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위에서 음주후 익사한 운 나쁜 왜장?
바위 위에서 음주 후에 익사한 사람은 억세게 운이 나쁜 사람일 것입니다. 바위 옆이 비록 깊은 강물이라 할지라도 왠만하면 몇 미터만 수영을 하여 빠져 나올수도 있었을 텐데, 이 바위 위에서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났길래 술에 취한 남자는 꼼짝달싹 못하고 남강 물을 마음껏 들이 마신 채 죽어간 것일까요?
지난주 저는 진주 남강의 촉석루 아래 반듯하게 놓여진 의암을 바라보며 한참동안 생각에 잠기며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을 떠 올리고 있었습니다. 에로틱하게만 여겨졌던 한 여인과 포옹을 하는 순간 두 남녀는 외마디 소리만 지른 채 남강 푸른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갑옷을 걸쳐입은 사내는 자신을 껴 안은 여성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모습이 맑은 물에 비쳤으나 그의 곁에 있던 졸개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한 왜장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다급한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헉!)...게야무라 쇼군!!...게야무라...게야...게야...이 게 완전...쇼군!!"
두 남녀 중 한 여성은 '논개 論介' 였고, 한 남자는 술에 취해 해롱거리던 왜장 '게야무라 후미스케 毛谷村文助' 였습니다. 게야무라 후지스케의 입장에서는 두사람이 겨우 마주 앉아 술을 마실 수 있는 바위 위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적장이라 하지만 그는 장수였고 19세의 여리고 여린 논개가 '가미가제 かむかぜ'와 다름없는 자살 공격으로 그에게 덤빈다고 한들 설마 익사까지 생각할 여지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의연한 논개에게 무기가 감추어져 있었다는 것을 안 순간, 게야무라 후지스케는 남강 물을 연거푸 마시면서 배가 잔뜩 불러있었고, 그의 허파속에는 물이 가득차기 시작하면소 비로소 혈중 알코올 농도가 조금씩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남강 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마지막 순간 그의 혼미한 의식 속에서 술잔을 따르던 논개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옥가락지가 희미하게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논개의 가녀린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옥가락지가 모두 끼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논개의 두 손은 게야무라 후지스케의 두허리를 그때까지 꼭 껴안고 있었고 시신을 인양할 때 까지 처음 물에 빠질 때 그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19살 꽃다운 나이에 논개가 왜장을 유인한 곳은 '위암危岩'으로 불리던 위험한 바위였고, 논개의 의로운 죽음 이후 이 바위는 '의암 義巖'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이지만 가을색이 짙어가는 남강변 의암을 바라보고 있자니 괜히 왜장이 미워지는 한편, 논개와 같은 의녀를 보자 부끄러워지기 까지 한 것이죠. 논개 사후 많은 시인 등이 칭송한 바와 같이 정말 위대한 여성이었습니다.
왜장 게야무라 후지스케가 논개와 함께 의암에서 남강으로 빠져 익사하는 장면을 다시한번 재구성 해 보면 이런 모습일 겁니다.
"...게야무라 쇼군...촉석루가 절경이기는 하나 날씨가 무덥고 부하들의 눈길이..."
(...오라버니...이제 저는 우리 백성들의 원수와 함께 남강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부디 왜장이 죽거덜랑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왜군들의 만행을 꼭 복수해 주셔요...)
논개의 가슴은 마구 쿵쾅 거리며 뛰고 있었고 자신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애써 참으며 왜장을 촉석루 주연에서 남강변으로 끌어내는 술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게야무라 후지스케는 어느덧 미모의 기녀로 변장한 논개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랬스므니까...논개르 안고 시프지만 나도 신경쓰였스므니다...헤헤..."
