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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지나가는 '시간'을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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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시간'을 포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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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컷의 찰라를 연결하면 시간이 흐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지프에니메이션 프레임의 간격은 2초...실제 간격은 1/6 secX2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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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時間 시간을 보신적 있나요?...
아마도 시간을 봤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새로운 차원에 도달해 있는 '인간답지 않은 인간'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간은 늘 우리들과 함께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존재며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시간은 가끔씩 우리를 앞서가기도 하고 뒤쫒아 오기도 한다고 하지만 그건 각자가 느끼는 정도의 차이일 뿐 그렇다고 시간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지도 않죠. 그렇다고 지구의 공전과 자전을 거꾸로 돌리면 시간은 과거로 갈 수 있나요? 그것도 아니네요. 아무튼 우리가 생명으로 태어나는 순간 그때부터 자각하는 알 수 없는 시간은 비누방울처럼 커지며 팽창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처음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는데 정말 이해하기 힘든게 시간인것 같군요.  이런 시간을 놓고 인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골몰하며 나름의 정의를 내놓았는데 예로부터 시간은 관측할 수 있는 세계가 속해 있는 3차원과 따로 분리하여 생각했으나, 오늘날의 '현대 물리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시공간 연속체라고 하는 단일한 '양'으로 통합시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아리송한 시간입니다. 시간은 그래서 무식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 모두에게 동일한 의문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답 또한 여전히 의문투성이로 남아 철학자들이 시간을 떼울 때 말도 안되는 듯 말이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다시금 되새겨봐도 무슨말인지 모르는 괘변같기도 하고 그러나 실제로 일어나는 일 같기도 한, 도무지 뒤죽박죽 정리가 안되는 차원이 시간이라는 개념이 아닌가 생각하지만 그것 또한 옳지못한 표현 같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또 맞는 것 같은 게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횡설수설 말만 늘어놓고 무엇하나 정리조차 하지 못한 공간이 연극을 한다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둔 대학로의 한 작은 극장이었고 그곳 연극무대에는 달랑 의자 4개를 가져다 놓고 연극을 한다며 말도 안되는 말로 사람들을 꼬드기는 한편 관객들은 마침내 말도 안되는 언어의 유희 속에서 킥킥 거리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입장료를 내며 속이 후련하다며 바보같은 결론을 내리며 참 재미있는 연극이다라고 평을 하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돌아서면 뭐가 재미있었는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고 단지 4개의 의자만 뚜렷이 기억에 남아 관객모독이 이런거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 쯤 그들이 희희락락한 시간들은 극장속 어둠속에 까맣게 묻혀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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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 의미의 "변증법이라는 말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어 시대나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 의미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로서는 변증법이란 실재 속에 모순구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모순율을 부정하는 특별한 논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보통의 형식논리학에서 모순율은 절대적인 근본원리이므로 이 원리를 인정하지 않으면 "A는 B이다"이면서 동시에 "A는 B가 아니다"가 되므로 두 주장이 모두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변증법은 이 모순율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식논리학과 대립하는 논리로 이해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변증법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헤겔'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전혀 그러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 원래 변증법이 대화술이라는 의미였으므로 이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변증법에 의하면 사전의 글을 쓴 사람 조차 스스로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옳은것 처럼 사람들은 사전을 찾아봐라며 권고하고 있고 사전을 뒤적인 사람은 그가 찾아낸 모순투성이의 정의를 보고 즐거워하는데 돌이켜 보면 그게 즐거워 할 일인지 아닌지 조차도 모르고 잊게 되는 것이죠. 