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믿음 강하면 '대박' 맞을 수 있는 골동품점!

SensitiveMedia
내가 꿈꾸는 그곳    
   
   


믿음 강하면 '대박' 맞을 수 있는 골동품점!
-태胎항아리 아세요?-
believe!...

설 연휴는 잘 보내고 계세요? 기축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설연휴기간 동안 폭설등 기상악화로 귀성길이 매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저는 서울에서 설을 쇠고 있는 중이어서 귀성길에 나서며  폭설중 교통대란 속에서 힘들게 고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안스럽게 지켜보며 또 부러운 모습으로 지켜봤습니다.

평소, 폭설이 만든 교통대란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면 사람들은 매우 곤혹스럽고 짜증날 법도 한데 영상속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자동차행렬은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뉴스앵커가 전하는 현장모습과 달리 차창에 비친 귀성객들의 얼굴에는 다소 지쳐보였지만 여유가 넘쳐보였구요. 아마도 그런 여유는 곧 만나게 될 고향의 형제자매들과 부모님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새롭게 맞이하는 한해에 대한 희망들이 교차하며 들떠있는 마음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래왔고 해를 거듭해도 그 모습은 별로 달라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교통대란이 일어나는 도로 한가운데서 핸들을 쥐고 전방을 주시하는 동안 머리속은 온통 부모님과 고향 생각뿐이고 지난 한해동안 못다한 아쉬운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것인데, 그때 머리속에는 로또와 같은 '대박'의 희망도 더불어 스치며 새해에는 반드시 그 대박을 손에 쥘 희망을 새길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쉽지않은 일입니다. 불황의 여파 때문에 직장에서는 승진은 고사하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구조조정 대상이 되지 않는 것 만으로도 대박인지도 모르며 하고 있는 사업이 현상유지만 해도 괜찮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암튼 느리기만 한 자동차 속에서 별의 별 생각을 다하는 동안 머리속 한쪽에서는 자신의 목표에 대한 부족한 의지나 믿음 때문에 하는 사업이 늘 지지부진하고 직장에서도 늘 뒤쳐지지나 않는지 반성하게 되고 하는 일 마다 쪽박을 차거나 무슨일을 해도 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타로나 사주카페를 서성이며 문제점을 찾거나 미래를 점쳐 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할 수 있거든이 뭐냐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 마다 능치 않는 일이 없다'고 하는 바이블의 말씀을 따라 열심히 새벽기도는 물론 철야기도도 모자라서 산상기도까지 가서 스스로 믿음의 상태를 점검해 보며 '대박기원'을 해 보지만 여전히 현실의 모습은 늘 그렇듯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

이런 이야기들은 주로 내 경험에 의한 것들이고 대박환상에 젖어있다 보면 매사가 '믿음'과 결부시켜 보는 건강하지 못한 '기복신앙'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기회 조차도 대박은 고사하고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반성하며 볼 수 있는 모습이니 귀성길에 오른 자동차들이 폭설로 뒤엉긴 채 빵빵 거리는 아수라장과 같은 도로 위에서 핸들을 쥐고 하는 생각의 깊이는 그저 오락가락하는 윈도브러쉬처럼 정리는 되지 않고 믿음도 오락가락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할 수 있다' '하면된다'와 같은 신념은 잠시 잊혀지고 도로 한가운데 모습과 같이 피곤한 모습으로 어느새 생활속에 묻히고 만다. 그리고 한해가 또 가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믿음 이야기가 나와서 한마디 해 보자면 설 전 서울풍물시장에 들러서 풍물시장 가득한 풍물들을 일일이 돌아보며 잠시 한 골동품점에 들렀을 때 일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후, 참사는 없었지만 비슷한 과정을 겪은 '황학동' 서울풍물시장의 모습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 들렀는데 그곳에는 '설맞이 대박 큰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얼마전에 들렀던 시장의 모습과 다른 모습이 한두가지 아니었고 만국기가 바람에 파다닥이는 서울풍물시장에는 사람들이 술렁거리고 있었다.
 
