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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온 山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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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
-초파일 지리산 천왕봉 찾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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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천왕봉 天王峰(1,915m)'은 경상남도 산청군과 함양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리산 주봉이며 대한민국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그림은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오후 2시 50분 경 천왕봉의 모습이다. 어제 오전 서울에서 오전 7시에 출발하여 10시에 등반을 시작하여 간간히 흩날리는 빗방울로 인하여 오후 1시 30분경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을 오를까 말까를 잠시 걱정하다 강행한 등정이었다.



천왕봉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제석봉 '통천문 通天門'을 지나면서 발걸음은 많이도 무거워졌다. 통천문은 말 그대로 하늘로 들어서는 문이었고 지리산 장터목에서 천왕봉이 있는 하늘로 가는 입구이자 하늘의 왕이살고있는 도성으로 가는 길이기도 했다. 초파일 지리산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장터목에서 본 중산리 쪽이나 우리가 등반을 시작한 백무동 쪽도 검은 구름이 지리산 자락을 어둡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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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데는 이유가 있을리 없고 신앙을 하는 사람들도 따지고 보면 이유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을 놓고 보면, 산을 오르는 사람이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란 매우 단순한 행위를 반복하고 있는 모습이다. 산이 없었다면 산을 오를 이유도 없는 것 처럼 신앙이라는 무형의 행위 또한 존재할 리 없는 것이다.
 
장터목까지 오를때 까지만 해도 가끔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렇듯 힘든짓을 왜 하는가 하는 일이며 이런 일은 지리산이 아니라 설악산이나 동네 뒷산에 올라도 늘 같은 생각이다. 힘이들어 웬만하면 다음에는 그 짓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겠건만 시간이 얼마간 경과하면 힘들때 당시를 까마득히 잊고 높은 곳에서 발아래 펼쳐진 바라본 아름다운 풍광만 떠오르는 것이다. 참 단순한 사람들인데 나 또한 그 무리속에 끼어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름 붙여둔  천왕봉만 하더라도 그렇다. 남한땅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지만 그 봉우리들은 우리나라에서만 해당되는 일이지 티벳이나 안데스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높은 봉우리들을 굳이 비교하면 겨우 동네뒷산에 불과한 높이다. 그럼에도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들은 1만 미터에 육박하는 봉우리들은 안중에도 없고 '우리나라' 산 중 어머니 처럼 인자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품고있는 지리산을 늘 그리워 하며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먹구름 몰려오는 장터목대피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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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이 몽골로이드인 우리민족을 낳아준 아버지 산이라면 지리산은 어머니 산 쯤 되는 것일까? 우리 근대사는 한국 전쟁을 전후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선인민유격대에 대한 토벌 작전과 관련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이념적 갈등 속에서 '빨치산'으로 불리기도 하고 최근에는 '빨갱이'로 불리기도 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지리산 천왕봉에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고 있었지만 어미가 새끼를 그리워 하는 듯 지리산 전부를 뒤덮는 먹구름은 마침내 눈물처럼 비를 후두둑이기 시작했다.

단군신화에서 '환인桓因'은 천상계의 '주신主神'으로 곧 천신이며, 그 아들 '환웅 桓雄' 역시 천신으로 인간세상에 내려와 살고 싶은 생각에 그들의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太白山'의 신단수 아래로 하강하여 '신시神市를 이룬다고 기술하고 있고, 그 천신은 지상의 곰과 혼인하여 보다 구체화된 실제 인간으로서의 '신인 神人', 즉 단군이 되어 나라를 다스려 나갔고 1,908년을 지내다 '아사달산 阿斯達山'으로 들어가 다시 신이 되었다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

오늘날 우리는 단군의 자손으로 살아가기 보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살아가는 정체불명의 사람이 되었고, 그들의 고향이 백두산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무리들이 적지않다. 지리산의 슬픈 역사는 그렇게 외세의 지배를 받게되면서 시작된 이 땅의 비극의 역사를 잉태하게 되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조선인민유격대에 대한 언급을 민주화 기점인 6월 항쟁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금기시되어 왔다. 군부독재시절 위정자들은 철저히 우리민족을 반공논리로 남과 북을 쪼개는 한편 정치에 이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백두산이 단군신화를 잉태하고 있었다면 지리산은 외세에 저항한 민족의 마지막 기상이 서린곳이라 할까?...

천왕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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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 다다르자 먹구름은 어느새 산봉우리 근처로 내려앉아 있었고 상승기류를 탄 구름들은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원통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왕봉에 오르기 전 답답했던 가슴은 실컷 울고난 후 속이 후련해지는 것 처럼 어미가 품어주며 흘린 눈물로 내 가슴에 난 상처들이 금새 치유되고 있었다. 

제석봉 통천문을 지날때 "...하늘은 무슨 하늘?..."이라며 품었던 찰라의 의심은 금방 천왕봉의 존재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다. 천왕봉 정상 돌아설 자리조차 비좁은 땅에 세워둔 표지석에 새겨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發源되다'라는 짧은 문구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줄 샘물과 같았던 것인지, 8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귀경길에 오르는 동안 내내 천왕봉에서 울부짖던 어미소리가 귀를 스치며 찌든 때와 피로를 벗겨냈다. 초파일에 나를 부른 천왕의 선물일까?...

베스트 블로거기자
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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