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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MERICA

사라진 '인디오'의 산 피츠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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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인디오'의 산 피츠로이
-남미여행시 알아두면 좋은 아메리카 원주민 십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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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태운 버스가 파타고니아 땅 엘찰텐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가슴이 쿵쾅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일부러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시선을 끌어 당기고 있는 마력의 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멀리서도 뚜렷한 모습으로 나를 압도한 산은 그저 보기만 해도 무릎을 꿇어야 할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고, 그 어떤 앙탈이나 짜증이나 분노나 시기나 미움이나 질투 등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악한 기운을 한순간에 물리칠 수 있는 영험함이 배어나는 산이었다. 실로 웅장한 '피츠로이 Fitz Roy(3,375m)' 암봉과 그 곁에 우뚯 속아있는 '세로 토레 Cerro Torre(3,133m)'가 바로 그 모습이었고 그의 마력에 이끌려 다시금 장도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피츠로이와 세로토레는 안데스를 중심으로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국경을 이루는 곳에 우뚝 서 있고, 이 땅에서 살던 원주민이었던 인디오의 모습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리고 이방인들의 발길을 허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남미 땅 그 어느곳을 돌아봐도 반드시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인디오의 존재며 수탈과 살륙이 남긴 슬픈 흔적들이다. 이러한 사건은 신천지가 서구에 알려지고 난 이후 약500년전 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변함없이 역사를 굽어 살피고 있는 안데스의 영산 피츠로이와 세로토레였던 것이다.

침탈자들이 이 땅을 황칠하고 정복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이 땅에 살고있던 인디오들의 영혼까지 정복하는데 실패했다고나 할까? 인디오들로 부터 '담배 피우는 산'으로 이름 붙여진 산들이 피츠로이 등으로 개명되었지만 먼 발치에서 이 봉우리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닫히고 혼탁하기만 했던 마음들이 한순간에 맑아져 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영혼들은 여전히 안데스 곳곳을 서성이며 약 2만년전 그들 선조들이 신천지를 찾아 나선 이래 신천지를 지켜오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이 땅에 초대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신천지에 발을 디뎌놓는 순간, 누군가에 의한 강한 이끌림을 느끼며 전에 와 본듯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기시감 旣視感' 또는 '데자뷰 Déjà Vu'로 불리는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체험한' 또는 '이전에 본'이란 뜻으로 최초의 경험인데도 불구하고, 과거에 이와 같은 경험을 경험한 것 같은 착각을 일컫는 말이라고 하며 프랑스의 심리학자 '플로랑스 아르노 Florance Arnaud'에 의해 "인간의 뇌는 일상생활에서 엄청난 양의 기억을 저장하는데, 이 엄청난 양의 기억을 저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일상생활에서의 기억을 간략하게 저장하는데, 간략하게 저장된 엄청난 양의 정보는 비슷한 기억이더라도 인간의 뇌는 같은 기억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견해"를 내 놓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심리학자들이나 종교학자 또는 종교인 신앙인 철학자 등 인류문화사가 정리된 이후 특정인의 학문 등은 주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수도없이 봐 왔다. 차라리 물질의 현상을 두고 비행기가 양력을 이용하여 하늘을 나를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에 대해서는 200% 인정하고 동의 하지만 비물질인 심리 내지 영적활동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특정 현상으로 규정 짓기엔 수수께끼가 너무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세로토레와 피츠로이 암봉군을 곁에서 한번이라도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마치 자신이 철편(Fe)이 되어 무작정 자력에 이끌리는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고 그때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한 화학적 성분이 철로 인해 이끌림을 받는다는 것과 유사한 가설을 세우고 주장하면 그게 학문이 되는 것일까?    
   