풍물시장이 활기를 되찾고 있는 모습이었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풍물시장 입구 행사장 부터 280여 가게가 가득한 돔 안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벤트 이름과 같이 이곳에서는 즉석경매장에 고가품의 물건들이 기준가도 없이 경매되었고 경매품을 든 시민들은 싱글벙글 했다. 상인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미소가 파다하여 같은 시각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발생한 재개발 현장의 용산참사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곳은 황학동 벼룩시장(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이 재개발되면서 서울시가 상인들을 위한 삶의 터전을 이곳으로 옮긴 곳이었다.

서울풍물시장하면 떠 오르는 물건들은 대부분 철지난 상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최근에는 '씨디CD'나 '엠피쓰리MP3'가 오래된 녹음기 테이프와 함께 팔리고 있는 모습이어서 격세지감을 더해주고 있는데 '구세대'(?)인 나는 아무래도 나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기억할 수 있는 오래된 물건들에 관심이 쏠렸고 특히 선조님들이 사용하고 남겨둔 유물과 같은 골동품들은 풍물시장을 돌아다니는 내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있는 물건들이다. 그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유물속에서 잠들어 있던 요정들이 금새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내게 말을 붙이며 내 발길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나는 한 공동품 가게를 스치다가 '고려시대 태胎항아리'와 눈이 마주쳤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기의 태胎를 담은 胎항아리는 고려시대의 청자와 상감청자들 중에 '네군데 귀四耳'가 달리고 뚜껑에 꼭지가 있는 호들이 12세기 전반부터 14세기 전반까지 제작되어 남아 있으나, 胎誌石이 발견된 예가 없고,태胎항아리로 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존하는 국내외에 20여 점의 朝鮮時代 粉靑瓷들은 주로 15세기 전, 중반경의 '象嵌, 印花粉靑瓷四耳壺'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중 胎誌石이 있는 胎항아리의 예는 거의 없으며, 이들이 모두 胎항아리로 사용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조선시대 백자 태항아리의 변천사-원광대 윤용이 교수>고 말하는 '태항아리'는 서울풍물시장 골동품점에서 '고려시대 태항아리'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었다.
 
작은 물주전자만한  항아리 한쪽에는 귀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이 골동품 주인 아주머니는 이 부분을 고증받은 것 같았다. 태항아리변천사에 의하면 전문가 조차도 태항아리에 대한 사용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고 있는데 반하여 이 골동품 가게에는 그림과 같이 매직펜으로 대충 몇자 끄적인 다음 태항아리가 고려시대에 사용된 듯한 모습으로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골동품가게의 주인 아주머니는 손님들에게 이른바 뻥을 치고 있는 것이며 또 눈속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카메라를 만지작이며 태항아리에 대한 호기심을 보이는 아주머니가 조금전 부터 수상쩍은 내 모습을 보며 한마디 던졌다.

"뭐하시는 거예요?..." 나는 머쓱해 하며 "태항아리가 애사롭지 않아서 사진한장만 찍으려는데...괜찮죠?" 그렇게 하시라는 말과 함께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는 아주머니가 신경 쓰여서 조금전 부터 내 속에서 묻고 싶었던 궁금증이 동시에 튀어 나왔다. "...아주머니...이거 전부 진품입니까?" 나는 골동품가게를 오가는 손님들이 잘 들리지 않게 나지막 하게 말했다. "보면 몰라요?...거기 다 써 놨잖아요!..." 물어 본 내가 잘못임에 틀림없다. 이곳에 진열된 골동품들은 고려시대 때 부터 조선시대 때 까지 우리 선조님들이 사용한 물건들 앞에 매직펜으로 끄적여 둔 명찰이 있었다. 차라리 이 명찰들이 메직펜으로 써 놓지 않고 잉크로 타자를 해 두었으면 이 골동품을 보는 내 믿음은 조금더 나아졌을까?

