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이렇게 만들어 졌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발간을 시작하면서 이와 관련되었거나 반대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띕니다. 논란 가운데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KSOI(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1일 여론조사 결과, 친일 인명사전 발간에 대해 '지나간 역사를 바로잡아 교훈을 얻기 위한 것으로 잘한 일이다'는 응답이 58.6%로 '역사를 무리하게 들춰내 갈등으로 야기하는 것으로 잘못한 일이다'라는 응답 31.8%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나타났구요.'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9.6%였습니다.'잘한 일'이라는 평가는 충청과 호남지역, 20대와 30대의 젊은 층에서 특히 높게 나타나 이명박정부의 세종시 수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도권의 젊은층 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할까요?
잠시 짬을 내어 역사적인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과정을 담은 자료를 대강 정리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국민을 함부로 짓밟는 사람과 산하를 함부로 훼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이렇듯 음지에서 올바른 역사를 세우기 위한 작업을 하는 귀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의 편찬 목적을 보면 친일인명사전 발간 반대를 외치는 일각의 주장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들이란 걸 금방 알게 됩니다. 장문의 내용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으로 이만 물러 가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선조님들이 얼마나 기뻐하실 일인지요. ㅜ...그간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민족문제연구소에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하는 바 입니다. 아울러 스크롤 압박을 견디며 열어봐 주신 네티즌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 사전은 어떤 개인을 단죄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실에 대한 정리와 역사적 평가를 통해 사회의 가치기준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후대에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시적인 충격이 있더라도 과거에 명백히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들은 반드시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하며 또 기억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기 갖은 명분과 이유로 이를 미루고 회피한다면 역사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지속될 것이며, 우리의 후손들까지도 이 문제를 역사의 과제로 계속 떠안고 가게 될 것입니다.또 우리가 일본의 우경화와 퇴행적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응하며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면서도, 이와 표리관계에 있는 내부의 친일문제는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이중의 잣대이며 자기모순이라 할 것입니다. 친일청산이라는 과제는 작게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지만, 크게는 동아시아가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중에서>
해방60주년·을사늑약100주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1차 보고회
2005. 8. 29.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식 순> - 개회 (사회) - 격려사 (조문기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 경과보고 (박수현 편찬위원회 사무국장) / 2 - 기조발표 (윤경로 편찬위원장) / 4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 선정기준 설명 (박찬승 편찬위 상임부위원장) / 8 - 명단 공개 (박찬승 편찬위 상임부위원장) / 17 - 질의 응답 (편찬위원) - 폐회 (사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경과보고
1966년 6월 : (고)임종국 선생 "친일문학론" 출간 2001년 3월 :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이하 편찬위) 준비위원회 구성 전문 분과위원회 : 문학, 미술, 음악, 연극․영화,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 2005년 8월 20일 : 자문위원회, 전체회의 개최. 선정기준과 수록예정자 명단 검토와 논의 2005년 8월 26일 :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1차 명단 최종 확정 2005년 8월 29일 :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1차 보고회 |
•지도위원 : 강덕상(재일사학자), 김삼웅(독립기념관장), 김석범(재일문학가), 김우종(재중저술가), 김윤수(국립현대미술관장), 김창수(동국대 명예교수), 김태영(경희대 명예교수), 김호일(중앙대 명예교수), 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 리중화(재중저술가), 박석무(단국대 이사장), 박영석(전 국사편찬위원장), 박창욱(중국 연변대 교수), 박현서(한양대 명예교수),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변철호(재중언론인),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신용하(한양대 석좌교수), 염무웅(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윤병석(인하대 명예교수), 이연복(서울교대 명예교수), 이우성(성균관대 명예교수), 이이화(역사문제연구소 고문), 이해학(국가인권위 위원), 임헌영(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 주섭일(내일신문 고문), 최병모(변호사), 한상범(동국대 명예교수), 함세웅(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현기영(소설가)
•부위원장 : 김도형(연세대 교수), 김홍명(조선대 교수), 노동은(중앙대 교수), 박찬승(한양대 교수, 상임부위원장), 방기중(연세대 교수), 서굉일(한신대 교수), 안병욱(가톨릭대 교수), 윤범모(경원대 교수), 조세열(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한상권(덕성여대 교수) •편찬위원 :강성률(영화평론가), 김경일(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김기승(순천향대 교수), 김도훈(국가보훈처 전문위원), 김동명(국민대 교수), 김동민(한일장신대 교수), 김상기(충남대 교수), 김상태(서울대 연구교수), 김성보(연세대 교수), 김순석(안동대 연구원), 김승은(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김승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연구실장), 김용달(국가보훈처 연구관), 김용일(한국해양대 교수), 김익한(명지대 교수), 김정인(춘천교대 교수), 김재용(원광대 교수), 김희곤(안동대 교수), 도진순(창원대 교수), 동선희(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박광종(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박수현(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박태균(서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박한용(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박환(수원대 교수), 백동현(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신주백(서울대 연구교수), 안진(광신대 교수), 양병기(청주대 교수), 오유석(성공회대 연구교수), 유은호(민족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 윤선자(전남대 교수), 윤해동(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이경주(인하대 연구교수), 이명화(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이용창(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 이정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이종숙(한양대 연구교수), 이준식(연세대 연구교수), 이진모(한남대 교수), 이태호(명지대 교수), 이효인(한국영상자료원장), 이재명(명지대 교수), 임기환(고구려연구재단 연구실장), 임대식(역사비평 편집주간), 임성모(연세대 교수), 임혜봉(지족암 주지), 장석흥(국민대 교수), 장세윤(고구려연구재단 연구원), 전상숙(이화여대 연구교수), 전우용(서울학연구소 연구원), 정병준(목포대 교수), 정용욱(서울대 교수), 정재정(서울시립대 교수), 정태헌(고려대 교수), 조국(서울대 교수), 주강현(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주진오(상명대 교수), 지수걸(공주대 교수), 최기영(서강대 교수), 최열(미술평론가), 하원호(성균관대 연구교수), 한상도(건국대 교수), 한시준(단국대 교수), 한철호(동국대 교수)
◎ 편찬위원회 구성(2005년 8월 20일 현재)
•위원장 : 윤경로(한성대 총장)
지금 우리는 을사늑약 100년, 일제 강제 병탄 95년, 해방과 분단 60년, 한일협정 40년을 맞아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사의 숙원을 풀기 위한 분수령에 서 있습니다. 이 민족사적인 대 과업 앞에서 먼저 지난 2004년 초 좌초 위기에 직면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사업을 열화와 같은 지지와 성금으로 지켜주신 국민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와 경의의 인사를 올립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역사의 진전과 과거청산을 희원하는 모든 이들의 열렬한 성원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치욕적인 망국을 당한지 95년이 되는 오늘, 그간의 조사결과와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1차 보고를 드리게 된 것을 더욱 의미 깊게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는 시련과 극복으로 점철된 험난한 도정이었습니다. 일제식민지배와 분단, 동족상잔과 독재로 이어진 민족사의 비극은 그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지 못한 채, 아직도 한국사회가 지닌 온갖 갈등과 분열의 연원이 되고 있습니다. 유독 굴곡이 많았던 지난 한 세기였던 만큼 감추고 싶은 오욕의 역사도 상흔처럼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과거사 청산의 열기가 드높은 한편에 여전히 국론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그치지 않는 것도 우리 근현대사가 그만큼 질곡을 겪어왔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러나 감추고 싶고 지우고 싶어도, 덮어서도 잊어서도 안 되는 것이 역사라는 사실-이것이 인류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준엄한 경구는 우리에게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며 자랑스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그 토대 위에 과오를 고백하고 반성할 수 있다면, 뒷날 우리의 후손들은 오늘의 고통스런 결단을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국내외에서 전개된 고난에 찬 자랑스런 항일투쟁의 저편에, 친일이라는 치욕적인 현실도 엄연히 존재하였습니다. 국망의 과정에서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용서하기 힘든 민족반역자가 속출하였으며, 그 결과 초래된 민족적 수난과 고통은 너무나 심대했습니다. 이후 상당 기간 지속된 일제의 식민통치는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지배와 민족말살정책으로 이어졌고, 일본제국주의는 끝내 동아시아와 아시아 나아가 태평양 일대에 걸친 침략전쟁을 야기하여 지구 전체를 파시즘적인 야수의 만행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오랜 시일에 걸친 식민통치와 끔찍한 침략전쟁 수행 과정에서 우리 민족 가운데에서는 불행하게도 이를 도운 부일협력자와 전쟁협력자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습니다. 유례없이 가혹했던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났을 때, 우리 사회는 이들을 숙정할 기회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반민특위의 와해로 상징되는 역사청산의 좌절 이후, 친일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은 역사적 진실을 묻어두기를 강요했습니다. 실로 오랜 기간 친일청산은 이 사회의 금기가 되고 말았으며 이를 언급하는 자체가 곧 용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등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권력도 영원히 진실을 감옥 속에 가둬둘 수는 없었습니다. 동토 아래 언제까지나 은폐될 것만 같았던 어두운 역사는 1966년 용기 있는 한 연구자에 의해 『친일문학론』이라는 이름으로 그 전모의 일단을 드러냈습니다. 이 책은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지면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근대사 이해를 위한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친일문제 연구의 단초를 열고 기초를 닦은 임종국 선생입니다. 우리는 오늘 옷깃을 여미고 새삼 그를 회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여겼으나 마치지 못하고 병고 속에 유명을 달리하면서 후학들에게 물려준 숙제가 바로 친일인명사전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전의 수록예정자를 선정하면서 편찬위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행적에 대해 진지한 자세로 검토했습니다. 본 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많은 자료들을 섭렵하였으며, 특히 숨겨진 항일기록 등 친일의 흔적을 상쇄할 자료들을 찾는 데에도 심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또 선정기준에 대해서는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습니다. 