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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가을나들이 나선 전동휠체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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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나들이 나선 전동휠체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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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할머니 마음도 춤추게 할까요?...

강촌의 구곡폭포 가는 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길 옆 참나무와 밤나무가 노오랗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바라 보시느라

뒤에서 자동차가 오는지 조차 신경을 쓰지 않고
 가을 삼매경에 푹 빠져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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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왕복 2차선 도로 곁 인도로 전동휠체어를 조용하게 운전하고 다니시더니
자동차의 통행이 없는 평일이어서 그랬던지 곱게 물들어 가는 단풍 때문이었던지

할머니는 인도에서 내려와 차도로 이동한 후
 가을이 익어가는 숲으로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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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처음 만난 순간
할머니의 그윽한 시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는둥 마는둥 자동차를 서행하며
할머니 뒤를 조용히 따라갔습니다.

가을은 정말 할머니 마음까지 춤추게 하는 것일까요?...

할머니 뒤를 조용히 따라가며
할머니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보다가
문득
할머니 생각이 아니라 제 생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가을 단풍이 물들어 가는 풍경을
좋아할 어르신들이 어디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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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은 더 넘어 보이시는 할머니께서 가을을 보시는 감정은
 젊은 사람들이 느끼는 가을의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모습과
 비교 할래야 비교할 수 조차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단맛 쓴맛을 모두 경험하신 할머니에게 가을이란
그저 낮과 밤이 교차하듯 한 세월정도로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괜히 할머니 뒤를 미행하듯 졸졸 따라다니며
 가을은 할머니 마음도 춤추게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할머니 입장이 되고 보니
가을은 참으로 야속하기 짝이없는 녀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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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반대차선에서 자동차가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 옆 산자락에 있는
가을 풍경에서 거의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할머니의 시선을 붙들어 놓고 있는 가을 풍경은
지독한 그리움을 잉태하고
노랗게 변해가는 나뭇잎이
자신의 처지와 너무 닮았다고 여기고 계시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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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뒤를 따라가며 할머니의 속마음이 너무 궁금해서
차창을 내리고 살며시 여쭈어 봤습니다.


"...할머니 뭘 보시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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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단풍...참 곱기도 하지...벌써 가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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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신 어른들 께서는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빨리 죽어야지...너무 오래 살았어" 하시지만

저희 할머니의 경우를 살펴봐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조 섞인 이야기 였을 뿐

그 누구도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돌아가신 할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세월을 팥알 세듯 소중하고 귀히 여기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어른들의 자조섞인 이야기 속에는
 '처녀가 시집 안 갈 거야'라고 하는 것과 같은 표현이라고
 어른들이 말씀 하시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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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할머니께서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모습을 보면
 노오랗게 물든 참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려
 언제 떨어질지 모를 운명과 매우 닮아 있었는데요. ㅜ

마지막 순간까지 참나무의 노란 잎도 촌음을 헤아리며
 할머니와 시선을 맞추고 있는듯 했습니다.  


("...단풍...참 곱기도 하지...벌써 가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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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의 할머니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을이 할머니 마음을 춤추게 할 것이란 생각은
 할머니의 그윽한 표정을 보고 그저 저 혼자 떠올린 생각일 뿐이지,...

팔순의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가을을 맞이한 것은
최소한 80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80번의 횟수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어른들은 만물이 생동하며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는 봄이나
노오랗고 빨간 잎을 매단 환상적인 가을풍경 조차 달가워 하지 않습니다.


(...벌써 가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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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탄식하듯 내 뱉은 한마디 속에
할머니의 심정 모두가 단풍잎을 채색한 고운빛 처럼 담겨져 있었고,

 할머니는 모든 것을 체념한듯
산자락 가을 풍경에 넋을 놓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내년 가을에 또 뵙겠습니다.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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