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철거현장 계속 '영업'하는 집에서 저녁을 먹다!

SensitiveMedia
           내가 꿈꾸는 그곳                     
    
   


  철거현장 계속 '영업'하는 집에서 저녁을 먹다!


바람이 몹씨도 불었다. 오후 4시경 대부분의 사람이 떠난 용산 철거현장에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대던 골목길에는 쓰레기더미가 사람대신 그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용산참사현장을 둘러보고 사고현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분들이 가리켜 주는 한 골목으로 들어서며 본 철거현장은 당장 무엇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 였다. 사람들은 아무도 용산참사 현장을 거들떠보지 않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 아시는 일이기도 하지만 용산참사가 일어난 현장은 용산역 맞은편에 있는 먹자골목으로 재개발이 되면 용산역세권으로 개발이익이 큰 지역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 개발이익이 참사를 불러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검은옷을 입고 있는 전철연 소속 철거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참사현장을 가로질러 막아 둔 전경버스를 돌아서 철거현장의 골목길로 들어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참사현장은 빈소가 마련되어 있고 불탄 전경버스나 불에 그을린 모습 등이 참사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 주변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철거현장의 대부분 가게들이나 살림집들은 텅비어 있었다. 그러나 이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한 식당 앞에서 사람냄새가 났고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저희 업소는...계속 영업합니다."라는 현수막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런곳에서 아직도 영업을 한다니 무슨 사연이 있을 법 하기도 하고 저녁시간이 되어 출출하기도 했는데 허름하기 짝이없는 가게앞 창에 '순대국' 차림표가 눈에 들어왔고 그곳 창에는 '민주노동당'의 표시가 되어 있었다. 이 가게의 주인은 민노당에 의지(?)하여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식당이었다. 가게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분이 저녁준비를 하고 있었고 식당내부는 겉에서 보기보다 꽤 넒어 보였다. 순대국을 시키고 소주 한병을 시켰다. 모두가 떠난 철거현장에서 계속 영업하게 된 이유를 듣고 싶었고 철거현장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듣고 싶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순대국이 주방에서 요리되고 있는 동안 이 집에서 일하시는 남자분(주인 어머니는 철거민 관련 시위 때문에 여의도에 나가 있어서 두분이 장사를 하고 있었다.)은 철거현장을 떠나지 못한 이유를 주섬주섬 끄집어 내며 말했다.

"...어머니가요. 30년동안 여기서 정육점하고 식당을 했는데...보상비로 3천만원을 주고 나가라는 거예요."

그는 화를 내지도 않았고 목청을 돋구지도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용산참사가 일어난 시각 이후 그는 가게가 있는 이 골목길을 쉽게 들어오지도 못했다. 신분증과 함께 가게로 간다고 해도 들여보내 주지않고 경찰들이 막아서는 바람에 그나마 장사도 하지 못하고 여간 불편을 겪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계속 장사를 하게 된 이유는 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해 보였다.

"...생각해 보세요. 30년동안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고 3천만원으로 어디를 가라는 말이예요."

그래서 이 식당은 부당한 재개발보상에 대해서 합당한 처우가 될 때 까지 어머니가 1인 시위등 백방으로 하소연하러 다니고 있는 것이었고, 가게는 계속열어 두고 있는 것이었다.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윽고 순대국이 나왔다. 순대국은 들깨가루를 한 숟가락 넣자 먹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바뀌었고 국물과 '머리고기' 한점을 입에 넣자 마자 잘 우려낸 국물맛이 30년 전통의 순대국집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듯 했다. 이 지역이 도시재개발로 철거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시각에는 사람들이 들끓을 것 같은 집이었고 30년동안 장사를 해 온 이 식당은 여전히 돈벌이가 괜찮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보상을 노리고 이 지역에 들어온 사람에 대해서 물었고 터무니 없는 보상을 주장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네!...있어요. 저기...저기 살던 사람들입니다. 나쁜사람들이죠."

그는 손을 가리키며 바람에 펄럭이는 포장 너머에 살고 있던 사람을 가리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철거현장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으나 이 식당에는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사람들이 찿아들 리 없어보였다. 이 식당은 처음부터 정육점과 식당을 겸하고 있었고, 정육점과 식당을 따로 운영해 왔다는 이야긴데 보상은 식당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며 터무니없는 보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이 가게를 벗어나면 어디서든 자립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3천만원으로 이와 같은 식당을 열 수 있는 곳은 있을 리 만무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울러 이 식당을 기억하던 단골손님들이 새로 개업한 식당으로 찾아올 리도 없었다. 용산역에서 5분이면 닿고 찾을 수 있는 이 골목은 역세권이라는 이름으로 새주인들이 보금자리를 만들 뿐이다. 그는 이제 하소연 할 힘도 없는듯 담담하고 조용하게 말을 잇고 있는 것이었다.

