명 이전 부터 안데스에 살고 있었고, 안데스의 모체가 된 '모체문명  Moche civilization'이라는 걸출한 문명으로 안데스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시기는 대략 1만 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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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꾸스꼬를 출발하여 지구상에서 제일 깊은 협곡인 '꼴까 협곡 cañón del Colca'으로 향하고 있었다.꾸스꼬에서 우르밤바 강을 따라 산재한 잉카유적지를 둘러보는 동안 고산증세는 가시지 않아 도무지 이들 유물들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 처럼 보였다. 머리가 지끈 거리고 입맛은 달아났으며 생각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일정에 따라 다시 아레끼빠로 이동하면서 해발고도를 낮추자 상태가 조금은 나아진것 같았다. 아레끼빠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후 '치바이 Chivay'로 이동할 참이었는데 그곳에는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에서 제일 깊은 협곡이 시작되는 골짜기의 작은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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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짜기에서 동태평양 쪽으로 이동하면 안데스 독수리가 살고있는 곳이자 cañón del Colca라고 불리우는 곳이었다. 그곳은 다시 안데스를 넘어야 갈 수 있었는데, 멀리 5,825m의 '미스티 화산 Volcan Misti'이 바라보이는 안데스 고원지대에 다다르자 다시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잉카인들은 도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하는 생각은 잉카의 고도 꾸스꼬와 띠띠까까 호수를 떠날 때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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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불리우는 그들은 대략 2만년전 부터 아시아(극동아시아 바이칼 호수)를 출발하여 이곳에 이르러 정착했다는 게 정설이었다. 1499년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이름 붙여진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유인원(類人猿)은 물론 오스트랄로피테쿠스.시난트로푸스와 같은 '원인 原人',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구인 舊人'의 뼈는 발견되지 않아, 현재로써는 플라이스토세(世)의 말기에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몽골로이드의 자손이 아메리카 인디언(또는 인디오)으로 되었다는 이주설이 정설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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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안데스의 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내리 쬐는 볕을 온 몸으로 받아 들여야 했을 것이며, 안데스의 비탈 등지에서 감자와 옥수수 등을 심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오는 동안 피부색은 어느덧 까무잡잡하게 변하고 안데스를 오르내리는 동안 사지는 안데스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들은 대략 2만년전 부터 이곳에 적응하여 모습을 바꾸고 있었지만 나는 불과 보름도 채 안되어 잉카의 고도에서 고산증세에 허덕이며 얼굴빛 부터 적응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었다.(솔직히 말하면 단 한번도 씻지않은 거지꼴이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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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스꼬에서 아레끼빠로 이동하여 다시 치바이로 향하는 동안 내 머리속은 오직 안데스 독수리를 만나는 생각 뿐이었다. 그 독수리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도 달라진 잉카인(인디오)들의 속 모습을 내게 전달해 줄 유일한 메신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학문(고고학)들 속에서 인디오들의 모습도 다르게 그려지긴 마찬가지 였다.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불리는 그들은 아시아로부터 베링 해협을 건너서 왔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종래의 학설에 따르면 "인류는 약 2백만년 전에 동부 아프리카에서 진화되어 1백만년 전 쯤 유럽과 아시아로 펴졌으며, 약 1만 2천년 전에 이들이 베링해협을 거쳐 북미대륙으로 건너갔다"고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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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와 같은 종래의 주장에 대해 근래 소련의 고고(考古)학자 '유리 모차노프'는 새로운 학설을 내세워 주장 했는데,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돌로 된 도구들이 영국의 고고학자 '메어리리키'가 케냐에서 발견한 2백만년 전에 '호모 하빌리스'가 사용하던 것과 매우 흡사(恰似)하며, 또 그 도구들이 발견된 토양이 지리학적으로 1백 80만년 전에 생성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도구들을 사용하던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같은 시기에 생겨났거나 또는 어쩌면 아시아에서 최초의 인류가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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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ñón del Colca
