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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협괘열차가 남긴 '본오동 철교' 외롭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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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괘열차가 남긴 '본오동 철교' 외롭기만!



혹시, 철도레일 위에 귀를 대고 기차가 오는 소리를 들어보신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기차가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는데 레일위에 귀를 갖다대고 덜커덩 거리며 멀어지며 작아지는 기차소리를 들어 보신적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험은 철로가 가까이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어야 하고 세상물정 잘 아는 어른들이 아니라 철부지 아이들이어야 가능할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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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벌 본오동에 남겨진 협괘열차가 지나 다니던 철교가 세월이 남긴 흔적처럼 녹쓴채 남아있다.

제가 어릴 때 들어본 그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덜커덩 거리며 울리고 있는데 그 기차는 저만치 가고 없습니다. 기차뿐만 아니라 기차바퀴가 만들어 낸 소리를 함께 듣던 친구들도 어느덧 성장하여 반백이 넘었고 그 세월만큼 기차소리는 저만치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맘때만 해도 세월이 너무도 더디 흘러서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막상 어른이 되고나니 또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흐르는 것 같은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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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수인선을 달리던 협괘열차는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제게 작은 추억 하나만 달랑 남긴 채 사라졌는데, 얼마전 안산을 다녀 오면서 안산벌의 본오동에 있는 철새들을 잠시 만나고 돌아오던 중 20여년 전 이곳에서 낚시를 하던 생각을 떠 올리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본오철교' 앞에서 협괘열차의 풍경을 잠시 떠 올렸습니다.


협괘열차 그림은 시흥시 홈피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한 친구는 군자염전이 가까운 곳에서 살았고 그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주말이면 할머니댁으로 갔다가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와서 공부를 하곤했는데 그 당시 그와 함께 간 군자나 안산 소래 등 협괘열차가 통과하는 곳은 한벌판에 바다가 저만치 보이는 어촌마을과 농사를 짓고 있는 안산벌이 펼쳐진 그림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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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역에서 협괘열차를 타고 마주앉은 사람의 얼굴이 빤히 보이는 좌석에 앉아 쓰러질듯 뒤뚱거리며 달리는 협괘열차는 요즘 생각하면 전차도 아니고 전철도 아니었고 기차는 더더욱 아닌 말 그대로 협괘열차였는데('협궤열차'라는 말은 일반적인 철도 레일사이의 간격(궤간)보다 훨씬 좁은 선로를 달리는 기차를 말한다. 일반적인 광궤철도의 궤간이 1.435m(우리나라 표준)인데 반해 수인선 협궤열차는 그것의 절반밖에 안되는 0.762m의 궤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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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협궤열차는 일제 강점기 때 소래 남동 군자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 등을 수탈하여 수송하기위한 목적으로 건설설되었지만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시작한  70년대이후 다양한 교통수송 수단이 등장하면서 부터 서해안 수원과 인천을 오가던 수인선의 교통수단 기능이 퇴색했고 마침내 1995년 12월에 운용이 중단되며 철거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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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안산벌에는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다닌다.

당시 서해안에서 잡히는 어패류들은 대부분 소래포구로 반입되면서 고깃배가 들어오는 날 일대는 발디딜 틈이 없이 북적거렸고, 소래나 발안 화성 등지의 농수산물을 인천이나 수원 등지에 내다팔려는 아낙네들과 촌로및 인천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한데 뒤섞여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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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본오동 철교...한 때 이 철로는 추억을 나르는 소통의 선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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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는 소통할 수 없고 단절된 세월의 흔적으로 협괘열차가 남긴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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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가고 오는 것!...협괘열차가 사라진 본오철교 곁에 신식 다리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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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찾아간 본오동 철교는 최근(1997년)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안산시가 터전을 겨우 잡을 때 였고 중앙동 근처 천에는 팔뚝만한 잉어나 월척 토종붕어가 지렁이만 매달아도 그저 입질을 할 때 였습니다. 불과 10여년 전의 일입니다. 그새 이 지역은 시화호로 물이 썩었고 본오동 철교 주변에는 설령 낚아도 먹을 수 조차 없을 만큼 변해버린 오염된 환경이 수로를 뒤덮고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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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도착하여 쓰레기와 오물이 뒤범벅된 수로 위에 남겨진 협괘열차가 남긴 본오동 철교와 보지 않아도 될 흔적들을 보며, 저는 까마득한 예전의 풍경을 추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사람들로 부터 잊혀진 협괘열차와 본오동 철교를 번갈아 떠 올리며 지나간 것들에 대한 소중한 추억을 떠 올리고 있었는데, 그때 엊그제께 같았던 어릴적 철로변에서 귀를 바짝 갖다 붙이며 들었던 덜커덩 거리며 멀어져 가는 기차소리와 함께 사라진 협괘열차가 남긴 흔적을 두고 가슴 한켠이 허전해 옴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세상물정을 잘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흐르는 것은 아니며,  세상물정을 모르는 틈바구니 속에서도 이렇듯 흔적을 남기는데 시방 내가 남기는 흔적은 무엇일까? 하고 고민하는 아침시간입니다. 소래포구에서 함지박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또 옆구리에 찬 채 공간을 이동하던 아주머니와 도회지로 떠난 유학생들이, 주말이면 보고싶어 했던 부모님들 때문에 더 북적거렸던 협괘열차 옆 그 모습들은 철도레일 위에서 듣던 소리처럼 저만치 가고 없는데, 안산벌에 남겨진 본오동 철교는 무슨 미련이 남아서 녹이 쓸어 쓸모도 없어진 판에  서쪽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요?...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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