위원회의 이와 같은 신중하고 진지한 자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해방 6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친일청산이라는 민족사의 과제가 이 땅의 화두로 재등장하고 있습니다. 국가가 오욕의 역사에 대해 처음으로 그 실체를 인정하고 국가 차원의 매듭을 짓기 위해 전면적인 조사에 나섰습니다. 이와 더불어 민간의 친일진상규명 노력도 이제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사전편찬사업은 이제 1차 명단의 선정과 함께 바야흐로 본 궤도에 들어섰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난관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여전히 일부 언론과 기득권세력은 과거사 청산을 노골적으로 저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끊임없이 한갓 정적에 대한 인신공격의 수단으로 이 문제를 전락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친일 인물에 대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유족들이나 관련단체들의 압력도 가중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이러한 외압에 결코 흔들림 없이 맡은 소임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다할 것을 국민들 앞에 거듭 천명합니다. 동시에 이번 명단 발표를 후손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삼으려는 어떤 형태의 연좌제적 접근에도 단호히 반대합니다. 민족사의 과제가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 의도에 의해 왜곡되고 변질되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 모두가 함께 지켜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우리는 지금 민족의 새로운 미래가 바라다 보이는 전환기에 서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친일의 주박(呪縛)을 풀고 새로운 역사를 설계해 나갑시다. 역사의 진전을 위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용기와 이를 받아들여 화합하는 관용의 정신이 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지금은 민족의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해 모두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민족에 대해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이들이나 이에 관련된 집단도 진정한 반성과 회오를 한다면 언젠가는 용서를 받고 새롭게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과오를 은폐하거나 미화시키려 한다면 언제까지든 역사의 죄인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친일청산의 대열에 관련자, 관련된 집단들이 먼저 이에 동참해 준다면 이 과업은 보다 쉽게 진척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이 작업이 분열과 갈등이 아닌 반성과 화해에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밝혀둡니다. 끝으로 편찬위원회가 온갖 바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자세로 친일인명사전의 편찬이라는 과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끊임없는 격려와 성원이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민족사에 대한 충정을 가득 담은 정성어린 성금으로 편찬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신 국민 여러분의 지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리면서 위원회의 모든 성원들이 최선을 다하여 과업을 완수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8월 29일 경술국치 95주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성원을 대표하여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윤 경 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
그가 『친일문학론』 서문에서 사죄하며 언급했던 당신 선친의 친일 과오를 이제 우리가 사전에 기록하려 합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얻고자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던가를 자문하면서 자신과 주변에 보다 엄격했던 참다운 역사 연구의 자세를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이정표로 삼고자 합니다. 어느 누구가 감히 역사를 재단할 수 있으며 한 인간의 일생을 쉽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탈각(脫殼)과 우화(羽化)에는 거듭나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며 이를 인내할 수 있는 굳은 의지와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 사전은 어떤 개인을 단죄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 사실에 대한 정리와 역사적 평가를 통해 사회의 가치기준을 바로 세우고, 나아가 후대에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일시적인 충격이 있더라도 과거에 명백히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들은 반드시 기록되고 평가되어야 하며 또 기억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기 갖은 명분과 이유로 이를 미루고 회피한다면 역사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지속될 것이며, 우리의 후손들까지도 이 문제를 역사의 과제로 계속 떠안고 가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일본의 우경화와 퇴행적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격렬하게 반응하며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면서도, 이와 표리관계에 있는 내부의 친일문제는 애써 외면하려는 것은 이중의 잣대이며 자기모순이라 할 것입니다. 친일청산이라는 과제는 작게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지만, 크게는 동아시아가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친일인명사전’ 수록인물 선정기준(총론) [1] (취지와 목적) 이 사전은 일본제국주의의 불법적 국권침탈과 강압적 식민통치, 반인류적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인물의 행적을 조사하고 정리함으로써 역사를 공정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이 사전은 특정 개인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공동체의 아픈 상처를 확인하고 드러내어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발간이 추진되고 있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엄정한 반성을 통해서만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게 될 것이며, 나아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화합과 평화의 미래를 위한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사전은 과거 우리 민족의 내적 허물을 용기 있게 고백하고 반성하여 뒤틀린 한국 근현대사에 정의의 숨결을 불어넣어 더욱 성숙한 역사인식을 진작하는 데 그 취지와 목적을 둔다. [2] (수록대상) 이 사전은 ‘을사늑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ㆍ식민통치ㆍ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끼친 자를 수록대상으로 한다. 매국 행위에 가담한 자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반민족행위자 전부를 수록대상으로 하였으며, 부일협력자로서 일정한 직위 이상은 그 지위에 대한 책임을,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의 경우는 그 사회적 책임을 엄중히 묻는다는 취지에서 수록대상으로 삼았다.
수록인물 선정의 세부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일제의 국권침탈에 협력한 자 (1) ‘을사늑약’ ‘한일합병’ 등 일제의 국권침탈에 적극 협력한 자 (2) 매국의 대가로 작위를 받거나 이를 계승한 자 2. 일제의 식민통치기구에 참여한 자 (1)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또는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한 자 3. 항일운동을 방해한 자 (1) 국권수호 또는 국권회복을 위하여 일제에 대항하여 싸우는 부대를 공격하거나 공격을 명령․권유한 자 (3) 일제에 협력하여 밀정행위로 항일운동을 방해한 자 (4) 항일운동에 참여한 자 또는 그 가족을 살상ㆍ처형ㆍ학대ㆍ체포하거나 이를 지휘한 자 4. 일제의 황민화정책ㆍ침략전쟁에 협력한 자 (1) 학병ㆍ지원병ㆍ징병ㆍ징용ㆍ공출ㆍ국방헌금 등을 적극 선전ㆍ선동하거나 강요한 자 (2)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과 관리에 적극 협력한 자 (3) 침략전쟁 수행을 돕기 위해 1만원 이상의 금품을 헌납한 자 (4) 군수품 제조업체의 책임자 (5) 황민화정책과 침략전쟁을 지원하기 위한 단체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한 자 (6) 문학ㆍ예술ㆍ교육ㆍ학술ㆍ언론ㆍ종교 등의 분야에서 일제의 황민화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 5. 기타 친일행위자 (1)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하여 훈공 또는 포상을 받은 자 중에서 친일행위가 현저한 자 |
1. 기독교 (1)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종교통제 방침에 협력하여 교회의 변질을 주도하고, 변질된 혁신교단, 통폐합된 일본기독교 조선교단, 교파 단위의 정동연맹, 총력연맹, 비행기헌납기성회 등 부일협력 단체의 간부로 활동한 자 2. 천도교 (1) 국민정신총동원천도교연맹(1939.6~1940.11), 국민총력천도교연맹(1940.11~1945) 중앙 조직의 이사장과 상무이사로 활동한 자, 기타 이사․평의원 또는 지방 조직의 핵심 간부로서 친일행위가 현저한 자 3. 불교 (1) 조선불교단(1925), 조선불교중앙교무원(1937.1 이후), 총본산 건설위원회(1937), 조선불교총본사 설립위원회(1940), 조선불교 조계종 총본사(1941) 등의 핵심 간부, 일본불교시찰단(1918.8~9), 북지황군위문단(1937.12~1938.1) 참여자 4. 천주교 (1) 국민정신총동원천주교경성교구연맹,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 등의 핵심 간부 5. 유교 (1) 경학원 사성 이상의 유림 6. 언론 (1) 일진회, 국민협회 등 친일단체의 기관지(국민신보, 시사평론), 총독부 기관지(경성일보, 매일신보), 경성방송국․조선방송협회 등의 핵심 간부 (2) 國民文學, 新時代, 三千里(1937년 이후)․大東亞, 大和世界, 春秋, 朝鮮公論, 朝光(1937년 이후), 東洋之光, 內鮮一體, 綠旗 등 친일잡지의 발행인과 임원 (3) 논설․평론․좌담회․강연회 등을 통해 황민화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언론인 7. 교육·학술 (1) 고등관 이상의 교육관리(시학관, 편수관, 교학관)와 국공립 고등보통학교 이상의 학교장 8. 문학 (1) 2003년도에 민족문학작가회의․실천문학사․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발표한 친일문인 명단을 수록대상으로 한다. 당시의 선정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1937년 이후에 발표된 글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9. 음악 (1) 선정 대상 : 작곡․작사․연주․노래․지휘․평론․선전․음악교육 등을 통해 친일 성향 또는 전쟁협력의 성격이 뚜렷한 활동을 반복적으로 한 음악인과 국민총력조선연맹문화부․조선음악협회․조선연예협회․경성후생실내악단․경성음악연구원․대화악단 등의 친일협력단체에 참여한 핵심 간부. 10. 미술 (1) 1937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인간․사회․윤리․민족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 일제에 유리하고 조선에 불리하게 작용한 모든 미술행위를 검토대상으로 삼는다. 11. 공연예술 (1) 연극, 영화, 악극 등 공연예술계를 검토 대상으로 하며, 작품의 제목만 남아 있을 때에는 당대의 신문 기사와 줄거리, 작품평 등의 보조 자료를 참조하여 친일성 여부를 가린다. 12. 친일단체 (1) 다음 친일단체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한 자 각파유지연맹, 국민동지회, 국민협회, 녹기연맹, 대동동지회, 대동민우회, 대동일진회, 대의당, 대일본흥아회조선지부, 대정실업친목회, 대화동맹, 동광회, 동민회, 시중회, 유민회, 일진회, 정학회, 황도학회 등 13. 전쟁협력 (1) 다음 전쟁협력단체에서 주요 간부로 활동한 자 국민정신총동원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국방의회, 대일본부인회조선본부, 대화숙, 시국대응사상보국연맹, 애국금차회, 언론보국회, 임전대책협의회, 조선국방협회, 조선군사후원연맹, 조선문인협회, 조선방공협회, 조선신문회, 조선임전보국단, 조선지원병제도축하회, 조선춘추회(배영동지회), 지원병후원회, 흥아보국단 등 (2) 전쟁협력을 위한 각종 강연회에 강사로 참여하거나, 전쟁협력을 선전하기 위한 논설ㆍ평론을 쓰거나 좌담회에 적극 참여한 자 (3) 군수품 제조업제의 책임자 (4) 비행기 헌납자, 1만원 이상의 금품 제공자
분야별 선정기준
(2) 언론에 친일논설을 발표하거나 부일협력 강연회나 좌담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한 자
(2) 언론에 친일논설을 발표하거나 부일협력 강연회나 좌담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한 자
(2) 언론에 친일논설을 발표하거나 부일협력 강연회나 좌담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한 자
(2) 언론에 친일논설을 발표하거나 부일협력 강연회나 좌담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한 자
(2) 언론에 친일논설을 발표하거나 부일협력 강연회나 좌담회에 반복적으로 참여한 자
(2) 논설․평론․좌담회․강연회 또는 학술활동을 통해 황민화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교육자와 학자
(3)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자(서기와 촉탁은 제외)
② 식민주의와 파시즘 옹호 여부를 친일의 기준으로 삼았다.