Arequipa Pe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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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에나 머리가 지끈 거리는데 이건 또 뭔가? 컬럼부스가 대서양에 나타나 서인도제도를 만난 이후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신천지(아메리카 대륙)가 발견 되면서 그동안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면서 만들어 둔 고대문서 바이블이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다. 유리 모차노프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창세기의 낙원(에덴동산)은 시베리아 벌판 한가운데에 있거나 아니면 비슷한 환경의 동토였던 바이칼 호수 부근에 아담과 이브가 살아야 했다. 그곳에 금단의 열매 '애플 Apple'이 있어야 할 것이며 그 열매는 창조주가 따 먹지 말라고...따먹지 말라고 애원 해도 결국은 홀라당 따 먹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났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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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수도 있었다. 현대인들이 달나라를 오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먼 우주로 탐사로켓을 보내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는 죽음 이후에 등장할것이라는 내세였고 피안의 세계였다.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디뎌놓은 후 단 한사람이라도 그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 증언이라도 해 주었다면 이렇게 머리 지끈거리는 생각은 하지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살펴보다 보면 피안의 세계는 의외로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련의 고고학자 '비탈리 라리체프'의 글 <시베리아의 구석기 문화>에서 그는 " 흔히 시베리아를 얼어 붙은 불모(不毛)의 땅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러한 견해는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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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동토 시베리아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적들이 잇달아 발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유적지가 바로 시베리아의 '말라이아쉬'유적이었다. 이 사실은 곧 전세계로 전파되어 나갔다. 지난 1975년부터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기 시작한 이 유적지는 중부 시베리아의 '벨리라우스' 강과, '노비스비르크' 산과, '아비칸' 산을 가로지르는 산맥에 위치한 계곡 지방으로서,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을 방사선 탄소 연대 측정으로 조사해 본 결과, 약 3만 5천년 전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이 주거지에서 생활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놀라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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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고고학적 발견으로 인해 역사가 하루 아침에 바뀌지는 않았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타성에 젖어 서구인들이 왜곡해 둔 교과서에 충실하고 있고 창조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애써 귀를 틀어 막고 있다. 그런다고 금방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이비 기독교인들이 다시 이를 대서특필 할 이유도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그들 선조들이 그러했던 것 처럼 온갖 거짓과 중상모략 등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며 이념과 체재 등 우월성을 내세우며 인류를 악의 구렁텅이로 내 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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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말라이아쉬 유적은 가히 에덴동산의 모습과 다름없었다. 그곳은 인류가 생활하는데 가장 적합한 조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었는데 말라이아쉬 지방에서 발굴된 뼈를 살펴보면 산양, 야생마, 순록, 영양, 산토끼, 사슴, 들소, 코뿔소, 여우 등 많은 종류의 야생 동물들이 무수히 서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야생동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낙원에서 살만한 동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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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었다. 그곳에는 아담의 후손들이라 칭할 수 있는 유물들이 속속들이 발견되고 있었다.  말라이아쉬에는  구석기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수 킬로미터Km에 이르는 촌락(村落)을 형성하고 있어서 진보된 복합 문화를 발달시킬 수가 있었다. 