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갱이 만큼 많은 '옥수수'의 슬픈 역사
-하늘 아래 첫 동네 부연동 이야기 제3편-
여름끝자락 부연동의 옥수수밭은 막바지 수확이 한창이었다. 막 따 온 옥수수는 껍질이 벗겨진 채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 놓았고 먼저 쪄 둔 옥수수 알갱이는 이빨에 닿자마자 톡 소리를 내며 단물과 함께 쫀득한 살이 이빨 사이에서 쫀득쫀득 거렸다. 자동차가 길거리에서 정체할 때 가끔씩 사 먹던 옥수수 맛과 비교할 수 없는 맛 때문에 연거푸 옥수수 세 자루를 눈깜박할 사이에 다 먹었다. 모처럼 먹어보는 강원도 찰옥수수 였다.
부연동(강원도 연곡면 삼산3리)에서 바라본 산중 모습
명찬 씨는 "금년에 비가 많이와서 옥수수가 잘 자라지 않았다"며 예년 같으면 옥수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옥수수 알갱이 또한 클 것이었지만 수확이 시원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옥수수의 크기는 고사하고 고소한 맛과 더불어 탱글탱글한 알맹이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즉석에서 한접(100개)을 주문했다. 명찬 씨의 옥수수밭은 자신이 운영하는 구멍가게와 민박집 앞에 있었고 대를 이어 이곳 부연동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부연동에 남은 몇 안되는 옛집,너와집이나 굴피집은 1980년대 사라졌다.
명찬 씨는 우리가 옥수수를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좋하하며 "이 옥수수는 할아버지 때 부터 씨를 받아 심어 먹는 옥수수래요."라며 은근히 자랑을 했다. 자랑을 할만도 했다. 나와 안사람이 최근에 먹어 본 옥수수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명찬 씨의 옛날 이야기 속에서 녹록지 않은 산골의 삶 일부를 들으며 옥수수가 지닌 슬픈 역사를 더불어 생각하며 옥수수를 먹어야만 했다.
그가 어릴때만 해도 중고등학교에 다니기 까지 쌀밥 한번 제대로 먹지 못한 이야기 하며 부연동 골짜기 구비구비를 돌아 걸어서 주문진 장에 까지 간 이야기 등 요즘 도회지에서 들을 수 없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옥수수를 먹는 동안 이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옥수수가 있는 곳에는 슬픈 역사가 동시에 있었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옥수수의 고향(원산지)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지역으로 우리나라 강원도 지역과 표고는 다르지만 그곳에 살았던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많이도 닮아있었고 보이는 것이라곤 산 밖에 없는 모습이 또한 그랬다.
정상적으로 잘 자란 옥수수 모습
무엇보다 신세계를 찾아 떠난 몽골로이드 들이 베링해를 건너 북미에서 남미 지역으로 이동할 시기 한반도로 진출한 몽골로이드들은 한반도에 갇혀 살았을 것이다. 그들은 연어들이 부연천을 거슬러 오는 강원도 지역 등에서 곰들과 호랑이들과 함께 구석기시대를 청산하고 신석기시대를 열며 고단한 삶을 이어 가며 오늘에 이르렀을 텐데 신세계를 찾아 떠난 아메리카대륙의 인디언들에게는 혹독한 기후 변화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귀한 식량이 예비되어 있었다. 그건 옥수수와 감자였다.
남미여행 중 페루 중앙시장에서 만난 안데스産 옥수수와 감자
알칼리 식품인 옥수수는 잠을 잘 자게 하는 성분인 트립파톤이 들어있다고 하며 피부 건조와 노화를 막는 비타민E도 많이 들어있다는 식품이어서 북미를 거쳐 중미 남미로 이동한 인디오들에게 감자와 함께 주식으로 이용되었을만 하다. 아울러 감자의 주성분은 전분(녹말)로 철분,칼륨,마그네슘 같은 무기질과 비타민C,비타민B, 등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
감자의 단백질은 모든 아미노산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반적인 식물성 단백질과 갈리 필수 아미노산인 라인신을 다량함유 하고 있고 긴장을 억제해주는 칼륨을 특히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몽골로이드(인디언)들이 아메리카대륙으로 진출한 이후 그들의 삶을 지탱했을 필수불가결한 식품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세계 6대문명으로 불러야 마땅한 '마야문명'이나 '잉카문명'의 근저에는 이들 두가지의 귀한 식량을 재배하고 생활에 사용한 유물 다수가 박물관에 고스란히 남아있기도 하다.