③ ②항 기준의 작품 수 3편 이상을 쓴 문인을 대상으로 한다.
④ 근거자료가 명백한 경우에 국한한다.
(2) 위의 명단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검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문인들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와 심의를 거쳐서 차후에 수록 여부를 결정한다.
(2) 단체의 핵심 간부가 아니더라도 친일 성향 또는 전쟁협력의 성격이 뚜렷한 행위를 반복한 자.
(3) 위 조항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친일 행위가 특히 현저한 경우에도 선정 대상으로 한다.
(2) 친일협력 단체와 기관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미술인, 총후미술전, 결전미술전, 단광회, 조선미술가협회,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부, 종군화가 개인전, 징병제 실시 기념 시화(‘임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등이 검토 대상에 포함된다.
(3) 작품의 소재와 주제가 명백히 일제를 찬양, 고무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창작이나 이론 활동을 수행한 미술인을 대상으로 반복성과 능동성을 고려하여 수록대상을 선정한다.
(2)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식민통치와 황민화정책, 침략전쟁 등을 선전하고 옹호하는 데 가담했는지를 친일성의 주요 기준으로 삼는다.
(3) 친일협력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한 경력을 중요하게 고려하되 주요 친일 행사에서 수상한 실적도 참고한다.
(4) 극작가(희곡과 시나리오)와 연출가(또는 감독)의 경우, 하나의 작품일지라도 친일 성향이 극렬한 경우 대중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수록대상에 포함시킨다.
(5) 무대 미술가·촬영기사를 비롯한 스탭진과 배우의 경우, 능동적으로 수상실적, 출연횟수, 배역의 비중 등과 여타 행적을 고려하여 수록 여부를 가린다.
1. 신문 "대한매일신보" "황성신문" "만세보" "대한민보" "경향신문" "제국신문" "경남일보" "기독교신문" "경성일보""매일신보" "부산일보" "조선시보" "시대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조선중앙일보" "만선일보" "京城新報" "大阪朝日新聞" "讀賣新聞" 2. 잡지 "嶠南敎育會雜誌" "畿湖興學會月報" "大韓自强會月報" "大韓協會會報" "西北學會月報" "西友" "湖南學報" "天道敎會月報"․"新人間"․"開闢" "경학원잡지" "국민총력" "녹기" "대동아" "동광" "동양지광" "동포애" "半島時論" "半島の光" "별건곤" "북선개척" "불교시보" "삼천리" "시사평론" "신동아" "신시대" "신여성" "新興時代" "實業之朝鮮" "愛國" "女性" "儒道" "인문평론" "林鐘" "조광" "조선" "조선경방" "朝鮮經濟雜誌" "조선농회보" "조선사회사업" "조선소방" "조선식산은행월보" "조선실업" "朝鮮之光" "조선지방행정" "조선행정" "총동원" "春秋" 3. 주요 자료 「京城府防護團規定」, 1938 「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趣旨書」․「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1938 「愛國金釵會 趣旨書」․「愛國金釵會 規約」 「전선사상보국연맹 평양지부결성식」(1938.09) 「朝鮮俱樂部創立關係史料」, 1922. 11 「조선신궁봉찬회 창립취지서」, 1933.10.16 "朝鮮に於ける亞細亞主義運動の認識", 朝鮮大亞細亞協會, 1934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 "경제연감" 각 연도판 "高等警察關係年表 高等警察用語辭典" "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組織大綱", 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1938 國民精神總動員忠淸南道聯盟, "國民精神總動員聯盟 要覽", 1939 國民總力朝鮮聯盟, "國民總力聯盟事務提要", 每日申報社, 1941 국민총력조선연맹, "國民總力朝鮮聯盟 役員名簿", 國民總力朝鮮聯盟, 1944 國民總力朝鮮聯盟, "朝鮮に於ける國民總力運動史", 1945 菊池謙讓, "各種の朝鮮評論", 自由討究社, 1931 金子定一, 「日本に對する亞細亞の期待」, 朝鮮大亞細亞協會, 1934 金正明 編, "朝鮮駐箚軍歷史"("日韓外交資料集成" 別冊 Ⅰ, 巖南堂書店, 1967) 金正柱 編, "朝鮮統治史料", 韓國史料硏究所, 1970 김정명, "朝鮮獨立運動" Ⅰ分冊, 原書房, 1967 內鮮一體實踐社, "內鮮一體", 1942 綠旗日本文化硏究所, "朝鮮思想界槪觀", 1939 農商工部水産局, "韓國水産誌" 1집, 1908 大東民友會の結成竝其の活動槪況」, "思想彙報" 제13호, 1937.12 同民會, "同民夏季大學講演集 제1~2회", 發行者不明, 1926 「同民會役員(本部, 1933)」, ("齋藤實文書" 12, 고려서림, 1999) 「同民會創立趣意書․規約書」 ("齋藤實文書" 12, 고려서림, 1999) 東亞經濟時報社 編, "朝鮮銀行會社要錄" 각 연도판 東洋經濟新報社, "昭和十七年版年刊朝鮮-朝鮮産業の共榮圈參加體制", 1942 東洋拓殖株式會社, "東洋拓殖株式會社三十年誌", 1938 尾崎關太郞 編, "朝鮮無盡沿革史", 朝鮮無盡協會, 1934 朴榮喆, "五十年の回顧", 大阪房號書店, 1929 사상보국연맹 광주지부결성대회」(1938.10) 사상보국연맹 신의주지부 임시대회」(1938.12) "商工會議所 百年史", 大韓商工會議所, 1984 細井肇, "滿鮮の經營", 1921 小早川九郞 編, "朝鮮農業發達史", 友邦協會, 1944 修養團朝鮮聯合會本部, "會則諸規程", 1930 守屋榮夫, "祖國日本を護れ", 大日本昭和聯盟京城支部, 1933 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の活動狀況」, "사상휘보" 제20호, 1939.09 殖産銀行調査部, "殖銀調査月報" "亞細亞時論"("黑龍會關係資料集", 栢書房, 1992에 수록) 애국부인회 조선본부, "애국부인회 조선본부 개요", 1941 李寅燮, "元韓國一進會歷史" 全4冊 8卷, 文明社, 1911 田中市之助, "全鮮商工會議所發達史", 釜山日報社, 1936 "조선연감" 각 연도판 "조선경제연보" 각 연도판 조선군사후원연맹, "軍事後援聯盟事業要覽", 1939 "朝鮮及朝鮮民族" 第一輯, 朝鮮思想通信社, 1927 朝鮮金融組合聯合會, "朝鮮金融組合聯合會十年史", 1943 조선산림회, "朝鮮林業逸誌", 각 연도판 조선산림회, "朝鮮山林會報", 각 연도판 朝鮮商工會議所 編, "朝鮮商工會議所一覽", 朝鮮商工會議所, 1938 朝鮮水産會, "朝鮮之水産" 97, 1939 "朝鮮殖産銀行營業報告書" 각연도판 朝鮮銀行史硏究會 編, "朝鮮銀行史", 東洋經濟新報社, 1987 조선임전보국단, "朝鮮臨戰報國團槪要", 1941.10 조선총독부 경무국, 「조선경찰개요」, 1940, 1941 朝鮮總督府 警務局, "最近における朝鮮治安狀況", 1938 朝鮮總督府 內務局, 「朝鮮參政權問題」, 1938 조선총독부 학무국, 「부인문제연구회회칙」, "조선사회교화요람", 1938 朝鮮總督府, "國民精神總動員", 1940 朝鮮總督府, "農業技術官會同諮問事項答申書", 1918 조선총독부, "施政三十年史", 1940 ; 조선총독부, "朝鮮の林業"(1933년판․1940년판), 1933, 1940 朝鮮總督府警務局保安課 編纂, "朝鮮に於ける防共運動", 1939 "朝鮮總督府官報" "朝鮮統治の回顧と批判", 朝鮮新聞社, 1936 中村健太郞(편집 발행), "創氏記念名刺交換名簿", 同民會本部, 1940 中村資良 編, "朝鮮銀行會社組合要錄", 각 연도판, 東洋經濟時報社 韓國殖産銀行淸算委員會, 「殖銀及殖銀傍系會社 所有有價證券明細表」 韓相龍氏還曆記念會 編, "韓相龍君を語る", 發行者 不明, 1941 玄永燮, "朝鮮人の進むべき道", 綠旗聯盟, 黑龍會, "東亞先覺志士記傳", 1935 주요인물 친일행적과 약력 【수작자】 (1) 을사오적 * 이완용(李完用,학부대신) : 1905 을사조약 때 내각총리대신, 1910 한일합방 공로로 훈1등 백작 1921 중추원 고문, 부의장 1920 후작 승급 * 이지용(李址鎔,내부대신) : 1904 한일의정서 협정 조인 1905 내부대신으로 을사조약 체결 1910 훈1등 백작 매국공채 10만원 중추원 고문 * 박제순(朴齊純,외부대신) : 1894 충청감사로 농민군 진압, 을사조약․합방 조약 체결시 참여, 경학원 대제학 1910 자작 훈1등 매국공채 10만원, 중추원 고문 * 이근택(李根澤,군부대신) : 1905 을사조약 조인, 합방 주역, 아들 李昌薰이 습작, 형 근호 동생 근상 합방후 자작. 