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폭동으로 보도한 '방송' 이렇다.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불리울 때 까지는 제법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정수립, 전두환(全斗煥) 보안사령관과 12·12사태를 주도한 신군부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주화운동은 꽤 긴 시간동안 보류되고 있었다. 그러나 군부와 결탁했던 김영삼 이후 마침내 민주정부가 이 땅에 세워졌다. 하지만 민주정부는 정확히 10년만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광주사태'로 보도한 장면들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의 사주로 간첩과 폭도들이 일으킨 '광주사태'로 국민들에게 각인되기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 당시 전두환 군부가 장악한 방송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일 광주사태로 부르며 국민들에게 전파했고, 경상도 지역 등은 전라도와 광주에서 일어난 이른바 '광주폭동'으로 인해 민심이 극도로 흉흉하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말들이 극도에 이르렀다. 김대중 (한국 대통령) [金大中]이 그 한가운데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촉발된지 오늘이 만 29년되는 날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올림픽도 개최했는가 하면 그동안 IMF라는 초유의 사태도 겪었고 민주정권의 민주화를 만끽하기도 했다. 그런 한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던 언론과 방송들도 더불어 변하여 이제는 민주를 짓밟는 언론이 되기도 했으며 방송조차 정체성을 찾기가 힘들만큼 자사이기주의에 충실하게 됐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
이 땅에 피를 흘리며 염원한 민주는 그렇게 변질되고 있었던 것이다. 곧 미디어법안이 국회에 상정될 것인데 그때 우리는 다시금 미디어의 과거사와 함께 역사를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줄 믿는다. 언론과 방송이 정권과 손을 손을 잡으면 광주민주화운동은 다시금 빨갱이들이 난동을 부린 광주사태나 광주폭동으로 변질될 것이기 때문이다. 삼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숨진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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