"...이사비용도 있어요. 65만원이요. 이런 거 아는 사람이 없어요. 알려주지도 않고..."

그는 재개발을 하면서 철거현장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몰라서 찾지못한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얼렁뚱땅 사람을 내쫒는 현실에 대해서 강한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그는 체념한듯 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순대가 없는 순대국밥을 맛있게 먹으며 용산참사 현장의 순간을 떠 올리고 있었는데 멀찌감치 켜 둔 티비에서 자막으로 <속보>가 전해지고 있는 것을 봤다. '김수환추기경 서거' 소식이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 거리고 있었다. (...철거민들은 죽고 추기경은 서거하는 구나!...) 사람의 죽음은 세가지가 있다고 했다. 죽는 것과 돌아가시는 것과 '뒈지는 것'인데 죽음의 한 현상을 놓고 살아온 형편에 따라서 죽기도 하고 돌아가시기도 하고 뒈지기도 한다. 그런데 추기경은 서거했고 나는 순대국밥 한그릇을 앞에 놓고 물대포를 맞으며 화염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떠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참사를 당했다. 오후 6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순대국에 순대를 넣으면 퍼지며 퍽퍽해서 맛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집 순대국에는 순대를 안 넣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는 이 식당과 함께 이곳에서 계속해서 영업을 하는 게 당연한듯 30년동안 이어 온 순대국 맛에 대한 특징을 말했다.한동안 따뜻한 날씨가 봄을 재촉하는 가 싶더니 한파가 몰아치는 철거현장은 사람이 살 곳이 되지 못했고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찾지않는 이 식당의 밤은 길게만 느껴졌다. 내쫒는자와 내쫒기지 않으려 봄부림치던 사람들은 망루로 올라갔고 그들은 용역업체와 경찰의 공권력과 맞서 싸우다가 차디찬 날 화염속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들이 이곳 철거현장에서 삶을 이어오며 늘 바라던 게 있다면 바로 뒤로 보이는 신식 아파트에 입주하여 그들 스스로 이런 식당에 들러 손님이 되어 보고 싶었던 게 꿈이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의 모습은 그런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는 커녕 작은 보금자리 마저도 빼앗으며 함부로 내쫒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그런 마당에 성자로 불리우는 사람이 서거나 선종의 이름으로 추앙되는 사실에 대해서 내심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이력에 의하면 민주화가 한창이던 시절에 시민과 권력의 중재자가 되기도 했지만 내가 만난 '성 프란체스코'와 같은 성인의 모습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아시시의 가난한 이웃들과 함께했고 그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며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던 성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권력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들을 떠올리며 만만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사회적약자에 대해서 행해지는 추악한 모습이 저질러진 철거현장에서 발길을 옮기며 별의 별 생각을 다 떠 올리고 있었다. 내가 철거현장에서 계속 영업하고 있는 이 식당에서 듣고 머리속에 각인된 게 있다면 형평에 어긋나는 조치로 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기댈곳 없는 그들은 처음으로 검은옷에 쓰여진 '전철연'의 옷을 입었고 그들을 따라서 망루로 올라갔을 뿐이었는데, 결국 그들은 범죄자가 되고 만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 사회에는 지도자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데 그들 대부분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재개발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착취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당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지도자들에 대한 나의 시각은 비뚤어져도 한참 비뚤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순대국밥 한그릇을 앞에두고 요기를 하듯 산자는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같은 시각, 망자를 냉동고에 두고 장례도 치르지 못하며 억울해 하는 유가족들은 우리의 뇌리에서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다. 우리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놀라게 한 참사현장 뒷골목 한편에서는 오늘도 문을 열어두고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데 나는 이분들이 최소한의 합당한 처우를 받으며 새로운 곳에 보금자리를 찾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바람이 몹씨도 부는 날, 정치인과 신앙인의 서로 다른듯 같은 두얼굴을 철거현장에서 만나고 돌아섰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SensitiveMedia
내가 꿈꾸는 그곳
Daum 블로거뉴스


Daum
검색창에
내가 꿈꾸는 그곳을 검색해 보세요. '꿈과 희망'이 쏟아집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