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국 유신독재 '말기' 보는것 같아
아마도 지난 79년 10월 26일 박정희 군사독재정부(이하 '박통'이라 부른다.)의 막을 내리게 한 시해사건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요즘 우리나라의 정국이 장기집권을 꿈꾸며 만든 유신헌법 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시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0년전 당시와 현재의 정국이 다른점은 군사독재와 맞서 싸우던 야당들이 이명박정권과 맞써 대립하고 있는 것과 경제사정이 조금 더 나아진 것 외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보인다.
박통 시절과 이명박정부의 공통점은 일단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한편 무소불위의 공권력으로 국민들을 장악하며 권력에 대해서 일체의 간섭을 받지 않으려 드는 점과, 소수의 권력 2인자가 소수의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유지하거나 부풀리기 위하여 언론을 통제하는 등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와 같은 모습으로 밀어부치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와 조금 다른점은 박통 당시에는 권력 2인자로 불리는 차지철(경호실장)이 실세로 등장하며 군부나 장관 등을 마음대로 요리했지만 지금은 비서실장의 권력보다 대변인의 언론권력이 더 커 보여 차지철 버금가는 실세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하며, 여기에 군부와 검찰 보수언론 등이 합세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차지철이 세간의 이야기에 콧방귀를 뀌고 권력놀음에 한창일 때 당시 학원가나 시사문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박통의 거취에 대해서 큰 우려을 하고 있었고, 저러다가 제5공화국인 유신정권에 큰 변란이 불어닥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은 박통 뿐만 아니라 차지철과 같은 권력맛에 도취한 사람들이었다. (지금 그들과 함께 놀아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전해온 소식은 '시해사건'으로 결말난 혁명적인(중정부장 김재규 증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제2의 대통령(?) 차지철을 향하여 '버러지(벌레)만도 못한 친구'라고 하며 그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오늘날 버러지만도 못한 사람들이나 집단은 누구일까?...'프리메이슨?'...!)
지난 29일, 노제를 끝낸 노 전대통령의 운구행렬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광화문 세종로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노 전대통령의 노제가 끝난지 두어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광화문과 태평로에 깔려있는 경찰들의 모습을 보며 1979년의 정국을 떠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 정권으로 말미암아 투신 서거한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금전 까지 영결식을 하며 애도하던 길목과 현장에 경찰을 투입할 수 있는가 하는 절망적인 생각이 들었고, 이명박정권이 도덕성은 바닥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적인 면 일부는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 마저도 확인해 볼 수 없는 정권의 처사에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한편 국민들에게 지은죄가 얼마나 많았으면 공권력 없이는 정치를 할 수없는 상황에 이르렀을까? 하는 우려까지 동시에 하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할일 없이 길 바닥에 주저앉아 시간을 떼우며 당일 노 전대통령의 영결식 소식을 뜯어보고 있는 시민들이나 경찰들의 모습을 보며, '경제살리기'는 커녕 온 국민들의 가슴에 분노와 배신감을 만든 정권에 대한 비생산적인 독재행태의 정권의 버릇을 고치고자 마음먹고 있다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유신독재의 한 부분이 얼른 떠 올랐던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들은 그들 스스로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까지 그들이 한 행위를 반성하지 못하고 있고, 뻔뻔스럽게도 그들이 저지른 죄값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가 박통과 같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집권여당의 일부 국회의원들은 권력과 동떨어진 자신들의 처지가 위태로움을 인지하고 지도부의 쇄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당(정권) 지도부가 내놓은 처방은 겨우 차지철이 임기응변한 것 처럼 '립서비스'와 같은 '만찬' 정도로 입막음을 하거나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 들고 있는 시점, 우리민족의 앞날에 대해서 노심초사하던 '강희남 목사'의 자결소식은 노 전대통령의 투신 서거에 이어 매우 우려되는 슬픈 소식이자 반정부 인사들의 급박한 행동을 유발시키는 동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정권이 조성한 '공안정국'으로 인하여 노 전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조문정국'으로 이어지던 정국은 다시금 재야인사의 자결소식으로 흉흉한 소식들이 난무하며 겉잡을 수 없는 '안개정국'으로 변하고 있는데, 이명박정권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아니라 오직 경찰력 뿐이어서, 성난 민심들이 경찰에 대항하려고 작정이라도 한다면 유신독재 말기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오지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공권력에 대하여 비폭력 무저항으로 촛불을 들었던 것인데, 국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사태를 점점 더 악화 시키는 이명박정권에 의해, 국민들이 '민주'를 이끌어 낸 '6.10 항쟁'과 같이 거리에 쏟아지고 조직화되며 저항이 거셀 경우, 이명박정권과 우리 국민들은 매우 불행한 사태에 빠질 수도 있어 보이는 태풍전야의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박통의 유신독재 말기에는 박통이나 박통의 권력을 스스로 나누어 가진 차지철의 어긋난 권력욕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전체 우리 국민들 중 소수였지만, 개인과 집단과 소통이 원할해진 '인터넷시대'의 정보 공유를 통한 '사실공유'는 전문가 집단이 정권을 도우려 해도 '언론 기능'을 가진 인터넷 장악 없이는 불가능하고, 인터넷을 장악하려면 최소한의 '민주적인 요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독재정권을 답습하려는 정권에게 있어서 '불가능'에 가까운 절차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독재는 여전히 과거의 독재자들이 남긴 교훈과 같이 비참한 말로를 예견하고 있을 뿐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생각나는 1979년 10월 26일 종말을 고한 그 사람은, 스스로 세상의 찬사를 도맡을 수 있는 업적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지철을 방관하고 차지철의 오만방자한 근접경호(?)로 말미암아 단발의 총성으로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지금 '프리메이슨'과 닮은 외세의 권력에 휘둘리는 이명박정권이 차지철을 닮은 언론이나 재벌, 군벌 등과 같은 권력 2인자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유신독재 당시의 상황과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분노하며 원치 않는 일들을 너무 많이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박통이 중정부장 김재규의 권총에 '죽음'을 당할 당시, 민심은 흉흉했고 김재규가 아닌 그 어떤 사람이 박통을 향하여 총구를 겨누었다 할지라도, 후세 사람들은 권력의 중심부에 함께 있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보다 유신헌법을 통해 국민들을 기만하며 장기집권을 꿈꾼 박통이나 권력의 2인자였던 차지철 등에 대해서 더 많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정국의 분위기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화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란 풍선'곁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노란풍선' 곁에서
시민들의 공간을 장악한 경찰들!...
누구를 위한, 누구를 향한 공권력인가?!...
마침내!...
'노무현의 열정'이 식었던 가슴을 깨웠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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