Cerro Torre y Fitz Roy del Patagonia/Argent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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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찰텐으로 가는 길목에서 본 '세로토레 Cerro Torre'(좌측암봉군)와 '피츠로이  Fitz Roy'(우측암봉군)의 모습이다. 세로토레는 '지구촌의 마지막 비경'이라 일컫는 '또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칠레)에 위치한 암봉이다. 2004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誌가  선정한 '지구 상의 10대 낙원' 중 하나가 바로 이곳이다. 아쉽게도 나는 시간적 여유 등으로 인해 또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트래킹으로 세로토레 비경을 만나지도 못했고 피츠로이를 먼 발치에서만 바라봤을 뿐이다. 따라서 다시금 장도에 오르며 짐을 꾸리고 있는 것이다.


연계 포스팅
 
언제봐도 황홀한 '피츠로이' 가는  / 바다로 흐르지 않는 강, 리오 피츠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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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cerro Torre es una montaña ubicada en una zona no demarcada de la frontera entre la Argentina y Chile, por lo que ambos países lo consideran como parte de su territorio. Es el pico más alto de una cadena de cuatro picos: cerro Torre, Torre Egger, Punta Herron, y cerro Standhart, con una altura de 3.050 msnm.


Por mucho tiempo fue considerada la montaña más difícil de escalar del mundo, principalmente porque no importa por donde se la encare, habrá que subir por un paredón de al menos más de 800 metros de granito. Y por las pésimas condiciones climáticas, y la variabilidad del clima hacen poco posible planificar un ascenso de muchos días. Luego de varios intentos por escalar hasta la cumbre y polémicas que duraron décadas, fue finalmente Casimiro Ferrari el que en 1974 y junto a otros escaladores los que lograron escalar hasta la cumbre real, incluyendo el mítico hongo somital, su punto de máxima altura.


Werner Herzog
hizo una película llamada "Grito de piedra" o Cerro Torre: Schrei aus Stein (1991) dedicada casi completamente a la montaña.

El cerro Torre esta en el área determinada entre los paralelos de latitud Sur 49°10'00" y 49°47'30" y los meridianos de longitud Oeste 73°38'00" y 72°59'00", correspondiente a un territorio rectángular que va desde pocos kilómetros al sur de la cumbre del cerro Fitz Roy hasta el cerro Murallón, se encuentra sin demarcar y fue determinada por el Acuerdo para precisar el recorrido del límite desde el monte Fitz Roy hasta el cerro Daudet, firmado en Buenos Aires el 16 de diciembre de 1998. El límite en la zona fue establecido por el tratado de 1881. (Véase: Litigio del Campo de Hielo Patagónico Sur).<wikipedia cerro Torre >

Elevación 3.133
Ubicación Bandera de Argentina Argentina Bandera de Chile Chile (en litigio)
Cordillera Andes
Coordenadas 49°19′S 73°10′O / -49.317, -73.167
Primera ascensión Primer ascenso por Casimiro Ferrari y cia. en 1974, quienes llegaron a la cumbre del hongo somital, altura máxima del cerro.
Ruta más fácil roca / nieve / hi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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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인디오'의 산 피츠로이
-Cerro Torre y Fitz Roy del Patagonia/Argentina-


참 이상도 하지?...
나는 생전 한번도 가보지 못한 엘찰텐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
엘찰텐 뒷동산으로 늘 소풍을 다닌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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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은 우기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바람이 휘몰아 치고 있었다.
바람이 얼마나 자주 심하게 불었으면
나무들은 고개를 돌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고
깍아지른 암봉 꼭대기에서는 쉼없이 눈가루가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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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길게 닿은 아버지는 그 눈가루를 바라보고 있었고
 곰방대의 대통에 담배불을 붙이고 계셨다.

