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서리의 따끔하고 가려운 추억
야!...야!...조용히 해!...
행동대원이 된 친구와 나는 복숭아가 발그스레 탐스러운 모습으로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 뒷편 풀숲으로 조용히 잠입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부주의로 마른 나뭇가지를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냈기 때문에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속삭이고 있었다. 간이 콩알만 해진듯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눈 앞에는 주먹보다 더 큰 복숭아가 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집 뒷뜰에서 본 복숭아 과수원은 봄철 하얗고 분홍빛이 감도는 꽃밭으로 절경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그 꽃들이 하루라도 빨리 떨어지고 여름방학이 오기를 학수고대 했던 것이다. 비탈진 과수원 풀밭으로 몸을 낮추어 가는 저 만치 앞에 원두막이 있고 가끔씩 복숭아 나무 사이로 무서운 아저씨가 부채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어른 거렸다. 우리는 복숭아 나무 잎파리에 몸을 감추고 손을 길게 뻗어 복숭아를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복숭아 나무가 흔들렸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두눈은 복숭아와 원두막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고 손끝에 잡힌 복숭아는 까칠했다. 털이 뽀송하게 박힌 복숭아는 걷어부친 '난닝구-런닝셔츠-'에 하나 둘씩 쌓여 배불뚝이가 됐다.
야!...야!...인자(이제) 가자!...그만따고~오
과수원 울타리 너머에서 망을 보고있던 친구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손짓으로 빨리 오라는 신호를 한다. 가슴은 콩닥거려 숨도 못쉴 형편이었다. 녀석들의 입술 모습을 보니 우리보다 더 겁먹은 표정이었다. 검정 고무신에 땀이 배어 과수원 비탈에서 신발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야!...그만 따고 빨리 나오라니까!!...)
친구의 아랫배 쪽에도 복숭아를 움켜쥔 모습으로 배불뚝이가 되어 있었다.
복숭아 서리는 성공한듯 했다. 그런데 배불뚝이를 움켜쥐고 전리품을 나눌 계곡으로 이동하는 동안 배불뚝이 속에서 자꾸만 가려움이 일기 시작하더니 따끔거렸다. 한손으로 난닝구를 움켜쥐고 한손은 땀이 배어 근질거리는 아랫배를 긁었다.
그러나 긁어도 긁어도 가려움은 쉬 가시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멱감을 장소에 도착하자 마자 옥수같은 계곡에서 멱을 감으며 근질거림을 가시게 하고 발그레한 복숭아를 깨물어 향긋한 복숭아 맛을 보며 즐거워 한 것 까지 좋았으나 복숭아 서리에 실패하여 디~지게 혼난 경험이 있는 친구가 하는 말을 듣자 마자 슬슬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아저씨가 우리 못봤겠지?!..."
행동대원이었던 친구와 내가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당근이쥐!!...^^* "
우리는 서리한 복숭아아 함께 멱을 감으며 고추가 오그라들 때 까지 멱을 감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해가 뉘엿거릴 때 쯤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출출할 정오가 넘어 떠난 우리는 너댓시간 이상을 복숭아 서리와 멱을 감는데 시간을 다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또 문제가 생겼다. 멱을 다 감고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온 몸이 근질 거리고 따끔거렸다. 난닝구를 잘 털어 입던지 계곡물에 헹구기만 했어도 될 텐데 복숭아의 잔털이 난닝구에 그대로 박혀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더 따끔한 일이 기다리고 있는 줄 나나 친구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 뒷마당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친구들과 나는 거의 동시에 멈춰 서고 말았다. 툇마루에 아버지와 복숭아 과수원 아저씨가 함께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허걱!!...) 아마도 이런 상황을 '대략난감'이라고 표하는 것 같았다. 도둑놈 제 발 저린다고 우리는 과수원 아저씨를 보자마자 먼저 겁에 질린 것이다. 그런 한편 초딩(국민학교 2학년)들은 잔머리로 위안을 삼고 있었던 것인데 그 표정들은 이랬다.
(...아저씨가 우리를 봤을 리 없어!?...)
우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복숭아 나뭇잎에 가려 과수원 주인이 우리눈에 띄지 않았을 뿐 아저씨는 복숭아 서리를 하는우리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들...복숭아 따려면 복숭아를 손에 꼭 쥐고 이렇게 비틀며 따야지...^^ "
아저씨는 우리를 향하여 손을 들고 비트는 모습을 보여줬다.그런 걸 알 리가 없는 친구와 나는 복숭아를 잡아 당겨 나무가지 몇을 부러뜨려 놓은 것이다. 아저씨와 아버지 곁에는 막걸리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우리들이 성공했다고 믿은 복숭아 서리는 아버지가 톡톡히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시면서 우리에게 타일렀지만 곧 호된 꾸지람이 들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일은 없었다. 그러나 난닝구 밑이 자꾸만 가렵고 따끔 거렸다.