촉석루에서 내려다 본 남강은 아찔한 절벽이었고 촉석루에서 거사를 행해도 가능했겠지만 실수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던 논개는 촉석루 아래 방석처럼 펼쳐진 바위 위로 게야무라를 부축하며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논개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지만 여전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천지신명이시여 제발 이 거사를 성공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게야무라의 졸개들이 미리 바위 위에 술과 안주 한상을 차려놓자 게야무라는 졸개들에게 근처에 오지 말것을 주문했습니다.
"...나 쇼군...조선군 물리쳐서 기분좋다. 지난번엔 운이 나빠 우리가 졌지만 논개까지 차지하니 운수대통했지...헤헤헤...저리 가거라..."
의암이 가까워지자 게야무라 후지스케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논개는 덩달아 긴장하며 가슴이 콩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왜그래요...쇼군?..."
"...흠...아무것도 아니므니다...소변을 좀..."
"...걍...거기다..."
(나쁜놈...마지막 까지 속 썩이는구만...)
게야무라 후지스케는 두꺼운 갑옷 사이로 '훈도시 ふんどし'를 걷어 올리며 남강을 향하여 소변을 뿌렸습니다. 논개는 그 모습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 거렸습니다.
(...그래...니가 더럽힌 남강물 어디 마음껏 마셔봐라...그런데 오라버니 왜 이렇게 떨리죠? ㅜ )
"...햐...좋스므니다...논개..."
논개가 치마를 살며시 걷으며 의암으로 먼저 올라가자 게야무라 후지스케가 곧이어 폴짝 뛰어 의암에 오르며 촉석루가 바라보이는 절경에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논개는 술잔을 따르며 '러브샷'을 권했습니다.
"...한잔 드시와요. 게야무라님...게야..."
(제발 한잔 더 먹어라...이 원수야!...오라버님 아버님 어머님 부디...ㅜ)
"..논개니마...러브샤시노 하기전에 뽀뽀는 어떠케시므니까..."
(치워라 그 더러운...)
"...게야무라님...게야...그렇다면 소녀 한번 안아주시는 게 더 나을 게..."
"햐...방가방가...그거 듣던중 반가운 소리므니다. 나...운 디게 좋스므니다...헤헤...)
논개는 이때다 싶어 치마 속으로 손을 잠시 넣은 뒤 가락지를 손가락 사이에 단단히 밀어넣었고 순식간에 게야무라 후지스케 품에 안겼습니다. 게야무라는 논개의 거사 음모를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논개가 자신의 품에 안기자 기분이 흡족하여 헤헤 거릴 뿐이었습니다.
논개가 게야무라의 허리를 꽉 껴안자 게야무라는 까무라칠듯 기분이 좋았지만 그 기분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논개는 게야무라를 껴 안자 마자 손가락 마디마디에 끼워진 옥가락지가 단단히 밀착되도록 다시 점검하는 순간 술에 취해 흐느적 거리는 게야무라를 껴안고 지척의 남강으로 밀치듯 몸을 날렸습니다.
"(헉!)...이 무슨짓이야...손 좀 놔 봐...손..."
"몰라서 묻나 이 원수야...원망하지 마라...운명이다."
(아 내 사랑하는 조국이여 오라버니여 부디...)
의암곁에는 큰 물고기 두마리가 퍼득이는 듯한 물소리가 연신 첨벙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남강의 물결은 잔잔해 졌고 조금전 까지 멀쩡했던 의암위에는 게야무라 후지스케의 일그러진 얼굴이 나타났습니다.
의암에서 논개의 눈물겨운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생각하며 서성이다가 촉석루로 향하면서 바라본 가을의 남강은 너무도 고요했습니다. 논개는 이곳을 지나 의암으로 향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전하는 바에 의하면 논개는 전북 장수출신에 양반가의 규수로 진주싸움에서 전사한 경상우병사 최경회장군 또는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전해집니다.