매일 보는 풍경들 중에 암봉 꼭대기에서 날리는 하얀 눈가루와
담배연기는 언제나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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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봉이 담배를 피우는 건지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 건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늘 아버지가 떠 올랐고
아버지를 볼 때 마다 눈가루 휘날리는 암봉이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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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새삼스럽게 윤회를 경험하고 있었다.
육신이 생명을 다하고 나면 또다른 삶을 거듭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인간의 삶을 경험한 후에 미물로 태어나는가 하면
세상에서 지은 업 등으로 인해 육축 등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독교를 대입하면 '예수천당 불신지옥'과 같은 등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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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서는 이렇게 순환되는 삶 때문에
 착하고 선한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있고 악한짓을 하지말라고 가르치고 있었고
성자들은 몸소 실천적인 삶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런 삶을 버리도록 강요하는 사람들로 인해
반드시 피해를 입고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들이 바로 '아메리카 원주민 Native America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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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어느곳을 다녀봐도 인디오들의 이름을 남긴 흔적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가는 곳곳 마다 이방인들이 붙여놓은 이름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과 비옥한 땅을 황폐하게 만든 사람들이었고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천지를 만난 이후 오늘날 까지
세계 도처에서 노략질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이블을 앞세워 개종에 앞장선 서구의 기독교인들이자
신성한 땅을 피로 물들인 침탈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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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500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그들의 잔학상 등을 고발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은 최소한 100년 동안 역사를 왜곡해 왔고
현재 까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각 분야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꿈꾸고 있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땅을 정복하는 게 그들이 믿는 교리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먼저 말뚝을 박는 사람들의 소유가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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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십계명을 돌아보면 오늘날 인류가 처한 위기 대부분을 서구의 침탈자 또는
 기독교를 앞세운 사람들로 인해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철저하게 자연을 숭배한 인디오들의
 '위대한 영혼 Great Spirit'에 견줄 수 없는 가치가 사라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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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오들의 삶은 자연 그 자체였고
그들의 신앙은 대지에서 우러났다.

'아메리카 원주민 십계명 Native American Commandments'을 돌아보면
 (내셔널지오그라픽 포터그래퍼이자 작가인 '하비 아덴'과 '스티브 월'의 공동저서 Meetings With Native American Spiritual Elders)
오늘날 우리 인류의 정신적 갈등과 기후변화 등 자연의 변화에 골몰하고 있는 원인 등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은 결코 남의 땅을 노략질 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고
스스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간 위대한 인디오부족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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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 십계명
-Native American Commandments-


첫 번째,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The Earth is our Mother; care for Her.)

만물을 보듬는 지구의 맥박이 곧 나의 맥박임을 알라.
대지를 어루 만지는 그 고요한 맥박이 곧 나의 실존임을 알라.
대지를 공경하라.
잘 보살피라.
절대 훼손하지 말라.

 '위대한 영혼'의 반려자인 어머니 대지를 정성으로 보살피라.

Treat the Earth and all that dwell thereon with resp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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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대의 모든 관계를 공경하라.(Honor all your relations.)

나무와 동물과 새들, 그리고 벌레와 나비와 곤충들,
그리고 달과 별과 주위의 사람들,
이 모든 관계가 바로 하나의 커다란 거미줄이다.
 '생명의 거미집 Web of Life'은 우리 모두가 짜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이다.

관계란 나의 거울이다.
모든 관계 속에서 나를 보며,
내가 바로 그 관계임을 알고 공경하라.

Show great respect for your fellow be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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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그대의 마음과 영혼을 '위대한 영혼'께 활짝 열어 놓으라.(Open your heart and soul to the Great Spirit.)

이 세상 만물은 제각각 작은 혼을 갖고 있다.
하늘도 구름도 달도,나무도 풀도 돌도, 그리고 모든 짐승과 사람들 모두
 제각기 모두 자기의 혼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혼은 저 '위대한 영혼 the Great Spirit'으로부터 온 것이다.
잠시도 잊지 말고, 늘 위대한 영혼 곁에 머물며 올바르게 행동하라.


Do what you know to be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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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모든 존재를 공경하라.( All life is sacred; treat all beings with respect. )

생명은 빛의 발현이다.
태초에, '생명의 북'이 '세상의 리듬'을 만들어 냈다.
우린 모두 그 생명의 북이 치는 장단에 맞춰
생명의 빛 속에서 춤추는 고귀한 존재들이다.

어느 생명도 귀하지 않은 게 없다.
그 무엇 그 누구에게도 절대로 해를 끼치지 말라.

