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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정부 임진강 수위 '변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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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임진강 수위 '변화' 미리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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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임진교 아래를 급히 흐른 강물이 남긴 부유물로 물의 흐름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알 수 있다. 아래사진 참조요망

누가 쉬쉬 하고 있었던 것일까?...어제 하루 종일 컴을 열어 볼 때 마다 시시각각 전해져 오는 임진강 참사 관련 뉴스를 뒤지고 있었다. 임진강 참사를 수사 중인 경기도 연천경찰서는 7일 경보시스템 미작동 경위 등을 밝히기 위해 경기경찰청 제2청 수사과 직원과 연천경찰서 수사과 직원으로 수사전담반을 구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고 당일 고장났다고 알려진 경보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올라오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http://www.hrfco.go.kr/html/main.jsp ' 홈피를 열어 봤다. 참사가 일어난 임진강은 한강 수계이므로 사고 지점에 대한 자료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 뒤지고 또 뒤져본 결과 놀라운 사실이 홈피 속에 숨어 있었다. 홈피 속에는 임진강 본류의 실시간 수문자료 데이터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다음은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에 등재된 자료를 켑쳐한 이미지(자료)들이다.

임진강 참사 언제 어떻게 일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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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기록된 임진강 수위 변화 그래프

그동안 임진강 참사가 일어난 시간은 막연하게 지난 9월 6일 오전 6시경으로 추정하고 있었는데,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에 나타난 <그림1>의 파란색 그래프에 의하면 '경기도 연천군 군남 진상 임진교'에 설치된 '경보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새벽 4시 30분 경에 최초로 임진교 아래 수위 변화를 보인 이래 새벽 5시가 되자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쳌크되고 있었다. 그러나 경보시스템을 작동 시킬 수 있는 수위까지 첵크되지 않아 참사를 키웠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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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기록된 시간대 별 수위 변화 및 유량

아마도 참사를 당한 6명의 무고한 사람들은 동이 밝아오는 새벽 5시 30분경 쯤 야영을 위해 쳐 둔 텐트로 강물이 스며드는 것을 감지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간대는 이미 강물이 어른들의 가슴높이 정도 까지 급속히 차 올라오고 있던 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벽 6시경에는 이미 평상시 수위보다 2m 가까이 되는 강물이 불었을 뿐만 아니라, <그림2>의 자료에 따라 매 10분 마다 쳌크된 수위와 유량에 의하면 평상시 보다 10배에 달하는 강물이 순식간에 임진교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강물이 불어난 것을 인지한 최초 시간으로 부터 약 30분 이내 참사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더빠른 시간에 참사가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교에 설치된 자동경보시스템의 감지기 위치가 틀렸을 수도 있는데 이때 오차 때문에 사고현장에서는 보다 이른 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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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로 수위 변화 등 자료가 전송되는 임진교 모습.
이곳에서 가까운 임진교 하류(좌측)에서 참사가 발생 했다.


그런데 한강홍수통제소와 연천군 등에 드러난 '경보시스템 작동여부'에 대한 문제는 임진교가 있는 연천에서만 있었던 게 아닌 것 같아서 자료를 확인하고 재차 확인하여 포스팅 하게 됐는데, 이 자료가 어떻게 임진교로 부터 전송되어 한강홍수통제소 까지 이르게 됐는지 매우 궁금했던 것이다.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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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홈피에 기록되어 있는 한강수계 <실시간수문자료>가 전송되는 위치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홈피에서 <홍수정보>를 열면 <실시간수문자료>가 나타나는데, 위 <그림3>에 표시해 둔 참고 표시(당구장 표시?)에 따라 '흰색지점은 예보지점이 아니고, 지정 수위가 없는 지점입니다'라고 한 안내에 따라 <그림3>의 녹색 사각지점(파주시 적성면 구읍)을 클릭하니 엉뚱한 자료가 나타났다. 그리하여 <그림4>와 같은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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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4>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홈피에서 누락된 임진강 수위 변화 자료

