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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다시 가 본 임진강 '참사'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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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 본 임진강 '참사' 흔적들

어제 오후 3시경 동두천에 볼 일을 끝내고 야영중 갑자기 불어난 강물로 인하여 귀중한 생명 6명이 실종된 임진강을 다시 찾아가 봤다.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참사 원인은 임진강 상류에 있는 두곳의 댐에서 갑자기 불어난 물 때문에 우리측(남한)에 방류 사실을 통보하지 않아 일어난 참극이고 공교롭게도 임진강에 설치된 경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 한편, 우리 정부 당국자는 북측이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 채 다량의 물을 방류한 사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유감 표명 후 6시간이 지난 직후 북한이 차후에는 다량의 물을 방류할 때 우리측에 통보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참변 직후 허둥댄 사후약방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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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참사 현장에서 가까운 군남댐 공사현장에 무너져 내린 임시 철제빔가교가 물의 위력을 말해주고 있다.

임진강 임진교 부근에서 실종된 유족의 입장이나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정부나 관련 당사자들이 내 놓는 사후대책들은 결국 북한이 원인을 제공하여 일어난 참사로 규정 지으려면 모습이지만, 수사 결과에 따르면 이런 일들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해야 하는 관련 공무원 등이 수방대책 등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데 북한이 수문을 개방할 당시 공교롭게도(?) 관련자들이 근무현장에 없었고 잘 작동하던 경보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건 석연치 않은 구석이다.

아울러 어제 오후 다시 임진강 군남댐을 돌아보며 참사 흔적을 찾아 나섰는데 위 그림과 같은 모습을 참사 현장 상류인 북삼교에서 포착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군남댐 건설현상 옆으로 물길을 열어 놓고 철제 빔으로 가설한 임시다리를 통하여 댐 공사에 필요한 자재 등을 운반하며 강을 건널 수 있게 만들어 뒀지만 한꺼번에 많은 물이 방출되자 철제빔으로 만든 다리가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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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남댐 공사현장에서 본 철제빔가교는 엿가락 처럼 휘어져 있다. 4천만t에 달하는 물이 댐공사로 임시로 막아둔 철제휀스댐에 고였다가 한쪽으로 쏠려 흐르며 방출된 흔적이다.

저 다리는 지난 장마철 집중호우로 임진강이 범람직전에도 끄덕없이 견딘 것으로 추정되는데 북한지역 황강에서 방출한 다량의 물로 인하여 종이장 처럼 구겨지며 휩쓸려 떠내려 갈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강물이 서서히 불어난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울러 군남댐 공사로 인하여 조그맣게 열어둔 물길은 댐건설로 막아둔 철제휀스로 갇히게 되어 출구를 찾지 못하고 한꺼번에 무너진 다리 쪽으로 몰리며 수압을 더 세게 만드는 결과(Expention valve)를 만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좁은 통로를 뿜어져 나온 거센 물들은 강의 지형을 바꿀정도로 삽시간에 물길을 따라 강변을 휩쓸며 하류로 흘러내려 갔으며, 북삼교를 거쳐 임진교까지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그곳에서 야영을 하던 6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가는 참사에 이르게 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금번 참사원인을 종합해 보면 첫 번째로 재앙을 부를 수 있는 다량의 물을 방출할 당시 통보 사실이 없었으며, 두 번째, 군사분계선 이하 임진강 상류에 설치된 경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고, 세 번째, 경보시스템이 작동 여부에 따라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근무자들이 현장에 없었다는 사실과, 네번째 앞서 언급한 군남댐 건설로 인한 좁은 물길이 유속을 더 빠르게 하여 강물이 불어난 사실을 인지한 직후 대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못한것으로 사료되는 것이다.

임진강에는 수자원공사가 통제국 1곳과 삼곳리.임진리.단풍리.북삼리 등 임진강 주변 4개 리에 경보국을 설치해 운영중이며, 임진강 최북단 필승교 수위가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안내방송
을 하도록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이 설치돼 있었지만, 참사 당일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은 필승교 수위가 3m를 넘어선지 4시간이 지난 오전 7시에 작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의 댐 방류후 참사를 부른 우리측의 첫 번째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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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남댐 공사현장에는 '안전불감증 뿌리채 뽑아내자'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금번 참사 원인을 한마디로 표현해 준 귀한 표어다.

참사 당시 이 시스템이 작동했을 경우 관련 당국자들이 북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강물이 갑자기 불어났다고 하지만 실종자들이 충분히 대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무인자동경보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이후 빠르게 불어난 강물은 군남댐 공사현장에서 일시적으로 가둬진 후 휩쓸려간 철제빔 다리 사이에서 강하게 뿜어져 나오며 유속을 더 빠르게 증폭 시키며 실종자들이 대피할 시간적 여유는 물론 지치게 만든 원인으로 작용하게 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따라서 임진강 참사는 안전불감증에 빠져 방만한 대응을 한 우리측 관계자들이 낸 인재가 분명해 보이나 아직 연천군 및 수자원공사.정부 등에서는 인재에 따른 사과표명 등 후속조치를 하지 않은 채 북한에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 짓고 있는 모습이다. 다행인 것은 금번 참사로 인해 남북의 외교관계가 급속히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었지만, 북한이 의외로 우리측이 표명한 유감에 대해 사후관리(통보)를 해 옴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참사 원인에 따른 면밀한 대책을 세우는 한편,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게해야 할 것이다.