지금으로 부터 약 350만년전 지축의 변동으로 파나마 육교(land bridge)와 남미의 땅이 한데 붙어서 북중미에 살던 인디오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며 안데스 고원에 정착한 이후 그들이 세계 4대문명의 발상 시기와 같은 시기에 새로운 문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띠띠까까 호수 주변의 산간고지나 분지(알띠쁠라노, Altiplano)가 발달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는데, 그들이 살고있던 지역은 열대에 속했기 때문에 빙하기에도 얼음으로 뒤덮이는 일이 없어서 사람들이 살만했는데 대략 2만년전 쯤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살던 몽골로이드들은 그곳에서 다시금 정착하여 문명을 일구고 콜럼부스에 의해 신대륙이 알려지기 전 까지 그곳에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살고있는 지대는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였고 수백만명의 인구가 밀집되어 살았던 세계적으로 보기드문 현상이 안데스에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인데, 그들이 신세계에서 발견한 식품이 옥수수이며 감자였고 안데스의 토양에 잘 자라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아울러 옥수수나 감자는 유일하게 안데스에서 자란 식물이며 1532년 스페인의 피사로 등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침탈되기 전 까지 서구사회나 우리나라에서는 옥수수나 감자라는 말을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씌여진 '산림경제 山林經濟'에 옥수수 재배법이 실려있다는 정보에 따라 대략 16세기경 중국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며 산간지방에서 식량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면 하늘 아래 첫 동네로 불리는 부연동에서 살던 사람들이나 옥수수가 유명한 강원도 지방에서는 안데스에 살던 사람들 처럼 옥수수나 감자가 주식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옥수수가 우리나라에 들러오게 된 역사는 꽤 복잡하다.
<라틴아메리카사>에 의하면 1492년 8월 3일 호전적이고 약탈적인 콜럼부스가 스페인을 출발한 이래로 그들은 항로 개척이나 향신료에만 관심을 두었고 아메리카 대륙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아즈택문명'을 발견 하면서 부터 아메리카대륙에도 엄청난 향신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아메리카대륙 본토에 대한 관심을 가지며 새로운 문명을 찾기에 혈안이 되었다.
그리하여 에르난 꼬르떼스가 이끄는 스페인인들은 히스파니올라나 쿠바를 떠나 멕시코 베라끄루스 항구에 상륙하여 오지로 들어간 끝에 1519년 11월 8일 떼노치띠뜰란 시에 도착하고 1주일 후 아즈테카 왕인 '목테수마'를 감금하고 사실상 모든 지배권을 빼앗으며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본격적인 침탈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때가 '조선 중종 14년'이 되는 해 였으니 이때만 해도 조선이나 중국에 옥수수나 감자가 존재했을 리 만무하다.
그때만 해도 스페인인들은 중미 지역의 침탈에만 급급했지만 1524년 파나마 시의 유지였던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디에고 데 알마그로' 아직 잉카제국을 알지 못하던 때 였다. 잉카제국이 멸망할 수 있도록 피사로에게 기회를 제공한 사람은 신부였던 '에르난도 데 루케 Hernando de luque'였다. 피사로는 루케의 말에 따라 환상의 제국을 찾아 남쪽으로 탐험할 계획을 세우고 자금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세차례에 걸쳐 탐험대를 조직한 결과 마침내 잉카제국을 발견했던 것이며 그로 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남미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로 오늘날 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 옥수수가 전해진 시점은 콜럼부스에 의해 신대륙이 밝혀지고 쿠바에서 에스파냐(스페인)로 가져온 것이 처음이다. 그 뒤 30년 동안에 프랑스.이탈리아.투르크.북아프리카까지 전파되고, 아프리카 각지로는 16∼17세기 사이에 퍼졌다고 전해지며, 아시아에는 16세기 초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들어왔고, 인도에서 티베트를 경유하여 중국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중국으로는 투르크와 이란을 경유해서도 들어갔다. 따라서 당시 중국 상인들에게 전해진 게 아닌가 싶고, 그후 우리나라로 들어온듯 하여 대략 16세기 경 우리나라에 들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듯 하다.