나는 내 질문이 어리석은줄 알면서도(?) 다시 아주머니를 귀찮게 했다. "...이거...태항아리 얼마면 살 수 있...죠?" 아주머니는 내 물음이 떨어지자 마자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나 보통 손님들도 그러한지 내가 이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듯 자리에 앉은 채 꿈쩍도 않고 대답했다. "...20만원이요!!..." (흐미!...^^) 나는 태항아리를 사지도 않을 것이면서도 꽤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 500년도 넘은 물건이 20만원 밖에(?)안된다는 사실 때문에 다시 이 골동품의 진품여부를 놓고 내 믿음이 시험대 위에서 짦은시간 흔들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주머니는 여전히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내가 던지는 이런 질문은 지하철구내에서 매점을 하시는 분을 향하여 지하철 방향이나 시간을 물어보는 사람과 별 달라 보이지 않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컷의 촬영을 신속하게 마치고 심심하실 것 같은 주인 아주머니께 내친김에 한번더 물어봤다. "...아주머니...이거 요...제가 사 갔다가 가짜라는 판명이 나면 어쩌죠?..." 물건을 사지도 않을 넘이 별 걸 다 물어보고 있는 셈이었다. 아주머니 눈꼬리가 순간적으로 움직이며 빛을 발했다.

"...츠암 아저씨!..." 아주머니는 그렇게 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싶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문제예요?...바꿔주면 그만이지!..." (허걱!) 그랬다. 아무리 매직펜으로 끄적여 둔 물건이지만 이 가게는 이 자리에 있고 이 골동품을 판 주인도 이 자리를 떠나는 법은 없는 것이다. 수십년 동안 그렇게 황학동에서 삶을 이어오신 분이, 어쩌면 물건도 사지 않으면서 공갈협박을 닮은 내 질문에 '사 갔으니 난 모른다'고 할 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주머니가 던진 한마디는 지금 글 몇줄을 끄적이고 있는 이 시간에도 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저씨!...이런 물건은 믿고 사야 대박나는 거 예요..." 아주머니는 지금껏 그래온 것 처럼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제로 서울풍물시장에서는 한때 전국 도처에서 수집된 고가의 물건들이 전문가들이 저가로 매입하여 대박난 사연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어떤 물건들은 진귀하여 그 값어치를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물건들이 팔려나가기도 한 곳이다. 그 물건들은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그저 좋아서 구입한 물건이 진귀한 보물로 판명되어 대박을 만든 전설과 같은 신화였다.

서울풍물시장에 쌓아둔 물건들을 떠 올리면 설레임으로 설연휴에 나선 귀성객과 같이 혼재 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저마다 간직한 삶의 이야기들이 태항아리 처럼 숨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고려시대의 태항아리의 사용여부와 진품여부는 사료가 없기도 하지만 어쩌면 대충 휘갈겨 놓은 출처가 실제로 수백년 전 우리 선조들이 태를 묻을 때 사용했던 태항아리인지 모르며 저 항아리에 태를 묻은 문벌이 있는 모가족사에 '안태고향'의 이름을 등재했을지 모른다.

서울풍물시장을 돌아보는 동안에 내게 닥친 믿음에 대한 시험은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끝이났다. 한때 풍물시장에서는 언급한 바와 같이 로또를 사고 파는 것과 같은 '복불복'과 같은 믿음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골동품 속 요정이 던지는 메세지에 이끌려 태항아리와 같은 물건 앞에서 나 처럼 서성거리며 삶을 되돌아 봤을 법 하다. 설연휴를 떠나면서 별의 별 상념속에 있었던 우리 이웃들이 이틀이 지나면 다시 삶의 현장으로 복귀하게 되고 일상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그때 골동품 가게를 지키던 아주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상기하면 생활속 신앙과 같은 '믿음'의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도 지혜롭고 똑똑하여 매사를 돈과 같은 물질의 가치만 붙들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리하여 서울풍물시장 골동품 가게의 주인아주머니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풍물시장의 진한 매력이다.  베스트 블로거기자Boramirang 
              
 
사용자 삽입 이미지
Daum 검색창에 내가 꿈꾸는 그곳을 검색해 보세요. '꿈과 희망'이 쏟아집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