현재 실종자 중 3명의 시신은 찾았지만 또다른 3명의 행방을 찾기 위해 5천명에 이르는 우리 군.경.관민 합동 수색팀이 임진강을 이잡듯 뒤지고 있지만 아직 추가로 시신을 되찾앗다는 소식이 없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국력 낭비 현장의 모습인 것이다. 다음은 어제 오후 임진강 참사 현장 주변을 둘러 보며 참사 흔적을 담은 사진과 영상이다.


다시 가 본 임진강  '참사'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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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앞으로 보이는 나지막한 산을 넘으면 임진강에 도달한다. 방문 당시 언론과 방송 차량들이 줄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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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임진강 참사를 부른 임진교 상류 북삼교 위에서 바라본 군남댐 모습이다. 어업과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이 환경훼손과 생계대책 등을 위유로 댐건설 반대를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이 강행된 군남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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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삼교 위에서 군남댐을 바라보다가 다리 한쪽이 잘려나간 흔적을 발견했다. 저곳으로 다량의 물이 강하게 뿜어져 흘러 내렸고 삽시간에 북삼교를 거쳐 임진교로 향하며 참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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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건설 중 쳐 둔 휀스가 급한 물살에 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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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놀라게 한 것은 바로 이 철제 빔이다. 군남댐 건설 과정에서 공사자재 등을 나르거니 강 반대편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임시로 가설한 견고한 철제 다리였으나 강한 물살을 견디지 못하고 여기까지 떠 내려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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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빔 교각이 강한 물살에 뜯겨져 나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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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천만t에 달하는 물은 임진강을 가로막고 있는 댐건설 현장 곁 좁은 통로를 빠져 나오면서 수압이 높아지며 유속이 증폭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실종자들은 실낱같은 탈출 기회를 잃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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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남댐을 빠져나온 급한 물살은 물길을 따라 좌측으로 쏠리며 급하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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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삼교 반대편(임진교 쪽)에서 본 임진강 모습이다. 급하게 흐른 물살은 강 오른편으로 주로 흘러 강 죄측에는 물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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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낚시꾼이 앉아있는 곳(북삼교 위쪽 군남댐 방향)에는 물살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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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물살(원내)은 강변 무성한 풀숲을 모두 쓰러뜨리며 임진교 쪽으로 흘러 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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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낚시 동호인들도 있지만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다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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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남댐을 휘돌아 온 급한 물살이 이동한 방향이다. 강 반대편은 물살 흔적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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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임진강 참사를 부른 임진교가 보이는데 군남댐을 급하게 빠져나온 물살이 강바닥을 훑으며 모래와 자갈을 떠 민 흔적이다. 강변으로 풀숲이 모두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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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삼교에서 바라본 임진교 모습이다. 강물은 순식간에 임진교에 도달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임진강 군남댐 '공사현장'에서 본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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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환경단체 등이 댐 건설 반대를 해 온 지역에는 '연천군 맑은물 관리사업소'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 댐이 건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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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건설 현장에는 '안전불감증 뿌리채 뽐아내자'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금번 임진강 참사가 시사하는 귀중한 표어지만 정작 관계자들의 안전불감증 때문에 임진강 참사가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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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철제임시 다리가 떠내려 간 부분이다. 굴삭기가 동원되어 복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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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장면을 보며 금번 참사의 원인 뒤에는 댐 건설 때문에 강을 가로막아 둔 임시 철제휀스(댐)으로 인하여 물살이 급하게 증폭된 이유를 들고 있다. 4천만t에 달하는 물이라 할지라도 강폭을 고려할 때 군남댐이 물길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면 유속은 크게 감소했을 것이며 실종자들이 대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나 힘을 더 얻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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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빔으로 견고하게 만든 다리가 엿가락 처럼 휜 사실은 한쪽으로 물길이 쏠려 수압전부를 지탱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다리를 받치고 있던 철제빔이 북삼교 부근 까지 더내려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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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을 눈 앞에 둔 군남댐 건설현장은 이렇듯 강폭 95% 이상을 막고 있는 모습이었다. 물살이 급하고 강하게 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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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남댐 내부에 갇힌 물들이 강변까지 차 올랐던 모습이다. 뒤로 보이는 능선 뒤로 남방한계선을 넘어온 남한쪽 임진강 최상류가 자리잡고 있고 이곳 포함하여 선사시대 유적 적석총이 있는 임진강의 비경들은 댐 완공후 모두 수몰될 예정이다. 참 답답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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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임진강의 비경을 관광하거나 사실상 우리나라에서 임진강에서만 서식하는 황복이나 참게 등 민물고기 맛을 을 찾는 사람들은 주로 이곳 식당을 찾았지만 댐 공사 이후로 이곳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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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나 연천군은 댐건설로 생태환경이 훼손된 이곳에 황복 치어나 참게 치어를 방류하고 있지만 허리를 잘린 임진강 상류로 인하여 눈속임에 불과한 조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산란을 위한 통로가 막혔는데 물고기들이 어다서 산란을 한다는 말인가? 어도를 따라 알들이 상류로?... 이것 또한 임진강 참사 만큼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다. 이런 일을 하여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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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마지막 비경 임진강은 댐건설로 인하여 비경뿐만 아니라 생태환경이 훼손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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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댐 건설로 인한 좁아진 물길로 인하여 물살이 급하고 강하여 귀중한 생명까지 앗아갔다면 무리한 주장이라고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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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참사를 찾아 나섰지만 흔적을 따라 바라 본 임진강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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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이후 한반도에서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우리네 선조들은 늘 강과 함께 살아왔고 강과 함께 살아갈 것인데 그 후손들이 여전히 임진강 여울에서 누치 등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이날 군남댐 앞 식당들은 텅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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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열심히 임진강의 물고기를 잡아도 내다 팔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고 코 앞에 댐을 가로 막은 이후에는 더 이상 임진강 본류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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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장마철 이후 이렇듯 자작하게 흘렀던 강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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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북에서 방출된 불어난 강물은 군남댐에 막혀 갈 곳을 못찾다가 열어둔 좁은 물길을 따라 강변을 핥키며 지난간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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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강물은 댐이 가로막으며 만들어 둔 물길을 따라 강 좌우편으로 흘러 내리고 있었지만 참사 당일에는 강 건너편 산허리 쪽으로 뿜어지듯 하류로 급하게 흘러 간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편에는 불어난 물살이 스쳐간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임진교 아래에서 참사 '흔적'을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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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참사가 일어난 임진교 주변에 도착하자 마자 강 속으로 출입을 금지하거나 통제하는 푯말이 눈에 띄나 형식적인 것이어서 향후 수방대책시 참고해야 할 사항이었다.

