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nsitiveMedia 내가 꿈꾸는 그곳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우리들 눈에 보이는 것과 오감의 자각에 의해서 깨닫게 되는 사실(?)외 또 어떤 모습일까?...예술가들은 이러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하나의 또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며 그들의 시각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종종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우스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르네 마거리트'의 '금지된 반영'이라는 작품이 그 단적인 예다. 금지된 반영이라는 이 작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보통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작품이자 얼마든지 그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깨닫은 보편적인 오감의 자각을 더 신뢰하며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가진 오감이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극히 제한된 감각에 불과한데 우리는 오감을 너무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8일 메가박스에서 영화 한편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코엑스 근처에 세워둔 한 조형물 앞에서 서성이며 쇠로 만든 큰 구슬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보며 떠 올렸던 생각이다.
Bearing
당신의 세상은 어디 있나요?
반들 거리는 쇠구슬 표면에 비친 나의 모습이나 세상의 모습은 많이도 일그러져 있었고, 쇠구슬이 투영하고 있는 모습은 또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쇠구슬 속 사람들이나 나무들이나 집들은 르네 마거리트의 작품속 거울속에 비친 모습과는 다르나 한순간 쇠구슬 속에 있는 사물들이 딴짓(?)을 해도 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나를 향하여 손짓을 하거나 아니면 나로 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한때 분자식을 공부하면서 원소들의 존재에 흥미를 느꼈는데 그들의 미시적 존재가 마치 우주의 한 모습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우리가 허블망원경 같은 도구로 우주를 조망하며 보다 거시적인 세상을 접하게 되었지만 실상 그 망원경을 들여다 보는 우리의 존재는 원소보다 더 작은 개체임을 자각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란 반들거리는 쇠구슬 표면의 작은 입자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구라는 별의 표면에 묻어 사는 인생들은 우주가 보내온 빛이나 신호의 반사체에 불과한 존재로 둔갑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들은 세상이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지만 실상은 우주속 작은별에 동거하고 있는 작은 미생물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해도 틀리지 않는 말일 게다. 그런 개체들이 수억 수십억 정도라고 한들 주먹에 쥔 한줌의 흙덩이 속에 존재하는 원소만큼이나 될까? 그런 인류가 창조주라고 불리는 절대자로 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음은 르네 마거리트가 펼쳐보인 금지된 반영과 같이 세상은 자신이 깨닫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작은 별이자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과 같이 위대한 존재며, 그들이 어느날 심연을 알 수 없는 검은 바다로 사라지는 것과 같이 우리도 어느날 소멸이라는 이름으로 그 검은바다를 향해 질주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속에는 사라짐도 없고 탄생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어느날 내 눈 앞에 나타난 한 원자의 모습과 같은 쇠구슬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늘 다른 모습으로 새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 거울속의 나(我)만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제한된 시간동안 고독하고 외로운 건 아닌지?...사랑하며 살아야 되는 운명이다.
Boramirang
쇠구슬에 비친 또다른 세상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우리들 눈에 보이는 것과 오감의 자각에 의해서 깨닫게 되는 사실(?)외 또 어떤 모습일까?...예술가들은 이러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하나의 또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며 그들의 시각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종종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우스광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르네 마거리트'의 '금지된 반영'이라는 작품이 그 단적인 예다. 금지된 반영이라는 이 작품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보통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작품이자 얼마든지 그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깨닫은 보편적인 오감의 자각을 더 신뢰하며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가진 오감이란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극히 제한된 감각에 불과한데 우리는 오감을 너무 과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8일 메가박스에서 영화 한편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코엑스 근처에 세워둔 한 조형물 앞에서 서성이며 쇠로 만든 큰 구슬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보며 떠 올렸던 생각이다.
Bearing
당신의 세상은 어디 있나요?
반들 거리는 쇠구슬 표면에 비친 나의 모습이나 세상의 모습은 많이도 일그러져 있었고, 쇠구슬이 투영하고 있는 모습은 또다른 세상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쇠구슬 속 사람들이나 나무들이나 집들은 르네 마거리트의 작품속 거울속에 비친 모습과는 다르나 한순간 쇠구슬 속에 있는 사물들이 딴짓(?)을 해도 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나를 향하여 손짓을 하거나 아니면 나로 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한때 분자식을 공부하면서 원소들의 존재에 흥미를 느꼈는데 그들의 미시적 존재가 마치 우주의 한 모습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우리가 허블망원경 같은 도구로 우주를 조망하며 보다 거시적인 세상을 접하게 되었지만 실상 그 망원경을 들여다 보는 우리의 존재는 원소보다 더 작은 개체임을 자각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이란 반들거리는 쇠구슬 표면의 작은 입자하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구라는 별의 표면에 묻어 사는 인생들은 우주가 보내온 빛이나 신호의 반사체에 불과한 존재로 둔갑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들은 세상이 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지만 실상은 우주속 작은별에 동거하고 있는 작은 미생물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해도 틀리지 않는 말일 게다. 그런 개체들이 수억 수십억 정도라고 한들 주먹에 쥔 한줌의 흙덩이 속에 존재하는 원소만큼이나 될까? 그런 인류가 창조주라고 불리는 절대자로 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음은 르네 마거리트가 펼쳐보인 금지된 반영과 같이 세상은 자신이 깨닫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는 각자 하나의 작은 별이자 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과 같이 위대한 존재며, 그들이 어느날 심연을 알 수 없는 검은 바다로 사라지는 것과 같이 우리도 어느날 소멸이라는 이름으로 그 검은바다를 향해 질주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속에는 사라짐도 없고 탄생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 어느날 내 눈 앞에 나타난 한 원자의 모습과 같은 쇠구슬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늘 다른 모습으로 새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 거울속의 나(我)만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제한된 시간동안 고독하고 외로운 건 아닌지?...사랑하며 살아야 되는 운명이다.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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