아울러 말라이아쉬 유적지에서는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 초록색, 진홍색, 보라색 등 온갖 색깔로 그려진 정교한 그림들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모두가 뛰어난 솜씨로서 그들의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나타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종래구석기 유물이라면 매우 무디고 조잡한 것으로 여겨 왔지만, 말라이아쉬 유물 중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맷돌과 '독수리'와 거북 등이 새겨진 석기 조각품도 있어 그들에게 고유한 토착예술의 뿌리가 존재했음이 분명해졌던 것이다. 아...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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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만 알려져 왔던 인류의 고향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는 동안 그 유물들 속에는 우리와 친근한 문화적 유산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치바이로 이동하는 동안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살고있는 인디오들이 만든 수제품들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양탄자나 장갑, 모자 등으로 만든 물건에는 알록달록한 원색이 눈에 띄었는데  그 색깔은 어릴적 설날에 입없던 색동 저고리 모습을 금방 떠올리게 만들었다. 지끈 거리던 머리도 잉카인들의 복식을 만나면 눈이 번쩍 띄는 것이다. 이들이 안데스에서 생계 수단으로 키우는 알파카나 야마 등 동물들은 말라이쉬 땅 속 깊이 매장 되었던 유물들이 몽골로이드를 따라 안데스에서 진화한 실체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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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라이아쉬 계곡에서 한데 모여 살면서 늘 그들 머리 위로 커다란 날개를 펼치는 독수리를 보고 살았을 것이며, 숲과 들에 나가 사냥을 하며 토끼나 순록이나 늑대등을 잡으면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한편 북을 만들기도 하고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들 원시 부족들도 죽음을 맞이하는 건 마찬가지였고 수천 수만년 전에도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떨며 아침이면 하늘에 뜨고 저녁이면 계곡 너머로 사라지듯 저물어 가는 태양과, 밤하늘 가득한 은하수와 달을 보며 그들을 지키는 위대한 영혼이 그곳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먹을 것을 충족해 주는 대지의 신들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하고 기뻐하며 춤을 추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낮이면 태양이 비쳤던 그 하늘 저 너머에서 이 땅에 온 사람들이자 생명을 다하면 다시 그 하늘 저편으로 돌아갈 것으로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낳아준 피안의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꿈 같은 시간은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겨우 흔적만 내밀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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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이아쉬 유적지에서 몽골로이드가 최초의 문명인 선조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해도 여전히 우리 몸 속에 내재한 영혼들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다시 안데스를 너머 치바이로 가는 좁은 비포장 도로는 먼지를 펄펄 날리고 있었다. 그 흙먼지는 길 옆에 난장을 펼쳐둔 인디오들을 덮치며 안데스의 흙먼지와 그들의 피부 색깔을 똑같은 색깔로 입혀 놓았다. 검지도 그렇다고 우리 피부색 처럼 누렇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느새 안데스의 화산이 내 뿜은 흙먼지 색깔과 같이 까무잡잡하게 변하고 있었다. 치바이 골짜기 호텔로 들어서는 순간 밥을 먹는둥 마는둥 금새 잠이 들었고 이른 아침 먼 동이 트기도 전에 가이드가 문을 두들겼다. (부에나스 디아스 세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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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에나스 디아스 좋아 하시네...ㅜㅜ) 좋은 아침이 아니었다. 아직도 하루 하고 반나절은 더 자야할 것만 같았다. 통나무로 잘 지은 방이었지만 난방은 형편이 없었다. 다만 드꺼운 알파카 담요 두장을 코끝까지 뒤집어 쓰면 금방 온 몸이 따뜻해져 왔지만 방안은 냉기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런 대우는 꼴까 협곡 관광에 나선 이방인들에게만 제공되는 특별한 것이었지 안데스 자락에서 밤을 세운 대부분의 인디오들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들은 인간이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은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이었고, 어쩌면 안데스는 2만년전 그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해 온 이후 가장 살기좋은 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늘 자신들이 떠나온 고향땅을 그리워 하는 한편 고향땅 하늘위를 맴 돌던 커다란 독수리를 통해 안부를 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독수리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하늘의 메신저'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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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이에서 이른 아침 모닝커피로 속을 깨우는 동안 꼴까 협곡이 있는 안데스에 황금빛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빛은 말라이아쉬 골짜기에서 본 여명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고 치바이 골짜기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빛을 비추며 사람들을 깨우고 있는 것이었다. 