중추원 고문 * 권중현(權重顯,농상공부대신) : 1904 러일전쟁 때 일본군 위문, 농상공부대신으로 을사조약 체결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5만원, 중추원․조선사편수회 고문 (2) 정미칠적 * 이완용(내각총리대신) : 을사오적 참조 * 송병준(宋秉畯, 농상공부대신) : 일진회 조직, 1910 훈1등 자작과 매국공채 10만원, 아들 종헌 습작. 중추원 고문, 경기도 참사 1920 백작으로 승급, 사위 구연수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 * 이병무(李秉武, 군부대신) : 1884 무과 급제 1896 일본 육사 졸업 1907 군부대신, 정미7적 1910 자작 매국공채 5만원 * 이재곤(李載崑, 학부대신) : 자작. 은사금 5만원. 1910-20.5 중추원 고문 * 임선준(任善準, 내부대신) : 자작. 은사금 5만원. 1910-19 중추원 고문 * 조중응(趙重應, 법부대신) : 민비시해 가담. 고종 퇴위 강요. 1909 친일지 [법정신문] 발간. 자작. 1910-19 중추원고문, 1916 대정친목회 및 한성부민회 회장 일훈 1등 대욱장 * 고영희(高永喜, 탁지부대신) : 1907 이완용내각의 탁지부․법부 대신, 정미7적.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10만원, 고희경 습작(1920 백작으로 승급) (3) 경술국적 * 이완용(내각총리대신) : 을사오적 참조 * 윤덕영(尹德榮, 시종원경) : 1908 시종원경, 1910 자작, 1917 순종에게 일본 왕실 참배 종용, 1925 중추원 고문, 1940 중추원 부의장 * 민병석(閔丙奭, 궁내부대신) : 1906 표훈원 총재 시종원경 겸 내부대신 1909 이토 조문사절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10만원 1911 이왕직 장관 1939 중추원 부의장. 이완용의 妻內從. * 고영희(탁지부대신) : 정미칠적 참조 * 박제순(내부대신) : 을사오적 참조 * 이병무(친위부장관) : 정미칠적 참조 * 조민희(趙民熙, 승녕부 총관) : 1885 문과 급제 후 평안도관찰사, 주일공사. 1910 훈1등 자작 매국공채 5만원, 1919 중추원 고문. 이완용의 처남. * 조중응(趙重應, 농상공부대신) : 정미칠적 참조 (4)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고 귀족이 된 왕실 종친들 * 이재완(李載完)-고종의 종형, 즉 흥완군 최응(最應)의 아들로 대원군의 조카. 1899 궁내부대신 1905 보빙대사로 을사조약 감사 사절단 1910 훈1등 후작, 매국공채 33만6천원 * 이재각(李載覺)-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손으로 完平君 승응(昇應)의 자. 1905 특명대사로 러일전쟁 승전 축하 1910 훈1등 후작, 매국공채 16만8천원. 1935년 사망 * 이지용(李址鎔)- 고종의 종질. 을사오적 참조. * 이기용(李埼鎔)- 흥선대원군의 조카인 完林君의 子, 증조부가 곧 남연군. 8․15까지 생존 1910 자작 매국공채 3만원 1937 조선국방협회와 동요회 발기인 1945 칙선 귀족원 의원 * 이해창(李海昌) : 한성판윤 1907 종1품 1910 후작과 매국공채 16만8천원. 1945 사망 * 이해승(李海昇) : 1910 후작. 매국공채 16만8천원.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5) 친일에 앞장선 순종의 외척 * 윤택영(尹澤榮)- 海豐府院君, 순종의 장인. 1899 시강원 시종관 1910 후작 매국공채 50만4천원, 1927 파산 선고로 실작 * 윤덕영(尹德榮)- 海豐府院君 윤택영의 형. 처 김복완은 애국금차회 회장. 1908 시종원경 1910 자작 1917 순종에게 일본 왕실 참배 종용 1925 중추원 고문 1940 중추원 부의장 (6) 이완용가 관련 친일 인물
李鎬奭 +신씨 李鎬俊+閔氏 李鎬俊 이완용(出)
호준에게 입양함 이완용 +조씨
(系) 이윤용(서자) 升九 +任氏 恒九 + 金氏 명* 병길(系) 병길(出) 병* 병* 병* * 이완용은 본래 이호석과 신씨의 자로 태어났으며 이호준(李鎬俊)에게 입양. 이호준의 아들 이윤용(李允用-이완용의 형이자 궁내부대신, 한성은행 두취 등 역임)이 대원군의 서녀(庶女)와 결혼함으로써 이윤용은 대원군과 사돈관계를 맺음. * 당시 언론에 따르면 이완용의 친인척 중 현직관인이 60명이상에 이른다고 할 정도의 가문으로 성장(『大韓民報』1909.7.27 잡보). 대표적으로는 친인척 중 이윤용(형) • 조민희(처남) • 민병석(妻內從) • 임선준(사돈-큰며느리의 부친) • 이항구(子) 등이 수작자임. 이병길은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1/2 재산몰수형을 받은 바 있다. 【중추원】 * 고원훈(高元勳) 경북 전북. 1926 경북 참여관, 1932 전북 지사, 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1940 중추원 참의 * 김갑순(金甲淳, 창씨명 金井甲淳) : 충남. 1910 아산군수, 1920 총남도평의원, 1921-29 중추원 참의. 1941 흥아보국단 충남도위원, 임전보국단 이사 * 선우순(鮮于筍) : 서울. 1920 대동동지회 회장. 1921 이후 13년간 중추원 참의. 내선일체론 주창. 동생 선우갑(鮮于甲)은 밀정. * 이범익(李範益, 창씨명 淸原範益): 1929 강원지사, 1937 중추원 참의. 동척 감사. 만주국 대부. 해방후 시베리아 압송 * 박두영 : 일본육사 15기. 1932 민생단 단장. 1937-45 참의. * 장직상(張稷相) : 대구,서울. 1924 대구상업회의소 회두 1930 중추원 참의 1940 임전보국단 이사장택상의 장형, 아버지가 왕산 허위의 제자인 박상진에게 피살됨 * 현준호(玄俊鎬) : 광주,서울. 1925 호남은행 대표취체역 1930 중추원 참의 1938 총독부시국대책조사위원. 【제국의회】 * 박영효(朴泳孝) : 1910 후작 1911 조선귀족회장 1921 조선인산업대회 회장 1939 중추원 부의장, 조선사편수회 고문 정2위 훈1등 훈장 * 박춘금 : 1921년 노동상애회 조직 1932,1940 일본중의원 의원. 1945 대의당 당수. 부민관에서 아세아민족분격 대회 개최 【관료】 1) 황국신민화의 선봉에 선 친일 관료 * 김대우(金大羽) : 1928 박천군수 1936 총독부사회교과장 1940 경남참여관 1943전북군수 1945 경북지사. * 이각종(李覺鍾) : 1919 김포군수 1938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상무이사 1941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 황국신민의 서사 작성. 2) 친일관료 출신 역대 장관(1차 명단 포함자에 국한) 역대 내무부 장관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23 현석호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화순군수 국방부 장관, 내무부 장관 역대 재무부 장관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7 인태식 홍천세무서장, 청주세무서장 재무부 장관 11 김영선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진도 군수 내무부 장관, 통일원 장관, 주일대사 역대 농림부 장관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5 임문환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용인 군수
조선총독부 식산국 사무관
