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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추기경과 철거민의 '죽음' 뭐가 다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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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과 철거민의 '죽음' 뭐가 다른지?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치던 故 김수환 추기경은 겨울을 고하는 막바지 바람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그분의 부음을 철거민들이 내쫒긴 철거현장의 한 식당에서 티비에 나오는 자막을 보고 알았지만 마음의 동요는 전혀 없었다. 늘 봐 오던 '죽음'의 모습이었고 누구에게나 한번씩 찾아오는 운명과도 같은 세상살이와 같은 한 부분이다. 이런 죽음은 내 어버이도 같은 절차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이런 죽음은 인간이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있는 이상 똑같은 절차는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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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 앞에서도 주검에 대한 예우는 다른 것이어서 어떤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고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형편에 처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죽음을 맞이한 직후 호들갑을 떨 만치 주검 앞에서 필요이상의 몸짓 등으로 죽음을 미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구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대게 출생과 함께 이어지는 사망으로 잠시 잠깐 반짝이는 빛처럼 보였다 사라지는 것인데, 왜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이 운명을 달리하면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일까?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김수환 추기경도 보고싶어 하지 않았을 용산의 철거현장에서 철거민과 추기경의 죽음이 뭐가 다른가 하고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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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는 다섯분의 영정이 비닐로 겨우 바람을 가린 분향소 안에서 촛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닐이 바람에 떨고 퍼덕이며 시끄러운데 그분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와 함께 눈을 마주치며 찬바람이 몰아치는 오후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주검은 한 병원의 냉동고에서 꽁꽁 언 채 장례조차 치루지 못하고 있고 유족들이 비운 분향소를 철거민 이웃들이 난로에 장작불을 지피며 지키고 있었다.



엊그제 까지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했던 '용산참사' 현장 모습은 처참한 모습으로 그대로 남아 당시의 참상을 전해주고 있을 뿐 대로의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단꿈을 꾸며 살았을 철거현장은 그들의 꿈과 희망이 모두 담긴 소중한 일터이자 보금자리였는데, 어느날 그들은 그들의 의지나 의사와 관계없이 진행된 도시계획에 따라서 내쫒기며 마침내 망루 위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곁을 떠날 때 까지 그 누구도 그들을 봐 준 사람도 그들의 아픔에 대해서 관심조차 가지지 못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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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참사현장에 마련된 참사희생자들의 빈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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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현장에서 불태워진 경찰버스가 철거현장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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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곁에 철거용역들이 스프레이로 휘갈겨 둔 경고낙서에 불필요한 해골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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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에서 분향소 곁 골목을 가로막고 있는 전경버스에
현수막으로 고인들에 대한 애도와 함께 참사 책임자규명을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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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참사가 일어난 건물은 만신창이가 되어있다. 이곳이 참사현장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용산 철거민 참사자들에 대한 애도 물결이 리본에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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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마다 쓰여진 억울함들을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이 왜곡 호도하고 있는데 대한 항의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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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게 부는 바람에 파닥이는 리본들이 가난한 이웃들이 절규하는 모습같아 보였다.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라고 가르친 故김수환 추기경이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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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어느새 '돈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으로 잘못 받아들여 졌고
'경제'를 사랑하라는 말로 착각하여 사람을 경시하는 풍토로 이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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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방조와 같은 것일까?...
나는 파다닥이며 떨고 있는 리본앞에서 방조자와 다름없었음을 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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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억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고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까 싶었는데 아직도 철거현장에서 일어난 참사에 대한 조치등에 대해서는 그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참사가 일어난 건물이 빤히 보이는 횡단보도를 건너자 마자 내 앞에는 바람에 떨고 있는 작은 리본 무리들이 눈에 띄었고 건물 곁 도로변에 설치해 둔 붉은 소화전이 댕그러니 나를 쳐다 보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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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소 앞에 임시로 만들어진 리본을 달아 둔 철제탑에는 수많은 리본들이 달려있었는데, 그 리본들은 가난한 우리 이웃이 억울한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이웃으로 부터 받게되는 작은 관심이었고, 조문객들의 마음이 담긴 작은 리본이었던 것이다. 비닐천막으로 둘러져진 분향소...나는 그 앞에서 할말을 잊고 곁의 난로를 쬐고 있는 철거민들을 바로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분향소 곁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았고 분향소 안은 텅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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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성자들이 너무도 많이 산다. 서울만 해도 한 집 건너 성자들이 살고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신앙하고 있는 종교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며 영생을 추구하며 사람들을 꼬드기고 돈을 사랑하고 인간을 경시하는 적지않은 성자들과 사람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늘 반목과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 스스로 한알의 밀알이 되고자 목숨을 건 신앙이 있었던 들 다같은 죽음 앞에서도 서로다른 대우를 받아야 할 까닭은 없었을 것인데 어떤 이는 아무도 찾지 않는 빈소 안에서 그들의 운명과 닮은 꺼져가는 촛불만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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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허무맹랑한 영생이나 천국을 사모하지 않았고 추기경의 가르침과 같이 세상을 사랑하였으며 사람을 사랑하여 가난한 이웃들과 도란도란 살고 있었다. 그러나 똑같은 물이라도 뱀이 삼키면 독이되는 것과 같이, 같은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멀어진 사람들이 죽음으로 부터도 다른 대우를 받으며 우리들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한 성당 곁에는 그를 애도하려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정도가 아니며 안구 등 시신일부가 기증되기로 한 주검은 유리관 속에 누운채 말이없다. 같은 시각, 철거민의 주검은 냉동고에 보관된 채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영원히 죽지 않아야 될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죽은 불합리와 같이 똑같아 보이는 인간의 죽음에도 불합리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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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똑 같은 죽음 앞에 서로다른 장례절차가 기다리고 있었고 위정자들은 입만 조아리며 서로다른 주검 앞에서 표정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철거현장에서 운명을 달리한 주검들의 영혼이 하루라도 속히, 구천에서 맴돌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하지 않겠나?
 
돌아서면 알 수 있는 서로다른 죽음 앞에서 우리들도 서로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건설 등으로 재물을 남기려고 애쓰는 위정자들과 달리,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한 故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의 유언과 같이 세상을 사랑하여 죽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육신의 일부를 세상에 남겼고, 철거민 참사에 대한 유언은 확인된 바 없었지만 그분의 생전에 가르침을 돌아보면 '나 보다 먼저 그들을 보살피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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