해가 뜨면 일터로 나가고 해가지면 집으로 돌아와 안식을 취하게 하던 그 태양이었다. 태양은 이른 아침 모닝 커피로 속을 달래고 있었던 것 처럼 안데스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인디오 부족들도 안데스 비탈에 일구어 놓은 농사와 알파카나 비꾸냐 등에게 먹이를 주고자 마을을 나섰을 것인데, 치바이 골짜기를  출발한 작은 버스는 꼬불꼬불한 계곡을 따라 먼지를 폴폴 날리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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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병풍처럼 둘러쳐진 안데스 아래로 인디오들이 일구어 놓은 밭들이 바람에 떠밀린 물결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손바닥만한 땅이라도 경작지가 될 수만 있다면 비탈을 모두 개간하여 먹거리를 만들어 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깊은 협곡 골짜기는 그렇게 만들어진 밭들이 층층으로 쌓이며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었는데 이 골짜기를 따라 내려가면 안데스 독수리가 살고 있는 꼴까 협곡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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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을 안내해준 예쁜 세뇨리따는 안데스 독수리를 만나기 위해 이른 아침 서둘러 일행을 깨웠고 피곤에 지친 우리를 향해 부에나스 디아스! 하며 아침 인사를 건네며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던 것이나 피곤은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세뇨리따는 피곤을 깨우는 한마디를 했다. 서둘러 가지 못하면 안데스 독수리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뭥미?...ㅜ) 대한민국에서 태평양을 건너 그 먼길을 안데스 독수리를 만나려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독수리를 만날 수 없다니!...귀가 솔깃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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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독수리들은 오전 한차례 먹이사냥에 나서는 등 짧은 시간 협곡을 배회하다가 안데스로 사라지는데 그 시간이 대략 오전 10시 정도 였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안데스 독수리의 습성을 참고삼아 정해둔 시간일 뿐 꼴까 협곡 근처 전망대로 나타나는 것은 독수리 마음대로 였다. 그러나 세뇨리따가 실망스러운 말만 할리가 없었다. 여러분들중에 행운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면 독수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말에 안도 했다. 열댓명의 일행중에 모두 불행을 타고난 사람들이거나 나쁜짓만 골라서 한 사람들만 아니면 안데스 독수리가 나타날 게 틀림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독수리가 나타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관광객을 실어나를 이유가 있겠나 싶었지만 실제로 허탕을 친 사람들이 적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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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ñón del Colca는 3,207m에 달하는 세상에서 제일 깊은 협곡이라고 했지만 막상 골짜기를 들여다 보는 순간 도무지 깊이를 알 수 없을 것만 같기도 했고, 손에 금방 잡히기라도 할듯 눈 앞으로 거대한 장관이 펼쳐지는 순간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협곡 어디에선가 둥지를 틀고 있던 안데스 독수리가 상승 기류에 몸을 내 맡기며 우아한 비행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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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 태어나서 비행기를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데스 독수리의 날개짓을 보니 비행기는 장난감 처럼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안데스 독수리는 한순간 나의 혼백을 쏙 빼 놓고 있었다. 3m도 넘어 보이는 거대한 날개짓은 단 한차례 만으로 협곡 이쪽에서 저쪽으로 미끌어지듯 비행하기도 했고, 한순간에 하늘 높이 솟구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숨을 꼴까닥이며 내 곁으로 다가서는 안데스 독수리와 마주치며 놀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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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쇼 하듯 순식간에 내 머리 바로 위로 다가서는 독수리 한테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훡~훡~ 나며 머리카락을 날리는가 싶더니 이내 사라지고 있었다. 카메라가 미처 그 모습을 담기도 전에 저만치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른 아침 세뇨리따가 일러준 부에나스 디아스가 딱 들어맞는 행운이었고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겪는 일이었다. 