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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저주받은 '무화과' 두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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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무화과' 두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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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어른이 되려면 밤과 낮은 물론이고 추위와 더위 등, 세상사 모두를 더 알아야 할 것 같은 여린 무화과 나무 곁에서 한동안 서성거렸다. 내게 무화과는 특별한 존재였다. 한때 바이블에 심취하면서 무화과는 내게 무한의 상상을 더한 나무였고 열매였으며 잎이었다. 무화과!...無花果!...꽃을 피우지 않고도 열매를 맺는 나무며 열매다. 세상에 이런 불합리가 어디있나?...

우리는 보편타당이라는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열매를 맺기위한 기본적인 절차가 꽃을 피우는 것으로 알고 있고 다수 속과 종들은 이런 절차에 따라서 반드시 꽃을 피우고 난 다음 열매를 맺는 법인데 무화과는 꽃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는 나무다.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대충 2,000년 전 쯤 '예수 Jesus Christ'라는 사람은 이 나무를 향하여 저주를 내렸다. 당시 그가 저주를 내리면 반드시 그에 합당한 결과가 도출되던 '기적의 시대'였다. 따라서 창조주가 무화과라 이름을 지었던 이 나무는 말라죽고 말았다. Jesus!!...

무화과가 말라죽던 당시 시대상황은 예수 사후 2천년 쯤 무화과가 블로거 '내가 꿈꾸는 그곳'에 등재 될 것으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때 예수가 기독교의 교주로 등극하리라고 믿은 것은 몇사람에 불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말한 '저주'가 각양각색으로 변질되어 '말씀'으로 전파되며 헛발질만 하는 목자들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날 목사로 블리우는 목자들은 무화과를 일컬어 '주둥이만 나불대고 행동은 없는'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꼬집어서 말한 '바리새인'들만 칭하는 것으로 비유하지만, 실상은 오늘날 목자들의 허례허식을 꼬집은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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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목자들은(전부가 아니다) 우선 교회의 외적 성장을 위해서 교회의 참 뜻을 무시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며 성전을 우선 크게 번듯하게 지으려고 하면서 초대교회 이전에도 없고 바이블에도 없는 '건축성금'과 같은 제도를 만들어 성도들을 구속하고 있고, 별의 별 성금을 만들어 특정 교회의 성장을 위한 돈을 끌어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외적 성장이 곧 '하느님에 대한 충성'으로 믿는 한편 세상에서 갈 곳 없고 외롭고 고독한 이들의 심리를 '죄'로 포장하며 단지 그들이 속한 예배당에 충성을 다하도록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미 2천년 전에 이러한 병폐가 속출 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그는 훗날 '마태 Matthew'가 전할 기록 '마태복음 마21:18-22'에서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 21:19)"라고 저주를 하고 그 저주는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예수는 창조주를 거역하는 행위를 한 것인지도 모른다. 천지창조 후 에덴동산을 짓고 각양의 육축과 식물들을 동산에 만들어 놓고 아담을 지은 것인데 창조주가 만든 무화과를 저주하는 일은 곧 창조주를 욕되게 하는 일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무화과를 저주하게된 이유는 결실(열매)이 없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은 것과 같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게된 아담과 이브에게 제일먼저 선택된 나무였고 그 나뭇잎으로 그들의 아랫도리를 가린 최초의 나뭇잎이었다. 인간들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일까? 창조주의 계획에 의해서 심어둔 사과는 그래서 인간들이 따 먹게되고 에로틱하게 변한 인간들은 마침내 이 땅에 충만한 동시에 죄라는 죄는 모조리 다 지으며 살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아담인 예수가 무화과 콤플렉스(?)를 느끼며 저주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도 하다면 지나친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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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는 너무 달아서 '밀과密果'로 불리는데 무화과의 실체는 열매 속에 붉고 꽃술처럼 생긴 게 무화과나무의 꽃이며, 열매가 곧 꽃이되는 셈이다. 꽃이 열매 속에 있으니 보일 리가 없다. 무화과의 꽃은 봄부터 여름에 걸쳐 잎겨드랑이에서 꽃 턱이 항아리를 뒤집어 놓은 모양으로 커져서 내벽에 흰색의 작은 꽃이 빽빽이 달리며 열매가 먼저 자란 뒤 꽃이 자란다. 우리가 열매라고 생각하고 먹는 것은 꽃이므로 꽃을 먹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무화과의 원산지는 소아시아의 카리카(Carica)로 되어 있고 이 지명을 따서 학명(Ficus carica)이 붙여져 있는데, 재배종의 선조로 간주되는 카프리계는 남서아시아(아라비아 지방)에 야생하고 있는 것이 페루시아(이란) 동부,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등 지중해 연안국가와 모든 섬에 야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재미있는 일은 이들 지역은 대부분 무슬림이 지배하고 있는 땅이며, 성서학자들이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하구 바빌로니아 평원의 딜문섬을 '에덴동산'으로 추정한 바 있는데 그곳에서 지중해를 출발하며 서쪽으로 이동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기독교는 무화과가 충만한 중동땅을 침략하기 위해 안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한다며 살륙을 감행한 무리들은 결국 달디 단 무화과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 스럽기도 했던 것일까? 사랑을 위해서 아담의 몸에서 이브를 취한 창조주가 그의 아이디어를 빛나게 했을 법 한 게 무화과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요즘 우리 농촌에서는 농가소득을 올려주는 무화과 재배가 한창이다. 바이블 속 에덴동산의 모습을 보고 싶으면 무화과 나무가 빼곡한 우리 농촌으로 발길을 돌려보시라. 예수로 부터 저주를 받을 만큼 세상의 단맛을 유혹하는 무화과다.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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