논개는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고니시 유키나가 小西行長', '구로다 나가마사 黑田長政' 등이 이끄는 왜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촉석루의 승전만찬에 기생차림을 하고 참석한 후 왜장을 유혹하고 의암으로 뛰어내린 충절과 의기의 여성으로, 보통 사람들이 해 낼 수 없는 거사를 해 낸 것으로 미루어 나라와 민족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 여겨진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논개가 게야무라 후지스케와 함께 의암으로 향한 길을 영상으로 남겨보니 이러했습니다.
왜장 게야무라 후지스케는 운이 나빠 익사한 게 아니라, 논개가 진주대첩 이후 왜군에게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7만 민관군이 모두 순절한데 대한 복수로 게야무라 후지스케를 택했으며 거룩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었습니다. 논개가 남강에 뛰어들기 전 역사를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1392년, 조선이 창건된 지 200년이 흐른 1592년(선조 25년)4월 13일에 왜군의 풍신수길(토요토미 히데요시)이 21만여명의 군사로 부산진에 상륙한 후 파죽지세로 올라온 선봉대가 충주에서 신립장군의 군사를 괘멸시키고, 부산진 상륙 불과 20일만인 5월 2일에 수도인 한양이 함락될 정도였으니, 당시 우리 조선의 군사체계는 너무도 허술한 상태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우리가 외세(명나라 등)에 너무 의존한 결과가 아닌가 보여 시사하는 바 크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우리땅을 쳐들어온 왜군은 남강을 끼고 있는 진주가 전라도로 가는 경상우도의 대읍이며, 또한 경상우도의 주력군이 진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적장 가토는 10월 5일에서 10일까지 군사 2만 명을 동원하여 총 공격을 펼쳤으나,...
진주성에는 4천명이 못되는 군사와 성안의 남녀노소 백성들이 진주목사 김시민장군, 김성일 경상우도순찰사, 경상우병사 유숭인 등과 더불어 여자들은 남장을 하는 등 성을 사수하여 임진왜란의 3대첩으로 후세에 알려진 1차 진주성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조총 등 우세한 화력으로 무장한 왜군과 전투중에 김시민장군이 적의 탄환에 맞아 쓰러지면서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며칠 후 순절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논개의 운명을 가른 것은 그 다음해 였습니다. 1593년 6월, 왜군은 전년도의 패배를 설욕하고자 당시 경상도와 전라도에 배치되어 있던 거의 모든 왜군 10만 여명이 총 집결하여 진주성에 대공세를 취하자 마침내 진주성은 함락되고 7만명에 달하는 민관군이 모두 순절하여 시체는 산을 이루고 피는 남강을 붉게 물들였다고 전하니 이러한 소식을 듣고 살아남은 부녀자들의 심정을 통해서라도 논개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듯 싶습니다. 논개가 발걸음을 촉석루로 향했던 것은 진주성을 함락시킨 왜군이 진주성안에 있는 촉석루에서 승리 축하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고 논개의 의로운 죽음은 그렇게 운명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GIF에니메이션 원본 출처는 논개사이버박물관 http://www.jinjunongae.com/ 입니다.논개에 대해 더 알고싶으신 점이 있으시면 링크된 주소를 클릭하여 진주의 정신으로 자리잡은 의기 논개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의기 논개가 몸을 던진 의암 곁 '촉석루'는 '남강 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면서도 운치있는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고려 공민왕14년(1365)에 창건하여 일곱 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고 전해지며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 南將臺'로서 '장원루 壯元樓'라고도 불렀습니다. 촉석루는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과거를 치루는 고시장으로 쓰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고 전해지는군요.
조그만 점 하나로 보이는 바위 하나가 이렇듯 가슴아픈 추억을 하게 만들며 나라사랑을 일깨우는 곳은 이곳 의암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요? 당초 진주 남강을 돌아보면서 촉석루에서 의암만 바라보고 통영으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논개의 한이 서린 의암 앞에서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않더군요. 정말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이자 세세토록 기억되어야 할 위대한 여성입니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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