안데스 독수리가 일행 등에게 보여준 비행쇼는 아주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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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잘 조련된 동물이 꼴까협곡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인사차 비행쇼를 펼쳐보이는듯 안데스 독수리는 10분도 채 안되는듯한 시간동안 협곡을 선회비행하거나 솟구치는듯, 다시 곤두박질 치는 시범을 보인후 상승 기류를 타고 하늘 높이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동안 숨을 쉬고 있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내 카메라에 안데스의 독수리 우아하고 카리스마 넘치며 귀족적인 풍모를 남겨준 것이다. 정말 꿈 같은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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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트레일 마지막 날 우르밤바 강 옆 테레사 마을에서 야영을 할 때 젊은 가이드가 침을 튀길 정도로, 안데스 독수리의 정체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누가 그의 이야기를 믿기나 하겠나? 사람들은 그저 가이드가 하는 말이 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설 정도로 생각할 것이며 단군할아버지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허무맹랑한 이야기 처럼 듣고 신화로 여길 것이었다. 나 역시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나 문헌을 통해 익혀온 지식 등에 따라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 치기도 했지만 독수리는 그저 제국주의자들이 즐겨쓰던 문장이나 신앙심을 일깨우는 모티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막상 내 머리 위를 스치듯 지나가는 안데스 독수리를 만나는 순간 독수리는 그저 하늘을 나는 조류가 아니라 하늘에서 땅을 굽어 살피며 땅을 지배하는 동물 그 이상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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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독수리의 등에 업히면 그들 조상 대대로 태양신에 감사의 절을 올렸던 제단으로 갈 수가 있었고 그 제단은 하늘과 가까운 공중도시 마츄피츄였던 것이다. 안데스에 살고있던 인디오들의 소원은 살아 생전에 마츄피츄를 순례 하는 게 소원이었고,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하는 날 다시금 자신의 영혼을 하늘 저편으로 데려다 줄 성스러운 존재가 바로 안데스 독수리였던 것이다. 육신이 섬기는 하늘과 마음이 섬기는 하늘을 동시에 가지고 살았던 그들도 피안의 세계를 그리워 하긴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오늘날 동토로 알려진 시베리아의 한 산골짜기나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베링해를 넘어 신대륙에 발을 디딘 몽골로이드의 운명은 우리들의 맥박이 다하는 것 처럼 어느날 갑자기 멈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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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신대륙이 확인된 지 얼마 안 되던 1511년, 파나마에 정착한 스페인인들 사이에 굉장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전설적인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남쪽으로 며칠만 항해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유한 나라가 있다"는 소문이었다. 향신료를 찾아 나선 모험가들이자 아메리카 대륙의 침탈자들이 이런 소문을 듣고 가만히 있을리 없었다. 그들은 실제로 멕시코 아즈텍의 왕인 '목테수마 Moctezuma' 왕이 금 위를 걷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보다 부유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나라는 오늘날 페루의 고도 '꾸스꼬 Cusco'가 중심이 된 잉카제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설같이 신비한 이 나라는 황금이 너무 흔해서 말 그대로 황금 보기를 돌처럼 한다는 소문이었다. 그곳은 안데스에 살고있던 인디오들이 자나 깨나 가고 싶어하는 황금의 사원이 있는 곳이자 태양의 제단 마츄피츄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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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을 만든 잉카문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잉카문명의 일반적인 견해 등에 따르면 잉카 이전 문명은 초기 농경기(기원전 2500~기원전 900년경)로 규정하고 있고, 페루 북부에 있었던 차빈문명(기원전 900~ 기원후 200년)을 문명 형성기, 기원후 200~600년을 기원후 200~600년을 고전기로 부른다. '고전기'라는 표현은 미국의 일부 학자들이 멕시코와 페루 원주민 문명의 문화 및 물질적 발전의 절정기를 설명할 때 사용되는데 일부 학자는 '만개기'라고도 부른다. 잉카문명이 활짝 피었을 때며 이로 부터 약 1,000년 후 황금의 나라 잉카의 맥박이 멈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안데스 독수리 외 세상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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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각 파나마를 출발한 스페인의 '피사로' 일당들은 1532년초 페루 북부 해안지대의 '뚬베스'에 상륙하는 한편, 그해 11월 '까아마르까'에서 잉카의 황제 '아따왈빠'를 납치하여 처형해버렸다. 그들은 아따왈빠를 처형하기전 꾸스꼬에 입성할 당시 '선교'를 목적으로 방문했다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한편 계획에 의해 아따왈빠를 인질로 삼은 뒤 황금의 사원에 있는 빈방에 황금을 가득 채우면 풀어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황금을 가득 채운 뒤 그들은 약속을 어기고 아따왈빠를 처형하고 말았다. 