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슴에 안긴 아드리아해의 불덩이..!!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 해변의 일출
서기 2020년 6월 30일 오전 5시 20분경,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바닷가에 먼동이 터 오고 있었다. 하늘은 붉디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곧 일출이 시작된다는 아름다운 신호이다. 날씨만 맑다면 매일 볼 수 있는 태양의 긴 호흡이 막 시작되는 것이다. 이 빛은 태초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우리네 싦 속에서 이렇듯 시간을 잘 지키는 이가 또 있을까..
그런데 우리의 하루를 일깨우는 장엄한 의식은 태양계의 한쪽 모퉁이 지구별에 사는 사람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일출이 시작되고 다시 일몰로 이어지는 과정은 우리네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가 스스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이 땅을 비추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날 아침 우리도 그랬다. 새벽 5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바닷가에 도착했다.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상은 오래된 습관이다. 안락한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태초의 생명은 물속에 있었던 것일까..
아이들은 물을 좋아하고 물장난을 즐긴다. 아마도 그 녀석들은 엄마의 자궁 속 양수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며 장차 세상에 나갈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었을 것이다. 어떤 초음파 사진을 보니 엄마 뱃속에 있는 아이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상 밖의 풍경을 전혀 본 적도 없는 아이가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녀석은 엄마 아빠의 말소리가 재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도 아니면 언니와 형의 목소리를 듣고 그게 무슨 소린가 싶기도 했겠지. 그것도 아니면 바둑이가 멍멍하고 짓는 소리나 고양이가 미야옹하고 울어대는 소리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반면 초음파 사진에 나타난 아이는 얼굴을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기도 했다. 임신 중에 아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달라고 입덧의 신호를 보냈는데 엄마는 딴청을 부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태중에 아이는 엄마 아빠를 놀라게 하는 기막힌 잉태의 모습이자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남자 사람과 여자 사람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사랑을 나눈 끝에 엄마의 뱃속에 아이가 생기는 것. 대체 이게 무슨 조화인가..
이런 현상은 어릴 때부터 두고두고 생각해 봐도 신기한 일이었다. 사람들도 그렇지만 동물들도 아이나 새끼 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게 섹스라는 사랑의 행위 하나만으로 일어난다니.. 조물주의 기록에 의하면 남자 사람의 필요(맞나..?)에 따라 여자 사람이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다. 누가 어떤 행위를 한 결과 태어난 생명들..
일출이 시작됐다
아무렴 어떠랴. 희한한 일이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의 자궁으로부터 세상에 나온 아이의 시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달님과 해님이 번갈아가며 아이를 키우게 되고 동시에 들불처럼 일어나는 온갖 망상들.. 태양이 아드리아해 저편에서 불쑥 올라오면서부터 붉은 기운이 세상을 덮는 것처럼, 이때부터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시작되는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동시에 아이에게 주어지는 것.
고개를 내민 해님..!
그러거나 말거나 아드리아해 너머에서 떠 오른 붉은 태양은 태초로부터 영원까지 똑같은 얼굴로 우리를 굽어본다. 나는 이날 아침 바닷가에 발을 적신 이후 동쪽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이 내 가슴에 안긴 기분 좋은 느낌을 받았다. 태양이 연출한 마법 같은 세상이 나를 지배하며, 내 머릿속과 마음속에 저장된 파일을 모두 포맷시킨 것. 그저 붉은 기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사람들은 이런 느낌을 고상하게 포장하여 무념무상이라며
득도의 경지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득도는 무슨.. 개뿔..!! ㅜ)
어느 날 아침, 가득 찬 외장하드를 통째로 비워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만드는 신비로운 경험인 것이다.
가슴을 적신 아드리아해의 붉은 기운들
내가 경험한 세상의 신비한 현상들
파타고니아의 산중에서 경험한 환청에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아드리아해의 붉은 기운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산중에서 경험한 것과 전혀 다른 신비로운 경험..
아침 산책을 떠나 바닷가에 서서 저만치 두둥실 떠오른 해님과 눈을 맞춘다. 진공상태로 변한 내 가슴..
한 아이가 엄마의 자궁 속에서
미소를 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러나 녀석의 꿈속에..
전혀 때 묻지 않은 가슴속에..
이런 풍경 하나쯤 꿈꾸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아드리아해의 바다에 발을 담그고 내 가슴에 안긴 붉은 태양을 꽤나 오랫동안 바라봤다.
이런 경험의 원천은 달님이 밤새 물결을 재촉하며 내 속에 가득한 찌꺼기를 걸렀기 때문이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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