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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나와 우리덜/나와 우리덜

汝矣島 輪中堤 벚꽃祝祭


 

내/가/꿈/꾸/는/그/


 

 

 

汝矣島 輪中堤  벚꽃祝祭


 

여의도는

그 역사만큼 이름값을 하고 있는곳이다.

나의 섬, 너의섬하고 불리던것이 이두어로 오늘날 여의도가되었다 한다.

볼쌍사납게 윤중제 안으로는

그유명한(?) 국회의사당이 떠억 버티고있다.

오늘도 위정자들은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해대며

서로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 몸살이다.

이른바 야의도, 여의도가 그것이다.

어떤 의도가 있던지간에 여의도는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곳이자

살아있는 생물체 처럼  오늘도 대폭발을 거듭하고 있는

대혼돈의 한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 윤중제를 돌며

4월의 벚꽃을 만끽하고 있다.

온통 사람꽃이다.

사람이 벚나무 보다 더 많은 곳

그곳이 윤중제 벚꽃축제의 마당이다.

손에 손마다 쥔것은 카메라며 휴대전화다.

사진사들은 개점 휴업상태다.

놀란것은 벚꽃일뿐 사람들은 그저 인파속에서 떠밀리고 있을 뿐이다.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줄지어 있지만

정작 그려짐을 당하는 쪽은 그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카메라에 얹히는 모델이 되었다.


밤이되자 화려한 조명을 받은 벚꽃은

본래의 화려하고 소박한 멋을 잃어버렸다.

행사장 옆에 마련된 공연장에는 소속구의 동별 취미반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강가를 거니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나누는 사람들,

춤을 추는사람들, 말없이 걷는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모두 패닉상태의 혼돈 가운데 서성이는 사람들 같다.

서로의 손익을 따지며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서

이들은 그저 한잎의 꽃으로 윤중제를 서성이고 있는것이다.

너의 것. 나의 것도 없는, 우리 모두의 것에 친숙한 사람들...

이들로 인하여 여의도는 묘한 중력을 지탱하고 있다.


어떤 넘들은 벚꽃이 일본것이라 하고

또 그들이 묘목을 가져다주었다 한다. 웃긴다.

인간은 누구것인가?...

짜잘함은 모두 의사당안으로 던져보자.

그 불타는 욕심 가운데 던지면 최고의 융점에서

또다른 생명으로 환원되리라.

이제 막 초신성에서 떨어져 나온 별처럼

데뷔한 새내기 그룹일렉트릭악기와 신선함을 발하고 있었다.

별의 신고식...빛나는 스타가 되기 위함이라 한다.

이미 빛을 발하고 있음도 모른채 말이다.

우리는 모두 별이다.

별이 수도 없이 반짝이는 여의도에는 벚꽃이 아랑곳 없다.

그저 나의별, 너의 별만 있을 뿐이다.









2006-0413

여의도 윤중제 벚꽃축제를 다녀와서

보라미랑

       


 






















































 
 
汝矣島 역사...
 
조선시대 잉화도(仍火島)·
나의주(羅衣洲)·
나의도(羅衣島) 등으로 불렸던
섬으로 홍수가 나서 온 마을이 잠길 때도
지금의 국회의사당에 자리잡고 있던
양말산만은 물에 잠기지 않고 나타나
사람들이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르던 것이
이두어로 표기돼 지금의 지명이 되었다.
조선시대 한성부 북부
연희방 (延禧坊) 여의도계(汝矣島契) 여의도였다.
1911년 경성부 연희면 여의도였으며
1914년 율도(栗島)와 함께
용강면(龍江面) 여율리(汝栗里)가 되었다.
1936년 여의도정(汝矣島町)으로 바뀌었으나
1946년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조선시대에 목축장 또는
척박한 농지로 사용되던 여의도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4년 비행장으로 개장하여 조선비행학교,
일본육군비행장, 군용비행장, 국제공항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1968년 서울특별시가
한강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여의도개발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본격적인 신도시로 탈바꿈하였다.
1968년~1970년 밤섬폭파 후
윤중제를 축조하며 현재의 지형이 되었다.
<다음 신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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