이로써 잉카제국의 고전후기는 기원 후 600년부터 1532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는 한편 전설로 전해오던 황금의 나라 잉카제국은 약 1,000년 동안의 영화를 누린 후 스페인의 손아귀로 넘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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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 등에 대해 하늘을 날고 있던 안데스 독수리가 모를리 없었다. 안데스를 중심으로 페루 북부 해안을 따라 약 600km에 걸친 모체 문명에서 부터 띠띠까까 호수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잉카 문명은 최고지도자를 뜻하는 '잉카 Inca'를 내세운 이후 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그가 태양신의 후손이자 창조주 임을 굳게 믿었고 황제의 권위는 절대적이고 무한하며 신성시되었다. 그런 잉카제국의 황제가 어느날 안데스 자락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요즘 말로 '듣보잡'이었던...)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총 까지 들고 나타나 아따왈빠를 죽이고 말았으므로 잉카 제국의 시민들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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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그들의 삶이자 신앙이었던 황제의 죽음과 함께 대를 이어 숭배해 오던 제단이 쓸모없게 되었고 안데스 하늘을 날아 다니며 그들의 소원을 실어 나르던 안데스 독수리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대신 스페인이 강제한 종교 카톨릭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으나 여전히 안데스 자락의 성당에는 독수리가 날아들 곳이 못되었다. 그로 부터 약 500년에 걸쳐 정복자들로 부터 피비린내 나는 살륙과 침탈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며,용케도 그들을 피해 살아남은 자들은 안데스 깊숙한 골짜기로 몸을 숨기며 숨죽이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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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미여행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잉카제국이 사라진 것에 대해 매우 분노하며 슬퍼했고, 잉카제국의 시민들이 황제와 제단을 잃고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것 처럼 펑펑 울었다. 침탈자들은 황금을 차지하기 위해 아따왈빠를 죽였지만 사실은 황금 때문에 눈이 멀어 인류문화사 전부를 절단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오늘날 밝혀진 인류문명의 시원이 시베리아 벌판이었고 그곳이 바이블의 창세기가 말하는 에덴동산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더라면, 감히 인류의 희망을 빼앗는 것과 다름없는 무식한 행동을 감행했을리 없었을 것이며 세상 곳곳에 정체성도 없는 우상인 교회 건축물을 통하여 사람들을 미혹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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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까 협곡을 찾아 나서는 길이나 안데스 독수리를 조우하고 아레끼빠로 돌아오는 작은 버스 속에서는 '엘 콘도르 빠사 El Condor Pasa'가 쉼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이 음악의 원래 노랫말은 펄사이먼과 아트가펑클에 의해 유명해졌지만, 노래 제목 처럼 안데스 독수리는 이제 더 이상 꾸스꼬나 마츄피츄 또는 인디오들의 영혼을 하늘 저편으로 실어나를 수 없어서 겨우 살아남은 몇몇의 인디오들과 함께 세상에서 제일 깊은 협곡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와 함께 마츄피츄에 살던 잉카의 시민들도 어느날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상에서 할 일은 잊은 안데스 독수리는 그렇게 주인을 잃었고 그 주인들을 보고 싶어 찾아온 이방인들을 위로라도 하듯, 꼴까 협곡에서 짧은 시간 모습을 드러내며 하늘 저편으로 다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 세계를 지배하는 동물은 뱀이었으며 땅을 지배하는 동물은 퓨마였고 하늘을 지배하는 동물은 독수리였다는 희망의 모티브는, 세상에서 제일 깊은 곳에서 잠들며 치바이 골짜기의 아침을 깨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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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개의 하늘이 있다. 그 하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Sky)과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늘(Heaven)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은 우리가 늘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이며,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따라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볼 수 있는 세계며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피안의 세계와 다름없다. 따라서 한시적으로 세상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경하며 세상에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 세상으로 가는 길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있다면 또 어떤 방법으로 그 세계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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