위 <그림4>의 자료를 보면 매 10분 마다 수위가 첵크되던 <수위 자료>가 2009년 9월 5일 오후 11시 50분 부터 다음날인 9월 6일 오전 6시 까지 작동하지 않아(?) 데이터가 아예 입력되지 않았나 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수사당국이 전하는 소식등에 따르면 임진강 경보시스템은 사고 직전 13시간 전 부터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에 이 자료는 쓸모 없거나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삭제되는 등의 조치가 일어난 것으로 의심을 하기 시작하며 <그림3>에 나타난 임진강 군남댐 근처에 있는 '연천 군남 진상 임진교'를 클릭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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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5>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기록된 임진강 수위 변화 그래프와 시간대 별 수위 변화 및 유량

그리하여 나를 놀라게 한 <그림1><그림2>를 찾게 되었다. 따라서 아래 <그림5>를 보기 좋도록 분해 한 그림이 임진강 참사가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비교적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는 자료로 남겼던 것이다. 아울러 <그림 6>과 같이 참사 시간대를 이해하기 쉽도록 더 넓혀 봤는데 <그림6>에 의하면 정확히 6일 새벽 4시 20분 경 부터 임진교 수위 변화가 감지된 이후 매 10분 마다 수위와 유량은 급격히 불어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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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6>  임진강 참사 당일 매 10분 마다 수위 변화가 한강홍수통제소 홈페이지에 기록된 모습 



한강홍수통제소는 어떤 곳인가?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홈피를 열면 한강홍수통제소가 어떤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한강홍수통제소는 <그림7>과 같이 '하천의 홍수통제 및 관리 업무'는 물론 '유량측정업무' 등에 대한 업무를 하고 있는 곳이며 '홍수 및 갈수 예보와 전달' 등의 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하여 홈피에는 금번 참사가 일어난 임진강 임진교 수위 까지 면밀하게 실시간 쳌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한강홍수통제소 홈피에는 한강의 주요 지점에 <실시간수문자료>와 함께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었다. 따라서 피해상황이 감지되는 즉시 관할 당국에 피난 등 구호조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림1>의 자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방 둑(약 12.5m)으로 부터 안전한 수위(2.7m)로 오판된 결과 강변에 주로 상존하던 야영객 등의 안전을 무시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무인경보시스템은 임진교 수위가 3m에 이르렀을 때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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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7>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 주요 업무


한강홍수통제소 임진강 '경보시스템' 무엇이 문제였나?


금번 참사의 원인을 밝히는 핵심이다. 한강홍수통제소 자료에 따르면  임진강 수위가 3m를 넘어서면 자동으로 대피 안내방송을 해주는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이 있었지만, 정부가 입다물고 있는 자료속에 드러난 사실과 같이 이미 참사가 일어났을 당시로 추정되는 오전 5시경 부터 오전 6시경 까지 임진교 최대 수위는 2.7m 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수위 3m가 넘어야 작동하는 임진강 경보시스템 서버가  작동할 수 없어서 인명피해가 컸다고 볼 수 잇다.

 지난 8일 연천경찰은 중간수사 발표를 통해 수자원공사 군남홍수조절사무소 경보시스템 서버에 필승교 수위가 5일 오후 10시53분부터 6일 오전 11시53분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동일한 2.31m로 기록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는데, 이같은 기록은 한강홍수통제소 자료 <그림6>에 따라서 2.31m로 기록된 시점은 6일 오전 5시 30분경으로 당시 임진교에는 평소보다 10배나 많은 수량이 급히 통과하고 있었던 시점이나, 임진강 경보시스템 서버나 한강홍수통제소에 측정된 수위가 3m에 이르지 않는 곳에 위치했으므로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해도 대피방송 등 조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경보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경보시스템 감지기 위치가 잘못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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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참사 당시 임진교 예상수위'에서와 같이 당시 임진교 아래로 흐르던 강물은 주로 수심이 깊은 한쪽면으로 급히 흘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될 경우 강 반대편은 강물이 흐르고 있는 쪽 보다 수심이 얕게 기록될 것이며, 이러한 사실은 먼저 포스팅 된 '다시 가 본 임진강 '참사' 흔적들'에 나타난 바와 같이 군남댐 공사로 막아둔 임진강의 물길이 한 방향으로 치우쳐 급히 흘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임진강 참사 조작이나 은폐 사실은 없었나?

