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itiveMedia내가 꿈꾸는 그곳 러브스토리와 고부갈등 느낀 서오릉 장식
폭염이 가득한 바깥과 달리 도서관 서고 한편은 냉기가 감돌았다. 그 냉기는 장서된 책 한권을 빼내자 마자 책 뒤편에서 따라나오는듯 했는데 힘들게 찾은 책장을 호기심 깊이 열면서 나는 오래된 기록 앞에서 숨을 쉬는지 조차도 느끼지못할 만큼 책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책 표지에는 '숙종후궁 장희빈 張禧嬪'이라 적혀 있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을 다녀 오면서 평소 내가 알고 지내던 희빈 장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바깥 날씨가 너무 무더워 겸사겸사 해서 도서관을 찾았던 것이다.
구립도서관 내부는 에어컨이 곳곳에 비치되어 바깥 온도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시원했다. 나는 서고에 가볍게 몸을 기댄채 선채로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기 시작했다. 기록들은 주로 '숙종실록肅宗實錄'을 중심으로 사실(?)을 중심으로 희빈 장씨의 인물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어 있었다. 잘 알려진대로 숙종실록은 공작정치와 궁중의 암투와 환국으로 얼룩진 조선 제19대 왕 숙종의 실록이며 1674년 8월부터 1720년 6월까지의 기록을 담은 책이며 원제는 '숙종현의광륜예성영렬장문헌무경명원효대왕실록肅宗顯義光倫睿聖英烈章文憲武敬明元孝大王實錄'이다.
숙종실록은 희빈 장씨가 낳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 즉위 11월에 편찬을 시작하여 1728년(영조 4) 3월에 완성했다. 편찬 시간이 8년이나 걸린 것은 이때가 노론과 소론의 대립기여서 정국변동이 심했기 때문이다. 경종은 즉위 4년 후 독살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날씨가 더운 탓도 있었지만, 서오릉에 있는 희빈 장씨의 대빈묘를 마주하며 서오릉 곳곳에 있는 재실의 출입문 등에 장식된 철제 장식과 세월의 힘을 이기지 못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듯한 창살 등을 보고 있노라니 구중궁궐 속 여인들의 갈등들이 되살아 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갈등은 궐밖 보통사람들이 느끼는 인간적인 평범한 갈등도 있었지만 숙종실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온갖 공작정치와 암투의 갈등이 불필요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록에서야 왕실의 법도에 어긋남이 없고 후사를 없애기 위한 노력을 덧붙였겠지만, 단명한 왕실의 여인들의 삶이 안타깝기만 하여 오늘날 후손들의 삶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녀들은 대체로 10살 이후 40세 전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희빈 장씨의 예를 들어 실록 내용을 오늘날 모습으로 일부 각색해 보면 러브스토리와 고부갈등이 혼재된 실로 정신없이 살아 간 세월이었다.
현종 11년 인경왕후는 10세 때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현종 12년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숙종이 즉위를 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그리고 숙종 6년 10월에 천연두 증세를 보이다가 발병 8일만에 경덕궁에서 승하하고 만다. 인경왕후는 대를 이을 왕자를 얻지 못했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나인內人들을 두루 살폈지만 숙종의 후궁을 쉽게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숙종은 내심 점 찍어 둔 나인 한명을 떠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숙종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숙종의 선택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머니...저는 옥정이가 더 좋다니까요?!..."
"안돼!...그 년은 너무 잘 생긴 게 흠이야!...그리고..."
숙종의 어머니는 천한 신분으로 나인이 된 옥정을 가리켜 "매우 간사하고 악독하다"는 표현으로 숙종의 뜻을 가로 막는 한편 훗날 '인현왕후'가 제 격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물론 숙종의 어머니가 이렇듯 옥정을 가로막고 나선 이유는 노론과 소론의 암투가 작용하고 있었다.
"...어머니...그게 무슨 이유가 돼요?...제가 사랑한다니까요?...ㅜㅜ..."
"...그래도 안돼!...옥정이 그년은 필시 너를 꼬드겨 화를 자초하게 될꺼야!..."