Work together for the benefit of all Mank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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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대지로부터 꼭 필요한 것 만 취하고 그 이상 얻어내지 말라.(Take from the Earth what is needed and nothing more.)

땅은 우리의 요람이다.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이다.
어머니는 우리가 뭘 필요로 하는지 이미 잘 알고 계신다.

 이 땅의 모든 거룩한
존재들을 위해 젖과 꿀을 아낌없이 내어 놓는 어머니로부터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하라.
그리고, 늘 서로 돕고 친절 하라.

Give assistance and kindness wherever nee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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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만인의 '공동선 共同善'을 위해 필요한 일을 하라.(Do what needs to be done for the good of all.)

나의 작은 이기심을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를 위해 아낌없이 땀 흘리라.
'생명의 거미집'은 각자의 부지런함으로 더더욱 견고하고 풍요로워진다.

Dedicate a share of your efforts to the greater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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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새 날이 밝을 때마다 늘 위대한 영혼께 감사기도를 올리라.(Give constant thanks to the Great Spirit for each new day.)

아침에 눈을 떠 해 뜨는 걸 보며,
내 들숨과 날숨 속에 늘 함께 하는 그 위대한 영혼의 맥박에 감사하라.
생명의 북을 울려 세상의 리듬을 고르게 하시는 '주主',
그 위대한 영혼에 감사하는 마음을 한시도 놓치지 말라.
 
Remain close to the Great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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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오직 진실을 말하고, 남 잘되길 바라는 말만 하라.( Speak the truth; but onl y for the good in others.)
 
말은 맥박의 발현이다. 말은 씨앗이다.
가능하면 침묵으로 일관하라.
감사삼매와 공경삼매 속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우라.
하지만, 꼭 말이 필요할 땐 오직 진실을 말하라.

그리고, 타인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말만 하라.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다.

Do what you know to be 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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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자연의 리듬을 따르라. 해와 함께 일어나고 잠자라.(Follow the rhythms of Nature; rise and retire with the sun.)

나는 작은 자연이다.
자연이 고스란히 들어와 있는 게 바로 나다.

해 뜰 때 일어나고, 해 질 때 잠들라.
해는 어머니 대지를 비추는 위대한 영혼의 거울이다.
해와 대지의 리듬에 순응해 몸과 마음을 순화하라.

Look after the well being of mind and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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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삶의 여정을 만끽하라. 그러나, 삶의 흔적을 남기진 말라.(Enjoy life's journey; but leave no tracks.)

내 위 아래, 내 앞 뒤에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움 속을 걸으라.
Walk in the Beauty!
 알고 보면 모든 게 아름다울 뿐.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답게 살라.

위대한 영혼의 북 장단에 맞춰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라.
그렇게 살다, 위대한 영혼의 품 안으로 다시 돌아 갈 때,
굳이 발자취를 남기진 말라.

Take full responsibility for your a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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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츠로이 암봉이 빤히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를 굽어 보고 있는 커다란 암봉우리를 살피며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한 잠시 우리는 대자연의 품에 안겨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찾지못한 가치가 파타고니아 땅에 있었던 것이며
그 암봉은 비글호의 선장 '로버트 피츠로이 Robert FitzRoy'의 이름을 따서 피츠로이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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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로이 뿐만 아니라 대다수 서구인들이 이 땅에 발을 디디면서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의 지명들은 그들이 명명한대로 불리워졌고
자연과 함께 살아오고 살았던 인디오들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만 것이다.

그들이 신천지에서 본 인디오들은 미개인들과 다름 없었다.
그 중에 피츠로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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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쳔이며 과학자였던 피츠로이는 젊은 나이(23살)에 비글호의 선장이 되어
 '찰스다윈 Charles Darwin'과 함께 'HMS 비글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여 비글해협에 도착할 때 까지
그 스스로 자신과 미래에 영향을 끼칠 운명들에 대해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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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은 다윈이 비글호에 함께 승선하면서 부터 뒤틀리기 시작했다.
피츠로이와 다윈의 공동저서인 'HMS 비글호 탐사의 항해 이야기
, Narrative of the Surveying Voyages of His Majesty's Ships Adventure and Beagle'는 3권으로 이루져 있는데
3권 짜리 책 속에서 비글호의 탐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 중 3권째 이야기는 다윈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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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질학을 통해 창조론을 증거해 보이려던 피츠로이는
 다윈에 의해 꿈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그가 다윈에게 선물한 한권의 책 때문이었다.
그 책 이름은 '지질학의 원리(Principles of Geology)'였다.