조선총독부 광공국 서기관․민정관 농림부 장관 16 이해익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개성 부윤 경기도 도지사, 농림부 장관 역대 건설부 장관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6 전예용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광주 군수
총독부 사회과장, 황해 산업부 농업과장 한국은행 총재, 부흥부 장관건설부 장관 역대 보건사회부 장관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13 김태동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무주군수, 고창군수, 조선총독부 전매국 총무과 사무관 보사부 장관 역대 체신부 장관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16, 17 홍헌표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강서 군수, 평남
도이사관, 함북도사무관, 조선금융조합
연합회 함북지부 감리관, 함북 농상부장 체신부 장관, 성균관대 부총장 18 김홍식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행정과
양덕 군수, 경기 부천 군수 충남 도지사, 무임소 장관, 체신부 장관 역대 시도지사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1 김창영 전북 금산군수, 전남 광공부장 서울시장 이범승 식산국사무관, 물산장려관장,경북이사관 서울시장 2 이해익 강원도청 지방과장, 개성군수 경기도지사, 농림부 장관 7 홍창섭 삼포군수 강원도지사 2 이명구 충북도평의원, 중추원 참의 충북도지사 6 김학응 보은 군수 충남도지사, 충북도지사 7 김홍식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행정과
양덕군수, 경기 부천 군수 충남도지사, 체신부 장관 11 임춘성 전주부 재무과장
장수군수(1940), 김제군수(1942) 전북도지사, 전주시장 1 김대우 평북 박천군수, 중추원 서기관
조선총독부 사회교육과장 경북도지사
전 거
【경찰 】 (1) 일제 경찰간부 *홍순봉: 초산 경찰서장 경부, 만주국 행정참사관. 해방후 6대 치안국장, 헌병학교장 (2) 고등계 경찰 * 김덕기(金悳基) : 평북 경찰부 주임, 고등과장. 1942 평북 참여관 겸 산업부장 1943 평남 참여관 농상공부장관, 독립운동가 오동진선생 등 체포, 반민특위에서 사형 구형. * 김태석(金泰錫, 金村泰錫) : 1923 경기도경찰부 형사과장 1938 경남도 참여관 겸 사업부장 1944 중추원 참의. 강우규선생 체포, 반민특위에서 사형 구형. *노덕술(盧德述, 창씨명 松浦鴻): 1934 평남경찰부 보안과장 1937 경기도경 경부 1945 평남 보안과장, 제1경부 총감부관방장. 사상관계를 다루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 고문. 1949 반민특위 체포. 1950 헌병 중령. 419혁명 후 민의원 선거에 출마. * 전봉덕(田鳳德, 창씨명 田中鳳德) : 1939 일본 고등문관 시험 합격. 1941 평북 보안과장. 1943년 경기도경찰부 수송보안과장. 해방 당시 경시 재직. 1948 육사1기 입학 그해 육군소령으로 입관. 김구 암살사건시 안두희 보호. 1950년 예편 국무총리 비서실장. * 하판락(河判洛, 창씨명 河本正夫) : 1936 사천경찰서 형사. 1937 부산수상경찰서에서 독립운동가와 사상범 체포. 1943 경남경찰부 고등경찰과 순사부장. 1946 경남도 경찰청 수사과 차석. 1949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무혐의 처분 석방. 1956 경남도의원 선거에 출마. 【검열관】 *김성균(金聲均) -경무국 도서과 촉탁, 도서과 속 영화검열실 검열관, [반도문학의 회고](조선 41.1), 해방후 국사편찬위원장. 【군장교】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4 신태영 일본 육사(26기), 일본군 장교 국방부 장관 7 김정렬 일본 육사(54기), 전투기비행중장 초대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국무총리 8 이종찬 일본 육사(49기), 일본군 장교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9, 11 현석호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화순 군수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20 정래혁 일본 육사(58기), 일본군 장교 국방부 장관 21 유재흥 일본 육사(55기), 일본군 장교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차장
대통령안보담당특별보좌관 2) 역대 합동참모회의 의장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1 이형근 일본 육사(56기), 일본군 장교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2 정일권 일본육사(55기), 만주군 헌병 대위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 3 유재흥 일본 육사(55기), 일본군 장교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4 백선엽 만주 봉천군관학교(9기), 간도특설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3) 역대 육군참모총장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1 이응준 일본 육사(26기), 일본군 장교 육군참모총장, 체신부 장관 2, 4 채병덕 일본 육사(49)기, 일본군 장교 육군참모총장 3 신태영 일본 육사(26기), 일본군 장교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5, 8 정일권 일본육사(55기), 만주군 헌병 대위 육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국무총리
외무부 장관 6 이종찬 일본 육사(49기), 일본군 장교 육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7, 10 백선엽 만주 봉천군관학교(9기), 간도특설대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교통부 장관 9 이형근 일본 육사(56기), 일본군 장교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4)역대공군참모총장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1, 3 김정렬 일본 육사(54기), 일본군 장교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5 김창규 일본 육사(55기), 일본군 장교 공군참모총장 7 장성환 일본 항공학교, 일본군 장교 공군참모총장 8 박원석 일본 육사(58기), 일본군 장교 공군참모총장 *김석범(金錫範) : 1937 만주군관 5기 졸업. 1940 일본육사 5기 졸업. 만주에서 악질적으 로 독립군 토벌. 1946 해군중위 임관. 1949 해군통제부 작전부장. 1960 해군중장 예편. *윤상필(尹相弼, 창씨명 伊原相弼) : 육사 27기, 관동군사령부 참모부 제3과(조선인 전담) 기병소좌, 만주협화회 본부이사, 시베리아 압송 *홍사익(洪思翊) : 일본육사 26기. 일본군 중장. 필리핀 포로수용소장, 동경전범재판에 회부되어 사형됨. *어담(魚潭, 창씨명 西川潭一) : 1899 일본육사 11기 졸업. 1906 조선주둔군 사령부 육군소장. 1934-43 중추원 참의. 지원병제 환영담화. 배영동지회 상담역. 임전보국단 발기인. *원용덕(元容德) : 군의 특임. 1933 만주군 육군 군의관(대위). 만주군 중좌. 1946 국방경비대 초대 사령관. 여수순천사건 진압. 1953 헌병 초대 총사령관. *김석원(金錫源) : 1915 일본육사 27기 졸업. 1917 일본군 소위 임관. 1931 만주사변때 공을 세워 포상금 700원 받음. 평양병사부 과장(대좌)를 하다 해방 맞음. 매일신보 혈서지원 확인. 육사 8기 특별반을 거채 대령 임관. 1956 소장 예편. 성남중고등학교장으로 교육사업에 전념.