우리는 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고 있고, 그 현장에는 뒤늦게 사고 소식을 전하려는 언론과 방송들이 뒤따라 다닌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적지않은 언론과 방송이 임진강 참사 현장을 다녀가며 사고 전말 등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군남댐 건설은 금번 참사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판단했던지 사고현장 근처에만 머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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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장마철 때 불어난 물이 범람직전 까지 가며 쓰러뜨린 풀숲의 모습이다.

하지만 언급한 바와 같이 참사의 최초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북한측 황강댐의 방류지만 우리측 경보시스템의 작동불능과 함께 관계자들의 안전불감증이 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금번 참사는 댐 건설로 인하여 좁아진 물길로 빠져나온 강물의 속도와 수압이 증폭되어 세차게 흐르면서 실종자들이 대피할 여유를 가지지 못한 원인도 없지 않다는 추정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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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참사가 일어난 지역의 수심은 그리 깊지 않아 여울 낚시 천국을 만든 임진강 모습이다.

 관련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강 하류에 면한 지역에서 홍수를 조절하기 위한 댐 건설은 상류 댐의 역할과 기능에 따라 얼마든지 재앙을 초래할 수 있고 그런 사실은 물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세계 도처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임진강 참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외교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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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물살이 떠 안고 내려온 나무 뿌리 등이 임진교 다리에 걸려있는 모습이다.

북한측이 방류한 많은 량의 물이 단순히 댐에 물이 가득하여 방류했다는 사실외에 아직 추가적인 이유를 듣지 못했지만 금번 참사를 통해서 본 가장 근접한 이유(?)는 우리 정부나 미국 등이 UN결의를 등에 업고 북한 핵문제로 인한 대북제재 등과 같은 압박을 가하면서 발생한 일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점쳐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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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참사를 부른 임진교 모습이며 저 다리 아래 하류 지점에서 참변을 당했으나, 방문 당시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임진강의 모습은 평상시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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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포스팅 우리가 못지킨 임진강 '비경' 수몰 된다/임진강에서 사라지는 '물고기' 그 다음은?/임진강 '참사' 남북한 머리 맞대고 고민해야/임진강 실종 참사로 본 '국가간' 물 분쟁

추신: 방금(8일 오전 11시 21분) 들어 온 <속보>에 의하면 북측의 사전 통보없는 댐 방류로 인해 경기도 연천군에서 우리 측 민간인 6명이 실종 또는 사망한 사태와 관련하여 북측에 충분한 설명과 사과를 요구했다는 소식입니다. 새로운 물 분쟁의 시작일까요? 정부는 북측에 대해 사과 요구에 앞서 남북한 관계가 경색되게 만든 사실 등에 대해 먼저 성찰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합니다. 임진강 참사 원인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남북한 관계가 급랭한 것도 하나의 원인일 수 있다는 말이죠.
http://media.daum.net/politics/view.html?cateid=1019&newsid=20090908111208173&p=yonhap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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