그들은 비글호를 타고 함께 아메리카 대륙 탐사에 나서는 한편 갈라파고스 군도까지 진출했는데
다윈의 시각은 피츠로이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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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로이는 화산활동이나 홍수같은 자연의 현상들을 바이블을 통해 재구성(증명)해 보려고 했던 것과 달리
다윈은 지구에 생존한 생명체들이 어느날 창조된 게 아니라
자연의 변화에 따라 서서히 진화되어 왔다고 한 사실이다.
자연이 종種을 선택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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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 6월, 다윈이 종의 기원에 관한 그의 책을 출판(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Origin of Species)한 이후
피츠로이 등은 '다위니즘 Darwinism' 때문에 거의 돌아버릴 지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창조론을 신봉하던 그에게 다윈이 제시한 세로운 학설은 많은 논란을 불러왔고
이 책은 출간 즉시 당시의 종교적인 믿음과 모순된다는 이유로 큰 논쟁을 일으켰다.
피츠로이가 다윈과 함께 탐사에 나선 결과였고 지질학의 원리가 변질(?)된 결과였다.

최소한 피츠로이가 다윈과 함께 비글호에 승선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종의 기원과 같은 과학적 사실 등에 대해 바이블의 창조론이 시비에 휩싸이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피츠로이 때문에 새로운 역사가 탄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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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6년 후
 율리어스 캐러스(Julius Carus)는 다윈에게 보내는 사적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1860년 옥스퍼드(논쟁)에서 있었던 영국학술협회의 연합 모임에서
 피츠로이 장군이 당신의 이론처럼
그토록 충격적인 이론에 대한 사실들을 수집할 기회를 당신에게 준 것에 대해
자신의 슬픔을 표현했던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오."라고 말이다.

피츠로이가 거의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고 비글호가 운명을 갈라놓았던 것이며
창조론의 도전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바이블이 보편적인 가치인 것으로 믿어왔던 사람들이나 집단들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 되었다.

<출처
http://www.icr.org/index.php?module=articles&action=view&ID=2488,
 
http://blog.daum.net/bambi1919/3779?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bambi1919%2F3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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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이상도 하지?...

나는 곧 우기가 시작되는 엘찰텐 뒷동산을 트레킹 하면서
피츠로이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숲속을 이리저리 다니며
언제인가 내가 남겼던 발자국이라도 찾는듯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인데
 세상에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도 그러했을 것이다.

여행은 그래서 나(我)를 찾아 떠나는 순례자의 모습과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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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로이가 괴로워 했던 사실은 단지 바이블의 기록이 뒤집히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총명한 과학적 지식은 그 스스로나 영국 왕실로 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와 함께 동행한 다윈이 새로운 사실들을 발표함으로써
그를 이루고 있는 신앙적 정체성은 물론 그 스스로를 외롭게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 God'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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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로이가 다윈과 함께 비글호에 승선한 이후
그토록 후회했다는 다윈에 의해 신의 정체(?)가 밝혀지고 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자연의  선택이었고
인간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대한 영혼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위대한 영혼을 일찌감치 간파한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이었고
그들은 태고적 이래로 부터 '아메리카 원주민 십계명'에 따라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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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츠로이에 더 머물 시간도 형편도 없었거니와
침탈자들로 부터 만신창이가 된 아메리카 대륙에서
위대한 영혼이 깃든 때묻지 않은 대자연을 찾아 다시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곳은 피츠로이와 다윈이 비글호에 함께 승선하여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했던 곳이며
2년에 걸쳐 다윈이 지구땅끝을 탐사한 곳이기도 했다.
비글해협이었다.
<관련 포스팅 지구땅끝 바람나라의 환상적인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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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을 하는 동안 아메리카 대륙은 내게 새로운 감성을 충전해 주었다.
피츠로이가 그랬던 것 처럼 그는 과학적 지식으로 바이블을 재해석 해보고자 하며
신의 영역인 땅의 비밀을 알아 내고자 노력했지만
언급한 바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오히려 그와 동행한 다윈으로 인하여
신앙의 정체성 마저 혼란에 빠지고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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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정은 오늘날 나나 우리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 등은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가치에 따라 변질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현대에 사는 우리는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듯 싶지만
자연의 현상들에 대해 우리 인류는 너무도 무지하며 나약한 존재였다.