1) 역대 국방부 장관
【판검사】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3 이우익 재판소 통역생․서기, 부산지법 밀양지청
판사, 함흥지법․대구복심법원 판․검사 법무부 장관 5 조진만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해주지법 판사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복심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구지법, 지방판사 8, 20 이 호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고검 검사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주일대사 9 홍진기 1942경성지법사법관시보
1944전주지법 판사 법무부 장관, 내무부 장관 16, 17,
18 민복기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판사 대검찰 총장, 대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2) 역대 검찰총장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2 김익진 충주, 강원, 평양, 함흥지법 판사
평양복심법원 판사 대법관, 검찰청장 5 민복기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 경성지법 판사 대검찰 총장, 대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6 정순석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 검찰청장 10 정창운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검사 검찰청장, 동국대 법정대학장 3) 역대 대법원장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2 조용순 평양지방법원 판사, 순천지청 판사 대구고법원장, 대법관 3, 4 조진만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해주지법 판사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복심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구지법 지방판사 5, 6 민복기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경성지법 판사 대검찰 총장, 대법원 판사, 법무부 장관
대법원장 2) 역대 대법관
임기(대) 이 름 식민지 시기 경력 해방 이후 경력 김두일 청진, 광주, 함흥, 해주지법 판사 서울지검 인천지청장, 대법관 김익진 평양복심법원 판사 대법관, 검찰청장 최병주 일본 고등문관 사법과 대법관 백한성 평양, 청진, 광주, 대전지법 판사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내무부장관 이우식 전주지법원장 대법관 김동현 대구지검 검사 대법관 김갑수 평양복심법원 판사 대법관 고재호 대구지방법원 검사 대구고등법원장, 대법관 허 진 경주지청 판사, 안동지청 판사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오필선 광주지법 목포지청 검사 서울고등법원장, 대법관
1) 역대 법무부 장관
【종 교】 *백낙준(白樂濬) : 1941 미영타도 좌담회 참석. 조선장로교신도 애국기헌납기성회 활동. 1944 경성대학 법문학 부장. 1951 문교부 장관. 1957 연세대 초대 총장. *정인과(鄭仁果, 창씨명 德川仁果) : 1925 주일학교연합회 협동총무. 1939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 결성. 1941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9 반민특위 체포. *정춘수(鄭春洙, 창씨명 禾谷春洙) : 1938 흥업구락부사건시 전향성명서 발표. 1941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1944 조선전시종교보국회 이사. 1949 반민특위 체포. * 이회광(李晦光) : 불교계 이완용. 1912 조선선교양종각본산 주지회의원 원장. 1915 불교진흥회 조직. 1919 일본 임제종과 합병 획책. * 권상로(權相老, 창씨명 安東相老) : 1937년 ‘선각자로서’라는 시국강연. 1940 국민총력연맹 참사. 1943 『임정의 조선불교』간행. 해방후 불교대학 학장. 1962 문화훈장 서훈. *이종욱(李鍾郁, 창씨명 廣田鍾郁) : 1937 총본산건설위원회 31본산주지대표. 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조선불교회 비행기 헌납 주동. 1977 건국훈장 국민장 서훈. *노기남(盧基南) : 1939 국민정신총동원 경성교구연맹 이사. 1940 국민총력 경성교구연맹 이사장. 1943 전선종교단체협의회 천주교회 대표위원. 해방후 이승만을 도와 단정 수립. *남상철(南相喆) : 1942 총력연맹 천주교연맹 이사장으로서 징병 독려 강연. 1944 보도특별정신 대강연. *최린(崔麟, 창씨명 佳山麟) : 33인의 한사람으로써 변절. 천도교를 분열시켜 자치운동 도모. 1934 중추원 칙임참의. 1937 매일신보 사장 취임. 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1941 조선임전보국단 회장. 1945 조선언론보국회 회장. 1949 반민특위에 체포. 한국전쟁때 납북. * 이종린(李鍾麟, 창씨명 瑞原鍾麟) : 1939 국민정신총동원 천도교연맹 이사장. 흥아보국단 경기도 위원. 1941 국민총력연맹 평의원. *박완(朴浣, 창씨명 鶴川浣) : 임전보국단 평의원. 국민정신총동원 천도교연맹 이사. *정만조(鄭萬朝) : 1929 경학원 대제학. 1930 명륜학원 총재 겸 강사. 대동사문회 발기인. 1934 시중회 평의원. *어윤적(魚允迪) : 1919 대동사문회 대표. 1922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 1927 경기도 참여관. 1933 동민회 평의원.
【문 학】 *이광수(李光洙, 창씨명 香山光郞) : 1922 민족개조론 발표. 1939 조선문인협회 회장. 1942 대동아문학자대회 참석. 수많은 친일 글을 남김. 1949 반민특위에 체포. *김동환(金東煥, 창씨명 白山靑樹) : 1929 월간 삼천리 창간. 1941 지원병보급 혈전대강연회 연사로 참석. 1941. 임정대책협의회 발족 주도. ‘권군취천명(勸君就天命)’이란 전쟁독려 시 씀(1943.11.6). 1949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공민권 정지 처벌 받음. *모윤숙(毛允淑) : 1940 조선문인협회 문예대강연회에서 친일 강연. 1941 조선교화단체 연합회 간부. 1942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간사. 해방후 단정 수립에 지대한 공을 세웠고 예술원상, 국문훈장 모란장, 삼일문화상을 받음. *최재서(崔載瑞, 창씨명 石田耕造) : 1941년 친일잡지『국민문학』주간. 1943 조선문인보국회 이사. 대동아의식에 눈뜨며, 받들어 모시는 문학 등의 글에서 천황숭배를 주장. *유진오(兪鎭午) 1939 조선문인협회 발기인 1941 총력연맹 문화부위원 1942.43 대동아문학자대회조선대표 1945 조선언론보국회 평위원. 해방후 제헌국회헌법 기초위원. 고려대 총장. *주요한(朱燿翰, 창씨명 松村紘一) : 1934 조선일보 전무이사. 1937 흥사단사건시 전향성명 발표. 1943 조선문인보국회 시부회장. 1945 조선언론보국회 참여. 해방후 민주당 민의원, 4.19후 부흥부, 상공부 장관을 지냈고 1979 사망시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음 악】 *이종태(李鍾泰, 창씨명 鈴木貴一郞) : 1937 매일신보 주최 애국가요의 밤에 '총후' 작곡, 북지위문단원으로 활약. 후생악단 전무이사. *현제명(玄濟明) : 1937 조선문예회 회원. 1938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 경성지부 간사. 1944 경성후생실내악단 이사장. 조선음악협회 이사. 해방이후 미군정장관을 명예회장으로 한 고려교향악단 창설, 서울대 예술학부 음악학부장이 됨 *홍난파(洪蘭坡, 창씨명 森川潤) : 1939 홍난파 지휘로 애국가곡집 공연이 방송됨. 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문화위원, ‘지나사변과 음악’에서 성전 독려. 1941 조선음악협회 평의원. *박시춘 : 1943년 ‘조선지원병 실시 기념음반’ 중에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안해’ 및 ‘목단강 편지’를 작곡. *남인수 : 조선군 보도국 제작 ‘그대와 나’(내선일체 주제가)와 ‘혈서 지원’ ‘이천오백만 감격’ 등의 친일 노래를 부름. *김기수(金琪洙․光山哲三, 국악 작곡)-1940년 11월 9일 일본기원 2600년을 기념하는 봉축연회에서 이왕직 아악부가 연주한 「皇化萬年之曲」 작곡. 이 곡은 이능화의 1939년 한문시에 곡을 붙여 일본기원 2600년 기념 공모 당선작, 국내 최초로 오선보로 작곡된 국악 창작.
【미 술】 *김경승(金景承) : 1939 일본 동경미술학교 조각과 졸업. 1943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 전람회에서 ‘여명’ ‘제4반’ 입선. 해방후 충무공 이순신상(1953), 안중근상(1959) 등 조각 *김은호(金殷鎬, 鶴山殷鎬) : 1937 이후 선전(鮮展) 참여작가. 1941 조선미술가협회 일본화부 평의원. 1937 애국금차회 활동을 그린 ‘금차봉납도’를 미나미 총독에게 증정. *김기창(金基昶) : 1940 ‘선전’ 추천작가. 1942 반도총후미술전 추천작가. 1943년 매일신보의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와 1944년작 ‘총후병사’는 화필보국(畵筆輔國)의 증거. *이상범(李象範) : 1942-44 반도총후미술전 일본화부 심사위원. 1944 모던일본사가 친일작가를 위해 제정한 제5회 조선예술상 수상. 1940 조선남화연맹전, 애국백인일수 전람회 등 국방헌금 마련 미술전에 빠짐없이 참여. 해방후 홍익대 미대 교수, 문화훈장 대통령상(1962), 삼일문화상(1963) 수상. 【공연예술】 * 유치진(柳致眞) : 1941 친일단체 현대극장 대표 1942 이용구를 찬양한 장막희곡 [북진대] 발표. ‘원칙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조광 1941.6) 기고. *이서구(이서구, 창씨명 牧山瑞求, 필명 이고범, 남궁춘) : 조선연극협회 회장. 41년 근로문화인부대. 41년 9월 1원 채권 봉사대. 45년 8월3일 문인보국회 극문학부회장. 평론 “금후의 국민극( 매일신보 41.10.21) <谷山令監>(1막,일어극) 연출. *조명암(본명 조영출, 필명 이가실) : 1943 夫餘神宮御造營 文化人奉仕隊. 