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주절주절 하는 '주문진' 바닷가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바닷가에 서면 괜히 궁시렁 거리며 마력에 빠져든다. 늘 보던 바닷가 모래밭도 모래밭을 약올리듯 핥는 작은 파도도 밋밋한 선창가 불빛도 그 바닷가에 서면 괜히 주절 거린다. 도회지에서는 영상 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밤바다는 무슨 마력이 있는 것인지 내 속에 있는 찌꺼기들을 하나 둘씩 배설하게 만들며 깊은 어둠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있었다. 참 편안한 밤바다 였다.
여름끝자락에서 만난 주문진 밤바다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 몇이 삼삼오오 모여 바닷가에 앉아잇는 모습을 본 이후로 밤이 깊어지자 어디론가 모두 사라지고 밤바다 곁에 있던 불빛들이 바다를 향하여 닻을 내리듯 형형색색의 조명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들은 마치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 모두가 바다에 씻겨 떠내려가는 모습이었고 바다는 쉼없이 그 이야기들을 산화 시키며 새로운 이야기들로 환원 시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불빛 속에는 사람들의 고된 이야기와 희희락락 하는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 쓸모없이 버려지는 쓰레기처럼 조명에 묻어 있었는데 조용한 파도는 그들을 밤새 핥으며 정화의식을 하고 있는듯 했다. 그 의식은 황홀한 모습이자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밤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자신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고 있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너무 좋아한 나머지 작은 탄성을 지르며 괜히 주절주절 말을 늘어 놓았는데 그 말들은 때로는 글이 되기도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영혼의 배설물이되어 조명과 함께 밤바다에 씻겨 말끔하게 정화되는 모습이었고 거무스레한 세상의 배설물들은 황금빛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나는 내 속 가득한 배설물이 주문진 밤바다에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묘한 배설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주문진注文津 밤바다에 서면 괜히 주절거리며 '참 좋다'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발목을 붙잡는 모래밭에서 어느새 바람처럼 뒹굴며 정화의식을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밤바다가 정화의식을 거치면서 내 놓은 배설물은 좁쌀만한 모래들이었고 어떤 모래들은 너무 작아서 먼지처럼 보였지만 그 알갱이들은 주문진 바닷가에서 세상의 이야기 내용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생겨난 부산물이기도 했다.
그 모래를 뒤적여 보면 조명에 드리운 밤바다가 아무도 몰래 행하는 정화의식에서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져 있고 한 알갱이마다 한사람 혹은 수많은 사람들의 못다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응어리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나는 밤바다에 가득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모래밭에 아예 엎드려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엿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엿듣고 있노라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늘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반성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살아온 삶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했고 하얀 도화지 처럼 되고 싶어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괘적을 하얀 물감으로 모두 지워 버리고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밤바다에 서면 쉼없이 들락 거리는 파도가 그 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신기해 하고 있는데 나는 그 위대한 일을 쉼없이 되풀이하고 있는 주문진 밤바다를 보며 감탄해 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바다는 찌든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단 한번에 지워 버리며 황금빛 찬란한 삶으로 되돌리는 한편 사람들로 하여금 나로 하여금 주절주절 말을 시키며 오랜동안 사람들을 붙들어 두고 있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나 첫날밤을 보낸 주문진 밤바다 곁에는 갖 잡아온 가자미가 내 앞에 있었고 '세꼬시せごし'라는 이름으로 잘게 썰려 뼈째 초고추장과 '와사비わさび'에 발려 내 입으로 한입 그리고 안사람 입으로 한입 이어지고 있었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횟집이나 식당 등지에서 주문진 바다 가득한 생선들을 먹어 치우는 동안 우리는 주문진 회센터에서 고른 가자미를 포장하여 주문진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이름도 없는(?) 포구에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며 또 주절 거렸다. 그저 참 좋다 라는 말만 되풀이 하는 동안 밤바다는 여전히 세상이 쏟아내는 이야기들을 곱게 만드는 정화의식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정말...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바닷가에 서면
괜히 궁시렁 거리며 마력에 빠져든다.
늘 보던 바닷가 모래밭도
모래밭을 약올리듯 핥는 작은 파도도
밋밋한 선창가 불빛도
그 바닷가에 서면
괜히 주절 거린다.
지난 8월 17일...
여름끝자락의 주문진 밤바다는 그렇게 깊어만 갔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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