우리들의 일상의 행위는 그렇게 모두 시간속에서 일어나고 시간속으로 소멸된다고 하지만 막상 그 시간속은 들여다 볼 수조차 없고 소멸되기 직전의 시간도 증거할 수 없으니 시간을 포착했다는 말은 말도 안되는 눈속임과 다름없는 말입니다. 제가 드린 말씀을 무슨 말인지 정리하기란 쉽지않고 저 또한 무슨말을 했는지 조차 알 수 없지만 연극에서는 여러 요소를 과감히 생략한 채 이러한 관객모독의 상황을 미리 설정해 두고 관객모독인줄도 모르는 관객들에게 관객모독을 통하여 배우들인 그들이 오히려 기쁨을 누리는 연극이기도 했는데 웃기는 일은 모독을 당하는 당사자들이 모독을 모르는 일이고 거기다 입장료까지 지불해 가면서 모독을 당한다는 것인데, 그들 스스로 이 연극을 보고나면 차원이 높은 연극한편을 봤노라고 어깨를 으쓱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참 웃기는 연극이자 관객을 모독한 이 연극은 그럼에도 기존 연극의 전개과정을 재연해 보지만 오히려 관객을 모독할 당시 보다 더 심드렁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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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소극장에서 치루어지는 연극무대가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의 시간속 공간 하나를 떼어놓은 곳이 아닌가 싶었는데 대학로 창조아트센터 앞의 한 조형물 곁을 지나치다가 본 자동차 행렬이 마치 시간이 흐르는 모습처럼 보여 연속촬영해 두고 보니 이렇게 시간을 포착한 듯 보입니다. 이 포스팅을 할 때 관객모독 속에 등장하는 언어들 처럼 띄어쓰기나 행 간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면 독자들을 다시 모독하는 것 같아서 최소한 띄어쓰기는 했습니다만 관객모독을 관람하게 되면 제가 여러분들께 해 드린 이런 서비스가 얼마나 여러분들을 위한 서비였는지 공감하게 될 것으로 여깁니다. 연극 '관객모독'은 만7세 이상이면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이라고 하지만 그것또한 관객을 모독하는 연령층이나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대사 때문에 용서가 되기도 하는 연령층입니다. 이 작품은 1966년 프랑크푸르트의 투름극장에서 처음 공연된 것을 시작으로 국내에는 1977년 극단 <프라이에뷔네> (고대 독문과 출신의 극단. 후에 <우리극단>으로 명칭 변경)에서 고금석 연출, 세실극장에서 첫 공연되었습니다. 그 후, 극단 76단의 기국서 연출에 의해서 공연되면서 극단 76단에 의해 2~3년 만에 한 번씩 무대에 올랐습니다. 작가 '피터 한트케 Pter handke'는 이 작품으로 독일 연극계와 문학계의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고 전하는데, 그 만큼 이 작품은 기존의 연극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反연극, 또는 언어 연극이라는 독특한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연극에 대한 비판과 조롱과 농담으로 일관하는 내용 때문에 지금도 독일에서는 브레히트 이후의 또 하나의 연극 형식(또는 연극의 자극제)로 계속 상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구와 실제, 시간과 공간, 약속과 우연 등 연극속에 표현한 각 장면들은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마치 시간을 정의해 보려는 노력과도 같은 무의미한 것들이어서 소극장에 불이 켜지며 막이 내리는 동시에 모든것은 망각속으로 사라지는 한편 90분간이라는 시간을 너무 즐겁게 보낸 기억만 머리속에 남을 뿐입니다. 가슴이 아니라 머리속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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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티스토리 Tistory에서 초대해 준 연극 '관객모독'을 본 시간이 벌써 한달도 더 넘었군요. 한동안 이 연극을 본 기억조차 까마득할 만큼 잊고 바쁘게 살았는데 대학로 창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그림속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5월말 까지 계속 공연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혹 시간을 정의하면서(?) 느낄 수 있는 답답한 가슴과 스트레스가 있으신 분은 관객모독을 관람하는 순간 씻은듯 해소되는 명쾌 통쾌 유쾌한 연극입니다. 강추해 드리면서...꾸~욱!! ^^*
공연정보 : http://movie.daum.net/play/detail/main.do?playId=7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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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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