친일가요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처>, <혈서지원>, <2천5백만의 감격> 등 작사. <승리에의 길>(이동연극예능대회 작, 1944) 각본 씀. *안종화(安鍾和, 창씨명 安田辰雄) : 조선영화협회 회장, 황도학회 발기인,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영화인기능심사위원회 위원, 친일연극, <개화촌> 연출. 「전환쇄신의 시 영화의 국가사명」(매일신보 1941년 10월 27일 - 29일). *안석영(安夕影, 창씨명 安田榮) : <지원병> 각색 / 감독, <조선에 온 포로> 감독, 황도학회 발기인, 근로문화인부대 활동,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 조선영화인협회 상무이사, 영화인기능심사위원회 위원. 징병을 찬양하는 잡지의 표지를 그림. *허영(許泳 창씨명 日夏英太郞) <너와 나> 각본/ 감독, 극단 청춘좌 단원 「그대와 나를 말하는 좌담회」(『삼천리』 13권 9호), 「좌담회 조선영화의 전모를 말한다」 (『영화평론』 1941년 7월). *문예봉(文藝峰, 창씨명 林丁元) <군용열차> <지원병> <집 없는 천사> <너와 나> <젊은 모습> <조선해협> <태양의 아이들> <사랑과 맹세>에서 주연 여배우로 출연,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 연기과 사원. 【교육학술】 *고광만(高光萬, 창씨명 高峰啓光) : 조선총독부 시학관(학무국), 충주공립중학교 교장. 해방후 문교장관, 부산대 총장. *김활란(金活蘭, 창씨명 天城活蘭) : 1941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 1945 조선언론보국회 이사. 1942 ‘징병제와 우리의 각오’(신시대 1942.12). 해방후 이화여대 총장. *이능화(李能和) : 1922 조선사편찬위원회 위원. 1925-40 조선사편수회 위원. 민족사 왜곡과 식민사학 확립에 지도적 역할. *장덕수(張德秀) : 1939 사상보국연맹 경성분회장. 1941 조선임전보국단 간부. 1945 국민의용대 총사령부 간부. 1944 ‘입영학병에 부탁’ ‘관민일치 총궐기’ 발표. 1945 국민문학 5월호에 [징병의 감격을 말함] 논문 씀. *최남선(崔南善) : 1928 조선사편수회 위원 1938 충추원 참의.1938 만주 만몽일보 고문. 1939 만주국 건국대학 교수. 1949 반민특위 체포. 1950. 서울시편찬위원회 고문. *황신덕(黃信德) : 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후생부위원. 40년 이후 중앙여중고 설립자 겸 교장(~1961). 1942 조선임전보국단 부인대 간부. 1946 남조선과도정부 입법의원. 삼일여성동지회 부회장 역임. 【언 론】 * 박희도(朴熙道) : 친일잡지 동양지광사 사장.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참사. 배영동지회 평의원. 시중회 발기인. * 서춘(徐椿, 창씨명 大川慈種) : 1933-1937 조선일보 편집국장 겸 주필. 1938 임전보국단 평의원. 국민총력연맹 위원. 1940 매일신보 주필. 친일잡지 『태양』창간. 2.8독립선언 유공자로 있다가 1996년 서훈 박탈. *김한경(金漢卿) : 동양지광사 사원, 국민문화연구소39전무, 시국대응사상보국연맹간사38, 대화숙, 「동양문화와 일본정신」(『東洋之光』39.2월호), 「청년의 성격과 그의 연성에 대하여」(『東洋之光』 43년 9월호), 共同運命에의 結合과 그 還元論(삼천리40.3월), 일본정신의 精華?(조광, 1940년 12월호) *김환(金丸) :국민신보(일진회 기관지) 기자, 이등박문 장례식 참가, 1910년대 매일신보 주임, 시사신문(국민협회 기관지) 편집주임, 시사평론, 민중신문(1930) 주필, 국민협회 간부. *노성석(盧聖錫) 신시대사부사장, 문인협회 간부로 부여신궁출역(1941), 총독부주최 언론계인사 간담회(1941) 참가 *이창수(李昌洙) 매일신보 통신부장(1938,39,40,41), 조사부장(1942),논설위원(1943), 언론보국회 평의원. ‘이 시련을 극복하라’(조광 1944년 8월호), ‘帝國海軍의 偉容’(조광 1942년 2월) 【전쟁협력】 * 김연수(金秊洙) : 1924 삼양사 설립. 1939 만주국 명예총영사. 1940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이사. 조선방적 이사장. 1940-45 중추원 참의. * 문명기(文明埼, 창씨명 文明琦一郞) : 1935 문명기호라는 비행기 헌납 1943 헌함운동을 제창하고 동광 3개 기부. 1943 황도선양회 회장. * 박승직(朴承稷, 창씨명 三木承稷) : 1919 조선경제회 이사. 1938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인 겸 상담역. 1940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 박흥식(朴興植) : 1938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이사 및 배영동지회 상담역. 1941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1944 조선비행기주식회사 설립. 1945 대화동맹 심의원. * 방응모(方應謨) : 1933 조선일보 사장. 1935 조광 창간. 1937 애국금차회 활동. 1938 전선순회 시국강연반에서 활동,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발기인. 1941 임전대책협의회 위원,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1943 출진학도 격려대회 주최. * 신태악(辛泰嶽) : 서울. 1936 조선변호사회 부회장 1941 임전보국단 이사 *현영섭(玄永燮, 창씨명 天野道夫) : 1937 녹기연맹의 일본문화연구소 근무. 1938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연맹 주사. 1940 황도학회 이사. 【친일단체】 * 민원식(閔元植) : 서울. 1910 친일단체인 진보당.정우회 조직 1920 국민협회 회장. 참장권 청원운동 주동자. 중추원 부찬의참정권 운동, 피살 * 이용구(李容九) : 서울. 1904 통합일진회 조직 을사조약 강요 앞장, 1907 고종폐위 강요 의병토벌대인 자위대 조직, 1909 합방성명서 발표 1912 훈2등 서보장.
보도 특기 사항 ● 선정 과정 상의 유의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각 분야별로 친일행위자를 등재한다는 원칙에 따라 한 인물이 중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추원 참의이면서 비행기 헌납을 한 인물의 경우 그 이름을 중추원과 전쟁협력 분야에 동시에 실었다. 2. 道·府· 의원 등은 친일부역혐의자임은 명백하나, 지방의 토착 친일세력과 해외의 친일인물을 주로 다루는 2차 심의에서 일괄해서 검토하기로 해 1차 심의에서는 제외했다. 그러나 여타 기준에 의해 이번 명단에 수록된 인물의 경우 이를 경력 사항에 포함시켰다. 3. 관료(군수, 판·검사 등)의 경우 1912년 이후의 재직 여부를 적용 기준으로 삼았다. 국권을 빼앗긴 1910년 8월부터 1911년 말까지는 조선인 관료들이 사직을 하거나 조선총독부에 의한 임면 변동이 크기 때문이다. 5. 판·검사의 경우 재직 기간이 유달리 짧거나 변호사로 전업한 경우 사직 후의 행적을 최대한 조사해 이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 명단 수록대상에서 제외했다. 일단 수록대상에 포함된 판·검사에 대해서도 이후 행적을 지속적으로 정밀 추적할 예정이다. 6. 경찰의 경우 (1) 고등관은 경시 이상이 이에 해당되나, 경찰의 직능이 지닌 특수성과 조선인 경찰간부의 경우 대체로 경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경부 이상의 조선인을 사전 수록 대상으로 정했다. (2) 고등경찰은 직급에 관계없이 수록 대상에 포함시켰다. 경부 이상의 조선인 경찰은 조선총독부직원록에 의해 파악이 되나 고등경찰의 경우 직원록에서 ‘순사’로 표기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판별하기 어려우며, [경찰직원록]을 검토해야 확인 가능하다. 불행하게도 [경찰직원록]은 3,4년치 밖에 남아있지 않아 이번 명단에서 고등계형사 다수가 누락되었다. 해방 후 반민특위 활동을 전후해 출간된 ‘친일청산 관련’ 간행물에는 악칠 고등경찰의 명단이 확인되나, 가능한 원자료에 의거해 사실을 확인한다는 방침에 따라 부득이 1차 심의에서 보류했다. 이 때문에 널리 알려진 고등경찰이 누락된 경우도 있다. 2차 심의에서는 원자료의 발굴과 사실 확인 그리고 2차 사료에 대한 신뢰성 검토 등을 통해 추가로 그 명단을 수록할 예정이다. (3) 검열관의 경우 언론, 출판, 문화, 예술에 대한 사상 검열과 통제 정책의 핵심에 있었다는 점을 중시해 그 지위와 관계없이 민간 촉탁일지라도 수록 대상에 포함했다. 7. 군 장교의 경우 (1) 일본육군사관학교, 만주군관학교, 기타 간부 양성학교 출신의 임관 소위 이상과 사병에서 위관으로 승진한 경우를 모두 포함하였다. 만주군 출신의 경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 육사를 거쳐 나오는 점을 감안해 위관 이상의 일본군·만주군 조선인 장교를 수록 대상에 포함시켰다. (2) 학병으로 끌려가 장교가 된 경우에는 학병이 사실상 강제에 의한 동원(징병)이라는 점과 근무기간이 극히 짧았다는 점을 감안해 수록 대상에서 제외했다. (3) 헌병 분대장의 경우 자료가 미비해 1차 심의 대상에서 제외하였으며 2차 심의에서 본격 검토할 예정이다. 이 때문에 널리 알려진 헌병 분대장 출신의 인물도 이번 명단에 누락되었다. 8. 문화·예술분야의 경우 (1) 1차 심의과정에서 제외된 체육·무용·사진·아동문학·동요·만화·삽화·만담과 기타 문화예술 분야의 친일혐의자는 2차 심의과정에서 확정하기로 한다. (2) 문학분야 친일인명 수록대상은 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이 발표한 친일문학인 명단만 채택했다. 중일전쟁(1937년) 이전의 친일문학인이나 최근 친일 혐의로 논란을 빚고 있는 윤해영, 유치환, 이원수, 마해송 등은 2차 심의에서 본격 검토할 예정이다. (3) 음악 분야의 조두남, 채규엽, 함화진, 이재호(대중가요 작사자) 등은 친일 혐의가 짙으나, 일부 사실확인이 필요해 2차 심의과정에서 확정하기로 했다. 친일성향이 매우 농후한 조선연예협회 소속 예술인에 대해서도 2차 심의과정에서 검토하기로 한다. 9. 언론·출판·교육·학술의 경우 관련 친일기관의 직위와 함께 활동(특히 문필활동)을 중요한 선정 요인으로 삼았다. 그러나 1차 심의에서는 명백한 친일 정기간행물과 기관지류만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향후 각종 신문(지방지 포함), 잡지류, 기타 단행본류를 조사해 수록 대상 기준에 포함되는 인물은 2차 심의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10. 전쟁협력행위와 황국신민화정책에 앞장 선 기관의 간부와 개인 가운데 경방단 등 지방 조직이 중심일 경우는 지방 친일인물 심의과정에서 검토 확정하기로 한다.