참사 현장 사정이 이러하나 한강홍수통제소 자료에 의하면 정부가 임진강 수위 변화가 감지된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교롭게도'라는 말을 언론과 방송에 고의적으로 흘리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한강홍수통제소에 기록된 자료를 쉬쉬하고 있었던 결과 언론과 방송 등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임진강 참사와 관련하여 최초 구조 신고가 알려진 것보다 1시간이나 더 빨랐다는 주장과 함께 유족측에서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현장 인근에서 야영을 하던 최 모(56)씨로부터 '지난 6일 새벽 4시 5분쯤 112에 신고를 했지만 112와 119가 서로 미루는 바람에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주장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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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임진교 근처 중국집 주인 박노영(45)씨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식사를 하러왔던 한 야영객으로부터 '새벽 3시 30분부터 이미 물이 차올라 다른 사람들을 깨우고 119에 신고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등의 주장을 하고 있지만, 한강홍수통제소의 자료에 의하면 이들 주장은 당장 큰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한강홍수통제소가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이 일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갑자기 불어난 강물의 흐름이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 임진교 수위가 첵크되는 무인경보시스템이 설치된 곳은 수위가 뒤늦게 첵크되었을 수도 있거나 아니면 아예 일정 수위 밖에 기록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을 것이므로  무인경보시스템 오작동이 아니라 경보시스템 감지기 위치가 평균수위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됨으로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따라서 국토해양부 한강홍수통제소가 임진교로 부터 전송되어 기록된 자료를 미리 언론 등에 배포했을 경우 경보시스템 오작동이 아니라 경보시스템 설치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우선 첵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수자원공사는 사고 이틀 전인 4일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을 점검을 했을 때 아무런 이상이 없었고 그동안 단 한차례의 고장도 없었다고 밝히고 있었고, 사고 당시 '먹통'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을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임진교 수위에 대한 데이터가 없음으로 인해 실종자들이 급류에 떠내려갔을 위치를 계산할 수 없어서 강폭이 400m에 이르는 한강하류 까지 이잡듯 뒤지는 초유의 수색작업이 이어졌고, 수천명의 수색팀이 밤낮으로 이들을 수색했지만 실종자 시신 3구 조차 뒤늦게 발견한 이유가 되기도 한 것이다. 한강홍수통제소가 이 자료를 미리 알렸던들 유속과 유량을 참조하면 실종자들이 이동한 거리는 쉽게 추정될 수 있었을 것이며 국가적으로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한강홍수통제소가 위 자료들을 왜 공개하지 않았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만들고 있다.


임진강 참사 향후 대책은 어떻게?

 위와 같이 이런 기초 사실을 간과한 이유 때문 등으로 최초 참사가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등에 대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고, 언론과 방송 등이 우왕좌왕하며 헛다리만 짚고 있는 동안 실종자 수색이 늦고 여론의 도마에 오르자 참사 보고를 접하고 답답했던 대통령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사고를 면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토해양부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사이 책임소재는 증폭되어 북한과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통일부에서는 금번 참사의 최초 원인을 제공한 북한에 대해 '무단방류'를 내세우며 북한 측에 분명한 사과 요구를 하고 나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황강댐 수위 상승으로 물을 방류했다는 "북측의 해명을 납득할 수 없다"면서 추가 해명도 요구하는 한편 예상되는(?) 수공 대책 등으로 임진강 군남댐을 조기에 완공해야 한다는 등 관계자들을 독촉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순서가 틀린 것이다.

금번 임진강 참사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북한이지만 정부가 예상되는 수방대책을 게을리 한 정황과 증거가 명백히 드러난 만큼 사건의 전말을 왜곡하거나 호도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관련자 전부를 조사하여 금번 참사와 같이 무고한 생명을 잃게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고 인재로 드러난 만큼 유족들에게 석고대죄 해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남북한 관계자는 임진강 또는 북한강 상류에 있는 북한의 댐들이 수도권 시민 등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면밀한 협조 체계와 대책을 동시에 마련하여 강물로 부터 귀중한 재산과 인명 피해가 없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남북한에 건설되어 있거나 앞으로 건설될 댐 등에 대해서도 천혜의 환경을 잘 보존할 수 있는 조치도 더불어 검토해야 할 것으로 사료되며 괜히 엉뚱한 사람들 힘들지 않도록 조치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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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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