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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예쁜 도둑 '담쟁이'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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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도둑 '담쟁이'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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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이면 그냥 도둑이지 예쁜 도둑도 있는 것일까요? 도둑을 가리켜 예쁘다는 말을 쓸래야 쓸 수 조차 없고 도둑을 발견하는 즉시 당장 '도둑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을 텐데, 담을 잘 넘는 이 도둑의 이름은 '담쟁이' 입니다. 담의 종류와 대소를 가리지 않고 담쟁이를 막아설 수 있는 담은 세상에 없어 보이는데요. 담쟁이를 보면 '불가능'이란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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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을 넘는 기술이 여간 뛰어나지 않고 남달라서 붙여진 이름이 '담을 넘는 쟁이'란 말이죠. 담쟁이...같은 담을 넘는 도둑 보다 이름도 예쁘지만 요즘 같은 가을철에 담쟁이 덩굴이 빨갛게 물든 것을 보면 발길을 절로 멈추게 만듭니다. 제가 그랬죠. 녀석이 얼마나 예쁜지 한동안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며 제가 담쟁이가 되어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쁜 도둑의 모습을 찾아 나서 볼까요?^^  

예쁜 도둑 '담쟁이'의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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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학교옆 울타리가 된 담쟁이 입니다.
자동차 소음 때문에 나무 울타리를 세웠는데
 사람들이 제 실력을 알아 봐 준 거죠.

담을 타는 선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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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 담쟁이라고 했을까요?
철제나 플라스틱 처럼 매끈 거리거나 양분을 빨아먹을 수 없는 것 빼곤
그 어떤 담벼락이라고 한들 제 앞을 가로 막을 순 없죠.
불가능이 없다고 하는 말이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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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울타리에 매달려 담을 기어 오르는 동안
사람들은 이른 아침 부터 늦은 밤 까지 제 곁을 지나다니는데요.
저만 쟁이가 아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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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쟁이 한 녀석이 제 앞을 막 지나가는 군요.
열공하는 녀석을 가리켜 공부벌레라고 부르는데
왜 하필이면 버러지 이름을 붙입니까?

전 담버러지라고 불리면 기분이 안좋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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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오는 저 녀석은 이제 겨우 엄마손을 붙들고 다니는군요.
한때 똥 오줌 못가리던 똥쟁이 였는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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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저 말고도 쟁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술자들이 많은가 봐요.
담벼락에 매달려 있으면 별의 별 쟁이들이 다 지나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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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요리 조리 살피며 속을 아이스께끼 하는 짖궂은 사진쟁이도 있죠.
제가 보니까 아직 쟁이가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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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한두장도 아니고 수십장을 찰칵 거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아마도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었나 봐요.

그 사람은 그래도 착한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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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괜히 담벼락에 붙어있는 저를 붙들고 흔드는 거 있죠.
얼마나 무서웠는지 소리를 지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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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는요...이 말 해도 괜찮나요?
제 다리에 쉬 하는 알콜쟁이도 있었습니다. 술쟁이요.

뜨끈거려 혼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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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높은 곳에 매달려 담을 타고 있는 저는
그런 사람이 민망하기도 했지만 무서워요.

그래서 그때 만큼은 겁쟁이가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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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개구쟁이들이예요. (개구쟁이?...개구장이?...넘어가요. ^^)
녀석들은 저를 예쁘다며 막 뜯어가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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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뜯어만 가면 괜찮게요?
책갈피 속에 넣고 숨도 못쉬게 하잖아요.
추억 한다나요 어쩐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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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도둑님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요즘 저는 먼나라로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화장도 하고 퍼머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바빠요.
어디로 가냐구요? 말해도 모르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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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0일 이상 먼곳을 다녀와야 하는데
그때 까지는 저를 볼 수 없을 겁니다.

시간이 더 걸릴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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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몸은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 있지만
울긋불긋한 잎을 다 떨구면 담벼락 오르는 일도 잠시 멈추고
사람들이 말하는 겨울 속으로 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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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사람들이 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지내며
 뿡어빵쟁이나 군밤쟁이만 눈에 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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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그래도 꽤 긴시간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는데
요즘은 왜 그렇게 날씨가 따뜻한지 모르겠네요.
그래서 여행 기간도 짧아지고 담벼락 오르는 일을 더 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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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으면 약초쟁이들이 제 뿌리가 약효가 있다고
 뿌리째 뽑는 사람도 있거든요.

몸에 좋다면 다 뽑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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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 뿐만 아니예요.
어떤 정치쟁이들은 제 몸에 현수막 나이론줄을 걸어 놓고 그냥 가요.
그리고 바람이 불면 현수막이 퍼더덕일 때 마다 저를 흔들어 놓는 거예요.
죽을 맛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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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다 담벼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달라붙어 있는 거죠.
사람들이 정치쟁이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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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제 앞으로 뻥튀기쟁이 박씨하고 떡쟁이 할머니가 다녀가는데
그땐 정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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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고소한 냄새를 맡으며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 제가 덜 외로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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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저는 무진장 행복했는데 박씨하고 할머니 표정보면 제 마음하고 다른 거 같아요.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거든요.

장사가 안돼서 그런거죠?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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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마다 저도 슬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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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야 어떤 아저씨가 예쁜도둑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 처럼
그저 담벼락이나 잘 타고 올라가면 그만이지만,
 
할머니 곁에 따라온 손자 녀석을 보면
 딸래미가 길러 달라고 한 것 같았어요.

살아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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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조그만 도움을 줬으면 싶은데
사람들은 저를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1년 중에 꼭 한차례 지금 흘깃흘깃 거들떠 보며 지나치는 거 있죠.

그 사람들 눈에는 제가
그냥 담이나 잘 넘어다니는 담쟁이로 보이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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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연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 할머니 이름인데...^^

할머니가 그러시는데요. 제 이름은 'Boston Ivy'라고...브리테니커 사전을 찾아보시면요. 거기에 제 정체가 다 있는데요. 제가 포도나무과에 속한다고 하네요. 덩굴은 길이가 약 18cm에 이르구요. 잎은 세갈래로 갈라지는 홀잎이거나 잔잎 3개로 이루어진 겹잎으로 서로 어긋나며 가을에는 밝은 주홍색으로 불든다고 하는 거요. 그리고 푸른색을 띈 작은 열매는 새들이 먹는다. 이렇게 써 두었는데요. 이건 별로구요. 혹, '처녀덩굴'이라는 이름 들어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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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요. 그리스 히스톤에 한 처녀가 살았답니다. 엄마 말이라면 껌뻑죽는 착한 딸래미였지요. 그래서 시집갈 나이가 다 되어서 엄마가 정해준 약혼자와 결혼을 할려고 했는데, 결혼식을 앞두고 전쟁이 일어나 약혼자는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스토리가 뻔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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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도 약혼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처녀는 그때 까지도 돌아오지 않는 약혼자를 기다렸다니 전설이란 게 꼭 이 모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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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녀는 약혼자의 얼굴 조차 보지 못했고 혼사가 오갈쯤 집으로 찾아온 약혼자가 아버지와 집을 나서던 긴 그림자를 본 것 뿐이라는데 그 처녀는 죽기전에 그 약혼자의 그림자가 지난간 자리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열녀 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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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그 처녀가 묻힌 그 자리에 저의 할머니 담쟁이가 태어나 그림자가 지나간 방향으로 줄기를 뻗으며 올라가는 것을 보고 처녀의 그림움이 약혼자를 그리워 하며 따라올라 간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치!...난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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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군요. 즐겁고 행복한 추억 가득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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