1. 1차 선정의 대상에 속하지 아니한 경우 예) 지방 또는 해외의 기관(단체)에서 활동한 친일인물 2. 친일 행위가 명백하게 있으나 사전 수록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그러나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해서 친일부역행위 일반이 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3. 선친일 후항일의 경우 또는 일시적으로 친일 행위에 가담했더라도 이후 상당 기간 은거하거나 일체 친일협력 활동을 하지 않아 ‘소극적 저항성’이 인정되는 경우 4. 친일행위가 뚜렷하더라도 보다 엄밀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거나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개인의 경우 2차 심의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 2차 심의 대상은 다음과 같다 1. 지방의 토착 친일 혐의자
● 친일부역행위가 있으나 발표 명단에서 빠진 경우는 다음과 같다.
2. 일본·중국 동북(만주)과 관내·소련 연해주·미주 등 해외의 친일혐의자
3. 헌병(분대장 이상)
4. 항일운동 탄압 군경
5. 밀정
6. 경제수탈기구 간부
7. 유사종교의 친일혐의자
8. 체육·무용·사진·아동운학·동요·만화·삽화·만담과 기타 문화예술 분야의 친일혐의자
9. 항일운동에서 친일로 전향한 변절자
10. 일제 훈·포상자 중 친일혐의자
11. 기타 친일혐의가 현저한 자
12. 1차 선정분야에서 누락되거나 보류되어 재검토가 필요한 경우
민족문제연구소는 _ 1949년 친일파에 의해 와해된 반민특위의 정신과 친일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 1991년 설립되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쟁점과 과제를 연구 해명하고, 한일 과거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자 합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 등 일제 파시즘 잔재의 청산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주요연혁 _ 1989 임종국 선생 타계. 빈소에서 연구소 설립 결의 1991 반민족문제연구소 설립(소장 : 김봉우) 1993 제3회 윤상원상 학술부문 단체상 수상 1995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이사장 : 이돈명) 1999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2대 이사장 취임 1999 한민족단체연합 수여 '민족정기 공로상' 수상 2001 한상범 교수 2대 소장 취임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발족, 산하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출범 2003 임헌영 교수 3대 소장 취임 2004 친일인명사전 편찬 국민모금 시작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시민연대(공동대표 : 강만길 함세웅 최병모) 발족 제16회 심산상 수상 2005 제19회 단재상 수상 실천활동 _ 친일파기념사업 저지 일제하 강제동원 진상규명 박정희기념관 건립 저지 한일협정 개정 한일교과서 바로 잡기 남북 학술교류 전시회 _ 1995 일제침략과 저항의 역사전 1996 사진으로 보는 독립운동사 1998 친일파·독립운동가 사진전 1999 사진으로 보는 민족수난사 2001 일제침략역사왜곡전 2002 친일예술인과 그들의 작품전 2003 친일음악의 진상전 2004 식민지조선과 전쟁미술전 연구소 조직 _ •명예 이사장 : 이돈명(변호사, 전 조선대 총장) •이사장 : 조문기(독립운동가, 부민관 폭파의거 주역) •자문위원회 : 고광돈 고종훈 김봉현 김우전 김채룡 박상유 박준황 석근영 윤규섭 윤석진 이대성 이준호 지인중 최도균 황갑수 박문(이상 독립유공자) •상임이사 :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장) •이사 : 김성종(대일랩서비스 대표이사) 김우용(주연트레이딩 대표이사) 민삼홍(사업가) 서용원(고신한의원 원장) 신창헌(자성학원 원장) 윤경로(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한성대 총장) 윤종일(서일대학 교수) 이건(운영위원장, 서울시 교육위원) 이동수(동영산업 대표) 이해학(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목사) 임은숙(동림C.N.E. 기획이사) 장두석(민족생활학교 이사장) 장병화(가락전자 회장) 장완익(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변호사) 조동기(까치국어논술전문학원 원장) 조세열(법인 사무총장, 경희대 겸임교수) 최병문(영진학원 원장) 황의병(삼립공업사 대표) •감사 : 최수전(상계백병원 내과 전문의) 박동규(공인회계사, 신한회계법인) •고문변호사 : 이재명(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 김승교(법무법인 정평) 장완익(법무법인 해마루) •연구소장 : 임헌영(중앙대 교수,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지도위원 : 강만길(상지대 총장) 김태영(경희대 명예교수) 리영희(한양대 명예교수) 성대경(성균관대 명예교수) 윤병석(인하대 명예교수) 이만열(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정창렬(한양대 명예교수) 조동걸(국민대 명예교수) 신용하(백범학술원 원장) 주섭일(내일신문 주필) •운영위원회 위원장 : 이 건 부위원장 : 여인철 이봉원 이윤옥 황평우(직능) 위원 : 홍성혁(청년회) 고동주(울산지부) 황구화(부산지부) 강태식(제주지부) 최재흔(전북지부) 김동수(광주지부) 김진한(충북지부) 이정학(충남지부) 이규봉(대전지부) 김성혁(인천지부) 오형민(부천지부)장이근(경기 북부지부) 문만기(경기 동북지부) 신용승(경기 남부지부) 강범희(강원지부) 한호석(서울 북부지부) 송진복(서울 관악동작지부) 문병준(서울 남서지부) 이철민(경기 고양파주지부) 이영철․이태헌(직능) •사무총장 : 조세열 •사무국 국장 : 방학진/유연영 손영호 위금남 민연수 김란희 •영상팀 최진아 •기획홍보실 실장 : 서우영/최진아 김영선 박찬호 • 연구실 실장 : 박한용 책임연구원 : 박수현 이용창 연구원 : 김은식 김진영 동선희 백동현 유은호 김승은 김혜영 박광종 펴낸 책 _ -.실록 친일파 임종국 / 돌베개, 1991 -.한국문학의 민중사 임종국 / 지리산 1991 -.일제침략과 친일마적단 임종국 / 지리산, 1991 -.사할린은 통곡한다 하야시 에이다이 / 계명문화사, 1992 -.친일파 99인 ①~③ 반민족문제연구소 / 돌베개, 1993 -.청산하지 못한 역사 ①~③ 반민족문제연구소/ 청년사, 1994 -.임종국 선집 1 - 친일, 그 과거와 현재 아세아문화사, 1994 -.임종국 선집 2 - 또 망국을 할 것인가 아세아문화사, 1995 -.한국을 장악하라 - 통감부의 조선침략사 강동진 / 아세아문화사, 1995 -.임종국 선집 3, 4 - 한국인의 생활과 풍속(상,하) 아세아문화사, 1996 -.한일협정을 다시 본다 민족문제연구소 / 아세아문화사, 1996 -.친일파란 무엇인가 민족문제연구소 / 아세아문화사, 1997 -.한국근현대사와 친일파문제(심산상 수상) 민족문제연구소 / 아세아문화사, 2000 -.일제하 전시체제기 정책사료총서(전98권) 민족문제연구소 / 한국학술정보, 2001 -.친일문학론(증보판) 임종국 / 민족문제연구소, 2002 -.해방 후 조선족 소설문학연구(학술원 선정 우수도서) 리광일/경인문화사, 2003 -.식민지조선과 전쟁미술 민족문제연구소 편 / 민족문제연구소, 2004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 중앙편) 민족문제연구소 편 / 민족문제연구소, 2004 -.일제강점기 인명록 Ι - 진주지역 관공리․유력자 김경현 편 / 민족문제연구소, 2005 -.조문기 선생 회고록 - 슬픈 조국의 노래 정리 유지호 권남경 / 민족문제연구소, 2005 -.이수병 평전 이수병선생 기념사업회 편 / 민족문제연구소, 2005 -.만화 박정희 1, 2 민족문제연구소․뉴스툰 기획 / 백무현 글 / 박순찬 그림 / 시대의 창, 2005
연구소 소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소개 친일인명사전이란 _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방해 혹은 지연시키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으로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의 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사전에는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반민족행위와 해방 이후 주요행적 등이 기록된다. 편찬 일정 _ 2001년도 : ‘친일행적자 인물카드’ 통합 입력 2002년도 :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국내중앙편)] 2003년도 : [일제 식민통치기구 및 협력단체 편람(중국편)] 2004년도 :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중앙편)] 2005년도 : '친일파' 세부규정안 확정-[친일인명사전] 수록 인물 선정 2005년도 : [일제협력단체사전(국내지방편)] 2006년도 : [일제통치기구사전] 2006년도 : [일제협력단체사전(해외편)] 2007년도 : [친일인명사전] 완간 예정 사전 편찬을 후원하시려면 _ 1.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가입 연구소 회원은 -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지원합니다. - 역사정의 실현을 위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 회원 소식지 『민족사랑』을 받습니다. - 연구소의 각종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 회원이 되시려면 민족문제연구소 인터넷홈페이지 www.minjok.or,kr(회원가입란)를 들어가시면 됩니다.(가입문의 : 민족문제연구소 대표전화 02-969-0226) 2. 사전편찬 후원 성금 국민은행 010901-04-036-92 농협 031-01-436086 예금주 : (사)민족문제연구소 3. ARS 후원 전화번호 : 060-700-1040 민족문제연구소 | 서울시 동대문구 청량리1동 38-29번지 금은빌딩 3층 | 대표전화 02-969-0226 누리집 www.minjok.or.kr 누리편지 minjok@minj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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