"말도 안돼요 엄마!...어떻게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그렇게 잘 아세요?...엄마? ㅜ "
"...닥쳐!...넌 테레비에 나오는 미실과 덕만이도 못봤냐?..."
"아니...거기 덕만이가 왜 나와요? 츠암!...ㅜ"
장옥정(희빈장씨 본명)...그녀는 인경왕후가 승하한 직후 비로소 숙종으로 부터 은총을 받은 후 숙종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던 것인데 숙종의 어머니는 자신의 말을 듣지않는 아들 숙종과 함께 장희빈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장희빈을 더욱 미워한 것은 장희빈의 외모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내심 질투심도 있었던 것이다.(흥!...천한 주제에 얼굴은 잘 생겨가지고...두고 봐라!...) 다음날 장희빈은 숙종의 어머니에 의해 즉각 궐 밖으로 내쫏겼다.
"대왕대비마마!...전 전하를 사랑한 죄 밖에 없사옵니다! ㅠㅠ..."
"닥쳐!...너 같은 종년의 계집이 왕을 사랑해?!!..."
징희빈은 숙종의 어마니에 의해 궐 밖으로 내쫏긴 후 승선군 이징의 아내 신씨申氏(신흠의 아들 신익전의 딸)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신씨...숙종 엄마 너무한 거 아냐?...ㅜㅜ"
신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희빈의 억울함을 다 들어주며 함께 슬퍼했다. 장희빈은 숙종의 어머니로 부터 궐에서 쫏겨날 당시 숙종이 자신에게 말한 사랑의 서약을 떠 올리며 내심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갸...엄마 너무 신경 쓰지마...저렇게 펄펄 뛰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라구. 그러니까 엄마가 뭐라 그래도 아무 말대꾸도 하지 말고 엄마 시키는대로만 해...난 자기 뿐야...(뾰옥!~^^)...)
숙종 7년에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는 15세의 인현왕후를 왕비로 책봉했다. 인현왕후가 왕비에 책봉된 후 장희빈이 숙종의 은총을 받았으므로 궁중에 들어올 것을 건의했지만 숙종의 어머니는 끝내 반대하고 말았다. 그러자 내전에서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장희빈을 미워하고 폄하하자 "어찌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헤아려 국가의 사체事體를 돌보지 않으십니까?"하고 명성왕후의 일 그르침을 탓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장희빈에 대한 까닭없는(?) 미움은 숙종 9년 12월 창경궁의 저승전에서 숨을 거둘때(승하) 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지독한 미움이었다. 서고의 통로는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여서 도서관에서 책을 계속 읽을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들락 거리며 집중을 방해하고 있었다.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가 승하하자 마자 숙종의 곁에서 시어머니의 폭정을 지켜본 인현왕후는 밤이면 밤마다 궁 밖의 소식에 궁금해 하는 숙종의 마음을 헤아리는 한편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희빈 장씨의 처지를 깊이 헤아려 숙종에게 장희빈을 궁으로 불러들이는게 어떠냐며 물었다. 숙종은 그런 인현왕후가 너무 고마웠다.
"고맙소!..그동안 당신도 어머니 때문에 적잖은 속을 썪었을 것인데..."
장희빈을 궁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데는 자의전 인조계비 장렬왕후도 한 몫 거들었다. 다시 만나게 된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은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지속되었다. 하지만 장희빈이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동안 환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숙종 12년 3월 28일 영빈김씨를 숙의로 임명하여 4월 26일 입궐 시켰는데, 숙종 15년 4월 22일 자신을 궁으로 불러들인 인현왕후가 모략으로 폐위되자 본가로 돌아가는 일이벌어졌고 숙종과 장희빈의 사랑이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국 숙종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한 여인 장희빈을 환란을 잠재울 희생양 삼아 자결을 명하고 마는데, 서오릉에 잠든 조선의 여인들은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여인의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한채 재실의 장식처럼 녹슬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책 몇권을 빌려 도서관을 나서는 순간 폭염은 여전했다.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숙종의 탄식이 들려오는듯 했다.
(...나의 사랑 옥정...정말 미안하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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