주로 스페인들에 의해 약 400년 가까이 안데스는 물론 멕시코와 카리브와 아메리카대륙이 침탈이 거듭되는 동안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몽골로이드들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으며, 아즈텍문명이나 마야문명 잉카문명은 스페인인들에 의해 초토화 된 후 그들의 문화를 다시금 아메리카 대륙에 포장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촌에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고 행복하게 잘 살던 그들은 현대의 독립국가가 형성될 때 까지 사실상 노예제도와 다름없는 '엥꼬미엔다 encomienda'라는 주민위탁제도를 통하여 인디오 전부를 식민화 하는가 하면 아프리카의 노예들을 동원하여 카리브를 비롯한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서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인디오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정복자들이 그들을 함부로 대하며 살륙을 감행한 탓도 있지만 그들이 신성한 땅 아메리카대륙에 전염병을 옮기며 면역력이 없던 인디오들이 쉽게 감염되어 죽어간 이유도 된 것인데, 하늘 아래 첫 동네인 부연동의 추수가 끝날 무렵 옥수수밭을 다니며 본 옥수수대에는 기형적인 옥수수가 가득하여 불현듯 옥수수의 원산지에서 겪은 인디오들의 수난사가 떠 올랐던 것이다.
콜럼부스나 마젤란 등이 신세계를 만난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 살고있던 인디오들이 수난을 당하는 동안 안데스에서 재배되던 옥수수나 감자가 세계로 퍼져 나갔고, 마침내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식탁까지 올랐으므로, 혹독한 대가를 치른 식량이자 오늘날 인류의 식량난에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는 아이러니한 식량이다. 명찬 씨의 아내는 봄이 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곧 가을이 오고 겨울이 되면 부연동에는 살을 애는 세찬 바람이 불고 곧이어 모든 생명들이 동면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동안 그의 아내도 겨울 한 철은 편히 쉴 수 있다고 했다. 눈이 허리까지 찰 때 온돌방에 앉아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는 것도 그때 뿐, 봄이오면서 눈이 녹기 시작하면 돌무더기 밭을 다시금 일궈야 하고 다시 겨울이 올 때 까지 허리도 펴지 못한 채 쉼없이 일해야 했으므로 봄이 오는 게 너무 무서워 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든 삶을 살았던 명찬 씨(휴양촌,부연민박 운영)는 도회지로 나가 힘든 삶을 청산하고 싶었지만 3년전 그는 다시 부연동으로 돌아왔다. 서울의 삶은 호락호락 하지 않았고 의사로 부터 사망과 다름없는 당뇨 선고를 받고 할아버지 때 부터 살아온 이곳에서 산에 오르며 당뇨를 말끔히 치료했다.
당시 의사는 혈당이 620에 이르는 그에게 당장 '산으로 가라'는 말을 듣고 그동안 버려둔 부연동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행히 그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부연동을 떠날 즈음 부연동 사람 대부분이 도회지로 나갔지만 다시 그들은 부연동으로 하나 둘씩 돌아오고 있었다. "ㅎ...산 좋고 물좋은 곳...이 만큼 더 좋은데가 또 어디에 있드래요.ㅎ..." 그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위 변형된 옥수수 모습들은 '옥수수 깜부기병' 등으로 특이한 모습으로 변한 모습이다.
옥수수 기원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AD 1000년 무렵까지 현존하고 있던 야생조상종이 볼리비아에서 멕시코까지 널리 분포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멕시코와 볼리비아에서 재배형이 성립되고, 다시 멕시코에서 이 재배형과 '트리프사쿰 Tripsacum' 속의 어떤 종과의 교잡에 의해서 급격한 진화가 일어나 지금의 옥수수가 성립되었다는 설이다.
위 그림들이 숨어있던 옥수수밭과 명찬씨 어머나가 살고 있는 집
또 하나의 설은 멕시코.과테말라.온두라스의 옥수수밭에 함께 돋아나는 잡초인 '테오신트 Z. mexicana'가 야생조상종이라고 하는 설이다. 이 설은 최근에 여러해살이풀인 '테오신트 Z. diploperennis'가 멕시코에서 발견되어 더욱 유력해졌으나 확증을 얻은 것은 아니다. 옥수수 기원의 연대는 오래되었으며,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야생조상종은 적어도 BC 5000년 무렵에 멕시코에 분포해 있었고, 재배형이 성립된 것은 BC 3000년 무렵이다.
부연동 옥수수를 쪄서 봉지에 담은 모습(정말 기막힌 맛이며 맹물에 그냥 찐 옥수수다.)
그리고 BC 2000년 무렵에는 지금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삭의 형태가 성립되었다고 한다.북아메리카에는 오래 전에 이미 전파되었으며, 뉴멕시코주에서는 BC 2300년경의 유적에서 출토되어 있다. 부연동에 머무는 동안 옥수수 100개 모두를 쪄서 알갱이만 모아 냉동실에 넣어둔 후 귀경길에 아이스박스에 넣어 집으로 가져왔고 그 알갱이들을 한알 한알 씹을 때 마다 부연동 생각과 옥수수의 이야기가 절로 떠 오른다.<자료출처 :koscot ,라틴아메리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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