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노무현 친구 VS 이명박 프렌드리
-추모 다큐 제19편-
주말인 오늘(25일), 서울의 하늘은 구름이 끼었다 개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구름이 비켜간 자리에는 파란 하늘이 솜털구름과 함께 나타나 기분을 좋게하는가 하면 먹구름이 다시 하늘을 뒤덮자 기분 마저도 우중하게 변하는 것 같다. 모처럼 느긋하게 인터넷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지나간 한 모습 앞에서 시선을 멈추었는데 그곳에는 이미 과거의 한 장면이 된 사진 몇장이 나를 붙들어 놓으며 새삼스럽게 '친구'에 대한 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내겐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친구라는 말이 회자되는 즉시, 나는 한 친구를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고 그 친구는 오래전 30대의 나이에 아이 둘을 세상에 남기고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 친구는 부산에 살고있었고 자정이 넘은 시각 그의 부고를 받는 즉시 짐을 꾸리고 그의 주검이 안치된 부산동아대학교 병원으로 비행기로 급히 날아갔다. 그리고 그가 한줌의 가루로 땅 속으로 영면하러 가는 동안 거의 식음을 전폐하며 슬퍼했다.
그런일은 그 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를 생각해 봐도 그와 같은 아쉬움을 남기지 못했고 나는 천하를 잃은듯 슬퍼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본 친구들이 서운해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고백하는 바와 같이 그들 또한 나의 형편과 같이 자신의 분신과 같은 친구들을 늘 기억하고 살 것이고, 자신이나 친구들의 죽음을 앞에두고 나와 같은 경험을 했거나 겪을 것이다.그렇게 친구는 단지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모습이 비친 거울과 같을 뿐만 아니라 그와 내가 동일체와 같은 사람을 두고 일컫는 말이 아닌가 한다. 이런 사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록된 바 인지상정의 한 모습이다.
포스팅 속의 그림 몇장은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해가 봉하마을에 안치된 이후 입관식을 하기 위해 처음으로 권양숙여사가 모습을 드러낼 당시< 속보! 처음 모습 드러낸 권양숙 여사 <봉하마을 표정 13보> > 영화속 친구의 복장을한 조문객이 교복을 입은 등 뒤에 "친구처럼 믿어 왔고 믿고 있고 믿을 수 있는 노무현"이라 적혀있는 모습이다. 그는 노 전대통령의 영정이 걸려있는 분향소 모습을 휴대폰에 담으며 밤새 분향소 주변을 서성거렸다. 아마도 그는 대통령직을 가졌던 인간 노무현에 대해서 늘 친구처럼 생각해 왔던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친구의 갑작스러운 소식을 듣고 봉하마을로 달려온 것은 물론 500만 조문객들이 그랬던 것 처럼 그 또한 친구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이나 전국의 분향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보 노무현'이라 불렸던 것과 같이 때로는 상대의 뻔한 속셈을 알고도 속아주고 때로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허심탄회 털어놓는 모습을 두고 친구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며 그 친구들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편안한 상대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 포스팅의 제목과 같이 노무현의 친구와 이명박의 친구를 비교해 보면 친구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데 이명박의 '프렌드리'는 노무현의 친구들에 비해 극히 제한적인 사람들이 누리는(?) 친구로 생각되어 이명박대통령의 서민행보가 생뚱맞은 모습으로 일반에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고관대작이 서민행보를 할 수 없다는 법이 없고 귀족이 서민행보를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서민행보는 남루한 옷차림이나 오뎅을 먹는 시늉과 같은 게 아니라 서민의 의식을 가진자라야만 누릴 수 있는 서민의 특권인데 그런 서민들 다수를 빨갱이로 몰아가며 스스로 빨갱이짓을 하려드는 모습은 어디까지나 쌩쇼일 뿐이고, 깜짝이벤트에 불과한 것이다. 스스로는 그 행보가 서민행보라 하고 있고, 그 말을 그대로 배껴쓰는 언론들이 정론이라는 것이며 그 행보에 발맞추어 미디어법을 날치기 하는 모습을 서민행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서민행보에 발을 맞추고 있는 정권의 꼭두각시 안상수가 서민이고 머리 잘돌아가는 판사출신 나경원이 서민이고 앵커에게 방망이 넘겨준 국회의장 김형오가 서민이고 박희태가 서민이고 조중동이 서민이고 MBC에 양다리 걸치고 있는 박근혜가 서민이고 대형교회 목사들이 서민이고 재벌그룹총수가 서민이고 검사장이 서민이고 경찰청장이 서민이고 비서실이 서민이고 이명박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는 딸랑이들 모두가 서민이고...이명박의 친구라고 한다면, 이명박의 친구들은 내가 말한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 비지니스로 거래를 하는 '프렌드리'일 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서 인터넷 용어같은 무뇌 또는 영혼이 없는 사람이나 집단들 처럼 보여 권력의 힘을 상실하는 즉시 거래를 마감하는 사람들일 뿐인 것이다.
바보 노무현이 운명을 달리했어도 여전히 여러분들에게 친구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어줍잖은 판사를 내세워 말장난이나 일삼은 것도 아니었고 몰래 방망이 넘겨 미디어법 날치기하는 모습도 아니었고 사실을 왜곡 호도하는 언론들과 함게 놀아난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조찬기도회로 기도발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마음에도 없는 정치세력을 규합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공권력을 남용한 것도 아니었으며...등등 또한 아니었다.
그는 통치행위로 대변되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일어났던 불찰들에 대해서 국민들 앞에 낱낱이 고하며 부끄러워 하는 한편, 자신의 허물을 용서해 달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곁에도 이명박 프렌드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의 사후에 그 사람들은 노무현의 인간 됨됨이에 모두 고개를 떨구고 늦으나마 자신들의 불찰에 대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 이명박정부에서는 몇가지 이슈들이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의 정치적 이익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공권력을 동원하여 모조리 족치는 일이 그것이고, 4대강정비사업이 그것이며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디어법을 날치기한 모습 등이 그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하면 이 땅에 영원히 한나라민국을 만든다고 착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보 대통령 노무현 앞에 머리숙여 분향한 500만 국민들이 깨어 있는 한 그런 착각은 현실화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이명박정권의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과 함께 이명박의 프렌드리들은 다시금 모습을 바꾼 채 아양을 떨며 친구하자고 달려들지 모른다. 따라서 지금 그 이름들을 낱낱이 기억해 두었다가 그들 하나하나의 이름들이 친구가 아니라 귀중한 '친구'의 이름을 거래하는 당사자였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친구는 함부로 입에 담는 말버릇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분신이기 때문이다.
서울 하늘을 닮은 구름들이 오락가락 하는 것 처럼 정치권의 먹구름이 오락가락하며 보통사람의 심경을 건드려 놓고 있다. 전설의 친구로 남으려면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다가서고 전설의 프렌드리로 남으려면 지금처럼 공권력에 의지한 정치를 계속하면 된다. 영화 '친구'가 남겨준 메세지 또한 잔대가리가 아니라 목숨과 바꿀 수 있는 진정한 사람과의 관계다. 노무현이 돈으로 친구를 사귄 친구는 본 바 없고 그 때문에 그가 바보 대통령이라고 불리우는 이유중 하나였고, 우리들에게 전설의 친구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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