피츠로이와 같은 과학자들은 자연의 질서에 대해 도전해 보고 싶고 이해해 보고 싶었지만,
 그들 스스로 한계에 직면했고 그들과 같은 서구인들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있던 인디오 대부분은 살륙당하고 말았다.

남미 땅이나 아메리카 대륙은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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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인디오들의 십계명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대자연에 깃든 영혼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더라면
자연의 위대함에 조금이라도 눈을 떳더라면
자연이 고스란히 내 속에 들어와 있는 게 바로 자신의 모습인 것을 알아챘더라면

현대에 사는 우리들의 삶은
 지금 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풍족한 삶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그저 나의 희망사항이었고 모두 지나간 과거사일 뿐이다.

 피츠로이는 정신병을 앓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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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 신천지를 확인한 서구인들 처럼
여행에 나선 사람들은 무언가 목적이 분명하게 있었을 것이다.

저들 처럼 향신료를 찾아 나섰거나
황금의 엘도라도를 찾아 나섰거나
그 무엇을 찾아 나서던지 반드시 목적하는 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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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땅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고적 모습을 간직한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고
특히 파타고니아 땅에는 자연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피츠로이나 세로토레는 그 중 한곳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생전 경험해 보지못한 초자연적인 현상을 체험하고 있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안사람이 나 보다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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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찰텐 마을을 떠나며 안사람은 피츠로이와 세로토레를 돌아보기를 수십번도 더했고
깔라파테에 다다를 쯤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뒤돌아 보고 또 돌아 봤다.

아마도 이런 체험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이별을 할지라도 겪지않을 경험이었을 것이며
 자신의 혈육과 생이별 하는 순간만큼이나 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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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로이와 세로토래는 우리와 작별을 아쉬워 하며
 다시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장도에 오르기에 앞서 사진첩을 꺼내 들고
우리를 자유하게 한 봉우리를 바라보며 행복해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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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인디오의 영산 피츠로이를 만날 당시
나는 대략 15년에 걸친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피츠로이 처럼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피츠로이는 그런 현상 등에 대해 그와 동행한 다윈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게 옳은 판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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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 중에 윤회를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적지않은 사람들이나 종교관이 다른 사람들은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로토래와 피츠로이 암봉을 먼 발치에서 만나는 순간
 대자연 안데스의 정령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고 굳게 믿게 만들었다.

사라진줄로만 알았던 인디오들의 영혼은
여전히 안데스 자락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여행목적으로 파타고니아로 간 게 아니라
 파타고니아의 위대한 영혼이 우리를 초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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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의 전생은 파타고니아?...^^*)

** 칠레와 아르헨티나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세로토레와 피츠로이 암봉의 본래 이름은 '세로 찰텐 Cerro Chaltén'이었다. 인디오들이 눈덮인 암봉을 감싸고 도는 구름과 바람에 날리는 하얀눈의 모습을 보고 '담배를 피우는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런데 이 지명은 오늘날 '세로토레 Cerro Torre'와 '피츠로이 Fitz Roy'로 둘로 나뉘어졌고, 안데스를 중심으로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각각 한조각씩 나누어 가지고 있다.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를 갖춘 이곳은 세계 10대 낙원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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