"...네!!~~다음부터 안 그럴게요...ㅜㅜ "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고개를 떨구고 고무신으로 괜히 마당을 긁고 있었다. 아저씨는 원두막에 앉아서 우리들 모습을 지켜보며 '저녀석은 누구 누구네 아들'이란 걸 다 알고 있었다. 우리만 몰랐을 뿐...
"...빨리 씻고 밥이나 먹어...녀석들...^^ *"
"...녜!!~~"
(후다닥!=3=3=3=3)
우리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키득 거리며 뿔뿔히 흩어졌다.
햋볕이 쨍쨍 내리쬐는 정오경 나는 벌레가 먹고 씨알이 작아 소출이 안되는 복숭아 나무 곁에서 안사람과 함께 복숭아 몇을 까만 비닐봉지에 따 담고 있었다. 복숭아 나무 곁에서 서성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우리를 향하여 주인이 따 가도 좋다고 했는데 그 나무는 잘 찟기는 복숭아 나뭇가지를 모른 채 눈군가 올라가 부러뜨린 나무에 달린 복숭아였다.
"...벌레가 먹긴 했어도 약(농약)을 치지않은 거라..."
하지만 배탈이 나도 책임지지 못하니 알아서 따 드시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풋복숭아의 맛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봉지 가득 복숭아를 따 담았다. 그리고 그 복숭아들은 잘 세척되어 따끔거리거나 근질 거리는 일은 없으나 내 기억 속에서 복숭아 서리의 따끔하고 가려운 추억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발그레한 살 한편으로 푸른색이 감도는 풋복숭아의 향긋한 냄새가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분들은 지금 모두 하늘나라의 무릉도원에서 복숭아 서리를 하던 우리를 기억하시며 웃고 계실 테지?...^^*
이렇듯 내게 복숭아 향기 보다 더 아득한 그리움을 준 복숭아는 <동의보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나무로 복숭아는 열매뿐만 아니라 복숭아 씨, 꽃, 잎, 나무 속껍질, 나무 진, 심지어는 복숭아의 털과 복숭아나무의 벌레까지 약으로 쓰인다고 전해지는 귀한 과일입니다. 한의를 하신 아버님이 그래서 나쁜짓이이었지만 호된 꾸지람은 하시지 않았던 것일까요?
한약재로 쓰이는 복숭아 약재는 약효에 따라 기약氣藥, 혈약血藥, 수약水藥으로 나뉘며 혈약으로 사용되는 복숭아는 혈액을 '순환'시키는 것입니다. 여름 과일인 복숭아는 성질이 더 따듯해서 그만큼 혈액을 순환 시키는 기운이 강하다는 말이지요. 잘 알려진 것 처럼 혈액 순환을 대표하는 한약재인 '도인桃仁'이 바로 '복숭아 씨'며 도인은 혈액이 정체되어 생기는 노폐물인 '어혈 瘀血'을 풀어주는 효능이 매우 우수해서 부인과 질환에 많이 사용되는 한약재로 알려져 있고, 복숭아가 도인보다는 못해도 혈액순환에 도움된다고 하니 제 철에 나는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그 만큼 몸에 좋다는 말씀입니다. ^^
아울러 약초 서적인 <본초강목>에서는 미용의 으뜸과일로 복숭아를 꼽는다고 합니다. 예날 고려의 귀족들은 복숭아 물로 목욕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 또한 혈행을 원할하게 한 것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따라서 민간요법에서는 창백한 얼굴에 복숭아가 좋다고 하고 땀띠나 여드름에 북숭아 잎을 끓인 물로 씻고 기미에는 복숭아 씨 기름을 물과 섞어 바르면 효과가 있다고 하니 특히 여성들은 여름철 과일중에 복숭아를 먹고 바른다면 발그레한 복숭아 처럼 미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복숭아는 땀으로 수분 손실이 많은 여름에 피부 탄력을 유지시켜 줌으로써 여름철 피부 관리의 으뜸 과일이 복숭아라는 말씀이니 여성들은 귀담아 두었다가 반드시 실행에 옮기면 도랑치고 가재잡는 효과를 보겠군요. ^^*
그런 한편, 저 처럼 복숭아 서리의 따끔하고 가려운 추억같은 일은 섣불리 하다간 '절도범'으로 몰릴 우려가 있고 가뜩에나 어려운 우리 농촌의 농부들이 애써 지어놓은 농사를 망치는 사례가 됨으로 각별한 주의를 요구합니다. 복숭아 서리 등 서리는 불과 수십년 전 아직 우리사회가 산업사회로 도약하기 전에 가끔씩 있었던 추억의 모습일 뿐 이 글을 보신분이 못된 짓을 한 저를 흉내내시면 그땐 정말 따끔하고 아픈 추억을 가지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 암튼 이 글을 끄적이고 있는 동안에도 손바닥에서 풍겨오는 복숭아 향기 때문에 죽을 맛(?)입니다.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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